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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인터뷰 :

언론인으로 산다는 것


신호철  




“파업을 해 본 사람이 남의 파업을 이해합니다”라고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은 파업을 앞둔 날 시사저널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깔끔하고 세련된 ‘주류’ 이미지를 가진 손석희 씨가 어떻게 노조를 이해할 수 있는 걸까? 아, 그렇다. 15년 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모두에게 잊혀진 사건이지만, 과거 MBC 노조가 지금의 시사저널과 비슷한 이유로, 그러니까 공정보도를 위해 파업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는 쟁의대책위원이라는 이유로 구속,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손석희 씨의 매형이자 MBC PD였던 주철환 씨(현 이화여대 교수)는 처남을 면회한 후 당시의 아픔을 MBC 투쟁속보에 글로 남겼다. 당시 대학 1학년이었던 나는 한겨레신문을 통해 그 면회기를 읽었다. ‘푸른 수의는 영화에서나 보는 것인 줄 알았는데 바로 눈 앞에 그 수의를 걸친 석희의 모습을 보자 처남댁은 한마디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울음부터 터뜨렸다’

1992년 10월의 일이다.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글쎄요. 그때는 오히려 지금보다 힘들지 않았어요. 차라리 황우석 사건이 더 힘들면 힘들었을까. 그 때는요. 국민들이 우리를 지지했거든요. 시청자들과 시민들이 모두 우리를 지지했으니까. 그런 싸움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MBC 파업 이야기를 꺼내자 손석희 교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민망해요. 저는 그 때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없었고, 구속된 건 단지 직책을 맡았기 때문일 뿐인데. 괜히 공짜로 영웅처럼 된 것 같아서… 밖에서 보시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고통스럽지도 않았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대중의 지지를 받는 싸움은 어려울 것이 없어요. 하지만… 황우석 때는 정반대였죠.”


2006년 12월, 동선동 성신여대 교수 연구실에서 만난 손석희 씨는 이렇게 1992년 MBC 파업 사태와 2006년 황우석 사태를 비견했다. 황우석 사건이 터진 지 꼭 1년이 되던 때였고 그가 ‘아나운서 손석희’에서 ‘교수 손석희’로 변신을 선언한 지 꼭 1년 되던 때였다.


2005년 12월은 MBC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져 있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변신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도 많았다. ‘황빠’들은 몰락하는 MBC를 탈출한다고 비아냥거렸고, <조선일보>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몸세탁’한다고 기사를 썼다. 나는 그가 ‘박수칠 때 떠나라’는 격언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 그가 <시사저널>이 2005년 10월에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언론인으로서 정상에 올랐을 때 떠난다. 왠지 타이밍이 절묘했다.


“그건 전혀 아니에요”

라고 손 교수는 사래를 쳤다.


“영향력 순위 같은 것은 의식하지 않아요. 이 말을 해야 믿으실 것 같은데, 교수직을 2005년 11월에 처음 제안 받은 게 아닙니다. 이미 2004년에 다른 학교에서 오퍼가 있었어요. 그런데 해를 넘기면서 최문순 사장이 취임하고, 저에게 아나운서 국장직을 맡겼어요. 사장 취임 후 첫 인사를 내렸는데, ‘No’ 하기 힘들었죠. 방송국에서 국장이라는 건 일종의 봉사하는 자리고, 나도 조직에 기여하고 싶은 기회가 됐고. 그래서 차마 회사에 ‘학교 갑니다‘라고 이야기는 못하고 ’국장 일 년만 하고 그 다음에는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마침 국장직 마칠 때 쯤 돼서, 여기서 제안이 온 거죠.“


 그는 성신여대 문화정보학부 학부장을 겸하고 있다. 2006년 처음 출범한 신생 학부다. 대학교 학부 과정 하나를 그가 창조해내야 한다.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 그가 이직을 결심하도록 마음 흔든 요소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만큼 바빠졌다.

“원래 하던 <시선집중><백분토론> 진행은 계속 하면서 새로운 일을 추가로 맡았으니까요. 물론 전에도 국장 보직을 맡기는 했지만, 그건 제가 잘 아는 일이었고. 하지만 여기는 학부를 새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익숙치 않고, 그래서 신경이 더 쓰입니다.”


그는 아직 가입한 학회가 없다고 했다. 1년 동안은 학회에 안 들 거라고. 아직 자신을 학자로 생각한 적도 없고, 학자로서 실감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인터뷰도중에도 ‘학자’라고 불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냥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럼 교육자라고 불러드릴까요?”

“교육자도 너무 버겁고. 그냥 선생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선생도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아직 제 정체성이라는 게 중간자적 입장입니다.”

그는 자신이 ‘반인반수’란다. 반은 방송인 반은 교수.


반인반수 손교수에게 ‘대학생들과 직접 접하시니 요즘 학생들이 예전과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그는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해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신생 학부라 보니 주로 1학년들을 가르치는데 봄 학기에 <방송의 역사>라는 과목을 맡았다. 방송의 역사를 말하다보면 우리 정치사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근데 아직 1학년이라 그런지 해방 후 현대사에 대해 너무 모르더란다. 교과서에 딱 나와 있는 사건만 안다고. 5.18 광주 운동도 잘 모르고.


“그래서 학생들에게 왜 이것도 모르냐고 꽤 다그쳤죠. 그러다 기말고사 끝나고 방학이 됐는데 수강생 하나가 교수실로 찾아 왔어요. 자기가 고등학교 내내 필기한 서브노트를 가져와 보여주면서 ‘나는 이렇게 공부 열심히 했는데 왜 나에게 모른다고 하냐’고 항변하더군요. 그 학생 공부 열심히 했더라구요. 고등학교 때 누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모르는 것에 대해 다그치지 말라고. 억울하다는 거죠. 그 일로 내가 반성했어요. 요즘 학생들 탈정치화 되어 있다고 몰아붙일 필요도 없는 것 같애. 그런 환경이 되어 있지 않은데...”


“과거에는 대학 선배들이 현대사를 학회나 동아리에서 가르쳤는데요.”


“신 기자가 딱 정리한 셈이 되는데. 그러니까 요즘 그런 게 없는 거에요.”


손 교수는 교수 생활에 만족해 보이는 듯 했다. 이제 자유인이니까 MBC 말고 다른 방송에 출연할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그런 제안을 종종 받기는 하는데. 내가 물어보죠. 신 기자는 내가 KBS나 SBS에 나가면 어떨 것 같아요?”

“별로 문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글쎄……”


그는 시청자들이 아직 자신과 MBC를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MBC에서 내치지 않는 한, 다른 방송에 출연할 이유가 없다고.


“MBC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군요. 1년 전 떠나시는 날 기분은 어땠어요?”

“그게 본의아니게 너무 소란스럽게 되어서 부담됐죠. 사의를 밝힌 뒤 처음 한 두달 정도 회사에서 많은 분들이 말려줘서 고맙고 미안하고…”


MBC를 떠나서 옛 직장 MBC나 아나운서국을 보니 어떻냐고 물었다.


“MBC 뭘요?”

“예를 들어 요즘 아나운서들… 몇 몇 방송국을 중심으로 아나운서들이 연예인화 되는 현상이 있는데. 손 교수님 아나운서 국장으로 계실 때 그렇게 오락 방송에 팔리는 거 막았다고 들었거든요”.


“꼭 요즘만 그런 건 아니에요. 과거에도 상업화되기는 마찬가지 였어요. 제가 국장시절에 막은 것은.. 아나운서들이 일회용으로 팔리는 걸 막았어요. 어차피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미지화 되고 그것까지 반대할 수는 없구요. 어느 쪽의 이미지인가가 중요한데, 굳이 나누자면, 오락이든 교양이든 지켜야할 이미지가 있는거죠. 근데 일회용으로 나가서 망가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 이미지가 흐트러지니까요


“일회용이라는게 설날 특집프로에 아나운서들이 나오는 것 말인가요? “


“제가 아나운서 국장 하는 동안에는 설날 오락 프로에 아나운서들 출연 안 시켰어요. 보직 아나운서를 전문가라고 이야기는 못해도 전문가 이미지는 가져야 밑천이 될 수 있고, 또 조직 집단으로 봤을 때도 그게 좋고. 그래서 전문화적 이미지를 갖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는데, 지나친 망가짐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딱 한번이면 모르겠는데, 명절 때마다 나오는 건, 개인의 이미지 구축에도 도움이 안 되고. 집단의 도움이 안 되니까… 그 대신 어떤 한 분야 오락 프로에 나가서 자기 몫을 잘 하고, 이 사람은 정말 굳이 문제 없다 그러면 좋고,  저를 포함해서 말리지 않아요.”


손 교수는 마봉춘(나경은 아나운서의 별칭)을 연예 프로에 처음 투입한 것이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연예인들의 역할에 대해서 한 번도 폄하 생각해본 적이 없고 이 사회 소중한 역할을 하고 계시다고 ‘안전판’ 발언도 덧붙였다. 역시 조심스런 사람이다.


손석희씨와 말하다보면 ‘기자들에게 책잡히지 않게 인터뷰당하기’의 모범을 보는 듯 하다. 어떤 질문을 해도 꼬투리 잡힐 말은 언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교수가 되어 교수 사회를 바라보니 어떻습니까?”라며 논란이 될 만한 유도질문을 했더니 끝내 언급을 피했다. 1년 전에 인터뷰할 때도 민감한 정치 이야기는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던 기억이 났다.


