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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 for Drama/매혹의 법칙'에 해당되는 글 2

  1. 2008/03/06 사랑밖엔 넌 몰라?-멜로드라마의 종말 (2)
  2. 2007/11/09 역사 드라마 매혹의 법칙-<왕과 나>를 버린 이유 (2)
2007/06/27 - [Mad for Drama/한국 드라마] - 흥행코드 읽기와 스토리텔링-아류작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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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겨울연가> 탓이다"

현재 한국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들을 망쳐놓은 것은,
배용준을, 문화부장관 후보의 갑절이상 부자로 만들어주고
'한류'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겨울연가>이다.

<겨울연가>가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얼마나 잘, 똑부러지게 따르고 있는지는
굳이 또 얘기 안해도 될 것이다.
분명 2002년에 이 드라마는
현재의 '일드'열풍을 일으키고 있듯 우리보다 한 수 위인 일본 드라마시장에까지 먹힐 수 있는
멜로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모범'사례였다.


그러나 '최대치'란, 다시 말해 '정점'을 찍고,
이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대단한 <겨울연가>는 사실,
<가을동화>의 신선함들을 훨씬 세련되게 포장한 것으로,
이미 <가을동화>의 여러 '상투적' 설정들이 한번 '복제'된 것이었다.
그래서 <겨울연가>는 <가을동화>만큼 한국땅에선 큰 반향을 못일으켰었다.
이것은 4계절 시리즈를 만든 윤석호 감독의
이후 두 작품, <여름향기>, <봄의왈츠>가
모두 '썰렁하게' 막을 내린 데에서 분명해졌다.


반면 일본에서는 <겨울연가>가 먼저 알려졌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보다 신선하게, 그러면서도 세련되게 첫선을 보일 수 있었다.
그 이후 여러 편의 '겨울연가류'의 드라마들이
일본에 우수수 알려지게 되고, 다 그럭저럭 좋은 반응을 일으키며
한류드라마를 형성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에서도 한국드라마의 그런 '전형'적 설정
-출생의 비밀, 불치병, 첫사랑, 기억상실증, 재벌2세,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등-은
진부함, 천편일률적임으로 비판받고 있다.
그러니 이미 <겨울연가>에서도 이 진부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한국에서야 오죽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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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한국의 드라마는 '멜로'를 찍기로 하면
일단 '겨울연가류'를 제일 먼저 참고하고 있는 듯 했다.
최근 나온 한국의 '멜로코드' 드라마들 몇개를 살펴보자.
<못된사랑>, <사랑에 미치다>, <푸른물고기>.
이 세 작품은 2007년~2008년 초에 방영된 드라마로
이미연, 고소영, 이요원, 권상우, 박정철, 윤계상 등
우리나라에서 '초특급 스타 배우'로 불릴 만한
그것도 아주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돌아와 제대로 몸값 비싼 티를 낸
배우들이 출연한 '야심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이 드라마들은 모두 '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사랑에 미치다),
옛 남자의 처남이자 재벌2세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첼리스트(못된사랑),
부모의 반대로 헤어진 뒤 첫사랑을 기억 못하는 재벌2세 여자가
첫사랑을 다시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푸른물고기),
일단 설정은 매우 '극적'이지만, 그 다음이 없다.


저 설정에서 더 나올 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남자란 사실을 모르는 동안,
자신의 매형과 여자의 관계를 눈치 못채는 동안,
첫사랑이란 사실을 기억못하는 동안,
서로 바보짓 해 가며 사랑놀음, 감정싸움, 삼각 사각관계의 연애를 하는 것 뿐이다.
그러다가 '진실'이 밝혀진 뒤에는
그것때문에 괴로워하는 단계를 지리멸렬하게 그리다가
결국엔 사랑의 승리(?) 나부랭이로 끝을 맺게 된다.
더구나 그렇게도 극적이고 대단한 사랑얘기이지만,
정작 사랑에 관한 본질은 아무것도 통찰하지 못한 채
막연한 낭만적 사랑의 판타지를 피상적으로 그리는 데 그친다.


