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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초반은 역시 견디기 힘들었다.

말도 안되는 우연의 연속,

선우환(이승기 분)의 말도 안되는 쓰레기 짓,

백성희(김미숙 분)의 말도 안되는 악한 계모상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문의 영광>이 끝난 것을 통탄하며, 어쩌다 이런 드라마가 후속작인가,

내 주말 밤의 낙은 이제 없나..생각했다.

 

그런데 좀 지난 뒤, 정말 볼 게 없어서 우연히 다시 틀어 보게 된 <찬란한 유산>은

생각보다 '정상'을 찾아 있었다.

 

<1박2일>을 통해 다져진 '건전한 청년' 이미지의 이승기나

<봄의 왈츠>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가진 외양때문에 늘 '기대주'가 되어왔던 한효주도 물론 매력적이었지만

사실 그 두 사람의 캐릭터는 닳고 닳은, 드라마에서 써먹을 만큼 써먹은

그런 캐릭터였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우는' 고은성(한효주 분)이나

인간 말종에서 차츰 인간다움을 회복해 가는 선우환, 뭐 새로운가?

나쁜 남자가 못되게 굴다가 주인공 캔디 여성에게 빠지고, 그러면서 정신 차리는.

흔하디 흔한 드라마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신선하고 재미있는 것은

승미(문채원 분)과 선우환의 엄마 오영숙(유지인 분), 선우정(한예원 분)의 '인간다움'이다.

그들은 악역이며 은성의 '장애물'이지만 그들 중 누구도 미워하긴 힘들다.

 

영숙과 정은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인 은성에 의해

할머니의 유산을 모두 빼앗겼다.

그러나 그들이 은성을 미워하는 수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미움정도이다.

할머니가 손자 손녀와 며느리를 다 모른척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웬 듣보잡에게 다 주겠다고 유언장을 고쳤다.

누가 그런 듣보잡을 고운 눈으로 볼 수 있겠는가?

그렇게 미워하다가도, 동생 은우를 잃어버렸고, 가스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는

은성의 개인사 앞에서는 "쟨 왜 인생이 저렇게 기구해?"하며

투덜거리듯 그녀를 딱해한다.

 

그들이 은성을 완전히 내치는 순간은

성희로부터 은성이 할머니에게 고의적으로 접근했으며

은성이란 아이가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않는

무서운 아이라는 모함을 듣고 난 뒤이다.

이들은 너무도 순수해서, 성희같은 지략가의 모략 앞에서

쉽게 넘어갔을 뿐, 뼛속부터 못된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은 은성이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얘기에

소름끼쳐 할 뿐이다.

영숙의 친구인 성희의 말을 굴러들어온 돌 은성의 말보다 믿는 건 당연하니까.

 

한편 승미는, 은성의 안타고니스트이지만 너무나 설득력 있는 악역이었다.

그녀의 목표는 딱 하나이다. 선우환.

그녀는 그를 얻겠다는 생각 하나밖에 없지만 

그러기 위해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의 패턴들은

우리가 흔히 트렌디 드마라들에서 보아왔던 무조건 나쁘고, 유치하고, 바닥까지 드러내는

그런 악역의 행동들이 아니다.

(그녀의 비음 섞인 굵은 목소리에도 끌리고 아직 정돈되지 않은 얼굴선도 사랑스럽다.

<바람의 화원>에서 봤을 때부터, 내가 김아중 이후 남몰래 끌려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엄마 백성희의 끝간 데 모르는 돈과 영달에 대한 욕망을

끊임없이 비난한다. "엄마, 어떻게 그렇게 까지 할 수 있어"라면서.

그런데 그럴 때 백성희의 대응은

"그래, 내가 못된 년이다. 그렇지만, 너, 환이를 생각해봐라. 내 선택을 무조건 비난할 수 있어?"

라는 것이다.

그러면 승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성희가 만들어 놓은 이 악랄한 상황을

그저 눈물흘리며 받아들인다.

 

죽지 않은 아버지를 죽은 것으로 만드는 것, 그럼으로써 사망보험금을 은성 몰래 다 가로챈것,

먼 지방 땅에 은성의 동생(은우)을 버린 것, 은성에겐 단 한푼도 나눠주지 않고 자기네만을 위한 돈을 감춰뒀다가 그럴듯한 아파트를 구해 사는 것...이런 성희의 행동들에 의해

은성은 끝간데 모르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반면 승미는 엄마의 대놓고 하는 악행 덕에 안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며,

환과의 관계도 원하는 대로 지속할 수 있다.

그때문에 승미는 정작 엄마의 악행 앞에서 비난과 눈물을 일삼으면서도

결국은 엄마가 만들어 놓은 '비열한' 상황 속에 함몰되고 만다.

 

승미는 차츰 더 악해진다.

왜냐하면 환이 은성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를 얻기 위해서, 엄마를 비난하면서도 엄마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던 승미는

그를 얻기 위해서, 엄마와 공조하여 은성을 환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거짓말과 모함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행동 뒤에도 그녀는 너무나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린다.

 

누가 승미를 욕할 수 있을까.

그녀의 악행은, 간절히 바라는 한 사람과 그 사람의 마음을 위해 일어난 것들이다.

우리들 모두,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선

그녀 정도의 거짓말과 모함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양심때문에 생각은 해도 실행은 못할테지만.)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가진 양심 수준으로 끊임없이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괴로워한다.

그래서 그녀를 보며 '저런 못된 년'이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해서 이 드라마를 바라보면

그녀는 한없이 가련하고 불쌍하다.

마음을 주지 않는 한 남자때문에 그녀가 겪는 가슴앓이.

그래서 그녀는 악역임에도 미움을 받기보단 안쓰럽다.

 

이러한 면들 때문에 이 드라마는 초반의 무리수들에도 불구하고

'개연성'이 있는 드라마로 인정받는다.

성희의 돈에 대한 욕망, 승미의 환에 대한 욕망,

세상 물정 모른 채 살던 부르조아 영숙과 정의 단순성은

악역들 어느 하나 무조건 미워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들은, 그야말로 '그럴 만 하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막장드라마'로 여기지 않게 만든다.

 

 

뱀발)씨X새 주말 드라마는 <가문의 영광>에 이어서

계속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그리려 한다.

'진성설농탕'으로 나오는 '신선설농탕'이

실제로 그렇게 노숙자들, 독거노인 들에게 지속적인 자원봉사를 하고

혈족계승이 아닌 기업이념과 윤리에 따라 기업을 운영할 새로운 후계자를 양성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것에 우리가 속는 것은 조심할 일이다.

 

그러나 <가문의 영광>이 그랬듯

<찬란한 유산> 역시 기업과 재벌들을 '계몽'할 수 있다면 좋은 드라마이다.

이 두 드라마에서처럼 유산은 자식, 손자라서 물려주는 것이어선 안된다.

도덕성과 윤리가 기업이윤보다 우선시되는 기업, 재벌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에게 환원해야 한다.

 

그것이 안된다면 적어도...이런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는 사실, 기업이 이럴 수도 있다는 정도는

이 시대의 수많은 (실제/잠재)노동자들이 이러한 드라마들을 통해 모두 알아야 한다.

회사가 어려우면 회사를 살리기 위해선 노동자를 해고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논리를

평생 '사측'이 될 가능성이 없음에도 어려서부터 '진리'로 체화해 온 우리들은

이런 드라마를 통해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쌍용자동차의 직원, 노동자들이 총고용 보장과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일이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그들의 투쟁이 지지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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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석증때문에 보름 전쯤 담낭적출술을 받았다. 나름 전신마취도 하고 하는 '진짜' 수술이었지만 요즘의 의학기술이 워낙 좋아져서, 3박4일이면 퇴원할 수 있는 병이었는데, 나는 좀 특이한 상황때문에 9일만에 퇴원을 하게됐다. 이 특이한 상황이란  처음의 나를 담당한 진료과목이 '내과'였다가, '외과'로 트랜스퍼되었던 것. 처음엔 췌담관 내시경 조영술을 하면서 담도나 담낭에 있을 지 모르는 돌들을 찾아내고, 돌이 발견되면 그것을 제거하는 간단한 내과적 '시술'로 끝날 줄 알고 학기중에 겁없이 입원을 했었다. 그런데 내시경을 넣어 막상 몸 안을 보니, 담낭(쓸개)쪽에 돌이 너무 많아서 외과적 수술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고, 그래서 그 수술까지 받느라 입원이 길어졌다.

그 과정에서 담석증이라는 같은 증상에 대한 내과와 외과의 접근방식의 차이 같은 것을 그야말로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내과의들은 매우 친절하다. 그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열심히 묻는 편이고, 매우 자주 나의 바이탈 사인을 체크한다. 검사도 진짜 여러번 한다. 간단한 피검사부터 엑스레이며 CT며...반면에 외과의는 교수뿐 아니라 레지던트, 인턴 조차도 정말 바람처럼 휙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며, 수술을 받은 후엔 내 상처나 몸을 쳐다봐 주지도 않아서 깜짝 놀랐다. 심지어 상처부위의 드레싱 한번도 안해주고 퇴원시키더라. 퇴원 후 하루 이틀 뒤쯤 동네 일반외과에 가서 하면 된다면서. 물론 기초적인 내 바이탈 사인이 정상적이었기 때문일 테지만, '시술' 수준인 내시경 한번을 받으려고 시술 전날에 수차례 검사를 하고, 시술 다음날에 다시 그 검사를 거의 재탕으로 다 하는 내과와 비교하면 너무 낯설었다. 나는 수술한 다음 날 '근데 수술이 잘 되었는지 무슨 검사같은 건 안 해요?'라고 담당의에게 물었다가 '네? 무슨 검사를 또 하라구요?'라는 대답을 듣고 한참 무안해지고 말았다.  

 

나는 왜 외과의들이 저런 태도를 취할까를 생각했다. 저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런 유추가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우리같은 '글쟁이'들은 논문 한편, 아니 이런 블로그에 낙서 한 바닥만 해도, 제가 쓴 글을 보고 또 보며 고칠 데 없나 확인한다. 더이상 고칠 수 없는 마감 때까지 어딘가에는 실수나 오탈자가 있을 것 같아 쉽게 자기 글을 놓아버리지 못한다. 근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몸에 구멍을 내서, 웬만한 사람은 다 가지고 있는 장기 하나를 떼어 버렸는데, 그 과정에 뭔가 실수나 이상이 있지 않을까를 저렇게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 대목에서 떠오른 것이 그동안 내가 봐왔던 수많은 의학드라마들이다. 대부분의 의학드라마의 주인공은 외과의이다. 흉부외과이건 신경외과이건 소화기외과이건 간에, '메스! 썩션!'따위를 외치며 피를 보여주고 꿈틀대는 장기들을 만져대는 외과의들의 역동적이고 '예술적'인 수술과정이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상정하는 의학의 '본령'(?)이다. 우리는 그런 장면들을 보며 의학의 힘을 경외시하곤 해왔다. 반면에 내과의는 보통 여성 인물들이 맡으며, 그들의 역할은 외과의에 비해 부수적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보살핌'의 '포즈'는 경외시할 대상까지는 되지 못한다.

그런데 미국드라마 <하우스>는 그동안 드라마에서 그려져 왔던 내과와 외과 사이의 이러한 '계급'을 완전히 전도시켰다. <하우스>에서 외과는 내과의인 하우스와 그의 팀원들이 밝혀 낸 환자의 병을 수술로 고쳐주기만 하면(?) 되는 '따까리' 신세가 된다. 병명을 알 수 없는 이상 증세를 보이는 환자로부터 병인을 진단해 내는 것은 모조리 내과의, 하우스의 몫이다.

 이처럼 <하우스>는  의학, 하면 외과를 떠올리게 하던 기존의 의학드라마들의 공식을 보란듯이 깨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럼 왜 그동안의 의학드라마들은 굳이 외과만을 다루어왔을까? 실제로는 3D과로 취급되어 외과 전공의의 숫자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오늘날 같은 현실에서. 그 이유를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비주얼'일 것이다. 수술을 해야 드라마에 장면이 살아난다. 그렇다고 성기 등을 노출해야 하는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수술을 다루긴 어렵겠고, '메스-썩션'의 메아리가 리듬감있게 울려퍼지며 꿈틀대는 심장, 시뻘건 장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줘'가며 뭔가 제대로 인간의 몸을 고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로는 외과만한 진료과목이 없기 때문이다. 외과 드라마들이 어려운 의학용어를 쏼라쏼라해도 보는 데에 큰 불편함이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드라마들이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뭔 말인지 못알아 들어도 수술 장면을 보면서 그 긴박한 상황과 수술의 극적 성공이나 실패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의학드라마들은 아마도 외과 쪽의 이야기를 다룰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하얀거탑>처럼 간담췌의 권위자라거나 <카인과 아벨>처럼 뇌신경외과 전문의라거나...좀더 외과 내부의 세부전공을 다루긴 하더라도 외과를 벗어나는 것은 시각매체인 드라마나 영화로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이 나를 수술한 외과의들이 보였던 '자신감'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내 몸을 직접 보았다. 직접 눈으로 보고 문제가 있는 장기를 말끔히 떼어냈으니, 더 이상 궁금할 게 없는 것. 내과의들처럼 직접 보지 않고 여러 검사결과를 가지고 추정을 해야하는 경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직접 보여 줄 것이 별로 없는 내과를 중심에 두고 다루었으니, <하우스>는 나름 의학드라마로서는 새로울 뿐 아니라 위험한 시도를 감행한 셈이다. 사실, 그런 점에서 <하우스>는 '마니아' 층을 만들 수는 있어도 대중적 인기를 끌기는 어려운 드라마이다. 너무 말이 많고, 그들의 끊임없는 의학적 토론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반 이상은 이해도 안된다. 그럼에도 미드팬들이나 미국의 시청자들이 <하우스>를 즐겨보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사생활의 엿보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우스>의 중심 이야기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한 사람이 멀쩡하다가 갑자기 발병해서 병원에 실려온다. 환자는 일부러이건, 혹은 혼수 상태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어서건 간에 자신이 이러한 병에 걸리게 된 원인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환자의 병세는 점점 악화된다. 하우스 박사의 팀은 새롭게 드러나는 증상들에 따라 그때 그때 새로운 처치방법을 택하지만, 처음엔 쉽게 병세가 호전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몇몇의 증세를 단서로 해서, 그리고 그 환자의 사생활(가족, 거주환경, 생활패턴, 성격, 과거의 병력, 가족력 등)을 파악하게 되면서 환자의 병명과 병인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에 따라 처치를 하고, 그 과정에서 다시 병을 회복한 환자는 목숨을 구제받은 대가로 자신의 감춰뒀던 사생활, 비밀을 고해성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부분 때문에 사람들은 그 알아듣지도 못할 의학용어의 홍수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가며 <하우스>를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 9살짜리 비만의 꼬마 여자아이가 병원에 심장마비로 실려 들어오자 그 아이가 어린아이가  엄마 몰래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거나, 어떤 대통령 후보가 어렸을 적 간질을 앓았고 그때문에 간질 치료제를 먹었다는 사실을 털어놓게 만든다거나, 젊은 청년이 부모님 몰래 제3세계국가에 여행을 갔다가 성병에 걸려온다거나...하는,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을 그들의 몸과 증세를 통해 파헤쳐 까발기는 과정이 재미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뭔 수치가 무슨 호르몬의 이상으로 높아졌는지, 거기에 뭐뭐 약을 쓰면 증세가 호전되는데 대신에 무슨 부작용이 있는지 따위의 말은 한 마디도 못알아 들어도 상관이 없다.