내가 손석희씨를 처음 인터뷰 한 것은 2005년 10월이었다. 매년 <시사저널>이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손석희씨가 1위에 뽑혔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지금은 이사)이 10년 가까이 1위 장기 집권을 하고 있어서, 이 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손석희씨가 처음으로 ‘김대중 아성’을 깼을 때, 드디어 우리 언론도 세대교체를 하는 구나.라고 기뻐했다.


2005년 당시 인터뷰 장소는 MBC 아나운서국장실이었다. ‘2006년에 또 영향력 1위 하실까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한 사람이 계속 영향력을 과점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라고 예측했다.


“손 교수님 예언 틀린 거 아시죠? 2006년 시사저널 영향력 조사에서 또 1위 하셨어요. 2연패 안 할 거라더니.”


“그럼 그때 제가 거기서 뭐라고 말해요.”

서로 크게 웃었다.

“2위하고 격차가 더 벌어졌거든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분야의 독점 체제가 심화되는 거 아니에요?”


“올해 똑같은 질문을 해도 답은 마찬가집니다. 근데 한 가지 물어봅시다. 도대체 <시사저널>에서 말하는 ‘영향력’이라는 말이 좀 모호한데.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설명좀 해 봐요”


이 사람. 나를 인터뷰하고 있구나.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답했다. “타인에 대한 파급력 아닐까요. 나의 의지나 철학이나 소신을 다른 사람에게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구요. 언론인은 매체를 통해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대중에게 파급시킬 수 있으니까.”


손석희 교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요. 저는 단지 질문만 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질문만 할 뿐 제 프로그램에서 제 의견을 코멘터리 이야기한다든가. 그렇게 하잖아요. 그럴 시간 있으면 질문을 하나 더 하겠습니다. 굳이 저널리즘을 구분해서 말하자면. 손석희 저널리즘은 질문 저널리즘입니다.”


질문 저널리즘. 만약 주간지 인터뷰 기사라면 제목으로 쓸 만한 워딩이었다. 학술 용어로도 쓸 수 있겠다. 2006년 5월 하순 문화연대 미디어센터 주최로 포럼이 있었다. 주제가 ‘MBC 시선집중’이었다. 그 때 토론자였던 홍성일씨 왈 <손석희가 자주 쓰는 레토릭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주어진 시간 사용 다 했습니다" 정도다”> 라고 말했다. 그게 질문 저널리즘일까?


 “문화연대 포럼이 있었는지는 몰랐는데요. 포럼 원고 있으면 메일로 좀 주세요. 근데 홍성일씨 말은 긍정의 뜻입니까 부정의 뜻입니까?”


“교수님이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장점이기도 하면서 어떤 이들은 아쉬워하기도 하구요.”


“그게 과제입니다. 미국에서는 언론인이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하면서 주목을 받는 경우가 있죠. 저같은 경우는 공영 방송이기 때문에 한계가 더 있습니다.”


질문 저널리즘이라는데, 좋은 질문을 던지는 요령이 있을까. 손 교수는 좋은 질문이란 상대의 대답 속에서 나오는 거라고 알려줬다. 첫 질문을 던지고 상대가 대답을 하면 그 대답 속에서 다음 질문을 찾는 게 가장 좋단다.


“시선집중 인터뷰때 종종 특종이 나오는데요. 잘 보시면 대부분 미리 준비한 질문이 아니라 보충 질문 속에서 나왔습니다.”


“순발력이 필요하겠군요.”


“집중력이 더 중요하죠. 제가 질문 저널리즘이라고 했지만, 듣는 저널리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질문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하잖아요“


“사전 준비도 많이 하시겠죠?”


“제작진이 자료를 준비하고, 저도 나름대로 인터넷 검색을 한다든지 하면서 챙기는데 기본적으로 저는 진행자가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면 인터뷰가 재미 없다고 생각해요. 그 궁금함이 청취자와 교감을 해야 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똑같은 주제를 놓고, 백분토론과 그다음 시선집중이 연이어 방송 할 때가 있는데, 이러면 시선집중 방송 때 감도가 확 떨어져요. 백분토론때 하도 들어서 이미 내가 궁금한 게 없어지거든요.”


 손 교수에 따르면 인터뷰 주제 사안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체 하면 역효과가 난다고.


“관심 있는 사람이 아는 수준의 70~80%를 안다고 치면, 그게 밑천이고 나머지는 정말 궁금한 것들이죠. 밑천에 대해 새롭게 알면 호기심 그런 것들이 제대로 살아나면 그 인터뷰는 살아있는 인터뷰가 되요. 그런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하루종일 뿌듯하죠.”


“<시선집중>이 성공한 이유 중에 하나가 섭외를 잘하기 때문인 듯 한데요. 꼭 방송에 출연시키고 싶은데 잘 섭외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까?”


“아무래도 기업인을 섭외하기 힘들어요. 정치인들은 정치적 목적이 있으니까 나올 수 있는데, 기업 총수분들은 힘들죠. 사실 기업은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데, 유명 기업인을 여태까지 인터뷰 한 적이 없어요. 전부 안 하겠다고 하니”


“이건 가상의 상황입니다만. 만약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전화 인터뷰 섭외에 성공했다고 한다면 뭐부터 물어보고 싶으십니까?”


“쉽게 답하기 힘드네요. 일단 현안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은 하겠지만, 첫 질문이라면... 먼저 조지 W. 부시라는 사람에 대해 인간적으로 평가해 보라고 부탁하겠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에 대해 인간적 평가를 다 끝낸 상태고, 그걸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죠.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부시에 대해 개인적인 평가를 말한 적이 없어요. 일단 그 질문으로 운을 떼며 인터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예상 못한 답변이 나올 것도 같구요.”


대화 도중 약간 가벼운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았다.


“혹시 코미디언 최양락씨가 진행하는 토론 프로그램 보신 적 있으세요?”


“잘은 모르는데, 토픽이 자극적이던군요, 아무튼 순기능을 하길 바랍니다.”


손석희 교수는 어느새 한국 사회 문화 아이콘이 되어 가고 있다. 앙드레 김이나 전두환 장군처럼 그를 패러디하거나 성대모사하는 개그맨들이 생겨나고 있다. MBC라디오 프로그램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배칠수는 <손석해의 시선분산>이라는 풍자쇼를 했다.


“패러디를 뭐라고 할 순 없죠. 예전에 배칠수씨를 MBC 구내식당에서 만난 적 있는데, 그 때 배칠수씨가 제 성대모사를 하겠노라고 말하더군요. 나중에 들은 말로는 제 방송 내용을 CD로 구워 보며 석 달을 따라 연습했다고 합니다. 개그맨이라는게 소질로만 되는 게 아니구나. 노력이 필요한 거구나. 하고 새삼 알았습니다.”


“비슷하던가요?”

“나중에 갈수록 똑같다는 반응이던데요.”


배칠수 패러디와 관련한 일화 하나를 들었다. 배칠수씨가 손석희 목소리를 흉내내 CF 광고를 한 일이 있다. 그 CF가 마침 시선집중 방송 앞에 붙었다(광고주 입장에서 당연하지). 그런데 너무 똑같이 모사하는 바람에 듣는 사람들이 많이 헷갈렸나보다. 한번은 성균관대 모 교수가 대학 복도에서 손교수를 만나 인사하며 말했다. “이제 CF도 하시나봐요?”

오해받는 것에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는 듯 했다. 유명세를 치르는 셈이다.


“손석희 교수 인터뷰하러 간다니까 몇 몇 친구들이 그중에서 특히 여성 팬들이 꼭 물어보라며 민원을 줬어요. 50대가 믿기지 않는 동안인데, 도대체 얼굴을 관리하는 비결이라도 있냐구요.”


“나 요즘 얼굴 맛이 갔는데. 특별히 하는 게 없어서 할 말이 없네요. 정말”


“술 담배를 안하신다든지?”


“술은 원래 별로 안 먹고, 담배는 꽤 폈어요. 담배 끊은 지 3년 됩니다. 마흔 여덟이 되어서야 끊은 거죠.”


“50 고개를 넘으실 때 특별한 느낌은 없었나요”


“개인적으로는 나이에 대해 갈등한 게 39살 때였어요, 30살이 될 때는 감각이 없었는데 40이 된다고 생각하니 방황이 생기더군요. 나의 청년기는 끝나는 구나 하고. 근데 49살 때는 아무런 갈등이 없었어요. 요즘 어디가서 쉰 하나라고 하면 예의상 놀래주기도 하고(웃음), 대부분 예의상이지. 뭐,


손석희교수는 골든 마우스 상을 받고 싶다고 했다. 라디오 방송 진행을 20년 하면 받을 수 있는 상이다. 그러려면 14년이 남았다. 그가 예순 다섯이 될 때다.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 이종환씨가 칠순이다.


“물론 그 전에 떠나야 한다면 고집없이 떠나야죠. 제가 판단해서 떠나야 된다라고 생각이 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딱 묻혀버릴 거에요.”