이런 껍데기밖에 없는 '멜로'는
그들이 그렇게도 '숭배'하는 '사랑', 그 하나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했으며
세상엔 사랑 외엔 아무것도 없는 듯 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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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위대하다.
사랑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연애는 자기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언제나 인간의 최고의 관심사다.
그러나 사랑은 스카이라운지에서 와인을 마시고,
놀이공원에서 솜사탕을 들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경치좋은 곳에서 드라이브를 즐기고,
아이스링크를 통째로 빌려 스케이트를 즐기고,
바닷가에서 '나 잡아 봐라'를 외치는 것으로만 설명되어선 안된다.

사랑은 서로 다른 두 명(이상)의 사람들이 만나
많은 차이들을 깨달아가고,
그것을 사랑이라는 더 큰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율해가는 과정이며,
드라마가 보여주는 '소비'적 데이트와는 전혀 무관하게도
의외의 장소, 상황, 행동,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놀라운 경험들이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일 거라 믿어지는) 감동의 이벤트가 주는 행복은
패밀리레스토랑의 음식 사진과 같은, 미니홈피 전시용 사랑일 뿐이다.
진짜 사랑은 소비되는 물질 속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연인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 사이의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 욕망, 상황, 상처 같은 것들이
'대체로' 행복한 어떤 상태로 고양되고 재구성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

진정 '사랑밖엔 난 몰라' 드라마가 되려면
그런 '진짜 사랑' 얘기를 '독하게', '아프게'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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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제대로 보여주는 훌륭한 드라마들도 물론 그동안 여러 편 있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들을 몇개 꼽으라면,
<네멋대로 해라>, <거짓말>, <거침없는 사랑>,
<발리에서 생긴 일>, <굿바이 솔로>, <연애시대>같은 것들이다.
이 드라마들은, '진부'하다 치부되는 '삼각관계'나, '불륜'이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불치병'을
그 안에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결코 진부하지 않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자주 남들의 기준에 의해 통속화되지만,
이런 드라마들은 그런 자신을 다독이고 되돌아보게 하는, 참 곱씹을 수록 맛난 드라마들이다.
이 드라마들은 지금 사랑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드라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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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드라마들이 그래서 새롭게 사랑을 성찰할 기회를 준다면,
<못된 사랑>, <푸른물고기>, <사랑에 미치다>는
'통속화'를 부추기는 '남들의 기준'을 공고화한다.
현실에는 부재하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
실존하는 다양한 사랑들에게 열등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 열등감의 실체는 그들의 '위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며
그저 그들의 '위대한 소비', '위대한 고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망하길 잘 했다.
대중들은 그렇게도 똑똑하다.
대중들은 앞으로도 철저하게, 이런 드라마들을 응징할 것이다.
이런 드라마들은 절대로 다신 나와선 안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대략 세 가지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지독한 사랑의 성찰'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되는 길이다.
이것은 보통의 '내공'이 있는 제작진이 아니면 쉽지 않겠지만
가끔 한 편씩 세상에 나와줘서, 이 세상의 힘겨워하는 연인들에게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두번째는, '말랑말랑' '유쾌상쾌' 로맨틱 코메디로 승부하는 것이다.
비극적 멜로를 저따위 피상적 사랑얘기로 다루기 위해
기억상실증, 불치병, 출생의 비밀, 신분 차이 같은 걸 끌어들이지 말고
차라리 가벼운 사랑은 가벼운 사랑답게, 유들유들한 코메디와 곁들여 내놓는 것이다.
작년의 <커피프린스1호점>이나
몇년전 '겨울연가' 짝퉁 <여름향기>가 죽쑤고 있을 때
의외의 선전을 거둔 <옥탑방 고양이>처럼,
평범한 청춘들의 평범한 사랑 얘기를 '즐겁게' 그리는 것이다.


세번째는, '사랑밖에도 많이 알아'가 되는 것.
이것은 전반적인 한국 드라마가 가야할 방향과도 관계가 있다.
현재의 '미드', '일드'에 열광하는 드라마마니아들의 눈높이에
'사랑밖엔 난 몰라' 드라마는 절대 충족감을 안겨줄 수 없다.
사랑은, 분명 인간들의 최고의 관심사지만, 사랑 말고도 세상엔 흥미진진한 것들이 무척 많다.