 외과가 중심이 되는 대부분의 의학드라마는, 병에 걸린 환자가 '왜?' 그 병에 걸렸는지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아니, 외과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드라마에서는  병자가 어떠한 생활, 식습관, 복용력 등을 가졌는지는 관심이 없다. 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린 것이 그의 어떤 생활습관때문이라고 말하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주인공이 위암에 걸렸다고, 그가 짜게 먹어서,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뭐뭐뭐 약을 장기 복용해서 위암에 걸렸다...식의 말을 하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병에 걸리게 된 그 사람의 '과거'는 보통 드라마에서 하나도 안 중요하다. 그냥 병에 걸린 것, 그래서 그 이후 병마와 싸워야 하는 것 자체만이 중요하다. 외과의들은 그런 병을 수술로서 치료해주는 것이고.

 그런데 <하우스>의 의사들은 '어떻게 병을 치료할 것인가?'의 답을 보통의 의학드라마들이 하는 방식의, 'A증상에는 A~의 치료법을'과 같은 병-치료(수술)법의 대응표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A증세는 a라는 원인때문이다'라는 병의 원인-병의 대응표를 갖고 있다. 그들은 병의 치료법은 증세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병의 원인을 통해 판단해야 정확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원인을 찾기 위해 병자의 '뒷조사'를 열심히 해댄다. 시청자들은 이 뒷조사가 재미있어서 이 드라마를 즐겨보는 것이다. 이동침대에 누워 수술실을 오갈때 나를 보던 사람들의 '젊은 처자가 어쩌다, 뭔 병에 걸려서?'하는 동정과 동시의 호기심 어린 눈빛들처럼.

 어쨌든, 병, 증상의 원인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으며, 몸의 모든 부위는 서로 유기적인 연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하우스>는 독특하고 또 의미있는 의학드라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우스>의 서사는 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에게 묘한 죄의식이나 공포를 심어주기도 한다는 점에서는 못마땅하다. 원인을 열심히 캐고, 그 원인들이 대부분 환자 본인의 사생활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때문에 환자들은 자신이 뭔가 인생을 잘못 살아서 이런 병에 걸렸다는 죄책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내과의와 외과의 앞에서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된 것도 바로 이 <하우스> 때문이었다. 외과의 앞에서의 나는 거의 아무 것도 고백(?)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과의 앞에서 나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참 쓸데없이) 솔직했다. 나의 생활습관이나 약물복용의 경험 등에 대해서 너무 열심히 털어놨다. 그러지 않으면 <하우스>에 등장하던 수많은 환자들처럼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을 보이며 병세가 악화될지도 모른단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겪은 병원과 의사, 의학이란 <하우스>같은 정도의 내 뒷조사를 요구하진 않았다. 내가 40대 이상의 비만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한다는 담석증에 걸린 이유를 알기 위해 실컷 내 사생활(?)을 얘기했지만 원인 규명에는 별 소용이 없었다. 나의 담당 내과의는 '원인은 정확하게 모릅니다. 뭐 그게 약간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죠' 식의 애매한 답변 뿐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나의 담당의가 무능력해서라기보다는, 그게 실제 현재의 의학의 수준이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하우스>처럼 병의 원인을 명쾌하게 밝히고 단정적으로 그 병에 대해 진단해 내는 일은 현실에선 아직 쉽지 않은(어쩌면 위험한기도 한) 것이 아닐까. 인간의 몸을 통해 한 인간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병에 걸린 환자에게 병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시청자들을 매혹하기 위한 과도한 설정일 뿐. 인체는 여전히 신비롭고 너무나 복잡하며, 현실 속의 의사들은 대체로 이 인간의 몸 앞에 겸손하다. 당신이 어떤 '짓'을 하고 살아서 그런 병에 걸린 거라며 비난(?)하는 일은, '독설가 닥터 하우스'가 드라마 속에서나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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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촌스럽게, '가문'이라니?



SBS에서 주말 10시에 방영했던 <가문의 영광>이 막을 내렸다.

총 54회에 걸친 꽤 긴 호흡의 드라마였는데,

내가 재미를 붙여 보기 시작한 것은 한 중반쯤, 20회 즈음이 넘은 이후였다.



처음에 관심이 안 갔던 이유는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벌집 선남선녀들의 짝짓기 얘기인듯한데

제목까지 '가문'의 '영광'이라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주제를 담으려 하는 것인가...싶었다.



지금, 한국에서 '가문'따위는 결국 부르주아 계층 내부에서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나 동원되는 개념이 아닌가?

재벌들이 모자라든 잘났든 제 자식들에게 어떻게든 자신의 기업을 물려주는 일,

그 안이 썩고 곪았어도 자기끼리는 서로 잘났다며 추켜세우고 감싸주는 일,

그러는 과정에서 그 외부에 대해 그들이 보여주는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가족주의...

뭐, 그런것들밖에 상상이 안되는 어휘였기 때문이다, '가문'이란.



2. 연애를 통해 '재혼'하는 네 커플



주연급 남녀들의 러브스토리도 딱히 새롭지 않다.


대성건설 하사장(서인석 분)의 세 자녀-수영(전노민 분), 태영(김성민 분), 단아(윤정희 분)가


적당한 '갈등', '혼사장애'를 딛고 결혼에 골인하는 이야기이다.



이란성 쌍둥이인 수영과 태영은 둘 다 이혼남이다.

드라마 초반이 하회장(신구 분)의 아버지의 임종에서 시작되는데,

증조부의 장례를 치뤄야 하는 날,

수영은 아내의 불륜으로, 태영은 스스로가 바람을 피우다 들통나서 간통죄로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 수영은 자신보다 열 몇살이 어린 고아 아가씨이자 자신의 회사 청소부 직원인 진아(신다은 분)와 사랑에 빠지고,

태영은 자신이 간통죄로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보게 된 가난한집 똑순이 여경 나말순(마야 분)과 티격태격하다 연애를 시작한다.



그들에게 닥치는 혼사장애는 흔한 것들이다.

신분의 차이, 계급의 차이, 나이의 차이.

거기에 태영의 바람기와 불임의 몸인 진아의 '종부'로서의 부족한 (생물학적)자질 정도가 덧붙여진다.

그러나 적당한 갈등과 장애 끝에 그들은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에 골인한다.



한편 막내딸인 단아도 결혼 경력이 있다.

그러나 결혼한 날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과거의 유물과 같은 '청상과부'로, 그녀가 일하는 학교의 박물관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졸부 집안의 아들로 카리스마 넘치는 냉혈한,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 주인공 같은(특히 그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당신, --였군.--였나?'말투, 딱 HR스탈이다^^;)

남자 이강석(박시후 분)과

연극으로 시작된 가짜 연애를 하다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혼사장애는 단아의 '서방 잡아먹을 팔자'.

강석의 부모는 단아가 강석까지 잡아먹을까봐 극구 결혼을 반대하지만,

강석이 자초한 위기의 순간에 목숨을 건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 덕분에

강석의 부모는 결국 두 사람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내용들은 어떻게 보면 신선할 것 별로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정도는 이미 이 지점에서도 특이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하사장의 세 자녀가 모두 '재혼'을 한다는 설정.



심지어 이 드라마에서는 하사장조차도 재혼을 한다.

30년 전에 상처한 하사장은 같은 회사의 홍보실장이자 후배인 이영인(나영희 분)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미 두 번 이혼한 경험이 있는 영인은 결혼을 두려워했으나

하사장의 아이를 갖게 되고 낙태를 하려하지만

하사장네 가족의 따뜻한 마음에 감복해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3. 새로운 가문, '패치워크' 가족되기



즉, 이 드라마는 네 커플의 재혼이야기이다.

이들이 각각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드라마 트루기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이 재혼이기 때문에,

이 하사장네 '가문'은 매우 복잡한 가족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

이 드라마만의 독특한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영인은 갑자기 30대의 자식이 셋이나 생겼고, 손자가 된 동동이보다 9살이나 어린 아이를 낳는다.

태영과 결혼한 말순은 태영의 전처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인 동동으로부터

"우리 아빠, 바람기 많은 건 아시고 결혼할 결심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으며 결혼에 골인한다.

종손인 수영은 진아가 불임의 몸이기 때문에 결혼 후 아이를 공개입양한다.



이처럼 이들은 고상하고 족보있는 '장성 하씨 가문'이라고 하기엔 꽤나 '콩가루' 스타일의 가족인 것이다.

족, 순혈주의같은 것은 도무지 지키기 힘든 그런 가족.

그러나 그런 겉으로 보기에 '콩가루'인 이 가족은,

가족간의 연대, 배려, 소통을 통해 그 어느 '혈통 좋은' 가문보다 훌륭하게 '가문'을 이루며 살아간다.



종부인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결혼을 거부하는 진아에게

이 사실을 아는 하회장과 영인, 그리고 수영은 '가문은 꼭 혈통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손을 낳을 수 없다는 사실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진아의 그 '진실함'만으로

종부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며 결혼을 적극 추진한다.

그리고는 아이를 공개입양한다.



한편, 영인(나영희 분)은 '쿨한 새로운 종부상'을 제대로 구현한다.

종부가 되었지만 그녀는 집안일보다는 회사일에서 훨씬 두각을 나타내고,

그러나 집안의 대소사에 대해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정치적 올바름의 감각으로

성별로 등급이 나뉘어져 있던 식사 문화를 세대별로 나눈다거나

집안일에서 남성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등

가문의 고루한 관습을 적당히 개혁하면서도,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노고와 고민을 해결해 주는 등

그 가족 내부의 소통에는 가장 주도적 인물로 역할한다.



또한 그러한 그녀를 가족들은 제대로 이해하고 대우해준다.

아이를 낳은 뒤부터는 집안일을 거들 사람이 부족하니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때

시아버지 하회장과 남편 하사장은 그녀처럼 유능한 사람을 집에 두는 것도 낭비이며,

아이 낳은 뒤 그녀처럼 일 좋아하는 사람은 집에만 있으면 산후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며 반대한다.

그러면서 하회장이 며느리 대신 아이를 돌본다.



태영과 말순은 어른스러운 아홉살 짜리 아들 동동이에게서

매일같이 훈화말씀과 반성문 숙제를 받으며 철이 들어가고,

동동은 의로운 경찰인 새엄마가 자랑스러워서 학교에 가면 자랑하기 바쁘다.

새로 태어난 동생도 누구보다 열심히 보살피며, 자신의 적성이 '신생아 돌보기'임을 자처한다.



이처럼 새롭게 맺어진 가족들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 더 훌륭하게 가족을 이루며 사는 모습은(그것도 한꺼번에 네 커플이나!!!)

기존의 드라마들이 보여주지 않던 미덕이었다.



이들 하씨 집안 '가족되기'의 장애는

대부분 사랑과 결혼을 결심하는 당사자들 내부에서 비롯된 갈등이다.

자신이 부족해서, 상대방에게 너무 미안해서, 차마 마음을 못 연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고민을 딛고 결혼을 결심하면 가족들은 그 결정을 무조건 받아들인다.



보통 드라마의 혼사장애는 당사자들 스스로의 갈등이 아니라, 부모세대의 반대에서 비롯된다.

정말 지긋지긋하지 않은가....머리싸매고 드러누워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

(최근 배우 윤여정이 <여우비>라는 다큐에서 이런 드라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도 그런 시어머니 역할이 나 스스로도 지겨워서 아들에게 그랬어요. 네가 어떤 여자를 데려와도 난 절대로 반대 안하겠다고요.")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시대착오적이기는 커녕, 훨씬 이 시대에 걸맞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결혼이나 가족맺기에서 제일 중요한 의사결정의 주체는 본인들이라는 것.

그렇게 해서 맺어진 새로운 가족은 서로의 개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노력하여 맞춰나간다.

엘리자베트 벡이 말한 '패치워크' 가족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4.판타지라도 어디냐-재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외에도 이 드라마의 미덕은 아주 많다.

하회장 가족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현하는 재벌이다.

그들은 강석이 회사를 인수합병하려 했을때, 회사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직원들의 고용보장 한 가지만을 요구한다.

또한 하회장은 자신의 재산을, 평생을 자신의 집에서 일한 몸종 할머니 삼월에게만 남겨주고

자신의 자녀들, 손자들에게는 한푼의 재산도 상속시키지 않는다.

자신의 나머지 재산은 모두 회사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내 놓는다.



이러한 하회장 집안의 정신에 동화되어 가는

졸부사돈 이천갑(강석의 아버지, 연규진 분)도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

졸부가 되었지만 넝마주이 출신인 탓에 늘 '가문'과 '족보'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졌던 천갑과

식모 출신으로 허영심 많고 무식하긴 해도 정 많고 순수한 천갑의 처 영자는

그들의 눈에 비친 '족보있는 집안', '뼈대 있는 가문'의 대명사인 하회장 일가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면서 돈이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돈을 제대로 쓰는 법을 차츰 깨달아가는 것이다.



강석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과정에서 자살하게 만든 한 재벌가의 아들 문제로 사회에서 지탄을 받게 되자
자신의 재산을 내놓는다는 걸 발표하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아들 강석에게 말하자,

"정말 사회에 환원하고 싶으시면, 익명으로 하세요. 저 구할 생각으로 하지 마시구요."라며 아버지의 생각을 조금 더 교정한다.

천갑은 그러자 "그래, 내가 또 '거래'를 하려 들었구나. 여전히 장삿꾼 기질을 못버렸어."라며 반성한다.






물론 꿈같은 스토리이다. 지나치게 착한 드라마다.

드라마의 막판으로 갈 수록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착해져서 약간은 보기 민망할 지경이었다.

이 세상에 이렇게 욕심없는, 이렇게 착하기만 한 자본가가 있겠는가?

그러나 어차피 꿈을 그리는 게 드라마라면,

재벌이 "내 돈을 거절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라며

내숭9단의 재투성이 아가씨를 선택해

신분상승시켜 준다는 꿈보다는 바람직하지 않은가?



뭐...이 드라마를 과연 재벌들이 봤을까는 의심스럽지만(시청률은 꽤 높아 늘 주말시청률 1~2위를 다퉜다),

봤다면, 분명 자본가들에게 '계몽'이 될만한 드라마임은 분명하다.




5. 하씨 핏줄 아닌 사람들이 성취해 낸 하씨 가문의 영광



그런데...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반전.

이 드라마는 종반부에 한 가지 더 놀라운 진실을 밝힘으로써

또 한번 '가문의 영광'의 새로운 의미를 구성해냈다.



그것은 바로, 하회장(신구 분)이 사실은 하씨 집안의 자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회장의 모친은 하회장의 아버지가 일제 강제징용에 끌려간 사이

동네의 부랑배에게 겁욕을 당해서 하회장을 임신했던 것.

하회장의 부친은 징용때 끌려가서 불임의 몸으로 돌아왔었다.