손석희씨가 나이가 더 들면 어떤 모습일까. 제대로 된 원로를 찾기 힘든 한국 사회. 그가 이대로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주기만 한다면, 우리는 드디어 존경할 만한 언론인 원로를 갖게 될지 모른다. 그간 훌륭한 언론인은 많이 있었지만 좌,우.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원로는 없었다.

~~~~~~~~~~~~~~~~~~~~~~~~~~~


“‘취업’ 때문에 요즘 대학생들은 정말 초조하고 비정상적인 대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도움말을 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글쎄요. 대부분 도움을 구하는 학생들을 보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은지를 물어보는데, 난감해요. 선택 이후의 길에 대해 물어본다면 해 줄 말이 있지만.

모든 선택의 대상은 등가성이 있습니다. 모든 선택이 등가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 좋은지를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

대신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든 그 선택을 최고로 만들고 증명해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삶이 고단해 질 수 있는데...“


손교수는 자신 스스로는 그렇게 증명해왔다고 덧붙였다. 시종일관 겸손했던 그가 이 부분에서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언론인 선배로서 부러워보였다. 6년차 후배 기자인 나는 과연 쉰이 되어서 “나의 선택이 최고였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많은 후배들이 손석희 선배를 모델로 생각하지만 갈수록 그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좌절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7월 MBC 김성주 아나운서가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요즘 연예인인지 아나운서인지 구분하기 힘든 발랄한 행보를 보이는 김 아나운서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저 고백이 떠오르곤 한다. 방송보다 더 시장의 바람에 흔들리는 주간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김성주 씨의 말이 남 같지가 않다. 젊은 기자들 중에 손석희 선배를 롤 모델로 생각하는 사람은 갈수록 그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좌절한다. ‘손석희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가능성이 있는 유형의 아나운서다’라고 <매거진T>는 썼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앞으로) 없겠어요.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후배가 있다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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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 문화 무크지로 소문은 '소통과 문화'의 약칭이다. 지난 2007년 9월 창간호에 이어 약 1년 반 만에 제2호가 나왔다. 이번 호의 기획 주제는 '연애'.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는 '한국인의 연애에 대한 10가지 질문'에서 한국여성은 결혼으로 기회비용 1억4천만원을 잃게 되고,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또 각종 연애지수를 조사한 결과, 20대보다는 40대의 연애지수가 높다고 말하면서 "가난한 20대들은 순전히 '시장'으로만 파악된 연애에서도 소외되고 있다"며 "20대가 연애를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간주한다면, 40대의 연애는 아무런 위험이 없는 단순지불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그는 "경제력과 연애 빈도는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평균적으로 가난할수록, 소외된 계층일수록, 그리고 지방에 살수록, 연애 빈도가 낮아 보인다"며 "결국 (연애는) 경제력 문제로 보인다"고 덧붙인다.

이밖에 '포스트386의 섹슈얼리티와 친밀성'(이성은.서울시여성가족재단), '가족주의를 복사하는 연애'(천정환.성균관대),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 강연기 참관기'(이영아.서울대 규장각) 등 연애를 주제로 한 글이 실렸다.

민음사. 132쪽. 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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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통해 지식과 대중 사이의 단절을 넘어서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를 보여 주고 있는 문화 교양지 '소문'의 2호이다. 이번 호의 주된 기획 테마는 만고불변, 인류공통의 뜨거운 관심사인 '연애'로 설정하여 여러 개의 사례를 조사해 포스트 386 부부들의 성과 사랑을 분석하거나, 결혼뿐 아니라 연애까지 상품화되었다는 분석을 이끌어내는 글들을 싣고 있다.

또한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등의 저서를 통해 세계 개발경제학계의 거두로 선 장하준 교수를 인터뷰하였고, 진보적 진화심리학 & 우리의 다문화 & 파국론의 글을 논단에서 다루고 있다. 또한 포스트 386의 목소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자 자신만의 색채가 분명하고 빛나는 열정과 재주를 가진 '서른 즈음'의 세 사람, 이자람, 신민영, 봄로야를 만났다.지난 2007년 민음사는 ‘포스트 386세대를 위한 문화 교양지’ 《소문》 창간호를 발간했다. 《소문》은 ‘소통과 문화’의 약칭으로, 이 시대의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통해 지식과 대중 사이의 단절을 넘어서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를 보여 주고자 한 기획이었다. 이번에, 민음사는 1년여의 준비를 거쳐 그 두 번째 실험을 내놓는다.

《소문》의 메인인 기획 테마는 만고불변, 인류공통의 뜨거운 관심사인 ‘연애’로 잡았다. 늘 친구 사이에서 넋두리로나 이야기되었던 연애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려 보니 새롭고 다양한 관점들이 발견되었다.
그중 주목할 만한 것은, 여러 개의 사례를 조사해 포스트 386 부부들의 성과 사랑을 분석한 이성은의 글이다. 결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의 남성과 여성은 협상과 타협을 통해 불확정적이고 혼란스러운 사랑을 구성한다. 그것은 결코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다. 과거에는 가부장적 가족 내에서 당연하게 부과되었던 부부 간의 계율로 사랑의 부재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현재에는 불안한 부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내면을 통제하고 조절해야 하는 감정적인 노동으로 사랑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아니 사랑 자체가 ‘감정 노동’이 되었다. 성관계를 둘러싼 문제는 육체적인 노력뿐 아니라 감정적인 노력까지도 요구한다. 이러한 성적 친밀성의 부재와 의사소통의 어려움, 정서적 유대감의 부족은 개인주의화와 자본주의적 소비 문화의 양상과 맥이 닿아 있다는 것이 필자 이성은의 분석이다.

그리고 데이트 상대를 찾는 인터넷 사이트가 성황을 이루고, 인터넷 채팅을 통해 데이트나 하룻밤 성관계를 가질 상대를 찾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오늘의 현상에서 결혼뿐 아니라 연애까지 상품화되었다는 분석을 이끌어내는 김신현경의 글 또한 흥미롭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연애 프로젝트” 현상이라고 명명한다. 쿨한 태도와 자유로운 혼전 성관계, 소비 행위를 통해 애정을 표현하는 세태 등은 연애를 프로젝트화해서 기획, 관리, 통제하는 것이 일상화되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현재의 세대는 “연애 프로젝트 세대”라는 것.
또한 한국 여성은 결혼으로 기회비용 1억 4천만 원을 잃게 되며, 연애지수를 조사해 보면 의외로 20대들보다는 40대들의 연애지수가 높다는 사실을 지적한 우석훈의 글 역시 신선한 사실을 보여 준다. 그의 글에 따르면, “가난한 20대들은 순전히 ‘시장’으로만 파악된 연애에서도 소외되고 있는데,…… [그것은] 20대의 연애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일생 일대의 거래라고 한다면, 40대의 연애는 아무런 위험이 없는 단순 지불에 더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은 당장의 이득에 한눈팔지 않고 배우자에게 헌신하게 함으로써 배우자 결합을 오랫동안 유지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다.―전중환, 「사랑과 연애의 진화심리학」 중에서

유아적 상처와 프티 부르주아적 삶을 넘어 자유롭게 교호하고 진정으로 남/녀/들/과 연대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 그러나 왜 우리는 가족주의의 악몽을 끝장내지 못할까? 왜 배타적 이성애만 ‘진정한 사랑’이라 믿을까?―천정환, 「가족주의를 복사하는 연애」 중에서

인터뷰-문화 아이콘―장하준
창간호에서 손석희 교수와 KTX 비정규직 노조 지부장인 민세원을 인터뷰했던 《소문》은 이번 호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등의 저서를 통해 세계 개발경제학계의 거두로 선 장하준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는 고려대 법학과 교수인 박경신 교수가 맡아, 주주 이외의 ‘이해 당사자’들 간의 충돌 문제나 대기업과 분배의 관계, 시장을 규제하는 법에 대한 문제 그리고 조세 정책의 문제 등 장하준 경제이론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들을 던졌다. 이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유독 한국에서만 사회 운동으로서 자리를 잡은 소액주주운동과 주주자본주의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고, 주주 이외에 노동자, 납품 업체, 지역 공동체까지 포함하는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대기업 척결만이 능사는 아니며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국가 주도의 성장 정책으로 시장 주도보다 더 공정한 분배가 가능하다는 주장 등을 전개했다.

논단―진보적 진화심리학 & 우리의 다문화 & 파국론
논단 섹션에는 세 꼭지의 글이 실려 있다. 그 첫 번째 「진보적 진화심리학」에서 필자인 박경신은, 그간 진화심리학이 인간 본성을 설명한다는 이유로 흔히 보수 진영의 논리에 활용되고 또 그 때문에 그 자체가 보수적인 학문이라는 혐의를 받았던 것을 반박하는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필자는 자기 주장의 근거를 일부일처제의 정착에서 찾는다. 일부일처제는 몇 명의 우수한 남성들이 여성들을 독점해 나머지 다수의 남성들이 여성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것을 방지하고자 만들어진 제도로, ‘종(種) 전체의 고른 이익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킨 이 사례를 볼 때, 진화심리학이 다수의 이익을 위한 합의의 가능성 역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기본 명제는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번식력을 가장 크게 높이는 방향을 채택한다는 것이다. 이 명제의 핵심적인 부분은 ‘주어진 환경’이다.…… 진화심리학은 환경적 규정론과 유전적 규정론의 투쟁에서 후자의 손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규정론적 입장을 더욱 강화해 준다. 따라서 ……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

두 번째 글 「우리의 다문화」는 이주민 소수자들을 이벤트성 행사에 동원하는 데 그칠 뿐, 실제로 그들의 ‘현실적인 다문화 상황’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단속 추방의 위협에 시달리고 하루하루 먹고살기에도 힘겨운 이주민들의 실상은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그들을 한국 사회에 편입시키려는 프로그램이나 펀드를 얻기 위한 광고판으로 동원하는 사업들만 만연하고 있다는 지적은, 뜨겁게 달아오른 다문화 열기가 얼마나 공허한 축제인지를 보여 준다.

“(다문화 관련) 사업들은 그저 보여 주기 위한 것이지 진실성이 전혀 없어요. 그러면서 우리더러 자기 일에 왜 관심이 없느냐고 하지요. 그런 쓸데없는 일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밥도 못 먹고 일도 못 하고 쫓겨 다니는 사람들에게 한글 교육, 컴퓨터 교육, 운동 경기, 페스티벌,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요?”

