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27 - [Mad for Drama/한국 드라마] - 흥행코드 읽기와 스토리텔링-아류작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이게 다 <겨울연가> 탓이다"
현재 한국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들을 망쳐놓은 것은,
배용준을, 문화부장관 후보의 갑절이상 부자로 만들어주고
'한류'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겨울연가>이다.
<겨울연가>가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얼마나 잘, 똑부러지게 따르고 있는지는
굳이 또 얘기 안해도 될 것이다.
분명 2002년에 이 드라마는
현재의 '일드'열풍을 일으키고 있듯 우리보다 한 수 위인 일본 드라마시장에까지 먹힐 수 있는
멜로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모범'사례였다.
그러나 '최대치'란, 다시 말해 '정점'을 찍고,
이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대단한 <겨울연가>는 사실,
<가을동화>의 신선함들을 훨씬 세련되게 포장한 것으로,
이미 <가을동화>의 여러 '상투적' 설정들이 한번 '복제'된 것이었다.
그래서 <겨울연가>는 <가을동화>만큼 한국땅에선 큰 반향을 못일으켰었다.
이것은 4계절 시리즈를 만든 윤석호 감독의
이후 두 작품, <여름향기>, <봄의왈츠>가
모두 '썰렁하게' 막을 내린 데에서 분명해졌다.
반면 일본에서는 <겨울연가>가 먼저 알려졌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보다 신선하게, 그러면서도 세련되게 첫선을 보일 수 있었다.
그 이후 여러 편의 '겨울연가류'의 드라마들이
일본에 우수수 알려지게 되고, 다 그럭저럭 좋은 반응을 일으키며
한류드라마를 형성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에서도 한국드라마의 그런 '전형'적 설정
-출생의 비밀, 불치병, 첫사랑, 기억상실증, 재벌2세,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등-은
진부함, 천편일률적임으로 비판받고 있다.
그러니 이미 <겨울연가>에서도 이 진부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한국에서야 오죽하랴.
그런데도 한국의 드라마는 '멜로'를 찍기로 하면
일단 '겨울연가류'를 제일 먼저 참고하고 있는 듯 했다.
최근 나온 한국의 '멜로코드' 드라마들 몇개를 살펴보자.
<못된사랑>, <사랑에 미치다>, <푸른물고기>.
이 세 작품은 2007년~2008년 초에 방영된 드라마로
이미연, 고소영, 이요원, 권상우, 박정철, 윤계상 등
우리나라에서 '초특급 스타 배우'로 불릴 만한
그것도 아주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돌아와 제대로 몸값 비싼 티를 낸
배우들이 출연한 '야심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이 드라마들은 모두 '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사랑에 미치다),
옛 남자의 처남이자 재벌2세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첼리스트(못된사랑),
부모의 반대로 헤어진 뒤 첫사랑을 기억 못하는 재벌2세 여자가
첫사랑을 다시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푸른물고기),
일단 설정은 매우 '극적'이지만, 그 다음이 없다.
저 설정에서 더 나올 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남자란 사실을 모르는 동안,
자신의 매형과 여자의 관계를 눈치 못채는 동안,
첫사랑이란 사실을 기억못하는 동안,
서로 바보짓 해 가며 사랑놀음, 감정싸움, 삼각 사각관계의 연애를 하는 것 뿐이다.
그러다가 '진실'이 밝혀진 뒤에는
그것때문에 괴로워하는 단계를 지리멸렬하게 그리다가
결국엔 사랑의 승리(?) 나부랭이로 끝을 맺게 된다.
더구나 그렇게도 극적이고 대단한 사랑얘기이지만,
정작 사랑에 관한 본질은 아무것도 통찰하지 못한 채
막연한 낭만적 사랑의 판타지를 피상적으로 그리는 데 그친다.
이런 껍데기밖에 없는 '멜로'는
그들이 그렇게도 '숭배'하는 '사랑', 그 하나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했으며
세상엔 사랑 외엔 아무것도 없는 듯 호도한다.
사랑은 위대하다.
사랑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연애는 자기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언제나 인간의 최고의 관심사다.
그러나 사랑은 스카이라운지에서 와인을 마시고,
놀이공원에서 솜사탕을 들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경치좋은 곳에서 드라이브를 즐기고,
아이스링크를 통째로 빌려 스케이트를 즐기고,
바닷가에서 '나 잡아 봐라'를 외치는 것으로만 설명되어선 안된다.