몸을 더럽힌 종부인 하회장의 모친은 하회장을 낳은 뒤 자살을 했고,

그런 하회장은 부친의 극진한 사랑으로 자라났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어렸을 때 알게 된 하회장은 '자신은 더러운 피이다. 하씨 집안 사람이 아니다'며

집을 나가려 했지만, 그때마다 부친은 하회장을 붙잡아 안으며 말했다고 했다.

'너는 내가 사랑한 아내의 자식이니 내 자식이다. 내 자식이니 하씨 집안 종손이다.'라고.

그 뒤로 자신은 하씨 집안 사람이라는 사실을 더이상 의심하지 않았다고

하회장은 모든 가족을 불러 앉혀놓고 말한다.

(이러한 '비밀'은 작가가 처음 드라마를 구상할때부터 마련해놓았던 장치였다.

그만큼 처음부터 이러한 주제의식은 작가에 의해 면밀히 의도되고 계획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특히 훌륭하다.)



즉,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사실 그 누구도 하씨 집안의 피를 이어받지 않았던 것.

(하회장의 늦둥이 여동생(박현숙 분) 도 물론 업둥이다.)

그들은 그러한 하회장의 말을 엄숙히 듣고난 뒤 충격을 받기는 하지만,

다음날에도 매일 아침 올리던 상식을 올리며 하씨 가문의 조상들에게 예를 다한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매우 독특한 가치관을 가진, 정치적으로 올바른 드라마다.

가문, 가족을 이루는 힘이 이처럼 인간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연대의식이라면,

오늘날의 가족주의가 가진 수많은 병폐들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피로 맺어지지 않아도 훨씬 더 좋은 '가문'으로, '영광'을 누리며 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가 협찬 때문에 거론한다는 혐의는 있음에도

실버타운을 건설해서 그 안에서 노인들이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준 것도 무척 인상깊었다.)




그러니, 이 드라마를 보며 우린 이런 정도의 생각은 기억해 둘 수 있지 않을까?

"가문이란, 그 가문 내부의 사람들을 외부로부터 배타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라
더 많은 외부의 사람들까지 새롭게 연결하기 위한 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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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kim 2009/05/05 23:56

    이렇게 신기하고 신통한 드라마도 다 있군요. 저는 제목만 듣고 영화를 드라마로 만든 것인 줄로만 알았지 뭡니까. 요즘 <사랑해, 울지마>를 보면 속이 터져 가고 있던 저로서는 정말 반가운 드라마입니다. 왜 시어머니들, 아니 어머니 세대들은 다 그렇게 비이성적이고, 전제군주적이며, 이기적인 존재들로 그려지는 것일까요.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지 정말 궁금하고 동의 안 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먼저, 나는 이 드라마의 작가인 홍자매님들의 <태릉선수촌>을
격하게 아꼈던 시청자임을 미리 밝혀둔다.
또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를 연기하는 김명민씨(및 강마에)에 대한 무한한애정과 믿음도
결코 변치 않음도 밝혀둔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현재 <태릉선수촌>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인기와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그럼에도, <태릉선수촌>에 비하면, 참으로 질나쁜 드라마이다.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도 많으나...글을 쓰다, 쓰다, 다 버리고 간략하게만 말하련다.
구구절절 말하려니 내 입만 아파서리.
그런데 왜 굳이 쓰냐고? 또 안쓰기엔 속터지는 내 심정을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리.

 1. 갈등의 요인과 해결의 요소가 모두 '외부'에 있다.

 처음의 '똥덩어리'같은 실력 없는 연주자들을 모아 교향악단을 만들어
그들이 연주에서 성공하는 스토리를 기획한다 했을때
충분히 승산있다고 보았다.
<공포의 외인구단>류의 이야기는 언제나 대중들이 좋아하는 '매력적'인 스토리이니까.
약간의 <노다메 칸타빌레>삘도 났으나, 직접 드라마가 시작하고 보니 표절의 차원으로 보이기보단
역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토리가 또 하나 한국판으로 탄생하는구나 정도로 여길만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항상 좋아하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 열심히 해서 성공한다"는
'재투성이 아가씨의 왕비간택' 스토리 류를 만들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이다.
못난 주인공이 마지막엔 성공하게 되리란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그 과정이 중요하다.
그 과정이 중요하단 건 무엇인가?
매번 그 과정으로 선택된 것이 새로운 소재여야 하는 것이다.
야구로 <공포의 외인구단>을 만들고, 커피로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만들듯
<베토벤 바이러스>는 음악으로 그걸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음악은 거의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처음의 '똥덩어리'라는 설정이 출신, 계급, 직업, 학벌등을 통해서이거나
건강상의 문제, 그리고 (가장 그나마 직접적인) 강마에의 실력이 엉망이라는 평가 등을 통해 드러나지만
막상 이들이 교향악단이 된 이후, 강마에의 가르침(영화 <미션>비디오 보여주며 느낌을 살려보라는)
한번 받더니 그 뒤로는 음악적 성장에는 하나의 걸림돌도 없어보인다.
매번 연주때마다 참 잘도 성공적으로 마치니 말이다.
(특히 13회때에는 갑자기 작은 건우가 바꾼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초견'에서부터
CD틀어놓은 수준으로 하는 코미디까지)

 
좋다...이 부분을, 그들이 그동안 출신, 계급, 직업, 학벌 등 때문에
그들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 그랬던 거라 치고,
그들의 훌륭한 음악적 성장이 생각보다 '스피디'하게 성취된 거라고 넘어가주자.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드라마가 아직도 10 여회나 남아있었다는 데 있다.
이 남은 분량의 드라마를 무슨 '역경'으로 채울 수가 있겠는가?
음악적으로 이들은 아무런 장애나 고뇌가 없는데말이다.(특히 작은 건우는 진짜'천재'다!!!ㅡ.ㅡ;)

 

그래서 동원된 것이 이들의 '성공'적인 연주를 막는 외부적 사건들이다.
연구단원과 정식단원들, 합창단원들 사이의 학벌, 매너 관련 다툼이나,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수재민이 들이닥쳐 시비를 건다거나,
강마에의 진심을 모를 수가 없을 만큼 많은 강마에의 '애정'과 '배려'를 받은 단원들(특히 연구단원)이
새삼스레 강마에의 '말뽄새'를 가지고 오해하고, 격렬히 싸워가며 사과요구를 한다거나,
공금횡령문제로 이들을 내쫓으라는 시장의 종용이나,
두루미를 두고 강마에와 작은건우의 삼각관계,
그리고 강마에와 작은건우의 말도 안되는(이건 뒤에서 더 얘기하자) 자존심대결.
(솔직히 두루미나 김갑용 할아버지의 병도 외부적이라서 그닥 맘엔 안들지만,
이건 처음부터 그들이 가진 음악적 성공에의 결정적 장애라는 점에서 인정해 줄수 있다.)
이런 것들이다.

 

 음악적 완성은 없다.
그들은 강마에가 지휘할때는 초반에 몇번 혼나고 연습좀 하면 어느틈에 완벽한 연주를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강마에가 그들을 성장시키는 스토리도 없다.
강마에는 그들을 음악적 재능 성장을 위해 트레이닝을 하는 일은 거의 없고
그야말로 '정신교육'을 하거나,
그들의 법적, 제도적, 노동자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일에 힘을 써줄 뿐이다.
우리는 그들 단원들이 어떡하다가 똥덩어리에서 금덩어리 연주자가 되었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다.

 

 2. 두루미-강마에-작은건우의 연애담

 이거...정말 썰렁하기 그지없다.
일단, 왜 이들 사이에 연애담이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지만,
앞서 말한 바,  다른 얘기로는 도무지 채울 수 없는 드라마의 분량상
누구나 다 예상 가능한 양념으로서의 로맨스 코드가 드라마에 삽입되었다고 인정하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작은건우가 두루미를 좋아했고, 두루미도 약간 그런듯이 비쳐졌다.
둘이 사귀는 분위기였고, 이를 알게된 강마에는 자꾸 의식적으로 둘을 묶어 말했고,
그러다가 두루미는 이런 강마에의 말을 못견뎌 강마에에게 사랑고백을 했다.
강마에는 두루미에게 말도 안되는 독설을 퍼부어 그녀를 내친다.
그녀가 떠나자 강마에가 그녀를 찾아가 둘이 껴안고 사랑을 확인했다.
교향악단의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강마에도 욕하고 두루미도 흉본다. 끝.

 
싱겁기 그지없는 러브라인이었다.
게다가 역시 너무 일찍 둘이 감정을 확인하면서
그 다음부터 할 일이 없어졌다.
괜히 작은 건우와 강마에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만 생겼을 뿐
강마에와 두루미의 이야기는 할 것이 없다.
둘이 도서관에서 책보다가 두루미가 산책하러가자고 졸라 산책하는 거. 뭐 이런게 다다. 

 
물론 앞으로 두루미가 청력을 잃게 되면서 강마에가 '한건'해주시겠지만,
사실은 '드라마공학'적으로 봤을 때 강마에는 두루미가 청력을 잃게 된 뒤에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
훨씬 더 극적이고 흥미진진해졌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선생님으로서 그가 청력을 잃어가고 있는 제자에 대해 해 줄 수 있는
여러가지 음악적 조언이나, 새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거나, 트레이닝을 시키는 게 더 적절했다.
지금의 이 맥빠지는 상황, 어떡할 것인가?
이미 둘이 서로의 감정을 알고 있는 한,
두루미의 청력상실은 당연스러운 공동과제가 되어버렸다.
두루미가 힘들 때 강마에는 '반드시' 그녀 곁에 있어야 하는 의무를 지니게 되어버렸다.
그럼 두루미의 청력 상실로 만들 수 있는 '갈등'이 별로 없잖을까?

 

 그녀는 그동안에도 자신이 곧 그렇게 될거라는 걸 알았고 각오하고 있었다.
또한 두루미는 너무나도 철썩같이 자신에 대한 강마에의 마음을 믿는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청력을 잃게 되면, 갑자기 충격을 받을 것도 아니고
차분히 준비하고, 강마에와 함께 그러한 장애를 이겨나가게 될 것이다.
뭐, 더 할 얘기가 있겠는가말이다.
두루미와 강마에 사이에선 더 생길 갈등이 없다. 아니, 갈등이 생겨선 안된다.
그러면 우리의 강마에가 병든 애인을 나몰라라 하는 나쁜 '애인'이 되고 마니까.

 

그러지 않으면서, 이 둘 사이에 계속 긴장관계를 만들려면
다음 회 예고에서 나오듯, 뭔가 미리 둘이 다시 틀어지는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강마에가 두루미에게 호통을 치고 그녀의 선물인지 뭔지를 짓밟더라)
그래서 다시 틈이 생긴 뒤에, 오해와 엇갈림을 거듭하다가
귀가 들리지 않게 될 즈음 다시 그의 사랑이 확인되지 않겠는가?
 

억지로 또 독설을 퍼붓고 위악적으로 굴 강마에를 생각만해도 지겹고
(이 드라마에서 도대체 강마에는 얼마나 자주 '위악'을 부렸으며
알고보면 다 사람들을 위해서 했던 위악임에도 사람들은 얼마나 또 바보스럽게 그 위악에 넘어가
그를 매도하고 오해하고 원망해 왔던가!!!)
그런 말도 안되는 오해로 어긋난 채 질질짜게 될 두루미의 청승맞은 표정도 보기 두렵다. 

 

3. 니들이 음악을 알아?

 앞에서 이 드라마가 음악 전문 드라마이기는 애시당초 포기했음은 얘기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인 '에티켓'은 있어야 한다.
이 드라마를 보는 음악하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떠할까?
난 음악에 대해 아는 게 일천한 사람이지만, 이런 내가 봐도 화가 나는데 말이다.
 

그러한 '만행'은 12~13회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뭐, 드라마 전반에서의 작은건우가 절대음감을 가졌고, 천재라는
설정에 대해선 불만이 없다.
(사실 이것도 웃긴 거다. 물론 아주 뛰어난 절대음감, <미제레레>를 듣고 채보하는 실력이란
훌륭한 재능이겠지만 웬만큼 음악 하는-안하는 애들도-애들, 절대음감 숱하게 많이 가졌다.
예전에 무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가에서 봤었다.
예고 음악과 학생들 대부분이 절대음감 가진다. 당연하지. 시창 청음 시험을 보는데...
어느정도는 타고난 애들이 있지만, 훈련으로도 절대음감 가질 수 있다고 나오더라.
그런다고 그들이 다 작은 건우처럼 천재취급받았다면, 우리나라엔 온통 음악천재들이게?)
드라마야 언제나 천재, 영웅을 원하는 법이니까.
오히려 흥미로운 소재였다.
천재가 살리에리 스타일의 지휘자 선생에게서 배워 청출어람을 실현한다는 건.

 

그러나, 그렇다해도 너무하다.
악보 볼 줄 알게 된 거나, 지휘 시작한지 3개월인지 6개월인지밖에 안된 작은 건우가
강마에와 지휘대결이라니.
음악을, 지휘를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또한, 작은 건우의 음악적 지향 자체도 납득하기 힘들다.
악보의 크레센도를 자기 맘대로 피아노로 연주시킨다거나...연주를 최대한 자유롭게 한다니.
지금 재즈나 R&B나 힙합 연주 하는줄 아는가?
(문외한인 내가 생각하기엔)클래식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곡 해석은,
악보에 적힌 작곡가의 음표, 부호 등을 자기 멋대로 바꾸는 게 아니라
그것들에 어떤 '기분'을 싣는가, 어떤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곡이 그렇게 흘러갔다고 해석할 것인가
뭐 그런 정도 아닐까?
그 외에는 말 그대로 '클/래/식'이다.
있는 그대로 충실한 연주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달랑 몇 개월 배운 초짜 지휘자가, 제멋대로 연주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작은건우에게 강마에가 호통을 치는 것은 매우 정당했다.
따라서 작은 건우가, 두루미 사건때문이건, '겉멋'때문이건 자유로운 연주 운운했던 것은 '틀렸'고,
그에게 호통을 치는 강마에는 '맞다'는 것을 그 이후 스토리가 보여주어야 했다.
즉, 작은건우의 방식은 음악계에게서 혹평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평론가 등이 그 음악을 신선하다며 당장에 인정해주는 그 '닭살 쫙 끼치는' 장면.
 

예고로 봐서는 앞으로는 더더욱 제대로 두 건우가 부딪힐 듯 보인다.
ㅎㅎ참....쉽다.
절대음감좀 가졌다고 당장에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와 동급이 되다니.
음악하는 수많은 분들, 힘좀 빠지시겠다. 

 

천재가 등장하는 드라마, 물론 재밌다.
그러나 사람들은 천재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천재이면 재미없어한다.
천재인데 천재인줄 모르다가 하나씩 발견해나가거나 성장해 나가서 그 천재성을 완성해야
재미가 생기는 것이다.