마지막 글 「섣부른 파국론을 경계하라」는 촛불 시위 이후 진보 진영이 ”섣부른 파국론을 내세우며…… 대중 지성의 욕망을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승화“시키고자 또 다른 ”계몽의 기획“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지금 이 시대가 파국의 시대, 자본주의의 종언이 선언될 시대라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예단일 뿐, 이미 더 나은 삶을 향한 욕망을 드러낸 대중 지성의 바람을 반영하는 새로운 진보를 준비하는 데는 걸림돌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촛불 시위로 표출된 대중의 욕망이,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나는, 지금-여기서의 촛불 시위가 계몽의 기획이 불가능함을 보여 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대중 지성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적(神的) 관점은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진보?좌파는 대중 지성이 만들어 가는 미래 속에서, 추상적 개념의 잣대가 아니라 삶의 질의 향상이라는 원칙에 입각해 대중 지성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포스트 386, 이야기하다―이자람, 신민영, 봄로야
포스트 386의 목소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소문》의 의도는, 자신만의 색채가 분명하고 빛나는 열정과 재주를 가진 ‘서른 즈음’의 세 사람, 이자람, 신민영, 봄로야를 만난 자리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아직도 ‘예솔이’라는 이름으로 더 빨리 인지되는 촉망받는 국악인이자 언더그라운드 밴드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보컬이며 국악을 기반으로 한 창작음악극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를 만든 이자람. 서울법대에서 사시패스라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지만 전 민노당 국회의원 노회찬의 보좌관으로, 레게머리 전문 미용실 운영자까지 특이한 이력으로 더 눈길을 사로잡는 신민영. 서른을 목전에 둔 봄로야는 사춘기 소녀 같은 풋풋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선인장 크래커』라는 자전적 소설을 출간했고, 큐레이터와 미술창작자를 겸하며, 봄로야밴드의 보컬을 맡고 있는 전 방위적 예술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인물이다. 97, 98, 99학번인 이들이 모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기억들, 사적인 기억들, 그리고 현재 고민하고 있는 문제와 꿈꾸고 있는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들은 어느 하나의 잣대로 일괄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결을 가지고 있는 것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바로 그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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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기획테마 - 연애
기획의 말
사랑과 연애의 진화심리학
연애 인드 더 시티의 비밀과 거짓말
한국인의 연애에 대한 열 가지 질문
포스트 386의 섹슈얼리티와 친밀성
가족주의를 복사하는 연애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 강연회 참관기

브릿지
제대로 알고 쓰는 말 : 신자유주의
제대로 알고 쓰는 말 : 프리온

인터뷰- 문화아이콘 : 장하준
장하준,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말하다

논단
진보적 진화심리학
우리의 다문화 : 누구를 위한, 어떤 다문화인가?
섣부른 파국론을 경계하라 : 김종철-백낙청 논쟁과 지젝

역사 기획
건국 60주년을 지나며 되돌아보는 이 대통령 : "반미 투사라 불러다오"

포스트 386, 이야기하다 : 이자람, 신민영, 봄로야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들며 게걸음으로 걷다

   동향
   웹 - 어쩌면 중국 인민이 이상계에서 꾸는 꿈
   영화 - 언니들, 이제 뭉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웹툰 - 이야기에 빠진 현실, 강풀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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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S- KTX 여승무원 노조지부장 민세원 인터뷰>

하늘을 날던 민세원, KTX로 불시착하다.


 이지아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던 때 누군가 내게 물었다. ‘네 인생의 황금기는 언제일 것 같니?’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스물 넷.’ 왜 하필 스물넷이냐는 질문에 나는 그때쯤이면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몰두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나의 스물넷은 그런 식으로 펼쳐지지 않았다. 황금기는 자꾸만 늦춰졌고, 어느새 그 질문을 몇 번 되뇌어 볼 틈도 없이 나는 삼십 대로 밀려 와 있었다. 삼십 대가 됐다고 갑자기 내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한 것은 아닐 텐데, 분명 세상은 이십대에 내가 살고 있던 그 세상 그대로가 아닌 듯 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의 마음속을, 혹은 머릿속을 뚫고 지나간 것일까. 이 시대의 다른 삼십 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의 이십 대와 삼십 대는 어떻게 다른지 자꾸만 붙잡고 묻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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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여승무원 노조 지부장 민세원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된 것이 바로 그 즈음이었다. 이십 대에 화려하게 하늘을 날던 그녀가 삼십 대에 땅위로 내려온 것은 얼핏 보기에 아주 운 나쁘게 불시착한 것처럼 보였다. TV 드라마 속 화려한 전문직 여성의 단골 메뉴요, 남성들이 미모의 신붓감 후보로 늘 거론하는 스튜어디스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KTX 여승무원이 되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업무 공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계급과 계층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십 대와 삼십 대 사이의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여성으로서 할 말이 많을 것 같았고, 현재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인 청춘들에게 들려줄 말이 있을 것 같았다.


2007년 1월 6일 용산역에서 드디어 민세원을 만났다. 함께 파업을 시작한 380명의 KTX 여승무원 노조원들 가운데 그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노조원들은 70명가량 되는데, 그들은 2006년 5월 말 이후 용산역 근처의 노조건물에서 기거하고 있다. 3월 16일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었던 민세원은 경찰의 눈을 피해 거의 비공식적인 활동만 하며 실내에 머물러 있었다. 인터뷰를 약속을 잡을 즈음 그녀가 경찰에 자진출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그간의 안부를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조사받고 46시간 만에 나왔어요. 표면상으로 철도노조 이철의 대표가 모두 책임을 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분도 집행유예가 나왔거든요. 이미 거의 종결된 사건이었기 때문에 저를 구속시키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버티기는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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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앳된 외모 때문인지, 여성으로서 장기간의 파업 투쟁을 계속하려면 딸린 가족이 없는 혈혈단신이어야 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인지 나는 당연히 그녀가 미혼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가정을 지키는 것과 직장을 사수하는 투쟁을 병행하는 일이 쉬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예상과는 달리 기혼자였다.


 

“남편이 저랑 이념이나 가치관까지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제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지부장이라서 그만둘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냥 열심히 하라고만 하죠. 시부모님께서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고 송구스러울 뿐이죠.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 것은 직장을 구할 때였어요. 대한항공을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두었다가 다시 직장을 구하면서 많은 걸 알게 됐죠. 특히 여성은 능력이나 경력과는 별개로 결혼하면 직업을 다시 갖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요.”


그녀는 어떤 계기로 험난한 투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 걸까. 대한항공에 다닐 때부터 노동자의 처우 문제 등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지, 노동 문제에 눈을 뜨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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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객실승무원으로 5년간 일하고 몸이 아파서 그만둘 때는 회사 생활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생각할 여력도 없었어요. 1년 남짓 쉬었는데, 그러고 나서 다시 정규직으로 직장을 잡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다른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경력도 인정해 주고 정규직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대우를 해 주어서 비정규직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를 못 느끼고 그냥 잠시 거쳐 가는 직업이라고만 생각했었죠. 대한항공 다닐 때는 제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먹고 살기에 바빴어요. 사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의 권리나 여성의 권리 자체를 생각하기 힘든 것 같아요. 알 기회도, 여유도 없었다고 봐야죠.

그냥 ‘의식’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몸으로는 이미 겪은 것들을 머리로는 나중에야 알게 된 거죠. 아, 그게 그때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하면서 깨달아 가는 과정이 저에게는 있었던 거고요. 그래서 빠른 시간 안에 제가 지부장으로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 나갈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현실의 고통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켜켜이 갖고 있었기에 그런 문제들의 원인과 배경을 정리하고 ‘투쟁’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진정 빛나는 이십 대를 위하여