사랑은 서로 다른 두 명(이상)의 사람들이 만나
많은 차이들을 깨달아가고,
그것을 사랑이라는 더 큰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율해가는 과정이며,
드라마가 보여주는 '소비'적 데이트와는 전혀 무관하게도
의외의 장소, 상황, 행동,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놀라운 경험들이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일 거라 믿어지는) 감동의 이벤트가 주는 행복은
패밀리레스토랑의 음식 사진과 같은, 미니홈피 전시용 사랑일 뿐이다.
진짜 사랑은 소비되는 물질 속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연인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 사이의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 욕망, 상황, 상처 같은 것들이
'대체로' 행복한 어떤 상태로 고양되고 재구성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
진정 '사랑밖엔 난 몰라' 드라마가 되려면
그런 '진짜 사랑' 얘기를 '독하게', '아프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걸 제대로 보여주는 훌륭한 드라마들도 물론 그동안 여러 편 있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들을 몇개 꼽으라면,
<네멋대로 해라>, <거짓말>, <거침없는 사랑>,
<발리에서 생긴 일>, <굿바이 솔로>, <연애시대>같은 것들이다.
이 드라마들은, '진부'하다 치부되는 '삼각관계'나, '불륜'이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불치병'을
그 안에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결코 진부하지 않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자주 남들의 기준에 의해 통속화되지만,
이런 드라마들은 그런 자신을 다독이고 되돌아보게 하는, 참 곱씹을 수록 맛난 드라마들이다.
이 드라마들은 지금 사랑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드라마들이다.
이런 드라마들이 그래서 새롭게 사랑을 성찰할 기회를 준다면,
<못된 사랑>, <푸른물고기>, <사랑에 미치다>는
'통속화'를 부추기는 '남들의 기준'을 공고화한다.
현실에는 부재하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
실존하는 다양한 사랑들에게 열등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 열등감의 실체는 그들의 '위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며
그저 그들의 '위대한 소비', '위대한 고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망하길 잘 했다.
대중들은 그렇게도 똑똑하다.
대중들은 앞으로도 철저하게, 이런 드라마들을 응징할 것이다.
이런 드라마들은 절대로 다신 나와선 안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대략 세 가지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지독한 사랑의 성찰'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되는 길이다.
이것은 보통의 '내공'이 있는 제작진이 아니면 쉽지 않겠지만
가끔 한 편씩 세상에 나와줘서, 이 세상의 힘겨워하는 연인들에게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두번째는, '말랑말랑' '유쾌상쾌' 로맨틱 코메디로 승부하는 것이다.
비극적 멜로를 저따위 피상적 사랑얘기로 다루기 위해
기억상실증, 불치병, 출생의 비밀, 신분 차이 같은 걸 끌어들이지 말고
차라리 가벼운 사랑은 가벼운 사랑답게, 유들유들한 코메디와 곁들여 내놓는 것이다.
작년의 <커피프린스1호점>이나
몇년전 '겨울연가' 짝퉁 <여름향기>가 죽쑤고 있을 때
의외의 선전을 거둔 <옥탑방 고양이>처럼,
평범한 청춘들의 평범한 사랑 얘기를 '즐겁게' 그리는 것이다.
세번째는, '사랑밖에도 많이 알아'가 되는 것.
이것은 전반적인 한국 드라마가 가야할 방향과도 관계가 있다.
현재의 '미드', '일드'에 열광하는 드라마마니아들의 눈높이에
'사랑밖엔 난 몰라' 드라마는 절대 충족감을 안겨줄 수 없다.
사랑은, 분명 인간들의 최고의 관심사지만, 사랑 말고도 세상엔 흥미진진한 것들이 무척 많다.
현재의 사극열풍이나 의학드라마들의 연이은 성공은
이런 '고급' 드라마시청자들이 드라마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물론 긴 호흡으로 방영되는 동안 주인공들이 '행복한 짝짓기'를 하는 과정에
여전히 관심이 많다.
남의 연애사는 일상 속의 최고의 활력소니까.
그러나 매일같이 '답이 뻔한' 연애문제로 징징대는 친구의 상담역할은 참으로 못할 노릇이듯,
사랑, 연애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점령하는 드라마는 대중을 지치게 한다.
열심히 자기 삶을 살고,
그 속에서도 충분한 희노애락을 구성하면서
그 안에 사랑이 조금 더 희/노/애/락을 심화시키는 이야기.
