2007/07/23 - [드라마/한국 드라마] - 남장 여자가 매혹적인 이유-<커피 프린스1호점>
드라마는 이래서 참 성가시다.
드라마 중도에 '어, 이 드라마 꽤 좋은데?' '꽤 재미있는데?'라며 칭찬을 할라치면,
어느 순간 나의 호감에 제대로 뒤통수를 때리는 '배신'의 행보를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이 나기 전에는 함부로 무슨 드라마도 칭찬하기/비판하기가 어렵다.
지난 번 한껏 칭찬을 했었는데, 이렇게 분개하며 또 글을 써야하고.
분명 <커피프린스>는 미덕이 많은 드라마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예쁜 화면과 신선한 백뮤직을 선사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고은찬이라는 '여성성'이 담보되지 않은 여성 캐릭터의
사랑의 성취 과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게 다이다.
그 정도 가지고 '웰메이드'라고 하기엔, 아직 갈길이 멀다.
'남장여자' 모티프의 매력을 얘기하면서
점쳤던 바와 같이 이 드라마는 그 순서를 지키긴 지켰다.
'사랑을 먼저 깨닫기(동성이더라도)-그 순간 서로가 이성임이 밝혀지기'
그러나 이 단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질질 끌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 드라마가 간 길은 동성애에 대해 지나치게 '폭력적'이었다.
물론 저러한 전개 '룰' 자체가 이미 보수성을 지닌 것이었음은
알고 있었다.
이성애주의적이고 일대일의 배타적 관계, 영원한 사랑...
그런 길로 갈 것이 뻔함에도,
그러한 한계를 지님에도,
이 드라마가 저 과정을 거치기 위해
동성애를, 사랑을, 얼마나 새롭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진보'의 길로 이끌어갈까
최초의 '여성 드라마 PD'가 만든다는 이 드라마에 대해
내심 기대를 버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내 기대를 무참히 깨는 쪽으로 흘러갔다.
한결이 은찬이라는 동성을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신경정신과를 찾아간다.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만
그 의사는 '돌팔이' 의사처럼 묘사됐다.
수전증이 있고, 추접스럽게 인스턴트 커피를 홀짝거리며
그의 상태와 감정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듣기는 커녕
이 비정상적인 '병자'를 말초적 호기심의 대상처럼 바라본다.
그리고는 약을 처방해주며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거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것인가?
동성애를 느낀 자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면
일단은 병자로 취급해서, 약을 통해 그 '병증'을 '고치도록' 유도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신경정신과 의사들에 대한 '오나전 실망'이고
(그러나,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므로)
그렇지 않을테니, 이 드라마는 정말 '너무한 것'이다.
동성애라는 게 세상에 없는 일인가?
동성애자가 병자인가?
어떻게 'n개의 성'이 사는 이 세상에서
이 '웰 메이드' 드라마는 이따위로밖에 동성애를 취급하지 못한 것일까?
이 드라마의 이러한 폭력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쨌거나 한결이 지리멸렬한(이 지리멸렬함은 뒤에 또 얘기하자)
성 정체성에 대한 갈등의 시간을 거쳐 은찬에게
"나는 네가 좋아. 네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이라고 '커밍아웃'을 했을 때,
이제 남은 일은 "근데 어쩌지, 나, 여자인데."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자, 한 사람이 동성에게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굳게 믿고 있던 그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갈등과 고민의 과정을 거쳐 이제 사랑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것은 물론 '그(녀)애자'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동성애자라서 동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현재 사귀는 애인에게 진실한 사랑을 느끼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일단은 그가 '고민'하는 과정은
그 한사람에게라도 '동성애'를 인정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어렵게 동성애를 인정한 한 사람이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실은 동성이 아니라 이성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랬을 때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옳다구나~하며 이성이라는 그 사람과
돌연 더 해피해질까?
글쎄..나라면 다시 헷갈릴 것 같다.