현재의 사극열풍이나 의학드라마들의 연이은 성공은
이런 '고급' 드라마시청자들이 드라마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물론 긴 호흡으로 방영되는 동안 주인공들이 '행복한 짝짓기'를 하는 과정에
여전히 관심이 많다.
남의 연애사는 일상 속의 최고의 활력소니까.
그러나 매일같이 '답이 뻔한' 연애문제로 징징대는 친구의 상담역할은 참으로 못할 노릇이듯,
사랑, 연애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점령하는 드라마는 대중을 지치게 한다.

열심히 자기 삶을 살고,
그 속에서도 충분한 희노애락을 구성하면서
그 안에 사랑이 조금 더 희/노/애/락을 심화시키는 이야기.
그런 드라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이제 리조트의 이사나, 재벌 2세 실장님, 언제 작업하는 지 모르겠는 예술가 대신
수많은 진짜 직업인들이, 진짜 '꾼'들이,진짜 생활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일에
앞으로의 드라마들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런 점은 앞서 말한 첫번째, 두번째 대안들도
어느 정도는 지켜나가야 할 덕목이다.
<네멋대로 해라>에도 경이와 복수의 사랑에 관한 통찰 곁에는
언더음악가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스턴트맨의 성장스토리가 탄탄하게 들어있었다.
로맨틱코메디로서도 이 세번째의 특성을 잘 보여준 것이
<커피프린스1호점>의 '바리스타'라는 직업이고
<내이름은 김삼순>의 '파티쉐'가 아니던가?


각설-
원래, 이 글을 쓸 마음을 먹게 만든 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그저께, 드디어 <이산>(49회)에서
송연이가 정조에 대해, 대수가 송연이에 대해
사랑을 인정하고 밝혔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 하나가지고 또 이렇게 길게 주절거리다니...나도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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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실은 할 수만 있다면 (후궁이 되어서) 그분 곁에서 있어드리고 싶어."
"이제 전하 뒤에서 지켜보는 일 그만하면 안되겠니? 난 안돼?"
라는 송연과 대수의 '엇갈린 사랑'에 대한 고백의 씬은
아주 짧게, 스쳐가듯 등장했다.
둘 다 처음으로 하는 고백이었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시작한 지 6개월만이며, 극중에서 그들이 만난 지 십수년 만이다.
그동안 정조와 송연은 궐에서 마주치면 몇 마디의 농담을 주고받고
상대방에게만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최고로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힘들때 '누구보다 당신을 믿는다'는 말을 서로에게 건네는 것만으로
사랑을 표현해 왔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현재 월화 드라마의 최고 강자이며,
아예 다른 방송국에서도 이 드라마 종영때까지는
섣부른 '도전'을 할 엄두를 안낼 만큼
쉽게 꺾이지 않을 인기를 얻고 있다.
결국에 송연과 정조의 사랑 얘기는 앞으로 점점 비중이 늘어날테지만
여전히 더 궁금한 것은 둘의 사랑보다 정조의 노론 세력들과의 '파워게임'쪽이다.
사랑은 그 속에서 '순리대로' 감정을 키워나가
주인공들의 사랑 외의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한 부분이어도
충분히, 이 드라마는 매혹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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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일드광팬 2008/03/07 00:35

    오 쿨야님 글 항상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연애시대'는 참 재미있게 봤는데, 요즘 드라마는 정말 듣보잡이에요.
    일드 중 쿨야님이 말한 '사랑'이랑 잘 매치되는 것으로 '결혼못하는 남자'라는 드라마 강추입니다.
    일드의 세계에도 진출해서 많은 좋은 평 올려주시옵서서~