  

<대장금>의 장금이라고 천재가 아닌가?
그녀는 절대음감대신 절대 미각을 가졌었다.
그런다고 그녀가 하루 아침에 한상궁보다 요리를 잘했다면?
생각시 시절부터 한상궁과 요리대결을 펼쳤다면?
그럼 그 드라마 그런 인기, 시청률, 호평 절대 못받는다.
절대미각은 가졌지만, 아직 음식의 본질, 정도, 정신 등을 몰랐고, 미숙해서
한상궁이라는, 장금이보다 천재성은 떨어지나 정신적으로 훨씬 훌륭한 스승의 도움으로
천재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제멋대로' 할거면서,
작은건우는 도대체 왜, 강마에 밑에 있냐말이다.
그럴 거면 독립하면 되고,
강마에에게 와서 제자로 삼아달라고 했으면
제대로 뭔가 배우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이 드라마는 그 점에서 한참 스토리의 방향을 잘못 짚었다.
 

(강마에의 왕팬인 친구와 토론끝에 내린 결론인데)
이 드라마가 제대로 재미있게 흘러가려면,
지금, 시점에서 생겼어야 하는 강마에와 작은 건우 사이의 갈등은
강마에를 무조건 <모방>만 하는 작은 건우의 지휘 스타일에
강마에가 호통을 치고 내쫓고 해가면서 "네 스타일을 찾아"라고 해야 한다.
몇개월 밖에 안된 지휘자가 세계적 마에스트로를 스승으로 두었다면,
게다가 그가 자신이 좋아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까지 했다면
그가 가지게 되는 심리는 <모방욕망>인 것이 정상적 아닌가?
자기를 잃고, 그저 강마에의 지휘를 그대로 따라하는 데에서
강마에가 그를 깨우쳐주고, 그걸 극복함으로써
강마에보다 한단계 뛰어난 지휘자가 될 발판을 마련했어야
이야기는 훨씬 더 재미있어진다.

 
 ......

간단히 쓰겠다 마음먹고 마음먹었는데,
또 이렇게 길어지고야...그만 줄여야 겠다.
음...하튼, 이 세 가지가 내가 생각하는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작가와 제작진들의 반성과 점검이 필요하다.
 

특히 세번째 문제의 경우
그들이, 단지, 강마에의 팬이기때문에 작은건우에게 강마에가 지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것은 아님을
제작진들은 좀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난주 <베토벤 바이러스>를 본뒤에 분개하던 수많은 팬들의 원성을 잦아들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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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달님 2008/10/29 01:06

    너무나 잘 지적 주셨습니다. 전 음악 전공자입니다. 베바 포스터 보는 순간 저걸 보면 내가 미치겠구나.....그래서 안봅니다. 아니 볼 수가 없습니다. 내용은 안봐서 모르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소리 지나가는 장면이 다 어이없습니다. 여주의 악기들은 엉성한 폼,어쩌다 보게 된 서브 남주의 지휘모습, 김명민씨 너무 좋아하지만, 이번은 흉내를 내고있다는 느낌, 너무 역력합니다. 작가가 너무나 음악에 대해 공부를 안하셨습니다. 절대음감, 정말 너무나 많습니다. 정말 모르십니다.

    • coolya 2008/10/29 08:48

      아, 그렇군요...역시, 음악전공자들에게는 '상처'가 되는 드라마군요. 참 안타깝습니다. 이 작가님들이 <태릉선수촌>때에는 꽤 열심히 자료조사해서 드라마쓴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말이죠.

  2. 행복한 기억 2008/10/30 01:20

    님, 이런 주옥같은 글을 이제서 보다니...퍼가도 될까요?
    마이클럽과 텔존에 옮겨도 될까요? 아님 주소만 올릴까요?
    구구절절절절절절 다 동감입니다. 아고 속시원합니다.

    • BlogIcon coolya 2008/10/30 09:01

      감사합니다.역시 베바 보면서 속터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저 혼자만은 아닌가봐요. 퍼가셔도 되는데요, 기왕이면 링크쪽이 감사하겄슴미당..^^

  3. 이채린 2008/10/30 22:57

    전 큰건대 작건이 제일 어이가 없더라구요.
    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솔직히말해서 30년과 1년도 안된 초짜가 대결이 됩니까?
    자유로운 스타일이요?
    네,그거 좋죠.너무 엄격하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크레셴도와 피아노의 차이는 좀 심하잖아요!
    정말 뭘 모르는 것 같아요.

    • BlogIcon coolya 2008/11/03 08:48

      이제 아무래도 음악적인 면은 포기하고 봐야할라나 봅니다...^^;;

  4. 아무나 2008/10/31 13:59

    구구절절 제대로 말씀하십니다.
    관점이 다른 부분은 있어도 제대로 보신 것 같습니다.
    엠비시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이런 비평조차도 악플로 매도 당하더군요.
    내가 좋으면 남도 좋아야한다는 건지.
    "나는 이어이러한 관점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부분은 이렇게 본다"는 것이 그렇게 이해하기 쉽지 않은가봅니다.
    사족하나
    모차르트가 아무리 천재라해도 어릴 때 부터 아버지(이미 훌륭한 음악가였죠)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면 그 나이에 그만한 성취를 도저히 이룰 수 없었겠지요. 그런데 작은 건우는 천재성(=가능성)만 있다는 건데 배우는 과정도 없이 어느새 거장 행세를 하고 남들도 그러려니 하는건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군요. 음감이 있는거 하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거 하고는 전혀 다른이야기인데 말이죠. (저는 음악 하는사람 아닌데도 그럴 것 같습니다)

    • BlogIcon coolya 2008/11/03 08:50

      그렇던가요?(제가 엠비씨에 글을 올린적은 없는데-)하여간 뭐..관점이야 다 다를 수 있는거죠.^^다만 제작진이 그 다양한 목소리 속에서 다양한 진실을 간파할 수 있어야할텐데요...자뻑에 그치지 말고.

2007/06/27 - [Mad for Drama/한국 드라마] - 흥행코드 읽기와 스토리텔링-아류작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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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겨울연가> 탓이다"

현재 한국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들을 망쳐놓은 것은,
배용준을, 문화부장관 후보의 갑절이상 부자로 만들어주고
'한류'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겨울연가>이다.

<겨울연가>가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얼마나 잘, 똑부러지게 따르고 있는지는
굳이 또 얘기 안해도 될 것이다.
분명 2002년에 이 드라마는
현재의 '일드'열풍을 일으키고 있듯 우리보다 한 수 위인 일본 드라마시장에까지 먹힐 수 있는
멜로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모범'사례였다.


그러나 '최대치'란, 다시 말해 '정점'을 찍고,
이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대단한 <겨울연가>는 사실,
<가을동화>의 신선함들을 훨씬 세련되게 포장한 것으로,
이미 <가을동화>의 여러 '상투적' 설정들이 한번 '복제'된 것이었다.
그래서 <겨울연가>는 <가을동화>만큼 한국땅에선 큰 반향을 못일으켰었다.
이것은 4계절 시리즈를 만든 윤석호 감독의
이후 두 작품, <여름향기>, <봄의왈츠>가
모두 '썰렁하게' 막을 내린 데에서 분명해졌다.


반면 일본에서는 <겨울연가>가 먼저 알려졌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보다 신선하게, 그러면서도 세련되게 첫선을 보일 수 있었다.
그 이후 여러 편의 '겨울연가류'의 드라마들이
일본에 우수수 알려지게 되고, 다 그럭저럭 좋은 반응을 일으키며
한류드라마를 형성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에서도 한국드라마의 그런 '전형'적 설정
-출생의 비밀, 불치병, 첫사랑, 기억상실증, 재벌2세,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등-은
진부함, 천편일률적임으로 비판받고 있다.
그러니 이미 <겨울연가>에서도 이 진부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한국에서야 오죽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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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한국의 드라마는 '멜로'를 찍기로 하면
일단 '겨울연가류'를 제일 먼저 참고하고 있는 듯 했다.
최근 나온 한국의 '멜로코드' 드라마들 몇개를 살펴보자.
<못된사랑>, <사랑에 미치다>, <푸른물고기>.
이 세 작품은 2007년~2008년 초에 방영된 드라마로
이미연, 고소영, 이요원, 권상우, 박정철, 윤계상 등
우리나라에서 '초특급 스타 배우'로 불릴 만한
그것도 아주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돌아와 제대로 몸값 비싼 티를 낸
배우들이 출연한 '야심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이 드라마들은 모두 '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사랑에 미치다),
옛 남자의 처남이자 재벌2세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첼리스트(못된사랑),
부모의 반대로 헤어진 뒤 첫사랑을 기억 못하는 재벌2세 여자가
첫사랑을 다시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푸른물고기),
일단 설정은 매우 '극적'이지만, 그 다음이 없다.


저 설정에서 더 나올 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남자란 사실을 모르는 동안,
자신의 매형과 여자의 관계를 눈치 못채는 동안,
첫사랑이란 사실을 기억못하는 동안,
서로 바보짓 해 가며 사랑놀음, 감정싸움, 삼각 사각관계의 연애를 하는 것 뿐이다.
그러다가 '진실'이 밝혀진 뒤에는
그것때문에 괴로워하는 단계를 지리멸렬하게 그리다가
결국엔 사랑의 승리(?) 나부랭이로 끝을 맺게 된다.
더구나 그렇게도 극적이고 대단한 사랑얘기이지만,
정작 사랑에 관한 본질은 아무것도 통찰하지 못한 채
막연한 낭만적 사랑의 판타지를 피상적으로 그리는 데 그친다.


이런 껍데기밖에 없는 '멜로'는
그들이 그렇게도 '숭배'하는 '사랑', 그 하나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했으며
세상엔 사랑 외엔 아무것도 없는 듯 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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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위대하다.
사랑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연애는 자기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언제나 인간의 최고의 관심사다.
그러나 사랑은 스카이라운지에서 와인을 마시고,
놀이공원에서 솜사탕을 들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경치좋은 곳에서 드라이브를 즐기고,
아이스링크를 통째로 빌려 스케이트를 즐기고,
바닷가에서 '나 잡아 봐라'를 외치는 것으로만 설명되어선 안된다.

사랑은 서로 다른 두 명(이상)의 사람들이 만나
많은 차이들을 깨달아가고,
그것을 사랑이라는 더 큰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율해가는 과정이며,
드라마가 보여주는 '소비'적 데이트와는 전혀 무관하게도
의외의 장소, 상황, 행동,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놀라운 경험들이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일 거라 믿어지는) 감동의 이벤트가 주는 행복은
패밀리레스토랑의 음식 사진과 같은, 미니홈피 전시용 사랑일 뿐이다.
진짜 사랑은 소비되는 물질 속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연인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 사이의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 욕망, 상황, 상처 같은 것들이
'대체로' 행복한 어떤 상태로 고양되고 재구성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

진정 '사랑밖엔 난 몰라' 드라마가 되려면
그런 '진짜 사랑' 얘기를 '독하게', '아프게'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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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제대로 보여주는 훌륭한 드라마들도 물론 그동안 여러 편 있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들을 몇개 꼽으라면,
<네멋대로 해라>, <거짓말>, <거침없는 사랑>,
<발리에서 생긴 일>, <굿바이 솔로>, <연애시대>같은 것들이다.
이 드라마들은, '진부'하다 치부되는 '삼각관계'나, '불륜'이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불치병'을
그 안에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결코 진부하지 않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자주 남들의 기준에 의해 통속화되지만,
이런 드라마들은 그런 자신을 다독이고 되돌아보게 하는, 참 곱씹을 수록 맛난 드라마들이다.
이 드라마들은 지금 사랑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드라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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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드라마들이 그래서 새롭게 사랑을 성찰할 기회를 준다면,
<못된 사랑>, <푸른물고기>, <사랑에 미치다>는
'통속화'를 부추기는 '남들의 기준'을 공고화한다.
현실에는 부재하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
실존하는 다양한 사랑들에게 열등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 열등감의 실체는 그들의 '위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며
그저 그들의 '위대한 소비', '위대한 고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망하길 잘 했다.
대중들은 그렇게도 똑똑하다.
대중들은 앞으로도 철저하게, 이런 드라마들을 응징할 것이다.
이런 드라마들은 절대로 다신 나와선 안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대략 세 가지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지독한 사랑의 성찰'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되는 길이다.
이것은 보통의 '내공'이 있는 제작진이 아니면 쉽지 않겠지만
가끔 한 편씩 세상에 나와줘서, 이 세상의 힘겨워하는 연인들에게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두번째는, '말랑말랑' '유쾌상쾌' 로맨틱 코메디로 승부하는 것이다.
비극적 멜로를 저따위 피상적 사랑얘기로 다루기 위해
기억상실증, 불치병, 출생의 비밀, 신분 차이 같은 걸 끌어들이지 말고
차라리 가벼운 사랑은 가벼운 사랑답게, 유들유들한 코메디와 곁들여 내놓는 것이다.
작년의 <커피프린스1호점>이나
몇년전 '겨울연가' 짝퉁 <여름향기>가 죽쑤고 있을 때
의외의 선전을 거둔 <옥탑방 고양이>처럼,
평범한 청춘들의 평범한 사랑 얘기를 '즐겁게' 그리는 것이다.


세번째는, '사랑밖에도 많이 알아'가 되는 것.
이것은 전반적인 한국 드라마가 가야할 방향과도 관계가 있다.
현재의 '미드', '일드'에 열광하는 드라마마니아들의 눈높이에
'사랑밖엔 난 몰라' 드라마는 절대 충족감을 안겨줄 수 없다.
사랑은, 분명 인간들의 최고의 관심사지만, 사랑 말고도 세상엔 흥미진진한 것들이 무척 많다.

현재의 사극열풍이나 의학드라마들의 연이은 성공은
이런 '고급' 드라마시청자들이 드라마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물론 긴 호흡으로 방영되는 동안 주인공들이 '행복한 짝짓기'를 하는 과정에
여전히 관심이 많다.
남의 연애사는 일상 속의 최고의 활력소니까.
그러나 매일같이 '답이 뻔한' 연애문제로 징징대는 친구의 상담역할은 참으로 못할 노릇이듯,
사랑, 연애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점령하는 드라마는 대중을 지치게 한다.

열심히 자기 삶을 살고,
그 속에서도 충분한 희노애락을 구성하면서
그 안에 사랑이 조금 더 희/노/애/락을 심화시키는 이야기.
그런 드라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이제 리조트의 이사나, 재벌 2세 실장님, 언제 작업하는 지 모르겠는 예술가 대신
수많은 진짜 직업인들이, 진짜 '꾼'들이,진짜 생활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일에
앞으로의 드라마들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런 점은 앞서 말한 첫번째, 두번째 대안들도
어느 정도는 지켜나가야 할 덕목이다.
<네멋대로 해라>에도 경이와 복수의 사랑에 관한 통찰 곁에는
언더음악가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스턴트맨의 성장스토리가 탄탄하게 들어있었다.
로맨틱코메디로서도 이 세번째의 특성을 잘 보여준 것이
<커피프린스1호점>의 '바리스타'라는 직업이고
<내이름은 김삼순>의 '파티쉐'가 아니던가?


