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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초반은 역시 견디기 힘들었다.

말도 안되는 우연의 연속,

선우환(이승기 분)의 말도 안되는 쓰레기 짓,

백성희(김미숙 분)의 말도 안되는 악한 계모상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문의 영광>이 끝난 것을 통탄하며, 어쩌다 이런 드라마가 후속작인가,

내 주말 밤의 낙은 이제 없나..생각했다.

 

그런데 좀 지난 뒤, 정말 볼 게 없어서 우연히 다시 틀어 보게 된 <찬란한 유산>은

생각보다 '정상'을 찾아 있었다.

 

<1박2일>을 통해 다져진 '건전한 청년' 이미지의 이승기나

<봄의 왈츠>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가진 외양때문에 늘 '기대주'가 되어왔던 한효주도 물론 매력적이었지만

사실 그 두 사람의 캐릭터는 닳고 닳은, 드라마에서 써먹을 만큼 써먹은

그런 캐릭터였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우는' 고은성(한효주 분)이나

인간 말종에서 차츰 인간다움을 회복해 가는 선우환, 뭐 새로운가?

나쁜 남자가 못되게 굴다가 주인공 캔디 여성에게 빠지고, 그러면서 정신 차리는.

흔하디 흔한 드라마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신선하고 재미있는 것은

승미(문채원 분)과 선우환의 엄마 오영숙(유지인 분), 선우정(한예원 분)의 '인간다움'이다.

그들은 악역이며 은성의 '장애물'이지만 그들 중 누구도 미워하긴 힘들다.

 

영숙과 정은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인 은성에 의해

할머니의 유산을 모두 빼앗겼다.

그러나 그들이 은성을 미워하는 수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미움정도이다.

할머니가 손자 손녀와 며느리를 다 모른척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웬 듣보잡에게 다 주겠다고 유언장을 고쳤다.

누가 그런 듣보잡을 고운 눈으로 볼 수 있겠는가?

그렇게 미워하다가도, 동생 은우를 잃어버렸고, 가스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는

은성의 개인사 앞에서는 "쟨 왜 인생이 저렇게 기구해?"하며

투덜거리듯 그녀를 딱해한다.

 

그들이 은성을 완전히 내치는 순간은

성희로부터 은성이 할머니에게 고의적으로 접근했으며

은성이란 아이가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않는

무서운 아이라는 모함을 듣고 난 뒤이다.

이들은 너무도 순수해서, 성희같은 지략가의 모략 앞에서

쉽게 넘어갔을 뿐, 뼛속부터 못된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은 은성이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얘기에

소름끼쳐 할 뿐이다.

영숙의 친구인 성희의 말을 굴러들어온 돌 은성의 말보다 믿는 건 당연하니까.

 

한편 승미는, 은성의 안타고니스트이지만 너무나 설득력 있는 악역이었다.

그녀의 목표는 딱 하나이다. 선우환.

그녀는 그를 얻겠다는 생각 하나밖에 없지만 

그러기 위해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의 패턴들은

우리가 흔히 트렌디 드마라들에서 보아왔던 무조건 나쁘고, 유치하고, 바닥까지 드러내는

그런 악역의 행동들이 아니다.

(그녀의 비음 섞인 굵은 목소리에도 끌리고 아직 정돈되지 않은 얼굴선도 사랑스럽다.

<바람의 화원>에서 봤을 때부터, 내가 김아중 이후 남몰래 끌려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엄마 백성희의 끝간 데 모르는 돈과 영달에 대한 욕망을

끊임없이 비난한다. "엄마, 어떻게 그렇게 까지 할 수 있어"라면서.

그런데 그럴 때 백성희의 대응은

"그래, 내가 못된 년이다. 그렇지만, 너, 환이를 생각해봐라. 내 선택을 무조건 비난할 수 있어?"

라는 것이다.

그러면 승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성희가 만들어 놓은 이 악랄한 상황을

그저 눈물흘리며 받아들인다.

 

죽지 않은 아버지를 죽은 것으로 만드는 것, 그럼으로써 사망보험금을 은성 몰래 다 가로챈것,

먼 지방 땅에 은성의 동생(은우)을 버린 것, 은성에겐 단 한푼도 나눠주지 않고 자기네만을 위한 돈을 감춰뒀다가 그럴듯한 아파트를 구해 사는 것...이런 성희의 행동들에 의해

은성은 끝간데 모르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반면 승미는 엄마의 대놓고 하는 악행 덕에 안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며,

환과의 관계도 원하는 대로 지속할 수 있다.

그때문에 승미는 정작 엄마의 악행 앞에서 비난과 눈물을 일삼으면서도

결국은 엄마가 만들어 놓은 '비열한' 상황 속에 함몰되고 만다.

 

승미는 차츰 더 악해진다.

왜냐하면 환이 은성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를 얻기 위해서, 엄마를 비난하면서도 엄마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던 승미는

그를 얻기 위해서, 엄마와 공조하여 은성을 환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거짓말과 모함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행동 뒤에도 그녀는 너무나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린다.

 

누가 승미를 욕할 수 있을까.

그녀의 악행은, 간절히 바라는 한 사람과 그 사람의 마음을 위해 일어난 것들이다.

우리들 모두,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선

그녀 정도의 거짓말과 모함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양심때문에 생각은 해도 실행은 못할테지만.)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가진 양심 수준으로 끊임없이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괴로워한다.

그래서 그녀를 보며 '저런 못된 년'이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해서 이 드라마를 바라보면

그녀는 한없이 가련하고 불쌍하다.

마음을 주지 않는 한 남자때문에 그녀가 겪는 가슴앓이.

그래서 그녀는 악역임에도 미움을 받기보단 안쓰럽다.

 

이러한 면들 때문에 이 드라마는 초반의 무리수들에도 불구하고

'개연성'이 있는 드라마로 인정받는다.

성희의 돈에 대한 욕망, 승미의 환에 대한 욕망,

세상 물정 모른 채 살던 부르조아 영숙과 정의 단순성은

악역들 어느 하나 무조건 미워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들은, 그야말로 '그럴 만 하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막장드라마'로 여기지 않게 만든다.

 

 

뱀발)씨X새 주말 드라마는 <가문의 영광>에 이어서

계속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그리려 한다.

'진성설농탕'으로 나오는 '신선설농탕'이

실제로 그렇게 노숙자들, 독거노인 들에게 지속적인 자원봉사를 하고

혈족계승이 아닌 기업이념과 윤리에 따라 기업을 운영할 새로운 후계자를 양성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것에 우리가 속는 것은 조심할 일이다.

 

그러나 <가문의 영광>이 그랬듯

<찬란한 유산> 역시 기업과 재벌들을 '계몽'할 수 있다면 좋은 드라마이다.

이 두 드라마에서처럼 유산은 자식, 손자라서 물려주는 것이어선 안된다.

도덕성과 윤리가 기업이윤보다 우선시되는 기업, 재벌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에게 환원해야 한다.

 

그것이 안된다면 적어도...이런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는 사실, 기업이 이럴 수도 있다는 정도는

이 시대의 수많은 (실제/잠재)노동자들이 이러한 드라마들을 통해 모두 알아야 한다.

회사가 어려우면 회사를 살리기 위해선 노동자를 해고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논리를

평생 '사측'이 될 가능성이 없음에도 어려서부터 '진리'로 체화해 온 우리들은

이런 드라마를 통해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쌍용자동차의 직원, 노동자들이 총고용 보장과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일이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그들의 투쟁이 지지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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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촌스럽게, '가문'이라니?



SBS에서 주말 10시에 방영했던 <가문의 영광>이 막을 내렸다.

총 54회에 걸친 꽤 긴 호흡의 드라마였는데,

내가 재미를 붙여 보기 시작한 것은 한 중반쯤, 20회 즈음이 넘은 이후였다.



처음에 관심이 안 갔던 이유는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벌집 선남선녀들의 짝짓기 얘기인듯한데

제목까지 '가문'의 '영광'이라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주제를 담으려 하는 것인가...싶었다.



지금, 한국에서 '가문'따위는 결국 부르주아 계층 내부에서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나 동원되는 개념이 아닌가?

재벌들이 모자라든 잘났든 제 자식들에게 어떻게든 자신의 기업을 물려주는 일,

그 안이 썩고 곪았어도 자기끼리는 서로 잘났다며 추켜세우고 감싸주는 일,

그러는 과정에서 그 외부에 대해 그들이 보여주는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가족주의...

뭐, 그런것들밖에 상상이 안되는 어휘였기 때문이다, '가문'이란.



2. 연애를 통해 '재혼'하는 네 커플



주연급 남녀들의 러브스토리도 딱히 새롭지 않다.


대성건설 하사장(서인석 분)의 세 자녀-수영(전노민 분), 태영(김성민 분), 단아(윤정희 분)가


적당한 '갈등', '혼사장애'를 딛고 결혼에 골인하는 이야기이다.



이란성 쌍둥이인 수영과 태영은 둘 다 이혼남이다.

드라마 초반이 하회장(신구 분)의 아버지의 임종에서 시작되는데,

증조부의 장례를 치뤄야 하는 날,

수영은 아내의 불륜으로, 태영은 스스로가 바람을 피우다 들통나서 간통죄로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 수영은 자신보다 열 몇살이 어린 고아 아가씨이자 자신의 회사 청소부 직원인 진아(신다은 분)와 사랑에 빠지고,

태영은 자신이 간통죄로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보게 된 가난한집 똑순이 여경 나말순(마야 분)과 티격태격하다 연애를 시작한다.



그들에게 닥치는 혼사장애는 흔한 것들이다.

신분의 차이, 계급의 차이, 나이의 차이.

거기에 태영의 바람기와 불임의 몸인 진아의 '종부'로서의 부족한 (생물학적)자질 정도가 덧붙여진다.

그러나 적당한 갈등과 장애 끝에 그들은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에 골인한다.



한편 막내딸인 단아도 결혼 경력이 있다.

그러나 결혼한 날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과거의 유물과 같은 '청상과부'로, 그녀가 일하는 학교의 박물관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졸부 집안의 아들로 카리스마 넘치는 냉혈한,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 주인공 같은(특히 그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당신, --였군.--였나?'말투, 딱 HR스탈이다^^;)

남자 이강석(박시후 분)과

연극으로 시작된 가짜 연애를 하다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혼사장애는 단아의 '서방 잡아먹을 팔자'.

강석의 부모는 단아가 강석까지 잡아먹을까봐 극구 결혼을 반대하지만,

강석이 자초한 위기의 순간에 목숨을 건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 덕분에

강석의 부모는 결국 두 사람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내용들은 어떻게 보면 신선할 것 별로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정도는 이미 이 지점에서도 특이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하사장의 세 자녀가 모두 '재혼'을 한다는 설정.



심지어 이 드라마에서는 하사장조차도 재혼을 한다.

30년 전에 상처한 하사장은 같은 회사의 홍보실장이자 후배인 이영인(나영희 분)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미 두 번 이혼한 경험이 있는 영인은 결혼을 두려워했으나

하사장의 아이를 갖게 되고 낙태를 하려하지만

하사장네 가족의 따뜻한 마음에 감복해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3. 새로운 가문, '패치워크' 가족되기



즉, 이 드라마는 네 커플의 재혼이야기이다.

이들이 각각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드라마 트루기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이 재혼이기 때문에,

이 하사장네 '가문'은 매우 복잡한 가족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

이 드라마만의 독특한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영인은 갑자기 30대의 자식이 셋이나 생겼고, 손자가 된 동동이보다 9살이나 어린 아이를 낳는다.

태영과 결혼한 말순은 태영의 전처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인 동동으로부터

"우리 아빠, 바람기 많은 건 아시고 결혼할 결심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으며 결혼에 골인한다.

종손인 수영은 진아가 불임의 몸이기 때문에 결혼 후 아이를 공개입양한다.



이처럼 이들은 고상하고 족보있는 '장성 하씨 가문'이라고 하기엔 꽤나 '콩가루' 스타일의 가족인 것이다.

족, 순혈주의같은 것은 도무지 지키기 힘든 그런 가족.

그러나 그런 겉으로 보기에 '콩가루'인 이 가족은,

가족간의 연대, 배려, 소통을 통해 그 어느 '혈통 좋은' 가문보다 훌륭하게 '가문'을 이루며 살아간다.