  2. BlogIcon coolya 2008/03/07 08:29

    일드광팬님, 감샤함미당~사실 제가 일드 미드의 세계에는 아직 제대로 입문을 못해서, 어떤 드라마를 봐야 할지 감이 없었답니다. 님의 추천 덕분에 또 몰입할 드라마가 하나 생겼네요~^^'결혼못하는남자' 꼭 보겠습니당~보고 난 뒤 이곳에서 또 얘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007/10/25 - [Mad for Drama/한국 드라마] - 왕의 '친구'들-<왕과 나>, <이산>
지난번 글에 썼듯,
월~화 밤 10시는 내게 늘 선택의 순간이었다.
먼저 방영을 시작한 <왕과 나>의 매력에 한참 푹 빠져 있던 터에
<이산>이라는 드라마를 재방송 등으로 뒤늦게 몇번 보면서
둘 다 포기하기 쉽지 않은 매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왕과 나>는 녹화로, <이산>은 본방으로 보는 쪽을 택했다.
시청률 측면에서야 <왕과 나>쪽이 손해보는 일이었지만,
내게있어 이 선택은 <왕과 나>를 우위에 두겠다는 의지였다.
즉, 돌발 상황이 생겨 10시에 TV앞에 앉지 못하더라도
<왕과 나> 만은 꼭 챙겨 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주 부터 <이산>을 예약녹화하는 것으로 급선회했다.
그 몇 주전부터 약간 흔들리다가...결국엔 <이산>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난 뒤에도
본방조차 <이산>을 보고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이것은 물론 나라는 한 명의 시청자의 의견이기도 하겠지만,
내 판단에 의하면 아마 앞으로도 <이산>의 시청률은 차츰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즉 나 뿐 아니라 대중들은 <이산>쪽을 더 많이 선호하게 될 것이다.

왜, <이산>인가?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개인적 '감상'의 수준을 넘어서
드라마에 매혹되는 '법칙'에 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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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과 나>의 초반

<왕과 나>의 초반은 참 매력적이었다.
그때는 두 부류의 인물 갈등 구조가 생성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아직 작은 크기이지만 아역들,
자을산군(훗날 성종)-윤소화(훗날 폐비 윤씨)-김천동(훗날 김처선)
이 어린 세대들의 계급을 뛰어넘은 우정과 사랑, 삼각관계,
그리고 이들이 앞으로 보여줄 활약에 대한 희망이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소설 <소나기>를 보는 듯한
순수함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감정선의 묘사가
꽤나 흥미진진한 볼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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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치겸(전광렬 분)-예종 사이의 대립을 둘러싼
궁 내부의 갈등이었다.
<왕과 나> 초반의 갈등은 이쪽을 통해 더 첨예하게 전개된다.
수렴청정을 받는 처지이나 국가를 개혁하기 위해
제일먼저 내시부에 손을 댄 예종의 개혁방침은
판내시부사인 조치겸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된 정책은 내시들의 혼인을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내시들의 부정과 비리가, 그들이 '가족'을 만들기 때문에
사리사욕을 갖게 되어 생기는 것이라고 판단한 예종은
내시들의 혼인을 금지하는 명을 내린다.

그러나 내시의 수장인 조치겸은 "내가 내시로 죽을지언정 고자로는 살지 않겠다"며
파무(내시부 파업)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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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들은 모두들 자신의 육근단지(내시들의 잘린 양물을 보관하는 단지)를 들고
머리를 풀고 나와 국왕에게 금혼령을 거두어달라는 시위를 하게된다.
그리고 모든 내시부 업무를 중단하였다.


이 대목은 <왕과 나>에 매료되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었다.

<대장금>을 보면서 수랏간 나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들이 '프로페셔널' 요리사가 되기위해
얼마나 혹독한 트레이닝의 과정을 거치는지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나라와 궁 내에서 아주 한미한 위치임에도
나름의 자부심을 갖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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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궁녀라는 존재들의 힘을 보게 되었었다.
궁에 방문한 청나라 사신에게 겁탈을 당하여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다시 궁녀가 될 때까지 길렀던
한 상궁의 에피소드가 그 대표적 예였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남성 관료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고 묻자
"그게 궁녀들입니다."라고 대답하던 모습, 잊혀지질 않는다.