그런 드라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이제 리조트의 이사나, 재벌 2세 실장님, 언제 작업하는 지 모르겠는 예술가 대신
수많은 진짜 직업인들이, 진짜 '꾼'들이,진짜 생활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일에
앞으로의 드라마들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런 점은 앞서 말한 첫번째, 두번째 대안들도
어느 정도는 지켜나가야 할 덕목이다.
<네멋대로 해라>에도 경이와 복수의 사랑에 관한 통찰 곁에는
언더음악가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스턴트맨의 성장스토리가 탄탄하게 들어있었다.
로맨틱코메디로서도 이 세번째의 특성을 잘 보여준 것이
<커피프린스1호점>의 '바리스타'라는 직업이고
<내이름은 김삼순>의 '파티쉐'가 아니던가?
각설-
원래, 이 글을 쓸 마음을 먹게 만든 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그저께, 드디어 <이산>(49회)에서
송연이가 정조에 대해, 대수가 송연이에 대해
사랑을 인정하고 밝혔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 하나가지고 또 이렇게 길게 주절거리다니...나도 병이다)
"나, 사실은 할 수만 있다면 (후궁이 되어서) 그분 곁에서 있어드리고 싶어."
"이제 전하 뒤에서 지켜보는 일 그만하면 안되겠니? 난 안돼?"
라는 송연과 대수의 '엇갈린 사랑'에 대한 고백의 씬은
아주 짧게, 스쳐가듯 등장했다.
둘 다 처음으로 하는 고백이었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시작한 지 6개월만이며, 극중에서 그들이 만난 지 십수년 만이다.
그동안 정조와 송연은 궐에서 마주치면 몇 마디의 농담을 주고받고
상대방에게만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최고로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힘들때 '누구보다 당신을 믿는다'는 말을 서로에게 건네는 것만으로
사랑을 표현해 왔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현재 월화 드라마의 최고 강자이며,
아예 다른 방송국에서도 이 드라마 종영때까지는
섣부른 '도전'을 할 엄두를 안낼 만큼
쉽게 꺾이지 않을 인기를 얻고 있다.
결국에 송연과 정조의 사랑 얘기는 앞으로 점점 비중이 늘어날테지만
여전히 더 궁금한 것은 둘의 사랑보다 정조의 노론 세력들과의 '파워게임'쪽이다.
사랑은 그 속에서 '순리대로' 감정을 키워나가
주인공들의 사랑 외의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한 부분이어도
충분히, 이 드라마는 매혹적일 것이다.
"이게 다 <겨울연가> 탓이다"
현재 한국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들을 망쳐놓은 것은,
배용준을, 문화부장관 후보의 갑절이상 부자로 만들어주고
'한류'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겨울연가>이다.
<겨울연가>가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얼마나 잘, 똑부러지게 따르고 있는지는
굳이 또 얘기 안해도 될 것이다.
분명 2002년에 이 드라마는
현재의 '일드'열풍을 일으키고 있듯 우리보다 한 수 위인 일본 드라마시장에까지 먹힐 수 있는
멜로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모범'사례였다.
그러나 '최대치'란, 다시 말해 '정점'을 찍고,
이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대단한 <겨울연가>는 사실,
<가을동화>의 신선함들을 훨씬 세련되게 포장한 것으로,
이미 <가을동화>의 여러 '상투적' 설정들이 한번 '복제'된 것이었다.
그래서 <겨울연가>는 <가을동화>만큼 한국땅에선 큰 반향을 못일으켰었다.
이것은 4계절 시리즈를 만든 윤석호 감독의
이후 두 작품, <여름향기>, <봄의왈츠>가
모두 '썰렁하게' 막을 내린 데에서 분명해졌다.
반면 일본에서는 <겨울연가>가 먼저 알려졌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보다 신선하게, 그러면서도 세련되게 첫선을 보일 수 있었다.
그 이후 여러 편의 '겨울연가류'의 드라마들이
일본에 우수수 알려지게 되고, 다 그럭저럭 좋은 반응을 일으키며
한류드라마를 형성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에서도 한국드라마의 그런 '전형'적 설정
-출생의 비밀, 불치병, 첫사랑, 기억상실증, 재벌2세,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등-은
진부함, 천편일률적임으로 비판받고 있다.
그러니 이미 <겨울연가>에서도 이 진부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한국에서야 오죽하랴.
그런데도 한국의 드라마는 '멜로'를 찍기로 하면
일단 '겨울연가류'를 제일 먼저 참고하고 있는 듯 했다.
최근 나온 한국의 '멜로코드' 드라마들 몇개를 살펴보자.
<못된사랑>, <사랑에 미치다>, <푸른물고기>.