종부인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결혼을 거부하는 진아에게

이 사실을 아는 하회장과 영인, 그리고 수영은 '가문은 꼭 혈통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손을 낳을 수 없다는 사실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진아의 그 '진실함'만으로

종부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며 결혼을 적극 추진한다.

그리고는 아이를 공개입양한다.



한편, 영인(나영희 분)은 '쿨한 새로운 종부상'을 제대로 구현한다.

종부가 되었지만 그녀는 집안일보다는 회사일에서 훨씬 두각을 나타내고,

그러나 집안의 대소사에 대해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정치적 올바름의 감각으로

성별로 등급이 나뉘어져 있던 식사 문화를 세대별로 나눈다거나

집안일에서 남성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등

가문의 고루한 관습을 적당히 개혁하면서도,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노고와 고민을 해결해 주는 등

그 가족 내부의 소통에는 가장 주도적 인물로 역할한다.



또한 그러한 그녀를 가족들은 제대로 이해하고 대우해준다.

아이를 낳은 뒤부터는 집안일을 거들 사람이 부족하니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때

시아버지 하회장과 남편 하사장은 그녀처럼 유능한 사람을 집에 두는 것도 낭비이며,

아이 낳은 뒤 그녀처럼 일 좋아하는 사람은 집에만 있으면 산후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며 반대한다.

그러면서 하회장이 며느리 대신 아이를 돌본다.



태영과 말순은 어른스러운 아홉살 짜리 아들 동동이에게서

매일같이 훈화말씀과 반성문 숙제를 받으며 철이 들어가고,

동동은 의로운 경찰인 새엄마가 자랑스러워서 학교에 가면 자랑하기 바쁘다.

새로 태어난 동생도 누구보다 열심히 보살피며, 자신의 적성이 '신생아 돌보기'임을 자처한다.



이처럼 새롭게 맺어진 가족들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 더 훌륭하게 가족을 이루며 사는 모습은(그것도 한꺼번에 네 커플이나!!!)

기존의 드라마들이 보여주지 않던 미덕이었다.



이들 하씨 집안 '가족되기'의 장애는

대부분 사랑과 결혼을 결심하는 당사자들 내부에서 비롯된 갈등이다.

자신이 부족해서, 상대방에게 너무 미안해서, 차마 마음을 못 연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고민을 딛고 결혼을 결심하면 가족들은 그 결정을 무조건 받아들인다.



보통 드라마의 혼사장애는 당사자들 스스로의 갈등이 아니라, 부모세대의 반대에서 비롯된다.

정말 지긋지긋하지 않은가....머리싸매고 드러누워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

(최근 배우 윤여정이 <여우비>라는 다큐에서 이런 드라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도 그런 시어머니 역할이 나 스스로도 지겨워서 아들에게 그랬어요. 네가 어떤 여자를 데려와도 난 절대로 반대 안하겠다고요.")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시대착오적이기는 커녕, 훨씬 이 시대에 걸맞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결혼이나 가족맺기에서 제일 중요한 의사결정의 주체는 본인들이라는 것.

그렇게 해서 맺어진 새로운 가족은 서로의 개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노력하여 맞춰나간다.

엘리자베트 벡이 말한 '패치워크' 가족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4.판타지라도 어디냐-재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외에도 이 드라마의 미덕은 아주 많다.

하회장 가족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현하는 재벌이다.

그들은 강석이 회사를 인수합병하려 했을때, 회사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직원들의 고용보장 한 가지만을 요구한다.

또한 하회장은 자신의 재산을, 평생을 자신의 집에서 일한 몸종 할머니 삼월에게만 남겨주고

자신의 자녀들, 손자들에게는 한푼의 재산도 상속시키지 않는다.

자신의 나머지 재산은 모두 회사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내 놓는다.



이러한 하회장 집안의 정신에 동화되어 가는

졸부사돈 이천갑(강석의 아버지, 연규진 분)도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

졸부가 되었지만 넝마주이 출신인 탓에 늘 '가문'과 '족보'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졌던 천갑과

식모 출신으로 허영심 많고 무식하긴 해도 정 많고 순수한 천갑의 처 영자는

그들의 눈에 비친 '족보있는 집안', '뼈대 있는 가문'의 대명사인 하회장 일가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면서 돈이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돈을 제대로 쓰는 법을 차츰 깨달아가는 것이다.



강석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과정에서 자살하게 만든 한 재벌가의 아들 문제로 사회에서 지탄을 받게 되자
자신의 재산을 내놓는다는 걸 발표하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아들 강석에게 말하자,

"정말 사회에 환원하고 싶으시면, 익명으로 하세요. 저 구할 생각으로 하지 마시구요."라며 아버지의 생각을 조금 더 교정한다.

천갑은 그러자 "그래, 내가 또 '거래'를 하려 들었구나. 여전히 장삿꾼 기질을 못버렸어."라며 반성한다.






물론 꿈같은 스토리이다. 지나치게 착한 드라마다.

드라마의 막판으로 갈 수록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착해져서 약간은 보기 민망할 지경이었다.

이 세상에 이렇게 욕심없는, 이렇게 착하기만 한 자본가가 있겠는가?

그러나 어차피 꿈을 그리는 게 드라마라면,

재벌이 "내 돈을 거절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라며

내숭9단의 재투성이 아가씨를 선택해

신분상승시켜 준다는 꿈보다는 바람직하지 않은가?



뭐...이 드라마를 과연 재벌들이 봤을까는 의심스럽지만(시청률은 꽤 높아 늘 주말시청률 1~2위를 다퉜다),

봤다면, 분명 자본가들에게 '계몽'이 될만한 드라마임은 분명하다.




5. 하씨 핏줄 아닌 사람들이 성취해 낸 하씨 가문의 영광



그런데...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반전.

이 드라마는 종반부에 한 가지 더 놀라운 진실을 밝힘으로써

또 한번 '가문의 영광'의 새로운 의미를 구성해냈다.



그것은 바로, 하회장(신구 분)이 사실은 하씨 집안의 자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회장의 모친은 하회장의 아버지가 일제 강제징용에 끌려간 사이

동네의 부랑배에게 겁욕을 당해서 하회장을 임신했던 것.

하회장의 부친은 징용때 끌려가서 불임의 몸으로 돌아왔었다.

몸을 더럽힌 종부인 하회장의 모친은 하회장을 낳은 뒤 자살을 했고,

그런 하회장은 부친의 극진한 사랑으로 자라났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어렸을 때 알게 된 하회장은 '자신은 더러운 피이다. 하씨 집안 사람이 아니다'며

집을 나가려 했지만, 그때마다 부친은 하회장을 붙잡아 안으며 말했다고 했다.

'너는 내가 사랑한 아내의 자식이니 내 자식이다. 내 자식이니 하씨 집안 종손이다.'라고.

그 뒤로 자신은 하씨 집안 사람이라는 사실을 더이상 의심하지 않았다고

하회장은 모든 가족을 불러 앉혀놓고 말한다.

(이러한 '비밀'은 작가가 처음 드라마를 구상할때부터 마련해놓았던 장치였다.

그만큼 처음부터 이러한 주제의식은 작가에 의해 면밀히 의도되고 계획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특히 훌륭하다.)



즉,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사실 그 누구도 하씨 집안의 피를 이어받지 않았던 것.

(하회장의 늦둥이 여동생(박현숙 분) 도 물론 업둥이다.)

그들은 그러한 하회장의 말을 엄숙히 듣고난 뒤 충격을 받기는 하지만,

다음날에도 매일 아침 올리던 상식을 올리며 하씨 가문의 조상들에게 예를 다한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매우 독특한 가치관을 가진, 정치적으로 올바른 드라마다.

가문, 가족을 이루는 힘이 이처럼 인간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연대의식이라면,

오늘날의 가족주의가 가진 수많은 병폐들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피로 맺어지지 않아도 훨씬 더 좋은 '가문'으로, '영광'을 누리며 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가 협찬 때문에 거론한다는 혐의는 있음에도

실버타운을 건설해서 그 안에서 노인들이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준 것도 무척 인상깊었다.)




그러니, 이 드라마를 보며 우린 이런 정도의 생각은 기억해 둘 수 있지 않을까?

"가문이란, 그 가문 내부의 사람들을 외부로부터 배타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라
더 많은 외부의 사람들까지 새롭게 연결하기 위한 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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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 2009/05/05 23:56

    이렇게 신기하고 신통한 드라마도 다 있군요. 저는 제목만 듣고 영화를 드라마로 만든 것인 줄로만 알았지 뭡니까. 요즘 <사랑해, 울지마>를 보면 속이 터져 가고 있던 저로서는 정말 반가운 드라마입니다. 왜 시어머니들, 아니 어머니 세대들은 다 그렇게 비이성적이고, 전제군주적이며, 이기적인 존재들로 그려지는 것일까요.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지 정말 궁금하고 동의 안 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먼저, 나는 이 드라마의 작가인 홍자매님들의 <태릉선수촌>을
격하게 아꼈던 시청자임을 미리 밝혀둔다.
또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를 연기하는 김명민씨(및 강마에)에 대한 무한한애정과 믿음도
결코 변치 않음도 밝혀둔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현재 <태릉선수촌>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인기와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그럼에도, <태릉선수촌>에 비하면, 참으로 질나쁜 드라마이다.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도 많으나...글을 쓰다, 쓰다, 다 버리고 간략하게만 말하련다.
구구절절 말하려니 내 입만 아파서리.
그런데 왜 굳이 쓰냐고? 또 안쓰기엔 속터지는 내 심정을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리.

 1. 갈등의 요인과 해결의 요소가 모두 '외부'에 있다.

 처음의 '똥덩어리'같은 실력 없는 연주자들을 모아 교향악단을 만들어
그들이 연주에서 성공하는 스토리를 기획한다 했을때
충분히 승산있다고 보았다.
<공포의 외인구단>류의 이야기는 언제나 대중들이 좋아하는 '매력적'인 스토리이니까.
약간의 <노다메 칸타빌레>삘도 났으나, 직접 드라마가 시작하고 보니 표절의 차원으로 보이기보단
역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토리가 또 하나 한국판으로 탄생하는구나 정도로 여길만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항상 좋아하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 열심히 해서 성공한다"는
'재투성이 아가씨의 왕비간택' 스토리 류를 만들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이다.
못난 주인공이 마지막엔 성공하게 되리란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그 과정이 중요하다.
그 과정이 중요하단 건 무엇인가?
매번 그 과정으로 선택된 것이 새로운 소재여야 하는 것이다.
야구로 <공포의 외인구단>을 만들고, 커피로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만들듯
<베토벤 바이러스>는 음악으로 그걸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음악은 거의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처음의 '똥덩어리'라는 설정이 출신, 계급, 직업, 학벌등을 통해서이거나
건강상의 문제, 그리고 (가장 그나마 직접적인) 강마에의 실력이 엉망이라는 평가 등을 통해 드러나지만
막상 이들이 교향악단이 된 이후, 강마에의 가르침(영화 <미션>비디오 보여주며 느낌을 살려보라는)
한번 받더니 그 뒤로는 음악적 성장에는 하나의 걸림돌도 없어보인다.
매번 연주때마다 참 잘도 성공적으로 마치니 말이다.
(특히 13회때에는 갑자기 작은 건우가 바꾼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초견'에서부터
CD틀어놓은 수준으로 하는 코미디까지)

 
좋다...이 부분을, 그들이 그동안 출신, 계급, 직업, 학벌 등 때문에
그들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 그랬던 거라 치고,
그들의 훌륭한 음악적 성장이 생각보다 '스피디'하게 성취된 거라고 넘어가주자.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드라마가 아직도 10 여회나 남아있었다는 데 있다.
이 남은 분량의 드라마를 무슨 '역경'으로 채울 수가 있겠는가?
음악적으로 이들은 아무런 장애나 고뇌가 없는데말이다.(특히 작은 건우는 진짜'천재'다!!!ㅡ.ㅡ;)

 

그래서 동원된 것이 이들의 '성공'적인 연주를 막는 외부적 사건들이다.
연구단원과 정식단원들, 합창단원들 사이의 학벌, 매너 관련 다툼이나,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수재민이 들이닥쳐 시비를 건다거나,
강마에의 진심을 모를 수가 없을 만큼 많은 강마에의 '애정'과 '배려'를 받은 단원들(특히 연구단원)이
새삼스레 강마에의 '말뽄새'를 가지고 오해하고, 격렬히 싸워가며 사과요구를 한다거나,
공금횡령문제로 이들을 내쫓으라는 시장의 종용이나,
두루미를 두고 강마에와 작은건우의 삼각관계,
그리고 강마에와 작은건우의 말도 안되는(이건 뒤에서 더 얘기하자) 자존심대결.
(솔직히 두루미나 김갑용 할아버지의 병도 외부적이라서 그닥 맘엔 안들지만,
이건 처음부터 그들이 가진 음악적 성공에의 결정적 장애라는 점에서 인정해 줄수 있다.)
이런 것들이다.