그녀의 이십 대는 IMF로 무너진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가정 경제를 책임지느라 온통 회색빛이었다고 한다. 예쁘게 꾸미거나 연애를 하는 일은 사치였고, 항공운항과라는 그녀의 전공은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것이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 나는 그녀의 빛나던 이십 대와 힘들어진 삼십 대를 비교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그녀의 기억 속에서 이십 대는 빛나지도, 꿈으로 가득 차 있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다시 이십 대를 살아 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이건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허망하게 외워 보는 소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십 대로 돌아간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전공을 그렇게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어차피 산 입에 거미줄 치는 것은 아니니 어려운 여건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집안 사정에 이끌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선택하진 않았을 거 같아요. 그때 그 선택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KTX 승무원도 결국은 경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었으니까. 아무리 힘들었어도 전공을 그리고 직업을 그런 식으로 선택한 것은 잘못인 것 같아요. 선택의 기준을 잘못 둔 거죠. 김치에 밥만 먹기도 힘든 상황에서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시는 걸 보고 돈 버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선택했던 거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좀 더 못 먹고 못 입어 힘들더라도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는데……. 사실 이것도 KTX 승무원이 된 다음에 생각했던 거예요. 그 전에는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방만하고 부당한 공기업과 싸우며 사회 현실과 내 존재에 대해 알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민세원의 바쁜 스케줄 속에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있다. KTX 여승무원 노조 문제는 이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어쩌면 잠정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인지도 모르는 대학생들을 제자로 둔 대학교수들이 모임을 만들어 이들에게 지지를 표명하며, 대학에서 특강을 주선하고 있다. 그녀는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까. 그리고 그녀의 눈에 비친 요즘의 대학생들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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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좀 답답합니다. 저도 대학생 때 나 외의 문제나 사회 현실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 대학생들도 그런 것 같더라고요. 성인이 된 다음에는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또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저는 그렇게 힘들게 살았으면서도 대한항공을 다닐 때 스스로 노동자라는 인식을 한 적도 없었고, 노동자라는 단어의 의미도 제대로 몰랐어요.

그래서 지금의 이십 대들은 자신이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기 권리 중에서 어느 부분이 침해당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이 강의실 하나 빌리고 캠퍼스 내 시설 하나를 이용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대학 내에도 여러 가지 부당한 일들과 착취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노동자 운동, 대추리, 남북통일 같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동참하는 것도 물론 훌륭하고 필요하지만, 학생 신분에서 자신이 현재 당하고 있는 착취와 부당함에는 맞서지 않고 큰 사회 운동만 한다고 하면 그것은 그냥 ‘한때 해 보는 학생 운동’으로 수명이 길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차별에 저항하라’라는 말이 있지요. 가까운 문제에서부터 원칙과 신념을 지키면서 사회운동도 함께 해 나갈 때에야 그 운동이 ‘한때’의 투쟁이 아니라 ‘내 삶과 함께하는 투쟁’이 될 거예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뚫고 지나왔던 터널이기 때문에 더 걱정스러운 것일까. 그녀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지켜본 풍경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오늘날 대학은 취업 준비를 위한 공간으로 변질되었고, 학생들은 좋은 학점과 높은 토익 점수만이 밝은 미래와 결부되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학생들을 교문 밖으로 이끌던 총학생회는 자취를 감추었고, 정치적 이슈를 학교 밖으로 몰아내고 재밌는 축제를 보장하는 선본들이 승리를 거머쥐는 실정이다. 이곳저곳의 대학을 다니다 보니 그런 학생회의 구호들이 그녀의 눈에도 들어온 모양이었다.


“이미 ‘탈정치’를 외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행동인 것이잖아요. ‘탈정치’ 즉 정치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그저 (소박하게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삶을 일구는) 공동체 사회로 가자는 것인데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고요. 그런 불가능하고 위선적인 이야기를 어린 나이 때부터 하면서 선거 공약을 내걸고, 되고 나서는 학생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것이 아주 우려스러워요. 자기에게 직결된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야 신념, 가치관 그리고 의지가 생기고 그것을 통해 사람이 성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저나 KTX 여승무원들은 그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잘못된 것들을 고치고 싶었을 뿐인데, 원리 원칙대로 ‘아닌 것은 아니다, 틀린 것은 틀렸다’라고 끝까지 말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거든요. 학생들도 자기 주변의 일들을 해결해 나가다 보면 이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성노동자의 유통 기한


나 역시 한 여성이고, 노동자이며, 비정규직 종사자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도 정규직은 대부분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입사해서 가장 먼저 기가 막혔던 건, 내가 일하는 직장 건물에는 여자 화장실이 없는 층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이다. 최근 쿼터제를 도입해 가며 여성의 비율을 높이려 애쓰고 있지만 아직도 태부족이다. 대신에 이 분야에서 최근 3~4년 사이 생겨난 비정규직은 또 반대로 여성들이 대다수이다. 처음 들어올 때에는 남성들도 종종 있었지만, 그들은 계약 기간을 다 채우기도 전에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나갔다.

3년의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다른 자리를 구하지 못한 여자 선배들이 계약 해지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던 나는 민세원 씨에게 이런 사정을 한탄조로 꺼냈다. 그녀는 내 얘기를 찬찬히 듣고는 “정말, 어디나 다 그렇군요.” 하며 고개를 젓는다. 그녀에게 더 물었다. 내가 사실 여전히 확신이 안 서는 것에 대해. 고용조차 되지 않는 것보다는, 비정규직으로라도 고용이 되는 것이 나은 것은 아닐까. 끝끝내 정규직에 들어서지 못할 바에야 이런 식으로라도 우리 여성들에게 일자리가 주어지는 건, 그렇게라도 문이 넓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아닐까. 그러나 그녀는 단호했다.


“무슨 문이 넓어진다는 거죠? 그 새로 생긴 일자리라는 것이 정해진 그 기간 동안만 필요한 것인가요? 상시적으로 하는 일이고, 그 일이 향후 계속 필요해서 만든 일자리라면 정규직으로 뽑아야 하는 게 당연한 거죠. 그 일은 계속 필요한데 이삼 년마다 부품 갈아 끼우듯 사람만 갈아치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죠. 그리고 그 소모품 자리에는 여성들이 언제나 최우선으로 배치되고 있고요. 당장 이렇게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 워낙 취업난이라 비정규직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갈수록 노동 여건은 악화될 것입니다. 막아야지요. 모두 함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싸워서 막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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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는 이러한 성차별적 고용 모순의 전형을 보여 준다. 남성 승무원은 정규직으로 뽑고, 여성 승무원은 비정규직으로 뽑은 뒤 팀장급인 남성 밑에서 세 명의 여성이 지시 감독을 받게 하는 구조이다. 분명 남녀 승무원 어느 쪽이건 KTX가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 필요한 직종이기는 마찬가지임에도 말이다. 그런데도 여승무원은 젊고, 예쁜 여성들만 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는 철도공사 임원들은, 여승무원이란 직종은 지속적으로 필요하더라도 그 직종에 적합한 여성들의 유효기간은 짧아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란다. 그들은 내 직장 동료들이 겼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성차별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차별은 노동 운동 내부도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그들 안에도 정규직/비정규직, 여성/남성 등에 따라 계급이 있다.


“철도노조가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노조원으로 받아들인 것 자체가 매우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나 봐요. 그렇지만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보통 ‘대공장’ 노조들은 그 주체들이 다 정규직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주지도 않아요.

내 직업과 권리가 중요하면 다른 사람들의 직업과 권리도 중요하다고 여겨 줘야 할 텐데, 노동력의 종류에 따라서 많은 편견을 갖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하는 서비스업과 같은 감정 노동은 특히 더 하찮게 여기고 젊은 여자가 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죠. 노동력의 종류나 대가로 받는 임금의 액수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가 똑같은 계급임을 노동자 스스로 제대로 인식하고 행동하지 않는 한, 노동자가 노동자를 계급화해서 차별하는 잘못을 계속해서 저지르게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자본가들, 사용자들이 바라는 바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가 되고 진정 노동자가 한 마음이 될 때 세상이 변할 겁니다.”


‘일상’으로서의 운동


그녀는 거듭 ‘의식’의 변화가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나 하나만이라도, 우리만이라도 생각을 바꾼다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그녀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나 이념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작게, 주변에서 문제를 찾아 운동하고 실천하는 삶을 사는 듯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로, 한편으로는 지나친 현실주의자로 보이기도 할 것 같다.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 내가 착취당하고 있는 것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전(全) 사회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게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과거 1980년대 운동권들이 군대 가기 전에 잠시 화염병 좀 던져 보고, 최루탄 좀 맞아 본 다음에 지금은 자기 삶에만 매몰되어서 사는 것, 분명 그러한 일들조차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는 몰라도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부조리에 맞서 끊임없이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녀는 과정 못지않게 결과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불꽃처럼 화려하게 타올랐다 사그라져 없어지는 운동이 아닌 작게나마 하나씩 지속적으로 성취해 나가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언젠가 386세대 선배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자기 몸을 불살라 가며 사회를 위해 싸웠던 그때의 감정이 정말 순수한 이타심일까에 대해서. 그때 선배는 그게 일종의 사랑과 같은 감정이라고 했다. 사랑이란 일시적인 것이어서 언젠가 변하거나 사라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의 감정마저 ‘가짜’라고, 그것이 ‘없었다’라고 폄하할 순 없다고. 자신들에게 운동도 그러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녀라면 그 선배의 말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을 것 같다. 격렬한 감정은 아니더라도, 목숨을 걸진 않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386세대에게 운동이 ‘사랑’과 비슷한 거라면, 그녀에게 운동은 그냥 ‘일상’인 듯 보인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전태일의 분신마저도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했지요. 물론 그분 때문에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고 노동자의 처우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근로기준법은 지켜지지 않고 있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겐 합법적인 시위조차 쉽게 허용이 안 되는 것이 37년이 흐른 지금의 모습이지요. 그분께서 살아서 활발한 투쟁을 계속하셨다면… 하는 아쉬움이 전 있어요.”