그가 정말 진지하게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결과
동성인 그 사람을 사랑함을 인정했다면,
그가 이성임을 뒤늦게 알았을 때
그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나는 이성애자일까, 동성애자일까?
그 사람이 동성이라서 사랑한 것일까,
이성이길 바라면서도 어쩔수 없이 동성임에도 사랑한 것일까?
이전에 그사람이 동성이어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 만큼이나
그 사람이 이성이어도 사랑할 수 있을까도
똑같이 고민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 드라마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의 '새로움', '진보성'이었다.
결국엔 자신이 이성애자이며
사랑하는 상대방이 이성이라는 사실에 더 마음이 편해진다 하더라도
위의 과정을 충실하게 그린다면
조금은 동성애가 무게있게 다뤄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어렵게 '커밍아웃'을 하자마자
이성임을 알게 되고,
그러자마자 한결은 '넌 어떻게 나를 속였냐?' 하나에만 매달려 화를 낸다.
속인것, 당연히 화날 일이다.
솔직히 그 과정때문에도 이 드라마에 왕짜증이 났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가 동성이라고 오해해서 힘들어한다.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
그럴 때 사실은 이성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물어보나 아닌가? 당근, 사실을 밝혀야지.
근데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은찬은 한결에게 자신이 여자임을 숨긴다.
그가 '네가 남자라도 네가 좋아'란 말을 할 때까지.
아무리 '테스트 관문'(이라고 내가 한 말)이지만, 좀 너무하지 않나?
테스트는 스토리가 해야지, 주인공이 해선 안됐다.
주인공이 아닌 스토리가 테스트를 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하면,
은찬은 둘 중 하나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결이 자신을 사랑하는데 자신이 남자라서 괴로워하는 걸 모르든가,
아니면 자신이 한결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모르든가.
그런데 그 둘을 다 아는 은찬이 자신이 여자임을 속인다는 건
영악한 '선수' 여성이 남자를 테스트하는 과정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없다.
그것도 6회말부터 11회 중반까지..주인공이 그렇게 오래 저 상태로 테스트하고 있는 건
정말이지 너무했다.
그러니 뒤늦게 사실을 알게된 한결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긴 하다.
그러나 속았다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 외에도
동성애는 더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문제가 아닌가.
동성애자라고 인정한 순간 상대방이 이성임을 알게 됐을 때
한결이 다시 동성애를 포기(?)하는 게 조금은 혼란스러웠어야 한다.
그 과정이 진정성을 획득했어야 한다.
그러나 속였다는 사실에 대해 용서하자마자
왜 속였는지를 '이해'하자마자
한결이 하는 이 대사는
마지막으로 동성애와 동성애자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고은찬, 네가 여자라서 좋다!"
OTL이다.
이 드라마는 만화에 가깝다.
이야기 구성이나 캐릭터들도
내가 중고딩때 즐겨본 순정만화에서 본듯한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만화 못지않은 아름답고 흥겨운 연출로 이끌어 갔다는 점이
이 드라마로 하여금 많은 '팬'을 얻을 수 있는 요소로 작용했겠지만
드라마라면, 만화가 아니라면,
세상에 대한, 사랑에 대한 통찰만큼은 중고딩 수준 이상이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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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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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원작에 비하면 너무나 잘 만든겁니다. 그 원작자가 극본을 다시 썼어요. 그러니,내용이 그럴 수밖에 없어요. 소설이 궁금해 읽으면서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는데, 그작가 정말 심하게 표절을 했더군요. 경성애사에서 태백산맥을. 또 몇 작품이 표절시비에 잡히는걸 기사에서도 보고 직접 확인 했습니다. 동기를 차용 한다는 것과, 표절한다는건 아주 다릅니다. 작가의 자존심이 없는 거지요. 이윤정 피디님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가 저만한 종합 예술품을 만들긴 쉽지 않지요.여성비하가 아니라 체력 때문이지요. 모든 예술이 기본이 힘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허접한 소견이었습니다. 부족하더라도, 그냥 이런 생각을 가진이가 있구나...하고 지나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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