 

 음악적 완성은 없다.
그들은 강마에가 지휘할때는 초반에 몇번 혼나고 연습좀 하면 어느틈에 완벽한 연주를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강마에가 그들을 성장시키는 스토리도 없다.
강마에는 그들을 음악적 재능 성장을 위해 트레이닝을 하는 일은 거의 없고
그야말로 '정신교육'을 하거나,
그들의 법적, 제도적, 노동자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일에 힘을 써줄 뿐이다.
우리는 그들 단원들이 어떡하다가 똥덩어리에서 금덩어리 연주자가 되었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다.

 

 2. 두루미-강마에-작은건우의 연애담

 이거...정말 썰렁하기 그지없다.
일단, 왜 이들 사이에 연애담이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지만,
앞서 말한 바,  다른 얘기로는 도무지 채울 수 없는 드라마의 분량상
누구나 다 예상 가능한 양념으로서의 로맨스 코드가 드라마에 삽입되었다고 인정하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작은건우가 두루미를 좋아했고, 두루미도 약간 그런듯이 비쳐졌다.
둘이 사귀는 분위기였고, 이를 알게된 강마에는 자꾸 의식적으로 둘을 묶어 말했고,
그러다가 두루미는 이런 강마에의 말을 못견뎌 강마에에게 사랑고백을 했다.
강마에는 두루미에게 말도 안되는 독설을 퍼부어 그녀를 내친다.
그녀가 떠나자 강마에가 그녀를 찾아가 둘이 껴안고 사랑을 확인했다.
교향악단의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강마에도 욕하고 두루미도 흉본다. 끝.

 
싱겁기 그지없는 러브라인이었다.
게다가 역시 너무 일찍 둘이 감정을 확인하면서
그 다음부터 할 일이 없어졌다.
괜히 작은 건우와 강마에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만 생겼을 뿐
강마에와 두루미의 이야기는 할 것이 없다.
둘이 도서관에서 책보다가 두루미가 산책하러가자고 졸라 산책하는 거. 뭐 이런게 다다. 

 
물론 앞으로 두루미가 청력을 잃게 되면서 강마에가 '한건'해주시겠지만,
사실은 '드라마공학'적으로 봤을 때 강마에는 두루미가 청력을 잃게 된 뒤에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
훨씬 더 극적이고 흥미진진해졌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선생님으로서 그가 청력을 잃어가고 있는 제자에 대해 해 줄 수 있는
여러가지 음악적 조언이나, 새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거나, 트레이닝을 시키는 게 더 적절했다.
지금의 이 맥빠지는 상황, 어떡할 것인가?
이미 둘이 서로의 감정을 알고 있는 한,
두루미의 청력상실은 당연스러운 공동과제가 되어버렸다.
두루미가 힘들 때 강마에는 '반드시' 그녀 곁에 있어야 하는 의무를 지니게 되어버렸다.
그럼 두루미의 청력 상실로 만들 수 있는 '갈등'이 별로 없잖을까?

 

 그녀는 그동안에도 자신이 곧 그렇게 될거라는 걸 알았고 각오하고 있었다.
또한 두루미는 너무나도 철썩같이 자신에 대한 강마에의 마음을 믿는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청력을 잃게 되면, 갑자기 충격을 받을 것도 아니고
차분히 준비하고, 강마에와 함께 그러한 장애를 이겨나가게 될 것이다.
뭐, 더 할 얘기가 있겠는가말이다.
두루미와 강마에 사이에선 더 생길 갈등이 없다. 아니, 갈등이 생겨선 안된다.
그러면 우리의 강마에가 병든 애인을 나몰라라 하는 나쁜 '애인'이 되고 마니까.

 

그러지 않으면서, 이 둘 사이에 계속 긴장관계를 만들려면
다음 회 예고에서 나오듯, 뭔가 미리 둘이 다시 틀어지는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강마에가 두루미에게 호통을 치고 그녀의 선물인지 뭔지를 짓밟더라)
그래서 다시 틈이 생긴 뒤에, 오해와 엇갈림을 거듭하다가
귀가 들리지 않게 될 즈음 다시 그의 사랑이 확인되지 않겠는가?
 

억지로 또 독설을 퍼붓고 위악적으로 굴 강마에를 생각만해도 지겹고
(이 드라마에서 도대체 강마에는 얼마나 자주 '위악'을 부렸으며
알고보면 다 사람들을 위해서 했던 위악임에도 사람들은 얼마나 또 바보스럽게 그 위악에 넘어가
그를 매도하고 오해하고 원망해 왔던가!!!)
그런 말도 안되는 오해로 어긋난 채 질질짜게 될 두루미의 청승맞은 표정도 보기 두렵다. 

 

3. 니들이 음악을 알아?

 앞에서 이 드라마가 음악 전문 드라마이기는 애시당초 포기했음은 얘기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인 '에티켓'은 있어야 한다.
이 드라마를 보는 음악하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떠할까?
난 음악에 대해 아는 게 일천한 사람이지만, 이런 내가 봐도 화가 나는데 말이다.
 

그러한 '만행'은 12~13회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뭐, 드라마 전반에서의 작은건우가 절대음감을 가졌고, 천재라는
설정에 대해선 불만이 없다.
(사실 이것도 웃긴 거다. 물론 아주 뛰어난 절대음감, <미제레레>를 듣고 채보하는 실력이란
훌륭한 재능이겠지만 웬만큼 음악 하는-안하는 애들도-애들, 절대음감 숱하게 많이 가졌다.
예전에 무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가에서 봤었다.
예고 음악과 학생들 대부분이 절대음감 가진다. 당연하지. 시창 청음 시험을 보는데...
어느정도는 타고난 애들이 있지만, 훈련으로도 절대음감 가질 수 있다고 나오더라.
그런다고 그들이 다 작은 건우처럼 천재취급받았다면, 우리나라엔 온통 음악천재들이게?)
드라마야 언제나 천재, 영웅을 원하는 법이니까.
오히려 흥미로운 소재였다.
천재가 살리에리 스타일의 지휘자 선생에게서 배워 청출어람을 실현한다는 건.

 

그러나, 그렇다해도 너무하다.
악보 볼 줄 알게 된 거나, 지휘 시작한지 3개월인지 6개월인지밖에 안된 작은 건우가
강마에와 지휘대결이라니.
음악을, 지휘를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또한, 작은 건우의 음악적 지향 자체도 납득하기 힘들다.
악보의 크레센도를 자기 맘대로 피아노로 연주시킨다거나...연주를 최대한 자유롭게 한다니.
지금 재즈나 R&B나 힙합 연주 하는줄 아는가?
(문외한인 내가 생각하기엔)클래식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곡 해석은,
악보에 적힌 작곡가의 음표, 부호 등을 자기 멋대로 바꾸는 게 아니라
그것들에 어떤 '기분'을 싣는가, 어떤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곡이 그렇게 흘러갔다고 해석할 것인가
뭐 그런 정도 아닐까?
그 외에는 말 그대로 '클/래/식'이다.
있는 그대로 충실한 연주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달랑 몇 개월 배운 초짜 지휘자가, 제멋대로 연주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작은건우에게 강마에가 호통을 치는 것은 매우 정당했다.
따라서 작은 건우가, 두루미 사건때문이건, '겉멋'때문이건 자유로운 연주 운운했던 것은 '틀렸'고,
그에게 호통을 치는 강마에는 '맞다'는 것을 그 이후 스토리가 보여주어야 했다.
즉, 작은건우의 방식은 음악계에게서 혹평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평론가 등이 그 음악을 신선하다며 당장에 인정해주는 그 '닭살 쫙 끼치는' 장면.
 

예고로 봐서는 앞으로는 더더욱 제대로 두 건우가 부딪힐 듯 보인다.
ㅎㅎ참....쉽다.
절대음감좀 가졌다고 당장에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와 동급이 되다니.
음악하는 수많은 분들, 힘좀 빠지시겠다. 

 

천재가 등장하는 드라마, 물론 재밌다.
그러나 사람들은 천재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천재이면 재미없어한다.
천재인데 천재인줄 모르다가 하나씩 발견해나가거나 성장해 나가서 그 천재성을 완성해야
재미가 생기는 것이다.

  

<대장금>의 장금이라고 천재가 아닌가?
그녀는 절대음감대신 절대 미각을 가졌었다.
그런다고 그녀가 하루 아침에 한상궁보다 요리를 잘했다면?
생각시 시절부터 한상궁과 요리대결을 펼쳤다면?
그럼 그 드라마 그런 인기, 시청률, 호평 절대 못받는다.
절대미각은 가졌지만, 아직 음식의 본질, 정도, 정신 등을 몰랐고, 미숙해서
한상궁이라는, 장금이보다 천재성은 떨어지나 정신적으로 훨씬 훌륭한 스승의 도움으로
천재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제멋대로' 할거면서,
작은건우는 도대체 왜, 강마에 밑에 있냐말이다.
그럴 거면 독립하면 되고,
강마에에게 와서 제자로 삼아달라고 했으면
제대로 뭔가 배우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이 드라마는 그 점에서 한참 스토리의 방향을 잘못 짚었다.
 

(강마에의 왕팬인 친구와 토론끝에 내린 결론인데)
이 드라마가 제대로 재미있게 흘러가려면,
지금, 시점에서 생겼어야 하는 강마에와 작은 건우 사이의 갈등은
강마에를 무조건 <모방>만 하는 작은 건우의 지휘 스타일에
강마에가 호통을 치고 내쫓고 해가면서 "네 스타일을 찾아"라고 해야 한다.
몇개월 밖에 안된 지휘자가 세계적 마에스트로를 스승으로 두었다면,
게다가 그가 자신이 좋아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까지 했다면
그가 가지게 되는 심리는 <모방욕망>인 것이 정상적 아닌가?
자기를 잃고, 그저 강마에의 지휘를 그대로 따라하는 데에서
강마에가 그를 깨우쳐주고, 그걸 극복함으로써
강마에보다 한단계 뛰어난 지휘자가 될 발판을 마련했어야
이야기는 훨씬 더 재미있어진다.

 
 ......

간단히 쓰겠다 마음먹고 마음먹었는데,
또 이렇게 길어지고야...그만 줄여야 겠다.
음...하튼, 이 세 가지가 내가 생각하는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작가와 제작진들의 반성과 점검이 필요하다.
 

특히 세번째 문제의 경우
그들이, 단지, 강마에의 팬이기때문에 작은건우에게 강마에가 지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것은 아님을
제작진들은 좀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난주 <베토벤 바이러스>를 본뒤에 분개하던 수많은 팬들의 원성을 잦아들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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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달님 2008/10/29 01:06

    너무나 잘 지적 주셨습니다. 전 음악 전공자입니다. 베바 포스터 보는 순간 저걸 보면 내가 미치겠구나.....그래서 안봅니다. 아니 볼 수가 없습니다. 내용은 안봐서 모르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소리 지나가는 장면이 다 어이없습니다. 여주의 악기들은 엉성한 폼,어쩌다 보게 된 서브 남주의 지휘모습, 김명민씨 너무 좋아하지만, 이번은 흉내를 내고있다는 느낌, 너무 역력합니다. 작가가 너무나 음악에 대해 공부를 안하셨습니다. 절대음감, 정말 너무나 많습니다. 정말 모르십니다.

    • coolya 2008/10/29 08:48

      아, 그렇군요...역시, 음악전공자들에게는 '상처'가 되는 드라마군요. 참 안타깝습니다. 이 작가님들이 <태릉선수촌>때에는 꽤 열심히 자료조사해서 드라마쓴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말이죠.

  2. 행복한 기억 2008/10/30 01:20

    님, 이런 주옥같은 글을 이제서 보다니...퍼가도 될까요?
    마이클럽과 텔존에 옮겨도 될까요? 아님 주소만 올릴까요?
    구구절절절절절절 다 동감입니다. 아고 속시원합니다.