각설-
원래, 이 글을 쓸 마음을 먹게 만든 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그저께, 드디어 <이산>(49회)에서
송연이가 정조에 대해, 대수가 송연이에 대해
사랑을 인정하고 밝혔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 하나가지고 또 이렇게 길게 주절거리다니...나도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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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실은 할 수만 있다면 (후궁이 되어서) 그분 곁에서 있어드리고 싶어."
"이제 전하 뒤에서 지켜보는 일 그만하면 안되겠니? 난 안돼?"
라는 송연과 대수의 '엇갈린 사랑'에 대한 고백의 씬은
아주 짧게, 스쳐가듯 등장했다.
둘 다 처음으로 하는 고백이었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시작한 지 6개월만이며, 극중에서 그들이 만난 지 십수년 만이다.
그동안 정조와 송연은 궐에서 마주치면 몇 마디의 농담을 주고받고
상대방에게만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최고로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힘들때 '누구보다 당신을 믿는다'는 말을 서로에게 건네는 것만으로
사랑을 표현해 왔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현재 월화 드라마의 최고 강자이며,
아예 다른 방송국에서도 이 드라마 종영때까지는
섣부른 '도전'을 할 엄두를 안낼 만큼
쉽게 꺾이지 않을 인기를 얻고 있다.
결국에 송연과 정조의 사랑 얘기는 앞으로 점점 비중이 늘어날테지만
여전히 더 궁금한 것은 둘의 사랑보다 정조의 노론 세력들과의 '파워게임'쪽이다.
사랑은 그 속에서 '순리대로' 감정을 키워나가
주인공들의 사랑 외의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한 부분이어도
충분히, 이 드라마는 매혹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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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일드광팬 2008/03/07 00:35

    오 쿨야님 글 항상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연애시대'는 참 재미있게 봤는데, 요즘 드라마는 정말 듣보잡이에요.
    일드 중 쿨야님이 말한 '사랑'이랑 잘 매치되는 것으로 '결혼못하는 남자'라는 드라마 강추입니다.
    일드의 세계에도 진출해서 많은 좋은 평 올려주시옵서서~

  2. BlogIcon coolya 2008/03/07 08:29

    일드광팬님, 감샤함미당~사실 제가 일드 미드의 세계에는 아직 제대로 입문을 못해서, 어떤 드라마를 봐야 할지 감이 없었답니다. 님의 추천 덕분에 또 몰입할 드라마가 하나 생겼네요~^^'결혼못하는남자' 꼭 보겠습니당~보고 난 뒤 이곳에서 또 얘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007/10/25 - [Mad for Drama/한국 드라마] - 왕의 '친구'들-<왕과 나>, <이산>
지난번 글에 썼듯,
월~화 밤 10시는 내게 늘 선택의 순간이었다.
먼저 방영을 시작한 <왕과 나>의 매력에 한참 푹 빠져 있던 터에
<이산>이라는 드라마를 재방송 등으로 뒤늦게 몇번 보면서
둘 다 포기하기 쉽지 않은 매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왕과 나>는 녹화로, <이산>은 본방으로 보는 쪽을 택했다.
시청률 측면에서야 <왕과 나>쪽이 손해보는 일이었지만,
내게있어 이 선택은 <왕과 나>를 우위에 두겠다는 의지였다.
즉, 돌발 상황이 생겨 10시에 TV앞에 앉지 못하더라도
<왕과 나> 만은 꼭 챙겨 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주 부터 <이산>을 예약녹화하는 것으로 급선회했다.
그 몇 주전부터 약간 흔들리다가...결국엔 <이산>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난 뒤에도
본방조차 <이산>을 보고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이것은 물론 나라는 한 명의 시청자의 의견이기도 하겠지만,
내 판단에 의하면 아마 앞으로도 <이산>의 시청률은 차츰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즉 나 뿐 아니라 대중들은 <이산>쪽을 더 많이 선호하게 될 것이다.

왜, <이산>인가?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개인적 '감상'의 수준을 넘어서
드라마에 매혹되는 '법칙'에 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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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과 나>의 초반

<왕과 나>의 초반은 참 매력적이었다.
그때는 두 부류의 인물 갈등 구조가 생성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아직 작은 크기이지만 아역들,
자을산군(훗날 성종)-윤소화(훗날 폐비 윤씨)-김천동(훗날 김처선)
이 어린 세대들의 계급을 뛰어넘은 우정과 사랑, 삼각관계,
그리고 이들이 앞으로 보여줄 활약에 대한 희망이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소설 <소나기>를 보는 듯한
순수함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감정선의 묘사가
꽤나 흥미진진한 볼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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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치겸(전광렬 분)-예종 사이의 대립을 둘러싼
궁 내부의 갈등이었다.
<왕과 나> 초반의 갈등은 이쪽을 통해 더 첨예하게 전개된다.
수렴청정을 받는 처지이나 국가를 개혁하기 위해
제일먼저 내시부에 손을 댄 예종의 개혁방침은
판내시부사인 조치겸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된 정책은 내시들의 혼인을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내시들의 부정과 비리가, 그들이 '가족'을 만들기 때문에
사리사욕을 갖게 되어 생기는 것이라고 판단한 예종은
내시들의 혼인을 금지하는 명을 내린다.

그러나 내시의 수장인 조치겸은 "내가 내시로 죽을지언정 고자로는 살지 않겠다"며
파무(내시부 파업)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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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들은 모두들 자신의 육근단지(내시들의 잘린 양물을 보관하는 단지)를 들고
머리를 풀고 나와 국왕에게 금혼령을 거두어달라는 시위를 하게된다.
그리고 모든 내시부 업무를 중단하였다.


이 대목은 <왕과 나>에 매료되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었다.

<대장금>을 보면서 수랏간 나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들이 '프로페셔널' 요리사가 되기위해
얼마나 혹독한 트레이닝의 과정을 거치는지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나라와 궁 내에서 아주 한미한 위치임에도
나름의 자부심을 갖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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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궁녀라는 존재들의 힘을 보게 되었었다.
궁에 방문한 청나라 사신에게 겁탈을 당하여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다시 궁녀가 될 때까지 길렀던
한 상궁의 에피소드가 그 대표적 예였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남성 관료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고 묻자
"그게 궁녀들입니다."라고 대답하던 모습, 잊혀지질 않는다.

궁녀들은 궁이라는 큰 집안의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일들을 모두 하고 있다.
그들이 없으면 왕은 밥도 못먹고, 옷도 못입고, 자식도 못낳고 기르고, 잠도 못잘 것이다.
그런 궁녀들, 궁에 '예속'되어 있지만,
궁을 모두 '관리'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커다란 궁 안에서 자신들끼리 연대하면
궁녀가 아이를 몰래 낳을 수도, 그 낳은 아이를 몰래 기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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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대장금>을 볼 때에도 내시에 대해선 잘 몰랐다.
<대장금>에서 내시로 등장하는 '상선'어른은
가끔 생기는 궁녀, 상궁들 사이의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정도와
왕에게 방문자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것 정도밖에는 하는 일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왕과 나>에서 내시들이 파무를 한 뒤,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며칠째 내시들이 일을 안하니, 궐 안이 온통 먼지와 오물투성이로 변했고
왕명을 전달해 신하들을 소집하는 일도 어려워진 것이다.


궁녀와 마찬가지로 내시들 또한
궐 안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들이라는 걸,
<왕과 나>는 이 사건을 통해 제대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왕과 내시 사이의 갈등과 화합의 문제가
하나의 드라마 소재로서 가질 수 있는 가치를 입증해주었다.


그래서 좋았다.
늘 그렇듯, 역사 속에 감춰진 존재들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일은
역사드라마를 보는 최고의 재미이다.


더구나 전광렬과 전인화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2. 그러나...아역의 성장 이후.

<왕과 나>는 많은 비판들에 시달린다.
어릴 적 성종, 윤씨, 처선의 역할을 했던 아역배우들에 대한
지나친 사랑과 관심, 기대가
성장후의 모습으로 등장한 세 배우들에 의해 충족되지 않은 탓이다.
외모의 문제라든가 연기력의 문제...이런것들이 일차적이었다.
구혜선이 써클렌즈를 꼈네, 성종 혼자 일찍부터 난 덥수룩한 수염..
이런것들로 불만을 말하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것들은 드라마의 시청률에 크게 문제가 안된다.
연기력은 차츰 나아질 수 있고, 외모는 시간이 지나면 점점 아역들에 대한 잔상이 지워지면서
다시 적응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이들이 등장하고도 나는 한동안 <왕과 나>에 대한 충성도를 유지했었다.
차츰 나아질 것이라고, 아역과 비교해가며 그들을 단죄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그들이 등장하고 나서부터 더 문제가 된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의 행동방식이 '매력'이 없다는 것.
조치겸과 한명회, 인수대비 사이에 생긴 대립각이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갈등고리를 만들어가는 반면에,
성종, 윤씨, 처선의 역할은 어릴 적보다도 미미하고 무기력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조치겸의 양자가 되어 내시부 최고의 권력을 갖고자 했던 야심가 내시인
정한수(안재모 분)가 처선에게 조치겸 양자의 자리를 빼앗긴 뒤
그와 적대세력이 되어 조치겸의 치부 비리내용을
인수대비(전인화 분)와 한명회 측에게 내놓는 대목이었다.

이 일로, 조치겸이 관리하고 있던
비자금 관리처가 발각되게 되는데
이때 양부 조치겸의 심부름으로 이 관리처에 들렀던 김처선(오만석 분)이
인수대비 앞에 잡혀오게 된다.
누가 시킨 일인지, 그게 무엇하는 곳인지를 추궁당하는 처선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양부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
그래서 피터지게 맞고 감옥에 갇힌다.

조치겸이 부정축재 의혹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성종은
어머니와 할머니 즉, 인수대비와 정희왕후(양미경 분)를 찾아가
조치겸이 그런 일을 했을 리 없다고 말하지만 별무 소득이 없다.


또한 처선이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씨는
처선이 있는 감옥에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가슴아파한다.
그리고는 성종을 찾아가 처선이 그랬을 리 없다고 도와달라고 하지만
성종은 내가 아직 수렴청정을 받는 중이라 힘이 없다고 말할 뿐이다.
그날 괜히 성종을 찾아갔다가 인수대비와 맞닥뜨려
그렇잖아도 윤씨를 마땅치 않아 하는 데다
처선과 윤씨의 관계를 의심하는 인수대비에게 찍힌다.


정리하자면,
조치겸과 인수대비를 둘러싼 갈등에서

1. 처선-맞고 감옥에 갇혀 있다.
2. 윤씨-처선을 찾아가 울고 성종에게 말해본다.(소용 없다.)
3. 성종-어머니와 할머니를 찾아가 말해본다.(소용없다.)

와 같은 일밖에 안하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그러는 동안,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을까?

조치겸을 몰아내려는 것은 한명회 쪽이다.
한명회는 조치겸이 자신의 권세를 약화시키기 위해
윤씨 같은 후궁을 들이는 일에 앞장섰다는 것에 분노하여
조치겸과 대립하게 된 것이다.


또한 조치겸의 양자가 되고자 했으나
처선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 정한수도 시기심에
조치겸과 대립하게 되었다.

인수대비 역시 원칙주의자로서
마땅찮은 윤씨를 통해 성종의 마음이 어지럽혀지는 것도
한명회의 딸인 중전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도 못마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주도하고 있는 조치겸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치겸은 한명회를 찾아가
예전에 예종을 독살하고 성종을 새 군주로 추대한 뒤
한명회에게 성종의 부원군 자리를 차지하게 해주는 대신
내시부에서 쫓겨난 조치겸의 뒤를 봐주기로 한 약정서를 근거로
한명회를 협박한다.
즉 예종을 독살하는 일에 한명회와 조치겸이 공모를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증서가 조치겸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명회는 그동안 정한수를 통해
이 문서를 훔쳐오게 했기 때문에 자신을 꿀릴 것이 없다며 발뺌한다.


여기까지 보면 조치겸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의 조치겸의 활약상이 또한번 빛나주셨다.
분명 한명회가 빼돌린 그 문서가
다시 조치겸의 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조치겸은 한명회에게 "대감이 가져간 것은 제가 모사해 놓은 가짜입니다."
라고말한다.

그리고는 한 괘짝 가득 똑같은 문서들이 들어있는 함을 준다.
여기에도 그 문서들이 있다고.
물론 집에도 얼마든지 있다고.

한명회는 좌절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진짜'는 어디에도 없다.
조치겸은 이미 그 문서를 받자 마자 원본은 태워없애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함 가득 있는 모든 문서는 가짜이자 원본이 된다.


아...이 얼마나 멋진가?


이렇게 하여 한명회 문제는 수습했고,
부정축재는, 사실상 왕실의 재정이 어려워
왕실 품위유지를 위해 고리대업을 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조치겸은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처선도 풀려나고
성종과 윤씨는 마냥 기뻐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처럼, <왕과 나>에서는 이제 다 컸으니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주셔야 할
성종-윤씨-처선이 여전히 '어른'들의 손에 놀아나고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들은 맨날 울고 짜고 나무 뒤에서 훔쳐보고 쓰러진 걸 업고 가고...
뭐 그런 짓만 한다.
그리하여 조치겸-인수대비를 둘러싼 긴장은 여전히 흥미롭지만
극의 반은 지리하기 짝이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니...지금 2주째 안보기 시작해서 모르겠지만,
<왕과 나>가 살아나려면
그들 세 사람의 역할이 좀더 능동적이고 유효성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앞으로 얼마나 잘 만들어내는가...에 앞으로 <왕과 나>의 성패가 달려있다.


<왕과 나>는 예전 <여인천하> 팀이 만든 드라마이다.
<여인천하>때의 중전과 후궁들을 둘러싼 팽팽한 권력다툼 이야기는
보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그 힘이 지금 기성층인 인수대비, 전광렬 등을 통해 다시 재현되고 있다면
이에 반해 젊은층의 삼인방의 이야기는 너무 수동적이어서 힘이 없다.
그들은 맨날 사랑이라는 감정을 빌미로 나약하고 무기력한 눈물만 흘릴 뿐이다.
그들까지도 이 권력다툼 속에서 제대로 역할을 해 줄때에야
<왕과 나>는 계속 시청자들을 매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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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coolya 2007/11/09 17:23

    쓰다보니 길어져서...<이산>의 매력은 다음 번에 따로..^^

  2. 맞아요. 저도 왕과나 보다가 너무 유치하고 지지부진해서..
    게다가 님은 참을 만 하다던 그 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 봐주기 괴로워서
    이산으로 선회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제 "TV, 대세인 '사극'과 '무한도전'을 따르라?"(스타뉴스10.24)라는
기사가 떴을만큼, 요즘 '사극'이 대세이다.
현재 공중파에서 방영되고 있는 사극이
<왕과 나>, <이산>, <대조영>, <태왕사신기>, <사육신> 등 여러편일 뿐 아니라,
또 그 사극들이 대중들에게 엄청난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친 '드라마홀릭'자로서 드라마의 트렌드를 열심히 쫓다보면
원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사극도 어떤 타이밍에는 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사극은 참 신기하다.
이미 어떤 줄거리로 흘러갈 지가 '뻔한' 정도가 아니라 '명백한' 이야기임에도
왜 사람들은 또 사극을 보고, 또 보는 것일까?
사극이 대세인 이 시절에 그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곤 하는데
참 놀랍고도 오묘하고 답이 쉽지 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최근의 사극을 보면, 왜 사극이 새삼 대중들을 매혹하는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역사연구에서도 미시적 연구가 '대세'이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의 사극은 이 '미시사'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사료에는 거의 기록되지 않은 어떤 인물,
거시사의 관점에서는 보잘것 없어보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들의 빈틈이 차곡차곡 채워져가고 있는 것.
<대장금>에서 시작된 '궁녀'라는 '한미한' 존재들의 삶부터
<왕과 나>의 '내시', <이산>의 '도화서 다모' 등, 그동안은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그런 인물들이 새삼 역사물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데에서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고, 역사를 다시 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 대중들 자신처럼, 또 시대가 흘러 역사 속에는 이름조차 남지 못할 그런 존재들에게도
존재의 가치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자존감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월-화요일이면 <이산>과 <왕과 나> 사이에서
어떤 드라마를 볼 것인가를 가지고 늘 고민하게 되는데,
(그러나 곧 <이산>쪽으로 마음을 정착하게 될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자세히 얘기할 것이다.)
이 두 드라마의 재미가 바로 그런 점에 있다.