이 세 작품은 2007년~2008년 초에 방영된 드라마로
이미연, 고소영, 이요원, 권상우, 박정철, 윤계상 등
우리나라에서 '초특급 스타 배우'로 불릴 만한
그것도 아주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돌아와 제대로 몸값 비싼 티를 낸
배우들이 출연한 '야심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이 드라마들은 모두 '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사랑에 미치다),
옛 남자의 처남이자 재벌2세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첼리스트(못된사랑),
부모의 반대로 헤어진 뒤 첫사랑을 기억 못하는 재벌2세 여자가
첫사랑을 다시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푸른물고기),
일단 설정은 매우 '극적'이지만, 그 다음이 없다.
저 설정에서 더 나올 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남자란 사실을 모르는 동안,
자신의 매형과 여자의 관계를 눈치 못채는 동안,
첫사랑이란 사실을 기억못하는 동안,
서로 바보짓 해 가며 사랑놀음, 감정싸움, 삼각 사각관계의 연애를 하는 것 뿐이다.
그러다가 '진실'이 밝혀진 뒤에는
그것때문에 괴로워하는 단계를 지리멸렬하게 그리다가
결국엔 사랑의 승리(?) 나부랭이로 끝을 맺게 된다.
더구나 그렇게도 극적이고 대단한 사랑얘기이지만,
정작 사랑에 관한 본질은 아무것도 통찰하지 못한 채
막연한 낭만적 사랑의 판타지를 피상적으로 그리는 데 그친다.
이런 껍데기밖에 없는 '멜로'는
그들이 그렇게도 '숭배'하는 '사랑', 그 하나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했으며
세상엔 사랑 외엔 아무것도 없는 듯 호도한다.
사랑은 위대하다.
사랑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연애는 자기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언제나 인간의 최고의 관심사다.
그러나 사랑은 스카이라운지에서 와인을 마시고,
놀이공원에서 솜사탕을 들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경치좋은 곳에서 드라이브를 즐기고,
아이스링크를 통째로 빌려 스케이트를 즐기고,
바닷가에서 '나 잡아 봐라'를 외치는 것으로만 설명되어선 안된다.
사랑은 서로 다른 두 명(이상)의 사람들이 만나
많은 차이들을 깨달아가고,
그것을 사랑이라는 더 큰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율해가는 과정이며,
드라마가 보여주는 '소비'적 데이트와는 전혀 무관하게도
의외의 장소, 상황, 행동,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놀라운 경험들이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일 거라 믿어지는) 감동의 이벤트가 주는 행복은
패밀리레스토랑의 음식 사진과 같은, 미니홈피 전시용 사랑일 뿐이다.
진짜 사랑은 소비되는 물질 속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연인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 사이의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 욕망, 상황, 상처 같은 것들이
'대체로' 행복한 어떤 상태로 고양되고 재구성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
진정 '사랑밖엔 난 몰라' 드라마가 되려면
그런 '진짜 사랑' 얘기를 '독하게', '아프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걸 제대로 보여주는 훌륭한 드라마들도 물론 그동안 여러 편 있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들을 몇개 꼽으라면,
<네멋대로 해라>, <거짓말>, <거침없는 사랑>,
<발리에서 생긴 일>, <굿바이 솔로>, <연애시대>같은 것들이다.
이 드라마들은, '진부'하다 치부되는 '삼각관계'나, '불륜'이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불치병'을
그 안에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결코 진부하지 않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자주 남들의 기준에 의해 통속화되지만,
이런 드라마들은 그런 자신을 다독이고 되돌아보게 하는, 참 곱씹을 수록 맛난 드라마들이다.
이 드라마들은 지금 사랑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드라마들이다.
이런 드라마들이 그래서 새롭게 사랑을 성찰할 기회를 준다면,
<못된 사랑>, <푸른물고기>, <사랑에 미치다>는
'통속화'를 부추기는 '남들의 기준'을 공고화한다.
현실에는 부재하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
실존하는 다양한 사랑들에게 열등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 열등감의 실체는 그들의 '위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며
그저 그들의 '위대한 소비', '위대한 고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망하길 잘 했다.
대중들은 그렇게도 똑똑하다.
대중들은 앞으로도 철저하게, 이런 드라마들을 응징할 것이다.
이런 드라마들은 절대로 다신 나와선 안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대략 세 가지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지독한 사랑의 성찰'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되는 길이다.