    • BlogIcon coolya 2008/10/30 09:01

      감사합니다.역시 베바 보면서 속터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저 혼자만은 아닌가봐요. 퍼가셔도 되는데요, 기왕이면 링크쪽이 감사하겄슴미당..^^

  3. 이채린 2008/10/30 22:57

    전 큰건대 작건이 제일 어이가 없더라구요.
    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솔직히말해서 30년과 1년도 안된 초짜가 대결이 됩니까?
    자유로운 스타일이요?
    네,그거 좋죠.너무 엄격하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크레셴도와 피아노의 차이는 좀 심하잖아요!
    정말 뭘 모르는 것 같아요.

    • BlogIcon coolya 2008/11/03 08:48

      이제 아무래도 음악적인 면은 포기하고 봐야할라나 봅니다...^^;;

  4. 아무나 2008/10/31 13:59

    구구절절 제대로 말씀하십니다.
    관점이 다른 부분은 있어도 제대로 보신 것 같습니다.
    엠비시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이런 비평조차도 악플로 매도 당하더군요.
    내가 좋으면 남도 좋아야한다는 건지.
    "나는 이어이러한 관점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부분은 이렇게 본다"는 것이 그렇게 이해하기 쉽지 않은가봅니다.
    사족하나
    모차르트가 아무리 천재라해도 어릴 때 부터 아버지(이미 훌륭한 음악가였죠)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면 그 나이에 그만한 성취를 도저히 이룰 수 없었겠지요. 그런데 작은 건우는 천재성(=가능성)만 있다는 건데 배우는 과정도 없이 어느새 거장 행세를 하고 남들도 그러려니 하는건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군요. 음감이 있는거 하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거 하고는 전혀 다른이야기인데 말이죠. (저는 음악 하는사람 아닌데도 그럴 것 같습니다)

    • BlogIcon coolya 2008/11/03 08:50

      그렇던가요?(제가 엠비씨에 글을 올린적은 없는데-)하여간 뭐..관점이야 다 다를 수 있는거죠.^^다만 제작진이 그 다양한 목소리 속에서 다양한 진실을 간파할 수 있어야할텐데요...자뻑에 그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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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TV, 대세인 '사극'과 '무한도전'을 따르라?"(스타뉴스10.24)라는
기사가 떴을만큼, 요즘 '사극'이 대세이다.
현재 공중파에서 방영되고 있는 사극이
<왕과 나>, <이산>, <대조영>, <태왕사신기>, <사육신> 등 여러편일 뿐 아니라,
또 그 사극들이 대중들에게 엄청난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친 '드라마홀릭'자로서 드라마의 트렌드를 열심히 쫓다보면
원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사극도 어떤 타이밍에는 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사극은 참 신기하다.
이미 어떤 줄거리로 흘러갈 지가 '뻔한' 정도가 아니라 '명백한' 이야기임에도
왜 사람들은 또 사극을 보고, 또 보는 것일까?
사극이 대세인 이 시절에 그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곤 하는데
참 놀랍고도 오묘하고 답이 쉽지 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최근의 사극을 보면, 왜 사극이 새삼 대중들을 매혹하는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역사연구에서도 미시적 연구가 '대세'이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의 사극은 이 '미시사'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사료에는 거의 기록되지 않은 어떤 인물,
거시사의 관점에서는 보잘것 없어보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들의 빈틈이 차곡차곡 채워져가고 있는 것.
<대장금>에서 시작된 '궁녀'라는 '한미한' 존재들의 삶부터
<왕과 나>의 '내시', <이산>의 '도화서 다모' 등, 그동안은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그런 인물들이 새삼 역사물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데에서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고, 역사를 다시 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 대중들 자신처럼, 또 시대가 흘러 역사 속에는 이름조차 남지 못할 그런 존재들에게도
존재의 가치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자존감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월-화요일이면 <이산>과 <왕과 나> 사이에서
어떤 드라마를 볼 것인가를 가지고 늘 고민하게 되는데,
(그러나 곧 <이산>쪽으로 마음을 정착하게 될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자세히 얘기할 것이다.)
이 두 드라마의 재미가 바로 그런 점에 있다.

그런데 두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성종, 정조라는 우리가 국사공부할때면 꼭 외우게 되는
조선조의 왕들이 하찮은 신분의 천동이, 송연이, 대수를
"나의 동무들이오"라고 말하는 대목에 있다.
철저한 계급신분 사회에서
가장 높은 신분의 왕과 '친구'가 되는 내시, 다모, 양민이 존재했다는 것,
그들이 감히 왕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함께 모험을 즐기고, 손을 붙잡고 위험을 헤쳐간다는 이야기,그리고 결국 그들의 '우정'이 왕에게 힘을 실어주고, 세상을 손에 얻게 만들어 준다는 스토리는
현재 우리 사회와 대중이 원하는 영웅에 대한 '로망'을 자극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영웅을 원한다.
그러나 나와 전혀 상관없는 영웅이 아니라, 나로 인해 바뀌는, 나와 함께 영웅이 되는
그런 영웅을 원한다.
이것은 곧 자신이 영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의 변형태이다.
내가 영웅이 되고 싶지만 나의 능력과 운명은 거기까진 미치지 못할것 같을 때
나의 작은 힘이 '능력과 운명'을 타고난 영웅에게 개입되어 큰 힘으로 변화하는 것,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싶어진 것이 지금 대중, 민중들의 마음이다.

인터넷이 그러한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실현시켜 준 탓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사소하지만 꾸준하고 끈기있는 결집이
자신이 영웅이 되진 못해도 누군가를 자신의 힘으로 영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또는 잘못된 영웅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직접 체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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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와 <이산>에서 아역배우들이 큰 인기를 끄는 것에
그들의 '성인' 못지 않은 연기력 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 계급차이가 분명해 진 시점보다 훨씬
그들 사이의 그러한 교호작용이 쉽고 분명하게 일어나는 이야기전개에도 있지 않을까?
양민, 천민은 왕과의 연대보다
아비를 잃은 어린 세손이나 사가에 있던 왕족과의 연대가 여러모로 쉽다.
그들이 '어린 아이들', '동무들'로서 작은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 사이의 연대가 곧 앞으로의 '왕'이라는 영웅을 메이킹하는 데에 작동할 것이란 생각을 하면
사람들은 무한한 그 가능성에 흥미와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대선때가 되면 사극이 꼭 대선의 구도를 유비한다며 거론되곤 했다.
<용의 눈물>때 김영삼-이회창의 구도가, <태조왕건>이 김대중 정부의 탄생을,
<대장금>은 노무현 정부의 혼란을 예측하고 비유적으로 암시하곤 했다.
이번에도 곧 대선을 앞에두고 역사드라마들이 난무하는 현상은
사회정치적 측면에서도 눈여겨 볼 만하다.


각 대선후보들은 스스로가 난세의 '영웅'이라며
민심에 호소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난, 양극화, 사회 부조리를
자신만이 해결해 줄수 있다고 소리높이고 있다.

그런데 묻고 싶다.
그들 중 우리와 함께 영웅이 되고자 하는 후보는 누구일까?
늘 하던대로, 어디서들 그렇게 똑같은 '똥색'의 점퍼를 구하는지 입고서는
우군우군 사람들을 뒤에 몰고 시장을 돌면서 생선 꼬리를 잡아 들고
"참 싱싱합니다! 우리 재래시장을 살려야 하는데.."같은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
동대문 시장에 가서 괜히 사람들 장사하는 데 방해하며
지게짐을 들어보는 "쇼"를 하는 그런 것 말고,
누가 우리를 진심으로 '동무'로 여겨 함께 영웅이 되고자 할 것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이든 허구이든,
이들 드라마에서의 정조와 성종은 그들이 왕이 되기 위해
양민들과 진심으로 동무가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왕 '성종'이 아닌 '자을산군'은
자신의 집에 굿을 하러 온 무당의 자식인 천동을 보자 마자
그에게 담을 같이 넘어 장에 구경을 가자한다.
거기서 만난 왈자패에게 쫓기면서도 둘은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자을산군이 왕이 된 뒤 소화낭자가 걱정한다는 소식을 가지고 찾아온 천동에게
성종은 곤룡포를 입혀주고는 천동의 옷을 입고 궐 밖으로 나가 소화낭자를 만나고 온다.
내시가 된 뒤 성종 앞에 나타난 천동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달라며 댓돌에 머리를 찧자
달려가 천동의 몸을 일으켜 세우며 자신의 동무라 말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왕 '정조'가 아닌 세손 '이산'은
9년 만에 만난 그 무식한 '동무' 대수가 도둑인 줄 알고 휘두르는 주먹질에도
눈물을 글썽이며 "나다, 대수야! 너의 주먹은 여전히 맵구나"라며
온 마음을 바쳐 그의 주먹세례를 맞아준다.
언젠가 꼭 무관이 되어 세손저하 곁을 지켜주고싶지만, 자기의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며
의기소침해 하는 대수에게 "아니다. 너는 분명 훌륭한 무관이 될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딱 두번 맞아봤는데 그게 다 대수 너의 주먹이 아니더냐"라는 농으로 격려할 줄 아는 세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들이 이처럼 '민중'과의 '동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 그들이 진정한 민중과 동무를 맺고 우정을 쌓았기 때문이다.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대선후보가 된 뒤에 동무인 척 하는 사람들 말고,
그 이전부터, 오랜 세월동안 진정으로 민중과 동무를 맺어온 후보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힘으로 자신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그런 후보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그런 후보가...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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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2007/10/26 10:45

    오.. 성종과 정조라.. 조선의 제일 멋있는 왕들 (세종은 놀랍고!)이네요.

    헐.. 박근혜가 나왔으면 선덕여왕 다루었을려나?.. 선덕여왕을 사극으로 만드는 것은 참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네요.. 김춘수 김유신도 나오고, 헌화가 같은 로맨스(?)도 있고 ㅋㅋ
    근데.. 요즘은 모두 단재의 후신들인지 신라보다는 고구려가 대세라.. 쩝;;

    여튼 잘 봤습니다. 기대되네요~ 이산 평 :)

  2. 2007/10/26 10:45

    저도 우연히 '왕과 나' 한 에피소드 봤는데..
    '내시'들을 보는 것은 약간 공포에요.. 거세불안증인가.. 쩝;;
    그래서 보기 불편해요;; 헐..

  3. 근데요. 2007/10/31 18:07

    이 드라마를 잘 안 봐서, 궁금해서 질문을 드리는 것인데요.
    그 왕들은 동무들과 친구가 되어주는 것 외에 그 동무들을 친구로 둚으로써 양민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나요?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낮은 신분임에도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 말고 그것이 그들의 성인 이후의 정치관에 결정적 영향을 주게 되었나요?( 혹은 될 것인가요?)
    높으신 분들이 평민들과 동무가 되어준다는 것은 좋지만 그게 뼈 속 깊이, 그리고 실질적으로 통치에 결정적인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그냥 인간성 좋았다 포용력이 있었다, 소박하시다...이런 건 넘 허무해요.
    뒷부분에 대선후보들의 지게쑈와 시장행차부분을 읽다보니 불현듯 든 생각이랍니다.

  4. BlogIcon coolya 2007/11/01 16:05

    음, 좋은 지적이심미다~^^감샤합니다~

    지금 이 두 드라마들의 주인공은 아직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둘 다 힘없는 국왕(수렴청정), 힘없는 세손으로서 자기 '생존'을 위해 싸우는 중이죠. 그래서 자신들의 정치관을 통해 정치를 하고 백성을 대하는 것이 전면적으로 나타나진 않습니다, 아직(글고 제가 이번주부터 <왕과나>를 버리고 <이산>에 정착해버려서..<왕과나>는 특히 잘 모르겠습니다ㅎㅎ).

    그러나...<이산>의 경우, 그러한 조짐이 좀 보이고 있습니다.

    역사상 정조가 그림을 사랑했다는 점은 원래 좀 알려져 있지요?
    전 역사에 워낙 약한 터라 그 이상의 자세한 것들은 잘 모릅니다만.
    이 드라마에선 그 점이 많이 부각되는데요, 그 이유가 송연이 때문입니다.
    도화서 다모인 송연이는 그림에 재주가 있는데, 다모이기 때문에 '화원'이 될 꿈은 꾸지도 않고, 화가 가문 자식이지만, 춘화에는 천재적 재능이 있으나 다른 그림에 있어서는 도통 재주가 없는 이천(지상렬) 대신 몰래 그림을 그려주곤 합니다.