그런데 두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성종, 정조라는 우리가 국사공부할때면 꼭 외우게 되는
조선조의 왕들이 하찮은 신분의 천동이, 송연이, 대수를
"나의 동무들이오"라고 말하는 대목에 있다.
철저한 계급신분 사회에서
가장 높은 신분의 왕과 '친구'가 되는 내시, 다모, 양민이 존재했다는 것,
그들이 감히 왕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함께 모험을 즐기고, 손을 붙잡고 위험을 헤쳐간다는 이야기,그리고 결국 그들의 '우정'이 왕에게 힘을 실어주고, 세상을 손에 얻게 만들어 준다는 스토리는
현재 우리 사회와 대중이 원하는 영웅에 대한 '로망'을 자극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영웅을 원한다.
그러나 나와 전혀 상관없는 영웅이 아니라, 나로 인해 바뀌는, 나와 함께 영웅이 되는
그런 영웅을 원한다.
이것은 곧 자신이 영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의 변형태이다.
내가 영웅이 되고 싶지만 나의 능력과 운명은 거기까진 미치지 못할것 같을 때
나의 작은 힘이 '능력과 운명'을 타고난 영웅에게 개입되어 큰 힘으로 변화하는 것,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싶어진 것이 지금 대중, 민중들의 마음이다.

인터넷이 그러한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실현시켜 준 탓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사소하지만 꾸준하고 끈기있는 결집이
자신이 영웅이 되진 못해도 누군가를 자신의 힘으로 영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또는 잘못된 영웅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직접 체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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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와 <이산>에서 아역배우들이 큰 인기를 끄는 것에
그들의 '성인' 못지 않은 연기력 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 계급차이가 분명해 진 시점보다 훨씬
그들 사이의 그러한 교호작용이 쉽고 분명하게 일어나는 이야기전개에도 있지 않을까?
양민, 천민은 왕과의 연대보다
아비를 잃은 어린 세손이나 사가에 있던 왕족과의 연대가 여러모로 쉽다.
그들이 '어린 아이들', '동무들'로서 작은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 사이의 연대가 곧 앞으로의 '왕'이라는 영웅을 메이킹하는 데에 작동할 것이란 생각을 하면
사람들은 무한한 그 가능성에 흥미와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대선때가 되면 사극이 꼭 대선의 구도를 유비한다며 거론되곤 했다.
<용의 눈물>때 김영삼-이회창의 구도가, <태조왕건>이 김대중 정부의 탄생을,
<대장금>은 노무현 정부의 혼란을 예측하고 비유적으로 암시하곤 했다.
이번에도 곧 대선을 앞에두고 역사드라마들이 난무하는 현상은
사회정치적 측면에서도 눈여겨 볼 만하다.


각 대선후보들은 스스로가 난세의 '영웅'이라며
민심에 호소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난, 양극화, 사회 부조리를
자신만이 해결해 줄수 있다고 소리높이고 있다.

그런데 묻고 싶다.
그들 중 우리와 함께 영웅이 되고자 하는 후보는 누구일까?
늘 하던대로, 어디서들 그렇게 똑같은 '똥색'의 점퍼를 구하는지 입고서는
우군우군 사람들을 뒤에 몰고 시장을 돌면서 생선 꼬리를 잡아 들고
"참 싱싱합니다! 우리 재래시장을 살려야 하는데.."같은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
동대문 시장에 가서 괜히 사람들 장사하는 데 방해하며
지게짐을 들어보는 "쇼"를 하는 그런 것 말고,
누가 우리를 진심으로 '동무'로 여겨 함께 영웅이 되고자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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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든 허구이든,
이들 드라마에서의 정조와 성종은 그들이 왕이 되기 위해
양민들과 진심으로 동무가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왕 '성종'이 아닌 '자을산군'은
자신의 집에 굿을 하러 온 무당의 자식인 천동을 보자 마자
그에게 담을 같이 넘어 장에 구경을 가자한다.
거기서 만난 왈자패에게 쫓기면서도 둘은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자을산군이 왕이 된 뒤 소화낭자가 걱정한다는 소식을 가지고 찾아온 천동에게
성종은 곤룡포를 입혀주고는 천동의 옷을 입고 궐 밖으로 나가 소화낭자를 만나고 온다.
내시가 된 뒤 성종 앞에 나타난 천동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달라며 댓돌에 머리를 찧자
달려가 천동의 몸을 일으켜 세우며 자신의 동무라 말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왕 '정조'가 아닌 세손 '이산'은
9년 만에 만난 그 무식한 '동무' 대수가 도둑인 줄 알고 휘두르는 주먹질에도
눈물을 글썽이며 "나다, 대수야! 너의 주먹은 여전히 맵구나"라며
온 마음을 바쳐 그의 주먹세례를 맞아준다.
언젠가 꼭 무관이 되어 세손저하 곁을 지켜주고싶지만, 자기의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며
의기소침해 하는 대수에게 "아니다. 너는 분명 훌륭한 무관이 될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딱 두번 맞아봤는데 그게 다 대수 너의 주먹이 아니더냐"라는 농으로 격려할 줄 아는 세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들이 이처럼 '민중'과의 '동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 그들이 진정한 민중과 동무를 맺고 우정을 쌓았기 때문이다.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대선후보가 된 뒤에 동무인 척 하는 사람들 말고,
그 이전부터, 오랜 세월동안 진정으로 민중과 동무를 맺어온 후보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힘으로 자신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그런 후보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그런 후보가...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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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26 10:45

    오.. 성종과 정조라.. 조선의 제일 멋있는 왕들 (세종은 놀랍고!)이네요.

    헐.. 박근혜가 나왔으면 선덕여왕 다루었을려나?.. 선덕여왕을 사극으로 만드는 것은 참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네요.. 김춘수 김유신도 나오고, 헌화가 같은 로맨스(?)도 있고 ㅋㅋ
    근데.. 요즘은 모두 단재의 후신들인지 신라보다는 고구려가 대세라.. 쩝;;

    여튼 잘 봤습니다. 기대되네요~ 이산 평 :)

  2. 2007/10/26 10:45

    저도 우연히 '왕과 나' 한 에피소드 봤는데..
    '내시'들을 보는 것은 약간 공포에요.. 거세불안증인가.. 쩝;;
    그래서 보기 불편해요;; 헐..

  3. 근데요. 2007/10/31 18:07

    이 드라마를 잘 안 봐서, 궁금해서 질문을 드리는 것인데요.
    그 왕들은 동무들과 친구가 되어주는 것 외에 그 동무들을 친구로 둚으로써 양민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나요?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낮은 신분임에도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 말고 그것이 그들의 성인 이후의 정치관에 결정적 영향을 주게 되었나요?( 혹은 될 것인가요?)
    높으신 분들이 평민들과 동무가 되어준다는 것은 좋지만 그게 뼈 속 깊이, 그리고 실질적으로 통치에 결정적인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그냥 인간성 좋았다 포용력이 있었다, 소박하시다...이런 건 넘 허무해요.
    뒷부분에 대선후보들의 지게쑈와 시장행차부분을 읽다보니 불현듯 든 생각이랍니다.

  4. BlogIcon coolya 2007/11/01 16:05

    음, 좋은 지적이심미다~^^감샤합니다~

    지금 이 두 드라마들의 주인공은 아직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둘 다 힘없는 국왕(수렴청정), 힘없는 세손으로서 자기 '생존'을 위해 싸우는 중이죠. 그래서 자신들의 정치관을 통해 정치를 하고 백성을 대하는 것이 전면적으로 나타나진 않습니다, 아직(글고 제가 이번주부터 <왕과나>를 버리고 <이산>에 정착해버려서..<왕과나>는 특히 잘 모르겠습니다ㅎㅎ).

    그러나...<이산>의 경우, 그러한 조짐이 좀 보이고 있습니다.

    역사상 정조가 그림을 사랑했다는 점은 원래 좀 알려져 있지요?
    전 역사에 워낙 약한 터라 그 이상의 자세한 것들은 잘 모릅니다만.
    이 드라마에선 그 점이 많이 부각되는데요, 그 이유가 송연이 때문입니다.
    도화서 다모인 송연이는 그림에 재주가 있는데, 다모이기 때문에 '화원'이 될 꿈은 꾸지도 않고, 화가 가문 자식이지만, 춘화에는 천재적 재능이 있으나 다른 그림에 있어서는 도통 재주가 없는 이천(지상렬) 대신 몰래 그림을 그려주곤 합니다.

    즉 여성이기 때문에
    자신의 재주를 다른 남성에게 빌려주는 것 외에는 드러내지 않는 거죠.
    그랬는데, 이산은 송연에게 청나라에서 사온 화집을 하나 선물합니다.
    그림의 필세가 섬세하고 특이하다며 그림을 보고 있는 송연에게
    '여화원이 그린 그림이라서 그럴 것이다'
    하면서 송연에게도 여화원이 되어달라고 말합니다.

    "여자라서 화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낡은 생각이다. 내가 바꿀 것이다.
    내가 세상을 바꿀것이니 너는 그림을 그려 너의 재주를 마음껏 펼쳐라."
    라면서 말이지요.


    또 한가지 에피소드는,
    최근 궐 안이 큰 역모사건에 휘말렸을 때,
    사도세자의 익위였던 사람들이 역모 주동자로 몰려 잡혀옵니다.
    그들이 영조를 비난하고, 사도세자를 기리며, 세손 이산을 추종한다는 모함을
    이산의 적대세력들이 조작해서 만든것이지요.
    그 사건의 최종 배후가 이산이라는 모함과 함께.

    그런데 이 사건의 추국을 이산에게 맡김으로써
    영조는 이산에게 한번 기회를 줍니다.
    그들을 이산이 직접 추국하고,
    그들로부터 이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자백을 받아내기만 하면
    이산은 결백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빠져나갈 여지를 준 겁니다.

    그러나 그 신료들은 사실 아무 죄가 없기 때문에
    이산은 살아남더라도 그들은 무고한 죄로 죽게 되는 것이었지요.
    그러자 이산은 추국을 거부합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호위하고 옹호하다, 결국 재야에 묻히게 되었던
    예전 아버지의 충신들을 희생시켜가면서 살고자 하진 않는 것입니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달려와서 이산에게
    "그들이 아니라 저(홍씨)를 죽여서라도 살아남으셔야지요!"하며
    추국을 종용합니다.
    그랬더니 이산이
    "살고자 이러는것입니다 어마마마.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자 그러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죽여서라도
    세손은 이 모함에서 빠져나가셔야 한다는
    그 전 익위들에게도
    "살아주십시오. 살아남으셔서 제게 힘이 되어 주십시오."라며
    그들을 자신이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생존도 위태로운 상황에서 말이지요.


    아직 세상을 바꿀 힘이 부족한 세손이지만, 이런 말과 행동들이 모이고 모이면
    좋은 정치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더 두고봐야겠지만.

  5. 아..
    저는 이산도 좀 밋밋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왕과나의 어이없음에 비할까 싶네요.
    왕과나는 유승호!! 어린이 아니 청소년으로 정말 왕다운 왕 보여주면서
    잘 출발하더니 왜 그렇게 삐걱거리는지...

    고주원 성종-_-;; 정말 아무 생각 없어보이고, 연기도 못하더군요.
    한마디 한마디 어색 그자체!!!



    진정한 동무...와 정치인의 쇼라는 글의 주제와는 다른 댓글을 달게 되어 죄송해요~

  6. 위에 댓글에 "거세 공포증"이 있네요.ㅋ

    남자들은 정말 저런 게 있나봐요???
    그래서 중성화되는 동물들한테 그렇게 거품물고 반대하는건가.

intro

서른 해 남짓 살아오면서 생물, 화학엔 전혀 관심도 재능도 보이지 못했다. 노란 싹수와도 같은 관심이 잠시 부끄럽게 고개를 내민 적도 있었으나 그 관심은 관심에 합당한 점수로 보상/응답되지 못했다. (호르몬의 체계는 아름다웠지만, 어느 호르몬의 부작용이 무엇인지는 외우는 건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일방적인 짝사랑이거나, 번지수 잘못 찾은 사랑이 바로 순수과학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러니 이 알량한 사랑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 대학에 올라와서 과학탐구영역 한뭉치에 해당하는 과목을 듣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건 해방이었다. 과정이 가상해도 답이 틀리면 틀리고마는 과목과 거리가 먼, 썰을 풀 수 있는 과목을 전공으로 삼을 수 있어서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절대 정답이 있을 학문에 대한 목마름이 참 커졌다. 스도쿠를 하다가 수학을 잘 할 것이란 착각과도 같은 그런 심리일 것. 그럴 때 찾아온 것이 미국판 의학 드라마였다. 미국판 의학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병리학의 기초는 이해한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무식한 인문대생에게 심어주는 놀라운 교육 효과를 갖고 있다. 특히 House는 하우스 선생님과 함께하는 CSI의 병원판이 아닐까 싶다. 척척박사 하우스 박사님과 함께하는 병리학 시간. 짜잔 오늘은 우리의 하우스 박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뭐 이런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하우스 박사님께 바로 직행하기 전에 내가 사랑해왔던 미국 의학드라마의 맥을 따라가보자. (사실 열심히 본 게 ER, Grey's Anatomy, House이므로 요 세 가지 드라마만 이야기 할 것이다. General Hospital을 못 본 게 심히 안타까운.)