이것은 보통의 '내공'이 있는 제작진이 아니면 쉽지 않겠지만
가끔 한 편씩 세상에 나와줘서, 이 세상의 힘겨워하는 연인들에게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두번째는, '말랑말랑' '유쾌상쾌' 로맨틱 코메디로 승부하는 것이다.
비극적 멜로를 저따위 피상적 사랑얘기로 다루기 위해
기억상실증, 불치병, 출생의 비밀, 신분 차이 같은 걸 끌어들이지 말고
차라리 가벼운 사랑은 가벼운 사랑답게, 유들유들한 코메디와 곁들여 내놓는 것이다.
작년의 <커피프린스1호점>이나
몇년전 '겨울연가' 짝퉁 <여름향기>가 죽쑤고 있을 때
의외의 선전을 거둔 <옥탑방 고양이>처럼,
평범한 청춘들의 평범한 사랑 얘기를 '즐겁게' 그리는 것이다.
세번째는, '사랑밖에도 많이 알아'가 되는 것.
이것은 전반적인 한국 드라마가 가야할 방향과도 관계가 있다.
현재의 '미드', '일드'에 열광하는 드라마마니아들의 눈높이에
'사랑밖엔 난 몰라' 드라마는 절대 충족감을 안겨줄 수 없다.
사랑은, 분명 인간들의 최고의 관심사지만, 사랑 말고도 세상엔 흥미진진한 것들이 무척 많다.
현재의 사극열풍이나 의학드라마들의 연이은 성공은
이런 '고급' 드라마시청자들이 드라마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물론 긴 호흡으로 방영되는 동안 주인공들이 '행복한 짝짓기'를 하는 과정에
여전히 관심이 많다.
남의 연애사는 일상 속의 최고의 활력소니까.
그러나 매일같이 '답이 뻔한' 연애문제로 징징대는 친구의 상담역할은 참으로 못할 노릇이듯,
사랑, 연애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점령하는 드라마는 대중을 지치게 한다.
열심히 자기 삶을 살고,
그 속에서도 충분한 희노애락을 구성하면서
그 안에 사랑이 조금 더 희/노/애/락을 심화시키는 이야기.
그런 드라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이제 리조트의 이사나, 재벌 2세 실장님, 언제 작업하는 지 모르겠는 예술가 대신
수많은 진짜 직업인들이, 진짜 '꾼'들이,진짜 생활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일에
앞으로의 드라마들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런 점은 앞서 말한 첫번째, 두번째 대안들도
어느 정도는 지켜나가야 할 덕목이다.
<네멋대로 해라>에도 경이와 복수의 사랑에 관한 통찰 곁에는
언더음악가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스턴트맨의 성장스토리가 탄탄하게 들어있었다.
로맨틱코메디로서도 이 세번째의 특성을 잘 보여준 것이
<커피프린스1호점>의 '바리스타'라는 직업이고
<내이름은 김삼순>의 '파티쉐'가 아니던가?
각설-
원래, 이 글을 쓸 마음을 먹게 만든 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그저께, 드디어 <이산>(49회)에서
송연이가 정조에 대해, 대수가 송연이에 대해
사랑을 인정하고 밝혔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 하나가지고 또 이렇게 길게 주절거리다니...나도 병이다)
"나, 사실은 할 수만 있다면 (후궁이 되어서) 그분 곁에서 있어드리고 싶어."
"이제 전하 뒤에서 지켜보는 일 그만하면 안되겠니? 난 안돼?"
라는 송연과 대수의 '엇갈린 사랑'에 대한 고백의 씬은
아주 짧게, 스쳐가듯 등장했다.
둘 다 처음으로 하는 고백이었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시작한 지 6개월만이며, 극중에서 그들이 만난 지 십수년 만이다.
그동안 정조와 송연은 궐에서 마주치면 몇 마디의 농담을 주고받고
상대방에게만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최고로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힘들때 '누구보다 당신을 믿는다'는 말을 서로에게 건네는 것만으로
사랑을 표현해 왔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현재 월화 드라마의 최고 강자이며,
아예 다른 방송국에서도 이 드라마 종영때까지는
섣부른 '도전'을 할 엄두를 안낼 만큼
쉽게 꺾이지 않을 인기를 얻고 있다.
결국에 송연과 정조의 사랑 얘기는 앞으로 점점 비중이 늘어날테지만
여전히 더 궁금한 것은 둘의 사랑보다 정조의 노론 세력들과의 '파워게임'쪽이다.
사랑은 그 속에서 '순리대로' 감정을 키워나가
주인공들의 사랑 외의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한 부분이어도
충분히, 이 드라마는 매혹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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