    즉 여성이기 때문에
    자신의 재주를 다른 남성에게 빌려주는 것 외에는 드러내지 않는 거죠.
    그랬는데, 이산은 송연에게 청나라에서 사온 화집을 하나 선물합니다.
    그림의 필세가 섬세하고 특이하다며 그림을 보고 있는 송연에게
    '여화원이 그린 그림이라서 그럴 것이다'
    하면서 송연에게도 여화원이 되어달라고 말합니다.

    "여자라서 화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낡은 생각이다. 내가 바꿀 것이다.
    내가 세상을 바꿀것이니 너는 그림을 그려 너의 재주를 마음껏 펼쳐라."
    라면서 말이지요.


    또 한가지 에피소드는,
    최근 궐 안이 큰 역모사건에 휘말렸을 때,
    사도세자의 익위였던 사람들이 역모 주동자로 몰려 잡혀옵니다.
    그들이 영조를 비난하고, 사도세자를 기리며, 세손 이산을 추종한다는 모함을
    이산의 적대세력들이 조작해서 만든것이지요.
    그 사건의 최종 배후가 이산이라는 모함과 함께.

    그런데 이 사건의 추국을 이산에게 맡김으로써
    영조는 이산에게 한번 기회를 줍니다.
    그들을 이산이 직접 추국하고,
    그들로부터 이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자백을 받아내기만 하면
    이산은 결백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빠져나갈 여지를 준 겁니다.

    그러나 그 신료들은 사실 아무 죄가 없기 때문에
    이산은 살아남더라도 그들은 무고한 죄로 죽게 되는 것이었지요.
    그러자 이산은 추국을 거부합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호위하고 옹호하다, 결국 재야에 묻히게 되었던
    예전 아버지의 충신들을 희생시켜가면서 살고자 하진 않는 것입니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달려와서 이산에게
    "그들이 아니라 저(홍씨)를 죽여서라도 살아남으셔야지요!"하며
    추국을 종용합니다.
    그랬더니 이산이
    "살고자 이러는것입니다 어마마마.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자 그러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죽여서라도
    세손은 이 모함에서 빠져나가셔야 한다는
    그 전 익위들에게도
    "살아주십시오. 살아남으셔서 제게 힘이 되어 주십시오."라며
    그들을 자신이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생존도 위태로운 상황에서 말이지요.


    아직 세상을 바꿀 힘이 부족한 세손이지만, 이런 말과 행동들이 모이고 모이면
    좋은 정치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더 두고봐야겠지만.

  5. 아..
    저는 이산도 좀 밋밋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왕과나의 어이없음에 비할까 싶네요.
    왕과나는 유승호!! 어린이 아니 청소년으로 정말 왕다운 왕 보여주면서
    잘 출발하더니 왜 그렇게 삐걱거리는지...

    고주원 성종-_-;; 정말 아무 생각 없어보이고, 연기도 못하더군요.
    한마디 한마디 어색 그자체!!!



    진정한 동무...와 정치인의 쇼라는 글의 주제와는 다른 댓글을 달게 되어 죄송해요~

  6. 위에 댓글에 "거세 공포증"이 있네요.ㅋ

    남자들은 정말 저런 게 있나봐요???
    그래서 중성화되는 동물들한테 그렇게 거품물고 반대하는건가.

2007/07/23 - [드라마/한국 드라마] - 남장 여자가 매혹적인 이유-<커피 프린스1호점>

드라마는 이래서 참 성가시다.
드라마 중도에 '어, 이 드라마 꽤 좋은데?' '꽤 재미있는데?'라며 칭찬을 할라치면,
어느 순간 나의 호감에 제대로 뒤통수를 때리는 '배신'의 행보를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이 나기 전에는 함부로 무슨 드라마도 칭찬하기/비판하기가 어렵다.
지난 번 한껏 칭찬을 했었는데, 이렇게 분개하며 또 글을 써야하고.

분명 <커피프린스>는 미덕이 많은 드라마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예쁜 화면과 신선한 백뮤직을 선사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고은찬이라는 '여성성'이 담보되지 않은 여성 캐릭터의
사랑의 성취 과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게 다이다.
그 정도 가지고 '웰메이드'라고 하기엔, 아직 갈길이 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장여자' 모티프의 매력을 얘기하면서
점쳤던 바와 같이 이 드라마는 그 순서를 지키긴 지켰다.
'사랑을 먼저 깨닫기(동성이더라도)-그 순간 서로가 이성임이 밝혀지기'
그러나 이 단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질질 끌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 드라마가 간 길은 동성애에 대해 지나치게 '폭력적'이었다.

물론 저러한 전개 '룰' 자체가 이미 보수성을 지닌 것이었음은
알고 있었다.
이성애주의적이고 일대일의 배타적 관계, 영원한 사랑...
그런 길로 갈 것이 뻔함에도,
그러한 한계를 지님에도,
이 드라마가 저 과정을 거치기 위해
동성애를, 사랑을, 얼마나 새롭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진보'의 길로 이끌어갈까
최초의 '여성 드라마 PD'가 만든다는 이 드라마에 대해
내심 기대를 버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내 기대를 무참히 깨는 쪽으로 흘러갔다.


한결이 은찬이라는 동성을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신경정신과를 찾아간다.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만
그 의사는 '돌팔이' 의사처럼 묘사됐다.
수전증이 있고, 추접스럽게 인스턴트 커피를 홀짝거리며
그의 상태와 감정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듣기는 커녕
이 비정상적인 '병자'를 말초적 호기심의 대상처럼 바라본다.
그리고는 약을 처방해주며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거라고 말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말 그런것인가?
동성애를 느낀 자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면
일단은 병자로 취급해서, 약을 통해 그 '병증'을 '고치도록' 유도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신경정신과 의사들에 대한 '오나전 실망'이고
(그러나,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므로)
그렇지 않을테니, 이 드라마는 정말 '너무한 것'이다.


동성애라는 게 세상에 없는 일인가?
동성애자가 병자인가?
어떻게 'n개의 성'이 사는 이 세상에서
이 '웰 메이드' 드라마는 이따위로밖에 동성애를 취급하지 못한 것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드라마의 이러한 폭력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쨌거나 한결이 지리멸렬한(이 지리멸렬함은 뒤에 또 얘기하자)
성 정체성에 대한 갈등의 시간을 거쳐 은찬에게
"나는 네가 좋아. 네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이라고 '커밍아웃'을 했을 때,
이제 남은 일은 "근데 어쩌지, 나, 여자인데."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자, 한 사람이 동성에게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굳게 믿고 있던 그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갈등과 고민의 과정을 거쳐 이제 사랑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것은 물론 '그(녀)애자'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동성애자라서 동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현재 사귀는 애인에게 진실한 사랑을 느끼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일단은 그가 '고민'하는 과정은
그 한사람에게라도 '동성애'를 인정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어렵게 동성애를 인정한 한 사람이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실은 동성이 아니라 이성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랬을 때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옳다구나~하며 이성이라는 그 사람과
돌연 더 해피해질까?

글쎄..나라면 다시 헷갈릴 것 같다.

그가 정말 진지하게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결과
동성인 그 사람을 사랑함을 인정했다면,
그가 이성임을 뒤늦게 알았을 때
그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이성애자일까, 동성애자일까?
그 사람이 동성이라서 사랑한 것일까,
이성이길 바라면서도 어쩔수 없이 동성임에도 사랑한 것일까?
이전에 그사람이 동성이어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 만큼이나
그 사람이 이성이어도 사랑할 수 있을까도
똑같이 고민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 드라마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의 '새로움', '진보성'이었다.

결국엔 자신이 이성애자이며
사랑하는 상대방이 이성이라는 사실에 더 마음이 편해진다 하더라도
위의 과정을 충실하게 그린다면
조금은 동성애가 무게있게 다뤄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어렵게 '커밍아웃'을 하자마자
이성임을 알게 되고,
그러자마자 한결은 '넌 어떻게 나를 속였냐?' 하나에만 매달려 화를 낸다.
속인것, 당연히 화날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솔직히 그 과정때문에도 이 드라마에 왕짜증이 났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가 동성이라고 오해해서 힘들어한다.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
그럴 때 사실은 이성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물어보나 아닌가? 당근, 사실을 밝혀야지.

근데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은찬은 한결에게 자신이 여자임을 숨긴다.
그가 '네가 남자라도 네가 좋아'란 말을 할 때까지.
아무리 '테스트 관문'(이라고 내가 한 말)이지만, 좀 너무하지 않나?
테스트는 스토리가 해야지, 주인공이 해선 안됐다.

주인공이 아닌 스토리가 테스트를 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하면,
은찬은 둘 중 하나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결이 자신을 사랑하는데 자신이 남자라서 괴로워하는 걸 모르든가,
아니면 자신이 한결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모르든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그 둘을 다 아는 은찬이 자신이 여자임을 속인다는 건
영악한 '선수' 여성이 남자를 테스트하는 과정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없다.
그것도 6회말부터 11회 중반까지..주인공이 그렇게 오래 저 상태로 테스트하고 있는 건
정말이지 너무했다.

그러니 뒤늦게 사실을 알게된 한결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긴 하다.
그러나 속았다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 외에도
동성애는 더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문제가 아닌가.
동성애자라고 인정한 순간 상대방이 이성임을 알게 됐을 때
한결이 다시 동성애를 포기(?)하는 게 조금은 혼란스러웠어야 한다.
그 과정이 진정성을 획득했어야 한다.

그러나 속였다는 사실에 대해 용서하자마자
왜 속였는지를 '이해'하자마자
한결이 하는 이 대사는
마지막으로 동성애와 동성애자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고은찬, 네가 여자라서 좋다!"
OTL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드라마는 만화에 가깝다.
이야기 구성이나 캐릭터들도
내가 중고딩때 즐겨본 순정만화에서 본듯한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만화 못지않은 아름답고 흥겨운 연출로 이끌어 갔다는 점이
이 드라마로 하여금 많은 '팬'을 얻을 수 있는 요소로 작용했겠지만
드라마라면, 만화가 아니라면,
세상에 대한, 사랑에 대한 통찰만큼은 중고딩 수준 이상이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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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2007/08/31 23:19

    오~ 이런 점이 있었군요! 제 이반 친구들은 이 드라마를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하네요 ^^

  2. 2007/08/31 23:21

    근디;;; 태그가 없는 것 같은데요? 태그 달아주삼 :)

  3. 보다가 만... 2007/09/02 16:38

    재밌을 것같아서 보다가 중간에 시간이 없어서 못 보았는데,
    다시 시간이 생겼을 때도 안보게 되었던 이유가
    은찬양이 넘 질질 울어대는 바람에 생짜증이 나더이다.
    좀 더 쿨하고 당찬 캐릭터를 기대했는데 멜로드라마 비련의 여주인공보다 더 별것도 아닌 이유로 어찌나 우시던지....
    이 글을 읽으니 참고 보았으면 더 험한 꼴 보았을 뻔했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4. 맞아요. 정말 잘 스셨네요.

    저도 뒤로 갈수록 너무 이야기는 궁해지고
    은찬이는 순진한 척 하며 상대방 염장지르는 선수라서 싫어지더군요.