 
ER
(199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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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병아리 미드 팬에게 처음 찾아온 것은 ER이었다. ER은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공중파를 탔던 것 같은데, 어렴풋이 보다 말다 했고, 굳이 TV에서 사람 죽는 응급실을 봐야겠냐는 아버지의 역정에 지레 겁먹고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그후 다시 다른 경로로 ER을 시즌 4까지 보면서, 병리학은 몰라도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해야 하는 검사 용어인Chem 7, 삽관intubation이란 말을 알아듣는 나름 기특한 경지에 올라섰다. (호르몬 종류와 담당 기관도 못 외우는 주제에) 사실 ER은 13년이란 방영 햇수만큼이나 끈질긴 권위를 가진 의학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긴박한 스피드 (항상 ER의 상황은 응급실의 가장 급박한 순간을 포착한다! 응급실이 늘상 그렇게 일분 일초를 다투는 게 아닐 진대.)와 이글이글한 동료애와 이리저리 교차하는 연애 작대기로 가득 찬 공간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펼쳐보인 게 이 드라마가 아닐까. (사실 이 드라마와 함께 General Hospital의 장구한 역사와 수용자층, 그리고 결말도 이야기해봐야 겠는데, 워낙에 이 드라마엔 문외한인지라 잠시 스킵) ER의 배경이 되는 병원은 늘 부족한 재정과 의료진에 시달리고, 그곳에 근무하는 의사도 카터 말고는 부요한 사람이 없는 참으로 보기 드문 병원이다. 누군가는 숨기고 싶은 못난이 가족이나 밝히고 싶지 않은 재정적 어려움이 있고, 또 누군가는 갚아야 할 학비 융자금이 산적해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곧 무너질 것 같은 결혼생활을 간신히 지탱해 간다. 의사는 부자/곧 부자(would-be-rich)라는 90년대 한국의 일반상식을 여지 없이 무너뜨리는 드라마였다. 아~의사도 저렇게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안겨준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들의 팍팍한 삶은 닥터 그린이 늘상 통근할 때 이용하는 시카고의 을씨년스러운 지하철역 이미지로 잘 드러난다.  의사 선생님이 아우디도 아니고, 비엠더블유도 아니고 지하철을 타셨다. 그리고 공격적인 시카고의 겨울 날씨가 이들의 삶의 비극성을 한층 고조시킬 때도 있다. (폭설에 사고가 나서 안 그래도 손 달리는 병원이 급물자부족, 급의사부족을 경험하곤 하니까.) 그리고 이 병원에 찾아드는 환자층은 영어를 못하는 이민자, 부모에게 학대 받는 아이, 가난해서 문제 많은 미국 의료보험 제도에서 소외된 이들이다. (어느 시즌에선가 루시 리우가 무명시절 영어를 잘 못하는 이민자로 나와서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신인 시절엔 다 어려운 게다) 어쨌든 이 징글징글하게 가난한 병원에 사람들이 흥미를 잃기 시작했는지, 2005년부터 방영된 Grey's Anatomy는 한결 여유롭고 부드러워진다.

Grey's Anatomy
(2005-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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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타이틀롤을 맡은 닥터 그레이가 인턴으로 일하게 된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은 ER이 위치한 팍팍한 시카고의 느낌과는 대비되는 좀더 부드러운 시애틀에 위치한다. 잠못 이루는 도시라지 않던가. 병원은 예산이 아주 넉넉해보이는 사립병원이다. 이곳에서 치프들은 과장 자리를 놓고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외교적으로 경쟁을 벌이고, 그걸 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과장은 다른 병원에서 다크 호스를 데려다 앉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주 관심은 과장 자리를 놓고 싸우는 정치게임도, 치유의 과정에도 있지 않다.

ER에 비하면 아주 호사스런 병원에서 어떻게 우리 젊은 인턴들이 연애를 하시는지 보여주는 데 관심이 많다. 아주 경쟁적이고, 아주 똑똑한 20대 중후반의 인턴들은 그들의 의학적 지식을 시청자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우리는 그들이 똑똑한 건 알고 들어간다. (All that matters in this drama seems to me is who f****ed whom.)  내 개인 취향으로 볼 때, 닥터 오말리를 제외하면 모두 선남선녀 핫걸/핫보이가 드글드글 모인 인턴집합소이다. 누구는 병원에 들어와 완전 똑똑한 상사 레지와 자고 보니 임신이되고, 또 누구는 원나잇 스탠드 상대였는데 알고보니 담당 레지였고, 더 알고보니 그는 이혼도 안 한 유부남이었다는 호된 신고식을 치른다. 또 처절하게 가난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힘들게 의사가 되어 들어온 금발머리 의사는 환자와 사랑에 빠지나 그 환자가 죽어버려 실의에 빠진다. 이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마음껏 빠진 뒤, 뒷감당을 못해서 마구 괴로워하는 20대의 피곤함을 보여준다. (마음에 드는 남자의사 앞에 Mac-이란 접두사를 붙여 별명을 짓는 새로운 작명법을 선보이기도 했으니, 대표적인 사람이 MacDreamy, MacSteamy 등이 있겠다.) 시즌3은 샌드라 오의 결혼 참사(marriage-fiasco)로 막을 내려서, 성질 급한 팬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으나 무심하게도 아직 시즌4는 방영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이상 많은 연애전선과 Grey가 매 에피소드 말미에 붙여주는 삶에 대한 성찰, 그리고 연애에 대한 어줍잖지만 귀여운, 때론 감동을 주는 조언들이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오래 기다리셨다. 이제 하우스 박사님의 세계로)

House MD
(2006-Present)

잘은 모르지만 House는 이런 의학드라마의 지난한 역사과 각축장에서 어떻게 '새로운'면모를 보여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드라마다. (고백: 아직 시즌1 15화까지밖에 못 보았음. 거기까지만 이야기하려구횻)

프린스턴의 Teaching hospital이란 점에서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의 연속선상(병원은 깔끔하고 예싼 걱정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뜻)에 있지만, 연애구도를 최소화 하려고 애썼다. 하우스가 이끄는 진단의학과 팀을 보면 하우스를 포함한 남자의사 셋, 여자의사 하나로 짜여있다. 닥터 캐머론(제니퍼 모리슨 역)이 유일한 여의사지만, 10화까지는 어떤 연애의 싹도 보이지 않았다. Grey's Anatomy였다면 10화에 이를 동안 여러 경우의 수를 보여줬을 텐데 말이다. 물론 13화인가에서 닥터 캐머론이 단도직입적으로 하우스 박사님께 자신의 마음을 어렵사리 고백하지만,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아무도 좋아해주는 사람이 없는" 이 괴짜 박사님은 어린 부하 의사에게 난 안 좋아해! 하고 말을 자른다. (눈빛은 거짓말을 한다만. 향후 에피소드 전개에 따라 이 이야긴 달라질 수도 있겠다.)  둘째, 앞서 의학드라마의 CSI 판이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 에피소드에 새로운 의학 과제가 주어지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House는 굳이 매 에피소드를 연달아 보지 않아도 크게 방해받지 않는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다. 한 회 한회가 완결성을 가진 독립 에피소드이다. 그리고 의사 양반들이 흰 가운을 벗어놓고 환자의 병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 환자의 집으로, 집 주변으로 마구 찾아 다닌다. 무단 잠입도 불사하며 병인을 찾는 그들의 노고는 CSI 수사팀에 맞먹는다. 셋째, 팀단위로 움직이긴 하지만, 타이틀 롤인 하우스 박사님의 순발력과 집중력이 치료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 다리를 절뚝거리고, 다리의 고통을 잊으려고 먹는 진통제에 중독 된 하우스 박사님은 다른 사람에게 이해를 구하거나, 자신의 치료 이유를 설명하는 것엔 인색하지만 그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남겨둘 뛰어난 의사로 그려진다. (지팡이와 약물 중독이란 점은 셜록 홈즈에 대한 오마쥬가 아닐까 혼자 추측해 봄) 게다가 이 의사 선생님은 뛰어난 인문/예술 소양을 갖춰서 단테의 싯구를 예사로 읊고, 피아노 연주에 능하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수염은 덥수룩하고, 일견 왜소해보이는 하우스 박사님이 그 파란 눈동자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보인다. 젊은 닥터 캐머론이 반할 만도 하지.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이 드라마는 의학 드라마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병인을 분석하고 해결한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본 의학 드라마들이 그저 장소만 병원을 빌어 권력을 향한 정치, 경쟁, 혹은 동료애나 사랑,인생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는 '병원'드라마에 그쳤다면 House는 의사가 병원에서 업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근사하고 세련되게 보여주는 진정한 '의학' 드라마이다. 증상을 보고, 여러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물론 이런 드라마를 보다 보면 어딘까 질척거리고 어리버리한 의사들이 벌이는 연애가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2007년 시청자에게 새로운 맛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House의 미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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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이왕 이렇게 된 것 한국 병원드라마의 계보도도 그려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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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14 10:45

    오옷 잼있게 읽었습니다.^^ 이런 의학드라마 보다보면 의대를 갈까..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더라고요. 진짜 최근에 진지하게 의대친구에게 물어봤는데, 절대 하지말라고, 나는 니 삶이 제일 부럽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남들 삶이 부러워뵈는 건지. 의대애들은 인문학하면 고상하게 사는 줄 알아요 참.. 뭐, ER보다는 '고상'하려나... 고상이라... ㅡ.ㅡ;

  2. 서구의학 2007/09/14 19:23

    잘 읽었습니다. 제가 본 것은 <그레이 아나토미> 밖에는 없지만 덕분에 다른 미국의 의학드라마에 대해서도 좀 알게됐네요..궁금해지기도 하고..시간날때 봐야겠어요.^^

    그런데요, 서구의학이라는 것...근대과학이라는 것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에 대해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회의'가 많이 들어서요...'증상을 보고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물론 저도 병원에서 '연애질'만 하는 드라마들, 싫어합니다-그게 모두 '의학'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근대의 인간, 또는 서구의학의 '오만'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들도 인간이라 실수 많이 하고요, 증상의 원인이라는 게 굉장히 복합적이어서 의학적 접근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요..(그게 묘하게 미국인들의 '오만'과 겹쳐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위에 말했듯, 연애질로 점점 흘러가는 것에는 저 역시 불만이 많았습니다만, <그레이 아나토미>에도 미덕은 있지 않았나 생각했지요. 그곳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요. 주인공들은 절대 안죽지만...삶이란, 인간이란, 인생이란...꼭 의학지식,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걸, 매 주제별로 병원내의 환자/의학관련 에피소드와 주인공들의 삶의 이야기의 접합부분들을 통해 보여준 것. 그런 점은 꽤 흥미로웠거든요.

  3. BlogIcon 하이腦 2007/09/18 15:19

    /기인/ 난 가고싶어도 의대 쪽 재능은 전혀 없기 때문에 못 가. ㅎㅎ 근데 내가 주변 사람을 보건데 의사들만큼 자기 연민이 강한 직업인도 없는 것 같음. 꽤 괜찮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면서도 스스로를 측은히 여기는...ㅋㅋ 차라리 하우스 박사님처럼 오만한 게 더 좋음. 대놓고 똑똑한 사람.

    /서구의학님/ 말씀하신 것처럼 대놓고 '오만한' 것이 하우스의 강점이예요. :) 깔끔하게 오만한, 냉철한 하우스식 진단법/치료법. 참, 저도 그레이스 아나토미를 아주 좋아해요!! ^^ 연애질에 질릴 만도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중독성이 있어서요. 각 드라마마다 따로 글을 쓰고싶을 정도로 저 세 병원드라마 각각의 매력이 있죠. <그레이즈 아나토미>는 따뜻하지요..서로에게 연민을 갖는.

  4. 2007/09/18 20:20

    응~ 근데 진짜 의사들도 불쌍하기는 하죠. 그레이즈 아나토미 보기 시작했는데, 제가 심리검사에서 '여성적' '심리적'이라고 나온 것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프리즌 브레이크나 24시 같은거 진짜 안 좋아하거든요. 서사만 있고..
    저는 심리묘사가 좋은 거 같아요 :)

    근데 실제 의학도들 자신도 서구의학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의 신체란 사회 구조와 같이 중층결정이 되 있어서, 하나의 병도 실제 그 원인을 알아서 치료한다기보다는 대증요법식이 많죠.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이런 증상이 날때 이런 치료를 하니까 먹혔더라 정도. 개연성 정도.. 백인-남성중심성도 문제가 있고..
    등등이 이게 서구의학의 현단계적 인식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의학드라마는 이런 경향보다는 누나말대로 '탐정식-근대과학적 인식'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ㅎㅎ

    ㅎ 아나토미 끝나면 하우스도 볼께용 :) 이런 드라마 소개 좋아요. ㅋㅋ
    누나 땜시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한두개가 아니네요 룰루~ ^^*

  5. BlogIcon heine 2007/09/21 11:48

    hehe I'm so flattered, 긴. 근데 시즌1까지 보고 나니까 몇 가지 수정해야 할 이야기도 있어. 역시 love line 없인 드라마의 감동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시즌1 마지막 두 회에선 하우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펼쳐져.

Gilmore Girls

2007/09/04 00:19 | Posted by 하이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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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어씨네 여자들과 나이 먹어가기
<길모어 걸즈/Gilmore Girls>가 시즌 7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 드라마의 한 시즌은 얼추 한 해가 되니, 일곱 해가 지난 셈이다. 여러 해 간격을 두고 연작이 이어지는 영화 시리즈를 봐도, 영화를 본 시기를 기준으로 듬성듬성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것 같은데, 연속으로 몇 해를 두고 이어지는 드라마는 등장인물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특권을 제공한다. <길모어 걸즈>는, 내가 교환학생으로 캐나다를 갔던 시기에 처음 만났던 드라마였던 만큼, 이 드라마의 마지막을 보는 느낌은 마치 정든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주인공 로리 길모어가 열 여섯에서 스물 둘이 되는 사이에, 나 역시 여섯 살을 더 먹었고.  시즌 7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레인과 로리가 현관 의자에 앉아 흘러간 옛시절을 돌아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목요일 밤 <길모어 걸즈>를 보기 위해 결국 기숙사에서 티비를 대여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2001년부터 2007년 사이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어찌 됐건 새로운 매체의 발달로 한국에서 시즌 1부터 7까지 꼼꼼하게 챙겨볼 수 있게 된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온스타일이 길모어 걸즈를 해주다가 시즌 4인가 부터 불규칙하게 방영 편성을 짜서 그걸 찾아 보느라 무지 애먹었던 기억이 나는고나. (2007년 9월 현재 온스타일에서 <시즌7>을 방영중이다.) 대학원 숙제를 쌓아놓고도, 길모어걸즈 하는 시간에 티비 앞에 앉아있었으니. 크흣.


길모어 걸즈의 매력: 미혼모에 대한 새로운 정의
흔히 가족물로 구분될 수 있는 이 드
라마의 미덕은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암울하게 그려내는 미혼모 이야기를 유별나게 밝게 그려냈다는 점일 수 있다. 시즌 1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상당히 우울할 수 있는 소재를 유쾌하게 썼구나!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스타즈 할로우라는 작은 마을에서 사는, 열 여섯 살 차이나는 모녀간의 아기자기한 관계와 그들을 둘러싼 정말 귀여운 이웃들, 그리고 그들의 놀라운 입담 (정말 위트있는 대사가 압권! 대사의 여왕!) 똑똑한 세상 비평, 그리고 은근히 재밌는 프렙스쿨, 예일 대학교 이야기 (이건 현실감이 떨어지지만,그래도 재밌는 드라마 요소) 등 이야기는 특별히 큰 사건없이 흘러가지만, 그래서 더 옆집 사람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 재밌다. (of course I have to admit that season 6 was the major pitfall--which was the most tedious episode ever in Gilmore Girls!)