궁녀들은 궁이라는 큰 집안의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일들을 모두 하고 있다.
그들이 없으면 왕은 밥도 못먹고, 옷도 못입고, 자식도 못낳고 기르고, 잠도 못잘 것이다.
그런 궁녀들, 궁에 '예속'되어 있지만,
궁을 모두 '관리'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커다란 궁 안에서 자신들끼리 연대하면
궁녀가 아이를 몰래 낳을 수도, 그 낳은 아이를 몰래 기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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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대장금>을 볼 때에도 내시에 대해선 잘 몰랐다.
<대장금>에서 내시로 등장하는 '상선'어른은
가끔 생기는 궁녀, 상궁들 사이의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정도와
왕에게 방문자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것 정도밖에는 하는 일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왕과 나>에서 내시들이 파무를 한 뒤,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며칠째 내시들이 일을 안하니, 궐 안이 온통 먼지와 오물투성이로 변했고
왕명을 전달해 신하들을 소집하는 일도 어려워진 것이다.


궁녀와 마찬가지로 내시들 또한
궐 안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들이라는 걸,
<왕과 나>는 이 사건을 통해 제대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왕과 내시 사이의 갈등과 화합의 문제가
하나의 드라마 소재로서 가질 수 있는 가치를 입증해주었다.


그래서 좋았다.
늘 그렇듯, 역사 속에 감춰진 존재들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일은
역사드라마를 보는 최고의 재미이다.


더구나 전광렬과 전인화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2. 그러나...아역의 성장 이후.

<왕과 나>는 많은 비판들에 시달린다.
어릴 적 성종, 윤씨, 처선의 역할을 했던 아역배우들에 대한
지나친 사랑과 관심, 기대가
성장후의 모습으로 등장한 세 배우들에 의해 충족되지 않은 탓이다.
외모의 문제라든가 연기력의 문제...이런것들이 일차적이었다.
구혜선이 써클렌즈를 꼈네, 성종 혼자 일찍부터 난 덥수룩한 수염..
이런것들로 불만을 말하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것들은 드라마의 시청률에 크게 문제가 안된다.
연기력은 차츰 나아질 수 있고, 외모는 시간이 지나면 점점 아역들에 대한 잔상이 지워지면서
다시 적응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이들이 등장하고도 나는 한동안 <왕과 나>에 대한 충성도를 유지했었다.
차츰 나아질 것이라고, 아역과 비교해가며 그들을 단죄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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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들이 등장하고 나서부터 더 문제가 된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의 행동방식이 '매력'이 없다는 것.
조치겸과 한명회, 인수대비 사이에 생긴 대립각이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갈등고리를 만들어가는 반면에,
성종, 윤씨, 처선의 역할은 어릴 적보다도 미미하고 무기력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조치겸의 양자가 되어 내시부 최고의 권력을 갖고자 했던 야심가 내시인
정한수(안재모 분)가 처선에게 조치겸 양자의 자리를 빼앗긴 뒤
그와 적대세력이 되어 조치겸의 치부 비리내용을
인수대비(전인화 분)와 한명회 측에게 내놓는 대목이었다.

이 일로, 조치겸이 관리하고 있던
비자금 관리처가 발각되게 되는데
이때 양부 조치겸의 심부름으로 이 관리처에 들렀던 김처선(오만석 분)이
인수대비 앞에 잡혀오게 된다.
누가 시킨 일인지, 그게 무엇하는 곳인지를 추궁당하는 처선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양부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
그래서 피터지게 맞고 감옥에 갇힌다.

조치겸이 부정축재 의혹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성종은
어머니와 할머니 즉, 인수대비와 정희왕후(양미경 분)를 찾아가
조치겸이 그런 일을 했을 리 없다고 말하지만 별무 소득이 없다.


또한 처선이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씨는
처선이 있는 감옥에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가슴아파한다.
그리고는 성종을 찾아가 처선이 그랬을 리 없다고 도와달라고 하지만
성종은 내가 아직 수렴청정을 받는 중이라 힘이 없다고 말할 뿐이다.
그날 괜히 성종을 찾아갔다가 인수대비와 맞닥뜨려
그렇잖아도 윤씨를 마땅치 않아 하는 데다
처선과 윤씨의 관계를 의심하는 인수대비에게 찍힌다.