    더구나 한회당 10분 이상은 나오는 그 야동 비슷한 상상씬은..-_-;;

    그나저나 공유 어깨 무지하게 넓네요ㅋㅋㅋ

  5. 달님 2008/11/01 00:17

    그래도 원작에 비하면 너무나 잘 만든겁니다. 그 원작자가 극본을 다시 썼어요. 그러니,내용이 그럴 수밖에 없어요. 소설이 궁금해 읽으면서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는데, 그작가 정말 심하게 표절을 했더군요. 경성애사에서 태백산맥을. 또 몇 작품이 표절시비에 잡히는걸 기사에서도 보고 직접 확인 했습니다. 동기를 차용 한다는 것과, 표절한다는건 아주 다릅니다. 작가의 자존심이 없는 거지요. 이윤정 피디님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가 저만한 종합 예술품을 만들긴 쉽지 않지요.여성비하가 아니라 체력 때문이지요. 모든 예술이 기본이 힘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허접한 소견이었습니다. 부족하더라도, 그냥 이런 생각을 가진이가 있구나...하고 지나가 주세요.^*^

    • BlogIcon coolya 2008/11/03 19:34

      네~(또 찾아주셨군요~!^^)저도 이윤정 피디는 <태릉선수촌>때부터 주목했고, 앞으로 더 대단한 연출가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커피프린스1호점>의 지나친 인기때문에, 오히려 그분의 '성장'이 여기서 멈춰버리진 않을까 걱정이 되지요. 제글에서 말한 것과 같은 '정치적 올바름'이 좀더 철저해진다면, 여성 드라마연출가로서 더더욱 빛이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짧은 컷트머리로 복귀한 윤은혜가 언니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커피 프린스1호점>에서 고은찬(윤은혜 분)을 남자로 오해한 최한결(공유 분)이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결말 뿐 아니라 그 과정도 훤~히 들여다 보이는 드라마이다.

이것이 항상 딜레마다.
다 '뻔한' 로맨틱 코미디, 멜로형 드라마인데도,
분명 어떤 드라마는 꽂히고, 어떤 드라마는 안꽂힌다는 것.
어떤 드라마는 뜨고, 어떤 드라마는 안뜬다는 것.
그러니 '뻔한' 스토리로 승부하는 게 안전할지, 위험할지
시놉시스, 기획의도 같은 것만 봐서는 참으로 짐작하기 어렵다.

굳이 차이를 들자면,
언젠가 내가 쓴 글에 나오듯, 같은 스토리라인이더라도 배치와 분량의 분배가 문제가 될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캐릭터의 새로움, 현실성, 매력과 같은 것,
그 다음으로는, 연출가의 연출력(배경음악 등까지 포함한)
등이 되겠다.
그 뒤에 따르는 요소로는 (그제서야) 스타급 배우의 출연, 막대한 제작비 등일 거고.

어쨌거나, 이런 점에서 볼때
<커피프린스>는 일단 캐릭터와 연출력 쪽에서 좋은 점수를 거두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스토리라인은 이제 겨우 6회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좀더 지켜봐야 할 일이고.
(스타급 배우나 제작비는 별로 안중요함은 이 드라마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그런데 특히 이 드라마에서 특이한 점은
윤은혜라는 여주인공이 '남장 여자'로 나온다는 점이다.
물론 모두에게 남자로 인식되는 것은 아니고
우리의 남자주인공에게 그렇게 보임으로써
세상의 일정 지역(남주인공인 한결의 주위)에서는 남자로,
또 다른 곳(다른 남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한성의 주위)에서는 여자로 역할하며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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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 여자는 고전소설에서도 종종 사용된 모티프라 한다.
그런데 그 시절의 여성이 남장을 한 이유는 단 한가지,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서였다.
전쟁터에서 남성들보다 뛰어난 무공으로 적군을 제압하고 공훈을 세워
나라에 충성을 바치는 그야말로 허황된 캐릭터였다.

그리고 개화기의 대중 장르라 할 수 있는 신소설에서도
남장 여자 모티프는 자주 등장한다.
이때는 좀 달라졌는데, 여자의 모습으로는 세상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므로
(신소설에는 온갖 세상이 '남자'라는 악들로 우글거린다고 설정되어 있다.)
그런 위협(특히나 성적 위협)을 피하기 위해 남장을 한다.


요즘도 순정만화를 보면 남장 여자 주인공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나도 '좋아라~'하며 보곤 했던 스토리들이다.
그러니 <커피프린스>를 보면서 흥미를 느낀 것은
묘한 순정만화 탐독시절의 향수와 함께 일종의 '조건반사'같은 것이었다.

그럼 '언니'들은 왜 남장여자 스토리에 '조건반사적으로' 열광할까?
기본적으로 '남장'을 한 윤은혜가 진짜 소년같은
귀여움과, 강인함, 생활력 등을 일단 갖췄다는 점이 일차적 '매력'의 요소일 것이다.
(그녀는 외모도 귀엽고, 자기보다 30센티미터는 더 커보이는 남자 한결을 번쩍 업는 '괴력'의 소유자이며, 새벽우유배달부터 밤의 야식배달까지 안하는 알바가 없고, 먹을 것만보면 사족을 못쓰는 '위대'한 위인이며, 수백미터 너머의 냄새도 다 구별하는 '개코'의 소유자로서 원두구별능력의 일인자로서의 자질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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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이 주는 쾌감은 크게 두 차원이 있지 않을까 한다.
하나는 변신.
또 다른 하나는 사랑의 진정성 테스트 관문.


먼저 변신 스토리는, 역시 고전적인 '매혹적 스토리'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미녀와 야수>, <개구리왕자>류와 같이,
야수나 개구리 등이 어느날 갑자기 아름다운 왕자로 변신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
재투성이 아가씨 <신데렐라>, <미운오리새끼>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로맨틱 코미디물 사상 최대 관객을 모았다는 <미녀는 괴로워>에서
한나의 변신에 열광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못나고 보잘것 없는 줄 알았던 인물이 어느날 '제대로'변신해서
최고의 미모와 행복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는 왜 듣고 들어도 즐거운지...
인간의 변하고 싶은, 그러나 변화가 쉽지않은 현실로부터
한껏 도피하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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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프린스>에서도 은찬은 지금도 가끔 (예쁜 여자로)'변신'한다.
자신의 적성에 안맞는 옆트임이 아주 심한 스커트를 입고 와인바에서 홀서빙을 하느라
늘씬한 각선미를 선보이기도 하고,
한성(이선균 분)의 전시회 초대에 응하느라 한성이 사준 옷, 구두, 가발로
아름다운 아가씨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래서 '남장 여자'라는 기본틀 안에서도 시청자들에게 때때로 눈요깃감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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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 한결이 은찬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한결 앞에서도 완전 여자로 변신해 주실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언니들은 흐뭇, 므흣하다.^^


또 하나인 사랑의 진정성 테스트 관문이란, 바로 저 대목
"한결이 은찬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다"에 있다.
앞으로 이 대목의 스토리라인이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나의 예측이 틀릴 수도 있지만,
(만약 내 예측이 틀린다면, 그것은 내 '실수'가 아니라 그 드라마의 '실수'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 순서는 이래야 '정석'이다.

1. 한결이 은찬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2. 그러나 은찬이 남자라는 사실 때문에, 자신이 동성애자인가 하고 고민, 방황한다.
3. 그럼에도 은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저버릴 수가 없으므로,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는 한이 있어도 은찬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4. 은찬은 한결의 고백에 자신이 여자임을 밝혀야하는지 고민하는 찰나,
5. 뜻하지 않은 주위 인물이나 사건에 의해 은찬이 여자임이 발각되고
6.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한결
7. 둘 사이의 엇갈림이 잠시
8. 그 즈음 등장하는 사랑의 삼각형: 한성이 은찬에게 역시 대쉬하기
9. 화난 마음을 다 풀지도 못한 채, 또 한성과 은찬의 관계를 질투하는 한결
10. 그러나 은찬 역시 이미 마음은 한결에게로....


아..정말 결말까지 다 쓸 수도 있겠다.^^
그러나, 10번까지 다 올 것 없이 '남장여자'모티프에서 중요한 대목은
바로 3번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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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이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은찬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테스트에서
당당히 '합격'의 도장을 받는 순간을 3번까지가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겨울연가>에서
준상과 유진이, '첫사랑이 아님에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테스트에서
합격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두 테스트가 대중들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그 테스트에 내재된 '보수적' 결론때문이다.

'남자임에도 은찬이를 사랑해', '네가 나의 첫사랑이 아니더라도 난 널 사랑해'
라는 인정을 하는 순간, 우리에게 기다리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그래? 오, 훌륭하군. 날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같아. 좋아 합격.
근데 놀라운 사실 하나 가르쳐 줄까? 나, 사실은 여자야!(나, 사실은 네 첫사랑이야!) 짜자잔~"
이것이란 말이다.

그러니 그 대목까지 갈 동안의
주인공들의 고민과 방황이란 다 '허위'이다.
이 '거짓된'(곧 괜한 고민, 방황이었음이 밝혀질) 고통의 시간은
진실을 알고 있는 수용자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고통이다.
"쟤가 저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지만, 사실, 걱정 할 필요없는데-"
하며 그 주인공의 '무지', '어리석음'을 즐기게 된다.
이때 수용자들이 갖게 되는 '우월감', '전지적 존재'라는 착각.
그리고 '어리석은' 주인공이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였을때 주어지는 보상으로서의
'보수적'이고 '안전한' 진실.
또 여성 수용자들에게 선사하는
"저렇게 멋진 남자(한결)도, 여자를 '여자다움', '외모'만으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헛된 희망과 용기.
이런 것들이 드라마를 보는 또 하나의 쾌감을 제공한다.


자...오늘 하게 될 <커피프린스 1호점>의 제7회는
예고로 보아하니, 1번에서 2번 단계쯤 되는 듯하다.
대중들이 가장 즐거워하며 즐길 수 있는 단계이다.
여기서부터 5번단계까지가(즉 이번주와 다음주 정도)
이 드라마의 시청률을 30프로대로 진입시키는
가장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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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eine 2007/08/04 08:45

    아핫 언니 역시 제가 쓰고 싶어했던 드라마에 대해 쓰셨군요. 각 나라 문학 전통에 드러난 남장여자에 모티프의 차이도 흥미롭네요. 전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장여자들과 비교했는데요.

  2. BlogIcon 2007/08/29 21:55

    오. 그러고보니, 그 똑똑하고 멋진 거시기 그 누구냐, 그, 살만 떼가고 피나오면 넌 죽었어 그 분! 흠.. 남장여자.... 저도 그런거(?) 좋아해요. 저는 게이도 좋아하는 것 같고.. 뭔가 남성성을 되게 싫어하는 것 같아요. 심리검사 결과도 여성성이 강하다고 그러던데..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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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에서 국정원과 세계적인 시설을 자랑하는 인천공항을 무대로,
한류스타 최지우와 A급 영화배우 이정재를 투입하여 야심차게 기획했던 <에어시티>가
썰렁하게 막을 내린 뒤 <9회말 2아웃>이라는 드라마를 선보였다.


설정에서 떠오르는 드라마들이 쭉-있다.
일단, "내 나이 서른, 되는 일 하나도 없는 노처녀다."는 <내이름은 김삼순>이고,
그런 노처녀가 다니는 회사가 영세한 출판사이며,
그녀의 애인이 9살인가..7살 연하인 것은 <여우야 뭐하니>,
(끊임없는 나이타령과 연하남과의 연애는 <달자의 봄>이기도 하다)
어설프게 기구한 운명의 얽힘(꼬임?)으로 남자와 한집에서 동거하는 것은 <옥탑방 고양이>, <풀하우스>...
뭐 줄줄이 떠오른다. 하나도 안새롭다.
(드라마 안의 내용이나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까지 욕하려 들면 한도 끝도 없으니...일단 생략.)


그런데 특히 마음에 안드는 것은
"9회말 2아웃"에 역전할 수 있듯, "서른살"에도 인생역전 가능하다!
라는 발상이다.

아니, 서른살이 "9회말 2아웃"상태란 말인가?
그녀의 10년간의 신춘문예 낙선을 "9회말 2아웃"으로 표현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난희(수애 분)는 끊임없이 "내 나이 서른", "서른이 되면 이런 거냐?" "내가 늙긴 늙었나보다.."
타령을 하며 자신의 "9회말 2아웃" 상황이 결국 나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다.


"서른 즈음에-"란 노래가 있었고,
"서른, 잔치는 끝났다"란 시집도 있었다.
나도 그런 문구만 보아도 가슴저려하던 서른을 넘기고 또 몇해를 살았다.


근데...내가 서른을 넘기고 나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이제 서른은 어떤 '기점'이 별로 못되는 시대가 된 것 아닌가 한다.
서른에는 남자든 여자든 뭔가 정착되고 안정될 수 있었던 사회경제적 환경은
이미 불가능하지 않은가?
여자들이 서른 전에는 시집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절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온통 '수험생'이다.
내 주위에도 서른이 되도록, 아니 서른이 넘도록
여전히 직업을 찾아 헤매이는 수많은 미취업자들, 비정규직자들, 일용잡직 종사자들이 넘치며
직업이 있었어도 더 안정되고 탄탄한 직업을 위해
대학시험, 대학원진학, 고등고시, 공무원 시험 등에 뒤늦게 뛰어든다.
여기에는 IMF가 한 몫했고, 양극화현상이 원인이자 결과가 되어주었다.
점점 사회는 그렇게...이 땅의 젊은이들의 사회진입을 연기시키고 있다.