그녀의 말은 ‘전태일 신화’에 대한 도전처럼 들렸다. 1990년대 중반 이전 학번들은 잘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386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운동의 아우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선배들처럼 ‘나가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막연한 부채의식과 경외심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나로 하여금 두려움과 함께 묘한 해방감을 함께 느끼게 했다. 그녀의 말처럼, 전태일이 죽는 것보다 살아서, 살아남아서 끝까지, 변치 않고 투쟁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변해 버린’ 철도공사의 이철 사장이나 한명숙 국무총리에 대해서도 격렬하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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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새마을호 승무원 단식 투쟁에 지지 방문을 갔다가 우연히 이철 사장을 만나 처음으로 대화를 했어요. 그 전까지는 사실 이철이란 사람에 대해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거든요. 과거에 신념이 있어서 국가에 대항하다가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사람이니까. 그래서 선뜻 만났는데, 얘기해 보니 아니었어요. 나는 박정희 욕한 것밖에 없었다. 박정희 욕한 게 불법이냐, 하지만 너희의 행동은 불법 행위다. 그러니 하지 마라. 그러더군요. 제가 다 창피하더라고요. 과거에 한 일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조차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자기부정을 하다니……. 그리고 박종철 열사를 떠올렸지요. 과거 민주화를 위한 신념을 지키고 실천하며 싸웠던 열사 중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거나 자본이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곧 답이 나오더군요. 일제에 항거한 애국지사와 마찬가지로, 진정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훌륭한 분들은 2007년, 이 시대에 절대로 살아 있거나, 권력과 자본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한명숙 국무총리는, 우릴 파업 초기부터 지지했던 여성민우회의 회장 출신이고 과거에 민주화 운동도 했다기에 다른 정부 관료들과는 조금 다를 줄 알았어요. 여덟 번이나 면담 요청을 했는데 절대 만나 주지 않더군요. 국무조정실 담당자가 민원인이 한둘도 아닌데 총리님이 어떻게 다 만나느냐, 그리고 KTX 문제에 대해서 총리님께서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더군요. 1970~80년대 피눈물을 흘렸던 여성 노동자들의 지지와 믿음을 바탕으로 첫 여성 총리가 됐으면서 그 절절한 믿음을 철저히 저버리고 있는 현재 총리의 행보에 분노를 느낍니다. 자리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성’이 ‘여성’인 총리가 처음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성적’ 운동과 연대의 가능성


마음이 답답해 왔다. 왜 한 총리는 끝까지 노동자, 여성들의 편에 남아 주지 못했던 걸까. 정치인은 다 그렇게 되고 말아야만 하는가. 워낙에 사회 이곳저곳에서 핍박받고 차별받는 게 여성인지라, 우리는 모이면 그런 농담까지 했었다. “여성이 승리하려면 대선 때 무조건 여성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니냐?” 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했더니 민세원은 정색을 했다.


“저는 여성 정치인들을 보면서 ‘간택’이란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제가 그동안 만나거나, 접촉을 시도해봤던 여성 정치인들에게서는 별로 희망을 못 봤다는 게 솔직한 제 느낌이에요. 그들은 권력의 중심부에 있을수록 오히려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성을 대표한다기보다는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남성들에 의해 ‘선택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성별이 여자일 뿐인 정치꾼이 되어가는 것이죠.”서울시장 후보들 간의 공방전이 한참 있을 무렵 후보들 모두 상류 계급의 삶만 살아왔기 때문에 서민의 생활에 대해 상상과 추측만 할 뿐이었죠. 그러니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이 아닌 수박 겉핥는 식의 정책만이 난무하지요. 그래서 전 체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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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떻게 해야 ‘승리’할까. 우리 여성들만의 힘은 어디에서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대장금>이나 <황진이>처럼, 여성들이 연대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던 적이 있었다. <대장금>에서 한 궁녀가, 명나라 사신에게 겁탈당해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자라서 다시 궁녀가 될 때까지 몰래 키운 일이 밝혀지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관료 남성들이 놀라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하자 궁녀들이 말했다. “그게 궁녀들입니다.”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궁녀들이란, 궁에서 가장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들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들이 하는 일이야 말로 궁을 유지시켜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들은 궁이라는 커다란 집 안의 ‘주부’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이 가진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이러한 ‘궁 안에서 몰래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다. 왕의 성은을 입는 것 외에는 평생 처녀로 살아야 하는 궁녀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 궁녀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게 낳은 아이를 궁 안에서 십 수 년을 몰래 키울 수 있었던 것도, 궁녀들이기에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연대하면 그 정도의 국법을 어기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황진이>에서도 그랬다. 기생이라는 천한 신분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가치와 자존심을 ‘기예’로 지켜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을 억압하고 짓밟는 자들에게는 기생들의 힘을 모아 대항한다.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이 원하는 삶을 위해.  나는 그런 여성들의 힘을 믿고 싶었다. 그 과거의 허구일지 모르는 이야기가, 2007년 현재에도 실현되고 있었으면 좋겠다. 민세원은 나를 달래듯, 자신들 KTX승무원 지부만이 가지는 힘, 강점에 대해 얘기해 준다.


“투쟁 방법, 냄새, 색깔이 많이 다르대요. 처음엔  ‘투쟁’ 하면 무력시위처럼 과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쟤네 뭐야’ 하며 안 좋은 시각으로 보고, 욕을 하기도 했어요. 정복 입고 행진한다든가, 열차에 들어가서 서비스하는 걸로 우리의 역할을 증명해 보이기도 하고, 서명받기, 인사하기, 안내하기, 선전물 나눠 주기…, 그리고 금요일 촛불문화제에서는 승무원들이 준비해서 공연도 보여 주기도 하고. 지금은 좋은 평가를 많이 받고 있어요. 여성들만 모여 있기 때문에, 게다가 같은 또래들이기 때문에 갖는 강점, 특징인 듯해요. 우리를 지지, 후원하게 된 단체의 사람들이 말하길, 그것 때문에 더 관심을 갖고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었대요.”


그러한 새로움이 대중에게 다른 방식으로 어필한다는 데에서 나는 다시 희망을 보았다. “노동자 스스로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바꾸려고 노력만 한다면 세상이 바뀔 거예요. 어차피 여론은 대중이 만드는 거고, 대중의 대부분은 노동자니까.”라고 말하는 그녀는 대중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대중에게, 다른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럼, 믿어도 될까? 그들이 쟁취해 낼 것이라고, 승리할 것이라고 기대해 봐도 좋은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다 불가능할 거라고 말해요. 하지만 1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해야 되는 거죠. 얼마나 오래 걸리고 힘들지 모르지만, 옳다는 신념 하나만으로 버텨 온 이들, 같이 고생해 온 동료 승무원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두고 한 대로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겪게 해주고 싶어요. 지난 3년의 시간을 삭제당할 순 없잖아요. 그걸 지워야 한다고,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해야 한다면, 이후의 삶이 참 비참할 것 같아요. 그래서 포기할 수가 없어요.”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왜 그녀가 지부장을 맡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선 동료 여승무원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포용력이 보였다. 그녀는 타고난 ‘맏언니’였다. 그래서 그녀는 아등바등하는 이십 대의 어린 ‘동지’들을 최대한 감싸 안으려 했다. 자신이야 이미 삼십 대에 입사했고 직장에 대해 기대하는 바도 조금 달랐지만, 다른 여승무원들에게는 대학을 갓 졸업한 이십 대 초중반의 가능성 많은 시기에 선택한, 믿었던 첫 직장이었다. 그래서 이 직업에 대한 애착이 강한 그들을 기특하고, 또 안쓰럽게 여긴다. ‘배신’하거나 ‘포기’하고 떠나간 동생들마저도.


“회사에서는 2004년 입사 후 승무원끼리 전화번호를 공유하는 것조차도 막았었어요. 그렇지만 인터넷 카페를 통해 우리 내부에서 문제의식들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2005년도에는 상조회든 뭐든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모였어요. 그러던 차에 사람들이 나를 지부장으로 추천했죠. 이 일이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이다가 “하자.”라고 결심했을 때, 그때가 제가 변한 결정적 순간이었지 않나 싶어요. 전 사실 승무원들에 대한 애정이 많아요. 이 친구들이 당당하게 승무원으로 일하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부장 일을 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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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원의 30S