Socally Liberal, Fically Conservative
열여섯 살에 미혼모가 되어 사립학교(prep school)을 중퇴해야 했던 로렐라이는 보험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아버지의 집을 나와서, 스타즈 할로우에 정착한다. 아이의 아빠가 되는 사람도 자신과 같은 사립학교의 학생이고, 양가 부모 모두 "차라리 결혼을 해!"하고 주선을 하지만 "독립적"인 로렐라이는 혼자 힘으로 스타즈 할로우의 헛간 한 칸을 빌려 아이를 낳고, 서빙과 같은 일을 통해 결국 자기만의 inn의 사장님이 되신다. 여기까진 어떻게 미국 상류계를 거부하고 탈출한 자칭 타칭 민주당 지지자의 자수성가기였다면, 그녀가 열여섯 살에 낳은 딸 로리가 열여섯살이 되어 너무나 똑똑한 나머지 프렙 스쿨을 다니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즌1의 시작점이 여기다. 로렐라이의 과거는 일곱 시즌에 걸쳐 천천히 회상되고, 회고되고, 반복되어 설명된다.) 여인숙(inn)의 주인으로서 (사실 굉장히 예쁜 모텔인데, 한국말 번역어가 마땅히 안 떠오른다.) 잘 살던 로렐라이 입장에서 딸의 비싼 학비를 댈 수 없던 게 문제였다. 그간 연을 끊고 살던자신의 부모에게 결국 돈을 빌리기로 하고, 그들과 연락을 시작한다. 학비 지원에 대한 거래로 매주 금요일 formal한 저녁식사를 하게 된다. 앞서 말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로리와 로렐라이의 유머와 적당한 조롱에는 약간 수상쩍고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다. 드라마가 전개 되면서 이들의 윤택한 유머와 여유의 이면엔, 이들에게 너무나 쉽게 조롱당하고 상처 받는 공화당 지지자로 추정되는 Gilmore씨의 돈이 있다는 점을 무시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려고 시즌 5인가 6에서는 로리의 아버지인 크리스토퍼가 유산을 상속받아서, 딸 로리의 예일 대학교 등록금을 다 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크리스토퍼의 할머니 돈이나 길모어 아저씨의 돈이나 다 거기서 거기가 되어버린다. 소설 <Prep>에서 이런 사립학교를 다니는 한 남학생이 스스로를 "사회적으론 진보적이고, 재정적인 면에선 보수적"(Socially liberal, fiscally conservative)라고 일컫는 것처럼, 길모어 가문의 2-3대 여자들은 사회적으론 적당히 진보적이고, 재정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선택을 일삼는다. 뭐 재밌게 봐놓고 이제 와서 문제 삼는다는 게 웃기지만, 말이다.

Rory's Bookshelf
사실 이 드라마를 처음 보게 된 건 로리가 제법 영리한 독서 목록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사립학교를 다니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목록 외에도 워낙에 책에 빠져지내는 아이다보니, 그런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내용이 많았다.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로리가 읽는 책 리스트를 정리해서 올려놓은 것을 보고, 사서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사실 이 드라마를 통해 난 Dorothy Parker를 사서 읽었기 때문에 고맙기도 한 책이다. 보고 즐기기에 재밌으면서도, 적당한 지적 만족감을 주는 교육적 기능도 갖고 있는 드라마다. 한국에서 이만큼 위트있는 대사를 가진 드라마를 찾기 힘들었던 만큼, 이 드라마는 꼭 소장해놓고 두고 두고 보고싶은 드라마다. 물론, 이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은 당연 재밌는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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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2007/09/04 08:50

    이 드라마 함 보고싶군요~비교하긴 어렵지만, 김수현 드라마도 약간씩의 새로움이 있으면서도 늘 꼭 '재정적으로는 보수적'입니다. 꼭 부자, 재벌이 등장하죠. <불꽃>의 차인표네 집안, <내남자의 여자>의 김상중네 집안, <부모님 전상서>의 허준호네 집안, <사랑과 야망>의 전노민네 집안 등... 물론 그들이 모든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지도 않고, 다른 드라마들의 천편일률적인 재벌들과는 다른 '살아있는' 인물들로 그들의 삶도 그린다는 점에서 다르지만요.

    • BlogIcon 하이腦 2007/09/04 15:58

      아마 재정적으로까지 진보적이기엔 드라마 작가도 드라마속 인물도 피곤한가 봅니다. 사실 이 드라마의 대사 특성을 혹자는 김수현의 것에 비교하지만, 김수현 드라마의 통속성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여서 전 그 비교는 귀담아 듣진 않았어요. 김수현 드라마는 꼭 회장님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오죠. 그 부분은 재밌는데, 그런 회장님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게, 도리어 회장님네 가정을 꽤 괜찮게 그려내는 편이라는 게 <길모어 걸즈>와의 차이 같네요.

  2. 열심히 보다가 2007/09/04 15:48

    모녀의 수다가 재밌어서 한 때 열심히 보던 드라마였지요. 한국인 가정도 나와서 나름 흥미를 가지고 보고 있었는데, 딸한테 미친듯이 집착하고 보수적인 굉장히 스테레오 타입화된 동양 가족으로 묘사되서 살짝 기분 나쁘더군요. 게다가 너무 똘똘하고 이쁜 애들이 자꾸 나오니 (로리 똘똘한 것은 그렇다쳐도, 루크 딸까지 천재스런 아이가 나오다니...) 위화감도 느껴지고, 돈 많은 것두 그렇구. 한때 중독되어서 보다가 점차 투덜거리며 안 보았는데 끝났군요. 결말이 우찌되었는지 궁금스럽슴다.

    • BlogIcon 하이腦 2007/09/04 15:56

      정말 모녀의 관계 설정은 완벽에 가까운 드라마인데, 갈수록 구린 요소들이 그 강점을 감춰버리죠. <열심히 보다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외국인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좀 심해서 그게 굉장히 거슬리죠. Lane네 가족들이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인...어딘가 cult 풍이 풍기는...으로 묘사되는 게 괴롭죠. 결말은 나름 열린 결말이긴 한데요. 시즌 6에서 끝맺을 걸 너무 오래 끌어서 지지부진한 느낌도 있었죠. 시즌 6-7에서 로리가 사귀는 로건이란 캐릭터도 사실 더 이야기를 했어야 하긴 하는데...로리가 로건의 청혼을 거절하는 게 나름 liberal한 톤을 유지하려고 앴느 흔적이라고 저는 보았답니다.

2007/07/23 - [드라마/한국 드라마] - 남장 여자가 매혹적인 이유-<커피 프린스1호점>

드라마는 이래서 참 성가시다.
드라마 중도에 '어, 이 드라마 꽤 좋은데?' '꽤 재미있는데?'라며 칭찬을 할라치면,
어느 순간 나의 호감에 제대로 뒤통수를 때리는 '배신'의 행보를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이 나기 전에는 함부로 무슨 드라마도 칭찬하기/비판하기가 어렵다.
지난 번 한껏 칭찬을 했었는데, 이렇게 분개하며 또 글을 써야하고.

분명 <커피프린스>는 미덕이 많은 드라마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예쁜 화면과 신선한 백뮤직을 선사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고은찬이라는 '여성성'이 담보되지 않은 여성 캐릭터의
사랑의 성취 과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게 다이다.
그 정도 가지고 '웰메이드'라고 하기엔, 아직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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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여자' 모티프의 매력을 얘기하면서
점쳤던 바와 같이 이 드라마는 그 순서를 지키긴 지켰다.
'사랑을 먼저 깨닫기(동성이더라도)-그 순간 서로가 이성임이 밝혀지기'
그러나 이 단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질질 끌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 드라마가 간 길은 동성애에 대해 지나치게 '폭력적'이었다.

물론 저러한 전개 '룰' 자체가 이미 보수성을 지닌 것이었음은
알고 있었다.
이성애주의적이고 일대일의 배타적 관계, 영원한 사랑...
그런 길로 갈 것이 뻔함에도,
그러한 한계를 지님에도,
이 드라마가 저 과정을 거치기 위해
동성애를, 사랑을, 얼마나 새롭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진보'의 길로 이끌어갈까
최초의 '여성 드라마 PD'가 만든다는 이 드라마에 대해
내심 기대를 버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내 기대를 무참히 깨는 쪽으로 흘러갔다.


한결이 은찬이라는 동성을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신경정신과를 찾아간다.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만
그 의사는 '돌팔이' 의사처럼 묘사됐다.
수전증이 있고, 추접스럽게 인스턴트 커피를 홀짝거리며
그의 상태와 감정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듣기는 커녕
이 비정상적인 '병자'를 말초적 호기심의 대상처럼 바라본다.
그리고는 약을 처방해주며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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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런것인가?
동성애를 느낀 자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면
일단은 병자로 취급해서, 약을 통해 그 '병증'을 '고치도록' 유도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신경정신과 의사들에 대한 '오나전 실망'이고
(그러나,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므로)
그렇지 않을테니, 이 드라마는 정말 '너무한 것'이다.


동성애라는 게 세상에 없는 일인가?
동성애자가 병자인가?
어떻게 'n개의 성'이 사는 이 세상에서
이 '웰 메이드' 드라마는 이따위로밖에 동성애를 취급하지 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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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이러한 폭력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쨌거나 한결이 지리멸렬한(이 지리멸렬함은 뒤에 또 얘기하자)
성 정체성에 대한 갈등의 시간을 거쳐 은찬에게
"나는 네가 좋아. 네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이라고 '커밍아웃'을 했을 때,
이제 남은 일은 "근데 어쩌지, 나, 여자인데."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자, 한 사람이 동성에게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굳게 믿고 있던 그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갈등과 고민의 과정을 거쳐 이제 사랑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것은 물론 '그(녀)애자'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동성애자라서 동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현재 사귀는 애인에게 진실한 사랑을 느끼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일단은 그가 '고민'하는 과정은
그 한사람에게라도 '동성애'를 인정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어렵게 동성애를 인정한 한 사람이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실은 동성이 아니라 이성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랬을 때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옳다구나~하며 이성이라는 그 사람과
돌연 더 해피해질까?

글쎄..나라면 다시 헷갈릴 것 같다.

그가 정말 진지하게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결과
동성인 그 사람을 사랑함을 인정했다면,
그가 이성임을 뒤늦게 알았을 때
그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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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성애자일까, 동성애자일까?
그 사람이 동성이라서 사랑한 것일까,
이성이길 바라면서도 어쩔수 없이 동성임에도 사랑한 것일까?
이전에 그사람이 동성이어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 만큼이나
그 사람이 이성이어도 사랑할 수 있을까도
똑같이 고민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 드라마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의 '새로움', '진보성'이었다.

결국엔 자신이 이성애자이며
사랑하는 상대방이 이성이라는 사실에 더 마음이 편해진다 하더라도
위의 과정을 충실하게 그린다면
조금은 동성애가 무게있게 다뤄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어렵게 '커밍아웃'을 하자마자
이성임을 알게 되고,
그러자마자 한결은 '넌 어떻게 나를 속였냐?' 하나에만 매달려 화를 낸다.
속인것, 당연히 화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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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 과정때문에도 이 드라마에 왕짜증이 났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가 동성이라고 오해해서 힘들어한다.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
그럴 때 사실은 이성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물어보나 아닌가? 당근, 사실을 밝혀야지.

근데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은찬은 한결에게 자신이 여자임을 숨긴다.
그가 '네가 남자라도 네가 좋아'란 말을 할 때까지.
아무리 '테스트 관문'(이라고 내가 한 말)이지만, 좀 너무하지 않나?
테스트는 스토리가 해야지, 주인공이 해선 안됐다.

주인공이 아닌 스토리가 테스트를 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하면,
은찬은 둘 중 하나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결이 자신을 사랑하는데 자신이 남자라서 괴로워하는 걸 모르든가,
아니면 자신이 한결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모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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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둘을 다 아는 은찬이 자신이 여자임을 속인다는 건
영악한 '선수' 여성이 남자를 테스트하는 과정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없다.
그것도 6회말부터 11회 중반까지..주인공이 그렇게 오래 저 상태로 테스트하고 있는 건
정말이지 너무했다.

그러니 뒤늦게 사실을 알게된 한결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긴 하다.
그러나 속았다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 외에도
동성애는 더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문제가 아닌가.
동성애자라고 인정한 순간 상대방이 이성임을 알게 됐을 때
한결이 다시 동성애를 포기(?)하는 게 조금은 혼란스러웠어야 한다.
그 과정이 진정성을 획득했어야 한다.

그러나 속였다는 사실에 대해 용서하자마자
왜 속였는지를 '이해'하자마자
한결이 하는 이 대사는
마지막으로 동성애와 동성애자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고은찬, 네가 여자라서 좋다!"
OT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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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만화에 가깝다.
이야기 구성이나 캐릭터들도
내가 중고딩때 즐겨본 순정만화에서 본듯한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만화 못지않은 아름답고 흥겨운 연출로 이끌어 갔다는 점이
이 드라마로 하여금 많은 '팬'을 얻을 수 있는 요소로 작용했겠지만
드라마라면, 만화가 아니라면,
세상에 대한, 사랑에 대한 통찰만큼은 중고딩 수준 이상이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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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2007/08/31 23:19

    오~ 이런 점이 있었군요! 제 이반 친구들은 이 드라마를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하네요 ^^

  2. 2007/08/31 23:21

    근디;;; 태그가 없는 것 같은데요? 태그 달아주삼 :)

  3. 보다가 만... 2007/09/02 16:38

    재밌을 것같아서 보다가 중간에 시간이 없어서 못 보았는데,
    다시 시간이 생겼을 때도 안보게 되었던 이유가
    은찬양이 넘 질질 울어대는 바람에 생짜증이 나더이다.
    좀 더 쿨하고 당찬 캐릭터를 기대했는데 멜로드라마 비련의 여주인공보다 더 별것도 아닌 이유로 어찌나 우시던지....
    이 글을 읽으니 참고 보았으면 더 험한 꼴 보았을 뻔했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4. 맞아요. 정말 잘 스셨네요.

    저도 뒤로 갈수록 너무 이야기는 궁해지고
    은찬이는 순진한 척 하며 상대방 염장지르는 선수라서 싫어지더군요.

    더구나 한회당 10분 이상은 나오는 그 야동 비슷한 상상씬은..-_-;;

    그나저나 공유 어깨 무지하게 넓네요ㅋㅋㅋ

  5. 달님 2008/11/01 00:17

    그래도 원작에 비하면 너무나 잘 만든겁니다. 그 원작자가 극본을 다시 썼어요. 그러니,내용이 그럴 수밖에 없어요. 소설이 궁금해 읽으면서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는데, 그작가 정말 심하게 표절을 했더군요. 경성애사에서 태백산맥을. 또 몇 작품이 표절시비에 잡히는걸 기사에서도 보고 직접 확인 했습니다. 동기를 차용 한다는 것과, 표절한다는건 아주 다릅니다. 작가의 자존심이 없는 거지요. 이윤정 피디님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가 저만한 종합 예술품을 만들긴 쉽지 않지요.여성비하가 아니라 체력 때문이지요. 모든 예술이 기본이 힘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허접한 소견이었습니다. 부족하더라도, 그냥 이런 생각을 가진이가 있구나...하고 지나가 주세요.^*^

    • BlogIcon coolya 2008/11/03 19:34

      네~(또 찾아주셨군요~!^^)저도 이윤정 피디는 <태릉선수촌>때부터 주목했고, 앞으로 더 대단한 연출가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커피프린스1호점>의 지나친 인기때문에, 오히려 그분의 '성장'이 여기서 멈춰버리진 않을까 걱정이 되지요. 제글에서 말한 것과 같은 '정치적 올바름'이 좀더 철저해진다면, 여성 드라마연출가로서 더더욱 빛이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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