그래서 서른은 이제
별로 대수롭지 않은(정확하게는, 대수로워서는 안되는, 그럼 너무 절망적인)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 나이에 직업이나 결혼 등의 문제에서 어떤 확실한 '답'을 찾아낸 인구보다
그렇지 못한 인구들이 더 많은 세상이 된 것이다.
어떤 '결절'의 지점이 '30'보다는 좀 뒤로 넘어간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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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달자의 봄>과 <여우야 뭐하니>의 "달자(채림 분)와 "병희"(고현정 분)가
서른 셋으로 나온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재밌게도 두 배우 다 본래의 자기의 나이와는 좀 거리가 있다. 채림은 본래의 자기 나이보다 4살을 보태고, 고현정은 5살을 깎아먹고 그 역할을 맡았다.)
2005년 당시 '서른'이었던 "삼순이"도 지금쯤은 서른 둘이 되었겠다.


병희와 달자도 "내나이 서른셋"이란 말을 드라마 내내 나래이션으로 줄창 외쳐대는데,
사회적으로 대충 그 정도는 되어야
나이타령을, 다시 말해 그 나이 되도록 아무것도 못 이룬 것에 대한 한탄을 할 수 있도록
시대 분위기가 바뀐 것은 아닐까?
(사실, 걔네들의 징징대는 소리도 그닥 듣기좋진 않았다.
<달자의 봄>이 서른셋에게 주는 '희망'의 진정한 메신저는
여전히 덜 성숙한 '달자(채림 분)'가 아니라, '선주(이혜영 분)'였다.)

그래서 <9회말 2아웃>을 보는 내내 영 불편하다.
서른에 못할 게 뭐있다고...
더구나 다른 부분에선 서른보다 더 어리고 혼자 순수한 척 다하면서-
그 나이에 잘생기고 잘나가는 멋진 킹카 남자친구(얘네는 꼭 만날 '그냥 친구일뿐'이라고 외치다가 사랑에 빠진다)도 있고(걔랑 '친구'란 핑계로 애인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법이다),
연하의 정열을 불태워 주는 애인도 있는 '복터진 년'이-
'볼짱 다 본 서른살 노처녀'라며 한탄하는 꼴은
정말이지 '배부른 투정'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신춘문예에 서른 전에 등단하는 사람들은 뭐 또 얼마나 되는가?
서른이 되도록 신춘문예 당선이 안됐다는 것 가지고 벼랑끝에 몰린 사람마냥 구는 것도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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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여우..>, <달자..>, <내이름..>보다도
더 '나이의식적인' 제목, <9회말 2아웃>으로 정해놓고
무언가, 서른이 되도록 '정착'하지 못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겠다는 애초의 '갸륵한 의도'와는 달리,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그모냥 그꼴'로 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묘한 조바심과 좌절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서른을 좀 오래전에 넘긴 '한심한 피터팬'이라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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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24 07:36

    음.. 누나 리뷰 읽고 나니까, 이것도 너무하네.. -.-;;;
    수애는 참 이미지가 좋은데, 여기서 이미지 변신 했다면서요~

    서른이라.. 흠..
    법적으로는 만19세면 성인인가요? 이 법적 개념과, 사회-경제-문화적 유리...
    역시 뭔가 입문의식을 거쳐야 되..

    일반적으로 남자는 '군대/취직' 여자는 '취직/결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 이 둘다를 충족시켰을 때,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는 듯...

    헐.. '어른'이라.. 오랜만에 써보는 단어네요 ^^;

  2. 근데 말이죠 2007/08/08 13:49

    신춘문예에 당선되도 막막하긴 마찬가지 아닌가...
    그게 뭐 만루 홈런쯤으로 상상되고 있다면 그게 더 깝깝한 노릇은 아닌지.
    드라마는 안 봤지만, 리뷰만 봐도 정말 고작 서른에 남자 '복터진 년' 맞기 맞네.

  3. BlogIcon 2007/08/08 14:18

    ㅋ 만루홈런이라.. 신춘문예는 뭔가, 이제 프로구단에 입단테스트 거친거고, 그 때부터 욜라 빡세고 '피도 눈물도' 많은 삶을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근데 역시 아마 때는 프로 댈라고 용쓰는 거겠죠..

    생각해보면, 인문학도들은 그런 '입문의식'을 자체적으로 치뤄야할 것 같아요. 석사 때, 이제 나는 '프로다'라고 생각해야 하나.. 아님 박사논문 쓰고, 이제 나는 '프로-연구자'다. 이런 의식이 있어야 하나.. 흠.. 이제 연수원 들어갈 것 생각하면서 우울하고 힘들하는 애인을 보면서, 나는 언제 저런 '입문'을 치루었나 생각해봤습니다. 석사입학 때는 나름 별별 생각도 많고 다짐도 많았는데...
    역시 공익을 하다보니, 그리고 요즘 쫌 상태가 안 좋아서인지
    '그냥 대충 살어'(?)하면서 소설많이 읽고 외국어만 하고 있습니다.

    오.. '프로'라.... 흠;

  4. 하하하...
    제가 느낀 점을 이리도 시원스럽게 적어주셨네요.

    그래서 저 드라마가 짜증났던 거로구나.ㅋ
    더구나 서른살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수애의 미모ㅡㅡ;;

    마지막 단락에 특히 공감하며 가슴이 무너집니다.

  5. BlogIcon coolya 2007/11/11 20:10

    ㅎㅎㅎ혹시 파란토마토님도 삼십대?^^
    공감해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임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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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하이킥>이 끝났다. 7월 중순 종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7월이 되면서부터, 옷장 속의 곶감이라면 일주일에 네 개(금요일엔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본방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므로)씩이나 빼먹지 말고 한 개씩 먹더라도 좀 더 오래 해주면, 좀 더 오래 우리 곁에 있어 주면 안되나 싶을만큼 아쉽고 섭섭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트콤의 종영을 그렇게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럴 때 제일 섭섭한 게 무엇이던가? 여러분은 그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인물 중 누구를 못보는 게 가장 아쉬웠는가? 나는 단연 이순재였다.

이 시트콤을 통해 아이돌 스타로 순식간에 자리매김한 윤호 역의 정일우나, 구설수·군입대 등으로 한풀 인기가 꺾였다가 재전성기를 맞게 된 서민정, 최민용 등을 못보는 일은 하나도 안 섭섭했다. 그들은 앞으로 쭈욱, 그것도 이 시트콤에서 보여준 캐릭터의 조각들을 가지고 정극에서든 시트콤에서든 쉽게 또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순재는 쉽지 않다. 그가 다시 정극에 나온다면 절대로 ‘야동순재’의 캐릭터를 갖기 힘들 것이며, 또 시트콤에 나온다 해도 이처럼 독특하고 훌륭한 캐릭터로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이런 캐릭터를 쓰기에는 우리나라 정극 드라마는 중견배우들에게 너무 인색하다. 그들은 ‘붙박이’처럼 언제나 전형화 된 캐릭터로 청춘남녀 주인공들의 뒤치다꺼리하기에 바쁘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강인함, 무심함으로 정형화되곤 하는 아버지, 가부장에게 나약함, 소심함, 무능력함, 다정함을 이렇게도 절묘하게 섞어 놓고, 그것이 어느 한쪽으로도 잘 치우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It's real!'이었다. 그는 언제나 진지하게 배우로서 연기할 뿐이었다. 그것이 <하이킥>이 이룬 최고의 성과이자, 배우 이순재만이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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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뿐 아니라 이 시트콤의 출연진 대부분이 그 점에서 탁월했는데, 그들은 언제나 정극 연기를 하듯 진지하다. 다만 그들이 진지하고 치열하게 몰입하고 있는 어떤 일, 대상, 행동이 독특했을 뿐이다. 그래서 사실 시트콤에는 개그맨들은 출연 안하는 편이 낫다. 그들은 정극연기를 할 수가 없다. 무언가 ‘웃기겠다’는 강한 의지가 눈빛에, 표정에 너무 잘 드러나 버린다. 그러나 시트콤의 시청자들은 ‘이거 웃기지?’하며 달려드는 캐릭터를 보면 오히려 잘 안 웃는다. 입담 좋은, 개그프로에서는 콩트 등으로 인기도 꽤 누린 개그맨들조차 시트콤에서 큰 재미를 본 경우가 적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다.


개그프로와는 달리 시트콤은 ‘현실’로부터 양 발을 다 떼지는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이킥>은 바로 이 점, 언제나 한쪽 발을 땅에 딛고 있기 위해 한 가지 재미난 장치를 활용했다. 그것은 바로 관찰자의 시선을 반드시 배치하는 것이었다. 순재식으로 말해 ‘저것들은 왜 또 오바하고 지랄이야!’하는 무심한 시선을 시트콤 내부 인물을 통해 제시하는 것. 이를 통해 치열하고 진지하게 ‘몰입’,‘오바’한 그 인물들은 더욱 우스워진다. <하이킥>은 이 때문에 무조건 ‘오바’하지 않는, 리얼한 이야기들로 보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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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7월에 접어들고, 이 시트콤이 종착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하이킥>이 끝나지 말기를 바랐던 마음이 차츰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종내에는 ‘아 짜증나!’ 하며 막방을 보고 말았다. 왜? 이 시트콤이 그때부터 현실로부터 두 발을 떼며 붕 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종영을 즈음해 쏟아진 <하이킥>론들과, 감독 김병욱의 인터뷰 등을 보면 이 ‘붕 뜬’ 상태가 얼마나 가관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찬사’일색으로 이 시트콤의 가치를 인정해주느라 바빴으며,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거의 ‘자뻑’상태에 빠져있었다. “윤민(윤호-민정의 사랑) 라인이 핵심이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감독이라...이건 배신이다, 누군가가 이 시트콤을 두고 칭찬했던 ‘스토리텔링’에 대한 배신이며, 그동안 이 시트콤을 ‘현실적’이라며 즐기던 나같은 시청자에 대한 배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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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을 왜 보는가? 일상 속의 웃음을 찾기 위해서이다. 좀 더 짧고 굵은 웃음을 주는 개그프로그램과는 달리 우리 삶 속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그런 사소하지만 즐거운 그런 일들을 겪게 해주는 것이 시트콤의 최대 장점이다. <하이킥>처럼 일주일에 다섯 번씩 거의 매일 방영될 경우, 시트콤은 우리의 삶, 일상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우리의 삶 속에서 쉽게 찾지 못하는 하루치의 웃음거리를 30분가량의 시간동안 시트콤은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시트콤이 ‘멜로’에 ‘빙의’되기 시작했다. 방영 초기부터 유미네 가족과 개성댁을 둘러싼 미스테리적 요소를 넣고, 이를 통해 일일반복적인 일상의 재현이 아닌 스토리라인이 분명히 있는 시트콤이 되었다는 것 때문에(나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동의하기 힘들지만) “독특하다”, “탁월하다” 소리를 들은 <하이킥>은, 연애문제에 관한 스토리라인에도 꽤나 신경을 썼다...고 ‘주장한다’. 연애문제가 극의 종반부를 마구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경을 썼다’는 주장에는 동의가 잘 안 된다. 많은 부분을 멜로라인에 할애만 하면 신경을 쓴 것인가? ‘말이 되게’ 만들어야 신경을 쓴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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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와 이혼을 한 민용과 신지의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민정이 여러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하게 됐다. 많은 장애와 어려움을 겪었지만, 민용은 민정을 사랑하게 되고, 민정과 결혼을 결심한다. 그럴 즈음 신지가 민용에 대한 미련을 털어놓고 둘의 결혼얘기에 아파한다. 그러다 결국 포기하고 러시아로 ‘열나 불쌍하게’ 떠난다. 돈도 없고, 일도 다 버리고, 가서는 술타령만 하고, 그러다 교통사고로 의식불명까지(이 점에서 <하이킥>은 끝끝내 신지에게 가혹했다. 이런 신지의 ‘진상’은 결국 신지라는 캐릭터에 대한 비호감만을 증폭시킬 뿐이니...). 이 사실을 다 알게 된 민용과 민정은 헤어지고, 민용은 신지에게로 돌아간다. 민정은 민용과 함께 다니던 학교를 떠나 시골학교로 옮기는데, 담임 민정의 사직 소식을 알게 된 윤호는 학교를 휴학하고 일 년 동안 떠돌아다니며 오토바이로 여행을 하다가 비를 피하러 잠시 들어간 학교 운동장에서 민정을 다시 만난다. 신지와 민용의 재결합, 윤호와 민정의 재회 암시가 <하이킥>의 마지막 회였다. (그것도 신지의 떠남-민용 민정의 이별-윤호/민정의 재회가 이 시트콤의 마지막 단 3회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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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말을 만들어 놓고 ‘자뻑’이라니...<하이킥>이 우리 사회에 남긴 교훈 운운이라니...어이가 없었다. “민용과 민정의 이야기는 결말 직전까지 현실적인 이야기를 피해갔다. 만약 현실이라면 둘 사이의 이야기에서는 준이(민용과 신지의 아들) 문제를 거론 했어야 했다. 하지만 준이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민정이와 어머니의 대화도 대부분 전화로 간단하게 처리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너무 현실적이고 부담스러운 이야기가 되니까. 민정이의 부모까지 다 나서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도 울기만 해도 슬퍼지는데 준이 얘기 같은 것들까지 나오면 갈등이 너무 첨예해져야 한다. 그래서 후반까지 그 이야기를 피했다. 다만 마지막에는 현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현실에서는 민용과 민정이 그런 문제들 때문에 이뤄지기 어려우니까. 그래서 현실의 보편적인 정서를 따른 것이 민용과 신지였다.”는 김병욱의 말은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이십니다!”다.