그녀는 서른다섯, 이제 삼십 대 중반을 지나고 있지만, 다른 KTX 여승무원들은 이십 대이다. 그녀는 삼십 대이면서 이십 대들의 삶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삼십 대 여성의 역할과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우리나라 여성은 삼십 대냐 이십 대냐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도 외모나 기혼/미혼이냐 가 더 중요해요. 미혼인, 외모가 남자들이 보기에 ‘즐거운 또는 괜찮은’ 여성들만 인정을 받고, 그나마 그런 여성들도 비정규직이나 쉽고 싸게 부릴 수 있는 소모품으로 활용되고 있죠. 삼십 대 여성들은 그런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이를 알려 주고 조금이라도 바꿔 나갈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저는 전업주부든 비정규직으로 일하든 전문직을 하든 간에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 조직, 여건 내에서 여성의 삶이 바뀔 수 있도록 자신이 무얼 하면 좋을지를 고민해 봤음 좋겠어요. 이십 대에는 뭔가 매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퇴보하는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었거든요. 지금 이십 대인 승무원들이 파업 투쟁을 하는 와중에도 일하지 않으니까 퇴보한단 걱정에 토익, 공부 등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나도 이십 대엔 저랬지 생각하죠. 그런데 삼십 대는 좀 더 시야가 넓어지고 경험에 의해 사고를 더 객관적, 이성적으로 할 수 있고, 삶에 대한 중심을 잡아 가는 나이인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역할을 최대한 하면서 다른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 같이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십 대가 되면 뭐가 달라도 또 다르겠죠. 궁금, 불안하기도 해요.”


자신의 이십 대를 되새기고 40대를 그려보는 그녀의 눈에 강한 의욕이나 투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헤어지는 우리에게 깍듯한 인사 대신 따뜻한 포옹을 해 왔다. 그게 그녀의 힘이 아닐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감싸 안는 것. 그리고 그 품 안에 따뜻한 심장이 뛰고 있는 것. 그녀 말대로 사십 대가 되면 그녀는 또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라면 아마 여전히 사회를 위해, 자기 주변의 세상의 변화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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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coolya 2007/12/27 09:48

    오늘, ""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 실질 사용자" 첫 판결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2&sid2=251&oid=001&aid=0001872940&iid=

    민세원씨를 인터뷰 한 이래로 KTX 여승무원 노조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그와 관련된 기사는 챙겨보는 편이었다. 이 기사 역시 그러했는데..

    KTX여승무원 문제에 관한 기사는, 그 기사 내용보다 리플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왜 많은 네티즌들이 이들에게 이렇게도 잔인하고 가혹할까? 그들은 도대체 신분이 뭐길래, 이렇게도 '사측'의 입장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볼까? 다들, 자신은 비정규직에 갈 일 없고, 여성과 같은 소수자가 될 리 없고, 늘 사람을 부리는 입장에만 있을 거라 확신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KTX에 승무원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가?승무원의 역할이 '안전관리'가 아니라 방긋 웃어주며 자리나 안내해주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 아닌가? KTX 사고는 끊이지 않는데, 그때마다 승무원, 안전요원 부족으로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데...왜 승무원이 필요없다고 여기는 걸까?

    착잡한 기분에, 올해 초 인터뷰로 만났던 민세원과의 대화를 올려본다.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크고 있을까.

                                                                                    김지미

<괴물>의 비극은 괴물이 한강변에 나타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강두(송강호)가 현서(고아성)의 손을 놓치는 데서 시작된다. 관객이 무자비한 괴물과 무책임한 정부를 책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서가 그 끈적끈적한 손에 감겨 한강 둔치 어딘가로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강두는 현서의 손을 놓쳤다는 이유로 동생에게  ‘네가 그러고도 아빠냐’는 비난을 듣는다. 그 말 속에는 아빠라면 당연히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를 보호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서는 아빠의 손을 놓치는 순간 어른들이 알 수 없는 ‘괴물’의 세계로 끌려갔지만 거기서 그녀는 스스로뿐만 아이라 어린 동생을 돌보며 탈출을 기획하며 ‘맥주 한 모금’의 맛을 깨닫는 어른이 된다. 비록 그것이 어른의 상상인지, 아이의 현실인지는 모호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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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소녀의 통과의례는 영화화하기에 언제나 매력적인 주제이다. 그것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 되는 일생일대의 사건이기에 성장통이 갖는 보편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동시에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무궁무진한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주체가 아직은 사회적으로 홀로서지 못한 미성숙한 주체이기에 그들의 성장에는 언제나 부모 혹은 어른들로 대변되는 기존 세계와의 관계 정립이 포함된다. 그런데 2006년 상반기에 눈에 띄는 성장 영화들의 공통점은 부모의 부재 혹은 ‘손을 놓친’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사라진 조력자들


조창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피터팬의 공식>은 전형적인 성장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피터팬’이라는 아이콘이 환기시키는 바 그대로, 이 영화는 남성적 자아가 형성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잘 나가는 고교 수영선수였던 한수(온주완)은 어느 날 갑자기 “나 이제 수영 안 해요”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수영장을 떠난다. 수영장에 갇혀 지내느라 오히려 낯설어진 교실에 앉아서 창 밖만 내다보던 그에게 전해진 엄마의 자살기도 소식. 엄마는 삶이 “허무해서”라는 말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버지의 주소만 쪽지에 남긴 채 혼수상태에 빠진다. 한수는 졸지에 엄마의 병원비와 자신의 생활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지만 주변엔 도움을 청할 어른이 한 명도 없다. 다만 그는 옆집 아줌마 인희, 그녀의 딸 민지 그리고 같은 병실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혼수상태의 엄마를 보살피는 미진과의 관계를 통해서 숨을 쉴 뿐이다. 세 명의 여인들은 돌아가면서 그에게 웬디나 팅커벨이 되어 준다.


이 영화에서 한수는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이다. 그의 엄마가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그 순간 아들 한수는 모든 의무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그가 마지막 보루로 믿고 찾아갔던 아버지는 다른 가정의 가장이 되어 이미 한수를 잊어버린 상태이다. 사실적인 시각을 견지하기보다 환상적, 상징적인 기법을 빈번하게 차용하는 이 영화의 결말은 한수가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수영장의 레인을 자유롭게 가로지르며 여유있게 유영하던 영화의 첫 번째 시퀀스와 대조적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바다 속의 한수는 허우적거리며 죽을 고비를 넘긴다. 한수에게 닥친 삶의 조건들은 아직 미성숙한 ‘피터팬’인 그를 바다 속으로 팽게친다. 그러나 사실 이 ‘피터팬’이라는 수사는 그에게 적확한 표현이 아니다. ‘피터팬’이란 어른이 되어야할 인간이 그것을 거부하고 아이로 안주하고 싶어하는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지, 한수처럼 충분히 성숙할 틈도 없이 비자발적으로 어른이 되도록 강요된 청소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피터팬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 여건때문에 어른이 되도록 강요받고 방황하는 사이 피터팬으로 내몰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거친 파도 속에서 살아나느냐, 죽느냐에 대한 고민은 온전히 한수의 몫이며, 어른들은 그의 고민을 들어주지도, 현실적인 책무를 덜어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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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권하는 사회 : 중독의 이율배반


김현철



바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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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일산의 한 동네 입구에도 현란한 채색의 간판을 단 “오션파라다이스” “황금성” 같은 게임장들이 몰려 있었다. “바다이야기”도 물론 있었다. 몇 개월 전 처음에 이사 와서 나는 막연하고도 순진하게, 이 크고 화려한 오락실들이 어렸을 때 다니던 전자오락실이 대형화한 것일 거라 생각했다.

코발트색 간판이 하도 눈에 띄게 예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데리고 “바다이야기”에 같이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에 “바다이야기” 파동이 나서, 그것이 ‘성인’ ‘전자’ ‘도박장’이고 그 ‘성인오락’에 중독되어 파산자가 된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바다이야기” 같은 전자도박에 우리 ‘국민’이 쏟아 부은 돈이 무려 3조에 달하고 이 큰 액수가 근래 우리 경제의 문제라는 ‘민간소비의 위축’에도 단단히 한몫했다 한다. 얼마쯤 되는지 짐작하기도 힘든, 이 3조라는 돈이 우리들 중의 누군가가 전자 도박에 중독된 비용으로 지출된 것이다. 그 돈이 누구 호주머니로 들어갔을까?


 “바다이야기”는 노골적으로 돈을 갖고 하는 도박이어서 그 중독의 여파가 이처럼 쉽게 경제적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중독을 매개로 돈을 쓰게 만들고 돈을 벌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중독의 이율배반 

몇 년 전 잘 아는 한 교수가 게임산업의 법적 규제에 대해서 연구하겠다고 찾아왔다. 그 교수는 그 전까지는 게임이라는 것을 거의 해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규제를 말할 자격을 갖추려면 규제대상이 되는 게임이라는 것을 직접 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었다. 성실하고 순진한 그를 내심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난생 처음 게임의 세계로 푹 빠져들었다!!! 그가 빠져든 게임은 요즘은 너무 흔한 인터넷 “맞고”의 일종이었다. 두 달 후 그는 내 앞에 다시 나타나 “맞고에서 자기를 구해달라”고 했다.

대부분의 우리는 무엇인가에 진심으로 몰두하는 사람을 칭찬한다. 그러나 몰두가 지나친 사람이 있으면 걱정하게 된다. 몰두가 지나치면 자신을 해칠 뿐 아니라, 주위 사람과 ‘사회질서’를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지나친 몰두가 자꾸 반복되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사람들은 그가 “중독”되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중독”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중독을 몰아내야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동시에 “중독”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돈벌이 수단이라는 것도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다. 친척 동생이 게임을 개발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녀석은 “잘 나가는” 게임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게이머들을 얼마나 그 게임에 푹 빠지게 하는가에 달려있다고 강변을 해댔다. 중독성이 없는 게임은 인기 없는 게임일 것이다.