정리하자면,
조치겸과 인수대비를 둘러싼 갈등에서

1. 처선-맞고 감옥에 갇혀 있다.
2. 윤씨-처선을 찾아가 울고 성종에게 말해본다.(소용 없다.)
3. 성종-어머니와 할머니를 찾아가 말해본다.(소용없다.)

와 같은 일밖에 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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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러는 동안,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을까?

조치겸을 몰아내려는 것은 한명회 쪽이다.
한명회는 조치겸이 자신의 권세를 약화시키기 위해
윤씨 같은 후궁을 들이는 일에 앞장섰다는 것에 분노하여
조치겸과 대립하게 된 것이다.


또한 조치겸의 양자가 되고자 했으나
처선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 정한수도 시기심에
조치겸과 대립하게 되었다.

인수대비 역시 원칙주의자로서
마땅찮은 윤씨를 통해 성종의 마음이 어지럽혀지는 것도
한명회의 딸인 중전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도 못마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주도하고 있는 조치겸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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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겸은 한명회를 찾아가
예전에 예종을 독살하고 성종을 새 군주로 추대한 뒤
한명회에게 성종의 부원군 자리를 차지하게 해주는 대신
내시부에서 쫓겨난 조치겸의 뒤를 봐주기로 한 약정서를 근거로
한명회를 협박한다.
즉 예종을 독살하는 일에 한명회와 조치겸이 공모를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증서가 조치겸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명회는 그동안 정한수를 통해
이 문서를 훔쳐오게 했기 때문에 자신을 꿀릴 것이 없다며 발뺌한다.


여기까지 보면 조치겸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의 조치겸의 활약상이 또한번 빛나주셨다.
분명 한명회가 빼돌린 그 문서가
다시 조치겸의 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조치겸은 한명회에게 "대감이 가져간 것은 제가 모사해 놓은 가짜입니다."
라고말한다.

그리고는 한 괘짝 가득 똑같은 문서들이 들어있는 함을 준다.
여기에도 그 문서들이 있다고.
물론 집에도 얼마든지 있다고.

한명회는 좌절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진짜'는 어디에도 없다.
조치겸은 이미 그 문서를 받자 마자 원본은 태워없애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함 가득 있는 모든 문서는 가짜이자 원본이 된다.


아...이 얼마나 멋진가?


이렇게 하여 한명회 문제는 수습했고,
부정축재는, 사실상 왕실의 재정이 어려워
왕실 품위유지를 위해 고리대업을 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조치겸은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처선도 풀려나고
성종과 윤씨는 마냥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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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왕과 나>에서는 이제 다 컸으니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주셔야 할
성종-윤씨-처선이 여전히 '어른'들의 손에 놀아나고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들은 맨날 울고 짜고 나무 뒤에서 훔쳐보고 쓰러진 걸 업고 가고...
뭐 그런 짓만 한다.
그리하여 조치겸-인수대비를 둘러싼 긴장은 여전히 흥미롭지만
극의 반은 지리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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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지금 2주째 안보기 시작해서 모르겠지만,
<왕과 나>가 살아나려면
그들 세 사람의 역할이 좀더 능동적이고 유효성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앞으로 얼마나 잘 만들어내는가...에 앞으로 <왕과 나>의 성패가 달려있다.


<왕과 나>는 예전 <여인천하> 팀이 만든 드라마이다.
<여인천하>때의 중전과 후궁들을 둘러싼 팽팽한 권력다툼 이야기는
보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그 힘이 지금 기성층인 인수대비, 전광렬 등을 통해 다시 재현되고 있다면
이에 반해 젊은층의 삼인방의 이야기는 너무 수동적이어서 힘이 없다.
그들은 맨날 사랑이라는 감정을 빌미로 나약하고 무기력한 눈물만 흘릴 뿐이다.
그들까지도 이 권력다툼 속에서 제대로 역할을 해 줄때에야
<왕과 나>는 계속 시청자들을 매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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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BlogIcon coolya 2007/11/09 17:23

    쓰다보니 길어져서...<이산>의 매력은 다음 번에 따로..^^

  2. 맞아요. 저도 왕과나 보다가 너무 유치하고 지지부진해서..
    게다가 님은 참을 만 하다던 그 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 봐주기 괴로워서
    이산으로 선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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