남을 중독시켜야 큰돈이 된다! 그리고 인기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중독”이 문제라 하면서, 동시에 “중독”을 이용해 경제나 정치에서 성공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독의 이율배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개개인의 가치관 문제일까? 이 이율배반은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인간 사회에서 다 목격되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중독의 이율배반은 경제생활과 권력현상에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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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은 오 년 만에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며, IMF 경제 위기를 겪은 지 십 년, 그리고 6월 항쟁이 있은 지 이십 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에 대한 회고와 변화된 의미 찾기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한국에 대한 생각들로, 대중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다시 한 번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에 어떤 ‘주기’가 있는 것이라면, 올해 이 땅에서는 또 한 번 거대한 변동이 일어날 조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직장과 대학, 책과 영화, 신문과 인터넷, 그리고 여자와 남자들은 돌이킬 수 없이 바뀌었습니다. 돌아보면 마음보다 몸이 변하는 속도가 더 빨랐고, 그보다 세상 변하는 속도는 좀 더 빨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동을 향해 ‘모순’이 착착 누적되고 있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려고 한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새로 태어날 것이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수반합니다. 한때는 가장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었던 ‘새로움’이라는 가치는 속도와 손잡기 시작하면서 우리를 끝없는 현기증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기존의 것들에 대한 부정과 혁신적 태도에 대한 요구는, 한꺼번에 몰아닥친 수많은 ‘조정’과 ‘개혁’ 속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우리의 삶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좀 더 경제적이고, 좀 더 효율적이고, 좀 더 대중적인 어떤 것이 선한 것이라는 막연한 동의하에, 각자 자기 방식의 경제와 효율과 취미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며 다른 이들에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립니다.


간헐적으로 이 새로운 시간을 사는 이들의 의식과 그들이 영위하는 ‘문화’의 의미에 대해 점검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발언하고 네트워킹하는 장은 별로 없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블로그와 미니홈피들 그리고 댓글과 UCC를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이 왔지만, 그 안의 많은 이야기들은 누군가가 이미 뱉어놓은 것들을 복제하거나 추인하거나 엉뚱한 말놀음만 벌이다가 으스러지기도 합니다.


많은 고민과 곡절을 겪은 후에, 기대했던 것보다 반년이 넘어 지나서 무크 <소문>이 나왔습니다. 기다리시던 독자들과 필자들께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다음과 같은 좀 근본적인 의문에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무엇보다, “아직도 종이잡지를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가능한가?” 사실 종이 잡지는 낡은 것이 되어 문화의 주변으로 밀려 나고 있습니다. 앎과 일과 향유는 모두 종잇장보다 더 가벼워져서 ‘디지털’의 공간에 떠돌아다닙니다. <창작과 비평> 세대의 의식과 문화를 지양해야 하는 힘은 단지 내용에만 있지는 않은 것이지요. 거대한 소통 체계의 변화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는 아직 명징하지 않습니다. 다만 계속 더듬어 나아가며 실험해야 한다는 신념은 가지고 있지만요. <소문>은 그러한 실험의 하나로서 기획됐습니다.


<소문>의 작은 실험은 우리가 품은 다음과 같은 의문들과 연관돼 있습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달라진 삶의 양식과 정치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읽고 묘사할 것인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새로운 세대는 ‘386’세대들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근본적이고도 비약적인, 동시에 아래로부터 추동되는 저항과 변화는 아직도 가능한가?”


이러한 의문들은 ‘진보’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386’세대의 함의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그들이 외치고 지키려 한 ‘자유’와 ‘민주주의’가 지난 십여 년 사이에 현실의 논리 속에서 어떻게 괴물로 변화해 가는지를 보았습니다. ‘시장’은 삶을 갈가리 찢어놓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참을 수 없게 떼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세대 안에서 비판적 목소리를 유지하는 이들과 그 이후의 세대는 어떤 방식의 운동성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기본적인 가치여야 할 자치와 연대는 이러한 과정에서 점점 달성 불가능한 미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회의 속에서도 여전히 3할의 희망과 7할의 낙담이 뒤섞인 심정으로, 우리의 오늘과 미래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소문>의 첫 발자국은 우리의 평범한 생각과 몸에 육박해오는 음험한 힘들 앞에 새기려 합니다. 그리하여 고심 끝에 첫 번째 기획 테마를 ‘중독’으로 정했습니다. 중독은 원치 않는 어떤 행위를 자신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강제하는 자기 자신 속의, 또한 우리 몸 바깥으로부터의 위력적인 메커니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독은 주관과 객관이 극단적으로 만나는 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주제로 여러 가지 논의와 생각해볼 거리들을 담아 보았습니다. 마약ㆍ술과 같은 물질중독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두의 삶에 깊이 침투해 있는 보편으로서의 과정중독들, 그리고 이를 강제하는 배후의 힘과 그에 연관된 역사적·정치적·문화적 ‘증상’들까지 아우르고자 했습니다.


이런 기획과 더불어 천명관ㆍ정희진ㆍ로쟈ㆍ신윤동욱과 같은 ‘탈근대’ 한국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감각과 위치를 가진 필자들의 다양한 시각과, 공원국ㆍ김국현ㆍ신호철 씨처럼 90년대에 성장하여 21세기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젊은 목소리도 담았습니다.


<소문>의 첫걸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고민과 시련의 시간들은 앞으로의 도약을 위한 ‘도움닫기’의 과정이었으리라 믿습니다. 많은 격려와 질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9월


<소문> 기획위원 천정환·박경신·김현철·이영아·김지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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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386세대 "문화로 소통하자"
민음사, 문화교양지 '소문'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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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386세대를 겨냥한 문화교양 무크지가 창간됐다.

20일 창간된 ‘소문‘ (민음사 발행)은 김현철(이화여대 법대 교수), 천정환(성균관대
국문과교수), 영화평론가 김지미씨 등 날카로운 감각을 자랑하는 30대 신예학자와 평
론가들이 기획위원을 맡았다.

‘소문’ 은 소통과 문화의 약칭. 좌파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폐쇄적인 논쟁을 벌이던
기존의 담론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했다. ‘실질적 민주주의 확립,
신자유주의 반대’ 등 386세대가 관성적으로 주도했던 거대담론 대신 ‘지금 이 순간
일상의 삶과 문화 속의 관심사’ 에 대해 발언하겠다는 것이 기획의도다.

창간호의 기획테마는 ‘중독’ 이다. 상투적으로 국가적 위기를 강조했던 역대 대통령
들의 취임사를 분석해 약자에 대한 국가의 억압의 의도를 읽어내는 ‘국가중독’ 을
주제로 한 고지훈의 칼럼, 문자메시지와 통화건수, 미니홈피의 방문자 수에 집착하는
젊은이들의 행태를 ‘접속중독’으로 파악한 송종현의 글 등이 실렸다.

방송인 손석희와 KTX 비정규직 노조지부장인 민세원의 인터뷰가 실려있으며,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 등 최근 주목을 받은
책들에 대한 비평도 관심을 끈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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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스 > 연합뉴스 2007-09-20 17:25

민음사 문화 교양지 '소문' 창간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7-09-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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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민음사는 '포스트 386세대를 위한 문화 교양지'를 표방한 무크 '소문'을 창간했다고 20일 밝혔다.

'소문'은 소통과 문화의 약칭으로, 김현철(이화여대), 천정환(성균관대),
박경신(고려대) 교수, 이영아 서울대 전임대우강사, 영화평론가 김지미 씨
등 30대 학자와 평론가가 기획위원을 맡았다.

민음사는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진보 혹은 개혁세력이라는 타이틀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 왔던 386세대가 이제는 기득권층에 안주한 것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 그 세대가 대표한 20세기의 진보성을 넘어21세기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시도"라고 창간 취지를 설명했다.

창간호의 기획 테마는 '중독'이다. 대통령 취임사에 매번 국가 위기상황이
거론돼 국가중독증을 일으킨다는 고지훈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의 글을 비롯
접속중독, 일 중독 등을 다룬 글이 실렸다.

112쪽. 8천500원.

jsk@yna.co.kr

(끝)

<모바일로 보는 연합뉴스 7070+NATE/ⓝ/ez-i>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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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포스트 386세대 위한 소통과 문화 모색
민음사가 ‘포스트 386세대를 위한 문화 교양지’를 표방한 무크 ‘소문’을 창간했다.

‘소통과 문화’의 머리글자를 딴 잡지는 천정환(성균관대) 박경신(고려대) 김현철(이화여대) 교수 등 30대 소장학자들이 기획위원을 맡아 1년에 3∼4회 발행될 예정이다.

기획위원단은 창간사에서 “수많은 블로그와 미니홈피들, 댓글과 UCC를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이 왔지만, 누군가가 이미 뱉어 놓은 것들을 복제하거나 추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소통 체계의 거대한 변화 앞에서 종이잡지의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창간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진보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386’세대의 함의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전제한 뒤 “그 세대가 대표했던 20세기의 진보성을 넘어서서 21세기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민음사는 “먹고살기 위해 생업에 종사하는 우리 개개인의 삶과 그를 둘러싼 문화에 초점을 맞춘 실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창간호는 주제를 ‘중독’으로 정하고, 마약·술뿐만 아니라 삶에 깊이 침투한 역사적·정치적·문화적 ‘증상’들까지 아우른다. 그밖에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민세원 KTX 비정규직 노조 지부장의 인터뷰와 탈근대적 성향을 보이는 소설가 천명관, 여성학강사 정희진 등의 글들을 실었다.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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