현실의 보편적인 정서를 따라 민용과 신지가 재결합한다면, 그의 또다른 언급에서처럼 이 시트콤의 ‘핵심’이었다던 ‘윤-민라인’은 현실의 보편적 정서와 어느 대목에서 만날 것인가? 준이문제, 민정의 부모들의 반대 등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계속 회피해오다 결말에 가서 현실로 돌아가고자 민용과 민정을 헤어지게 했다면, 윤호와 민정은 ‘현실적’인가? 사제관계를 문제 삼지 않는다 치더라도, 윤호와 민정 관계의 ‘여지’는 또다시 윤호의 삼촌인 민용의 문제를 끌어들인다. 그 시점에서는 또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민용 민정의 결합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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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윤호의 민정에 대한 사랑은 그냥 윤호의성장’을 위한 것 일뿐 둘이 앞으로 진짜 서로 사랑하고 결혼한단 얘긴 아니지 않냐(거기까진 안그렸지 않냐)고 또 빠져나갈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를 일이다. 그럼 왜 민정과 윤호를 다시 만나게 하면서 끝났나? 또 ‘성장’을 그린다고 할 때 윤호의 ‘휴학’과 ‘오토바이 여행’은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윤호는 성장은 커녕, 휴학을 함으로써 성장을 유보한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을 만난다거나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자랐다는 것도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그냥 돈 많은 집 아들답게 폼 잡으며 오토바이를 달릴 뿐이다. 그러다 민정을 다시 만났다. 이게 성장인가? 좀 솔직해지자. 이렇게 윤호와 민정이 ‘다시 만난다’는 것으로 결말을 맺기만 하면 윤호(정일우) 팬들, 윤-민 라인의 지지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얻게 될 것을 의식한 것 아닌가.


내가 앞서 <하이킥>의 일등공신으로 추대한 순재는 마지막 회에서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그는 아프리카에 의료봉사를 다녀온 이후부터 계속 잠만 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느라 밥도 못먹고, 그러니 밥상머리에서 식구들에게 숟가락 매질을 하지도 못하고, 오바하는 것들을 비난하지도 못하고, 가끔씩이나마 다정하고 따뜻한 남편·아버지의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나문희도 가족 하나 없는 집에서 범이의 이민길을 전송하는 데에만 잠시 등장한다. 나문희 이순재가 이 시트콤의 웃음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데 이렇게 홀대하나? 그들이 과연 유치하고 비현실적이고 앞뒤 안 맞는 민정, 민용, 신지, 윤호의 연애놀음만도 못하단 말인가?


예전에 김희선과 권상우가 출연하였고 <올인>의 연출가가 연출했다고 해서 엄청난 기대와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슬픈연가>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런데 이 “꽤 기대되는” 조합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김희선 권상우등의 열렬 팬들에 의해 겨우 연명했을 뿐 전혀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유는 스토리때문이었다. 위 조합에서 언급이 빠져있는 드라마의 작가가 바로 문제였는데 공교롭게도 그 드라마 작가는 시트콤 작가 출신이었다. <남자셋 여자셋>, <연인들> 등의 남녀 인물들의 짝짓기 이야기로 꽤 유명하고 인기를 끌었던 시트콤의 작가였다. 그 작가가 <슬픈연가>를 통해 처음 정극에 도전하면서 포부를 밝히기를 “한 편의 뮤직비디오같은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했다. 정말, 다 보고 나니 뮤직비디오 수준이었다. 지지부진하고 말 안되는 권상우, 김희선, 연정훈의 삼각관계와 우연의 남발들, 납득안되는 주변의 방해꾼들 악인들, 마지막엔 어이없는 총격으로(한국에서 ‘총’ 나오면 일단 비현실적인 걸 모르나?) 권상우가 죽고, 지리멸렬한 엇갈림 끝에 겨우 만난 권상우와 김희선이 보낸 단 하룻밤 덕에 김희선은 (권상우 아역을 1인2역 시켜가며) 아들 키우며 살고 있는 것으로 끝났다.


<하이킥>의 막판을 보며 <슬픈연가>가 떠올랐다. 시트콤과 드라마는 멜로를 그리는 데 있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정말 다르다. 멜로를 위해 작위적이거나 오버스럽거나 우연적인 장치를 함부로 끌어들이면, 그 드라마는 금세 시청자들에게 그러한 허점을 들키고 비난받는다. 반면에 시트콤에서는 그 멜로라인이 약간 허술하고, 전형적이어도 이해하고 넘어가 주는 면이 있다. 그게 시트콤의 본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개연성이 떨어져도 그게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용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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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이킥>처럼 멜로에 ‘빙의’됐으면, 그때부턴 그래선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야 ‘몰입’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시트콤을 보며 웃지 말고 울라면서, 이렇게 허술하게 장치를 만들어서야 어느 대목에서 운단 말인가? 이를테면, <하이킥>에서, 민정이 학교를 그만두던 날(일단, 담임선생이 사직하면서 반 아이들에게 인사도 없이 간다는 설정도 말도 안된다), 그 늘 타고 다니던 자기 차를 두고, 짐들까지 들고 버스를 타던 장면은 그야말로 시트콤의 ‘횡포’였다. 멜로를 그리려면, 드라마에 ‘빙의’되었다면,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자기 짐정리를 해서 그걸 한박스 들고 가는 날, 그 매일 타던 차를 안 갖고 온다는 게 말이 되는가? 어떤 버스인지 몰라 헤매며 하염없이 윤호가 민정을 쫓아 달려가는 ‘애절한’ 씬을 만들기 위해 그런 억지스런 설정을 한 것 아닌가. 그런데 어쩌나...그런 말도 안되는 장치 때문에 애절함은 순간 싹 사라지던데.


시트콤, 아무나 만드는 것 아니다. <하이킥> 아무나 만들 수 있는 시트콤 아니었다. '사랑은 개나 소나 다한다지만' 멜로드라마는 역시 아무나 만드는 것 아니라는 점 역시 기억해야 한다. 시청자들이 호응해준다고, 팬들이 성원한다고 해서 개연성을 포기하는 순간, 시트콤도 멜로드라마도 결국에는 ‘미달태’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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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coolya 2007/07/20 08:38

    진짜 이번만큼은 짧게 써볼라 했건만...고질병이다. 크흑..

  2. 2007/07/23 15:19

    옷 잘 읽었습니다. 다 보고 읽느냐고 쫌 텀이 있었네요 ^^
    그것도 신지의 떠남-민용 민정의 이별-윤호/민정의 재회가 이 시트콤의 마미작 단 3회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여기서 '마미작'은 말미작의 오타인가요? ^^

    저도 하이킥 관련 이번주 안에 글 하나 써보도록 할께요~ ^^*

  3. BlogIcon coolya 2007/07/23 21:16

    앗..오타를..근데 말미작은 뭐여?ㅋㅋ
    나는 오늘 (감기)약발로 연속해 마구 써대고 있삼~ㅎㅎㅎ

  4. BlogIcon 2007/07/24 13:13

    흠.. 말미작... 말미에 방송된 작품;;;
    오옷 감기 얼렁 나으세요..
    저도 마약해보고 싶어요 ㅋㅋ

  5. BlogIcon 2007/07/24 13:14

    아 근디 아직도 오타 있는데요 ^^;
    (그것도 신지의 떠남-민용 민정의 이별-윤호/민정의 재회가 이 시트콤의 마미작 단 3회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아직도 마미작인데요~~ '마지막'이군요. 원래는 ㅎㅎ
    말미작... 흠.. '프로작'이나 먹을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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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김수현이다."

이렇게 말할 때, 김수현 드라마에 별로 관심이 없거나, 혹은 "절대로 김수현 드라마는 안본다"고 생각하는 '안티 김수현'(분명 이런 시청자도 30-40% 정도는 될 것이다.)들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 사람 드라마, 새로운 게 뭐 있어?", "그 사람 드라마에서 떽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골이 울려", "그렇게 드라마 작가가 없나? 아직도 김수현이야?" 등등...그들은 이번 <내 남자의 여자>가 또 시청률 1위에 올랐다는 소식들을 보고도 여전히 자신들의 생각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처럼, 한 때 드라마 작가가 돼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던 사람들이나, 그의 드라마를 매번 시청률 상위권에 랭크시킬 수 있게 해주는 부동의 지지층들은 이번 <내남자의 여자>를 보고 또한번 말하게 된다. "역시 김수현이다."


그럼, 뭐가 "역시 김수현"인가? 최근 드라마 공모 당선자 출신 모씨(작가라고 하기엔 공모 당선작 외에는 이렇다 할 활동을 못했다고 한다)로인해 '표절시비'에 휘말릴 만큼, 그의 이번 드라마의 처음 설정은 새로울 것도 없었다. 친구의 남편을 뺏는 여자, 아내의 친구와 불륜에 빠진 남자, 친구에게서 남편을 빼앗기는 여자. 이제 드라마 시청자들이 물릴 만도 한 뻔한(불륜의 상대가 친구의 남편이라는 점 정도가 좀더 자극적인 정도이나...이런 얘기도 심심찮게 만들어져 왔다)불륜 스토리일 뿐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한때 드라마 작가가 돼 보고 싶어했던 사람들이라면, 그녀의 이 드라마스토리가 다른 드라마들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왜 "역시 김수현"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는지를, 이 드라마를 직접 보면 알게 된다. 즉,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드라마는 그 새로울 것 없는 소재를 가지고 꽤나 어렵고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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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그야말로 '홍수'이다. 지금도 아침드라마나 일일연속극, 미니시리즈 등에서 두번에 한번 꼴로(아침드라마는 거의 매번) 다루는 게 불륜스토리이다. 불륜을 다루는 이야기들은 <겨울연가> 류의 소프트하고 낭만적인 사랑이야기, 비혼남녀들의 삼각관계를 결혼이라는 제도의 틀로 옮겨 왔다는 점에서 그 삼각관계의 심각성을 보다 '하드'하게 만들고, 쉽게 선/악을 구분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대중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드라마를 보는 대중들 중에는 "저 나쁜 년/놈"이라고 쉽게 욕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이가 많다. 못된 시어머니를 욕하기도 하고, 되바라진 며느리를 욕하기도 하고, 허랑방탕한 남편을 욕하기도 하고, 이간질을 해대는 제3자들을 욕하기도 한다. 욕할 대상이 확고하게 정해져 버리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그 이후 일종의 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 못된 년놈들이 망하는 꼴을 보고 말리라, 저 불쌍한 여자/남자들이 다시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고 말리라...그러면서 편한 마음으로 한쪽의 패배와 한쪽의 승리를 외칠 수 있다. 그렇게 하기에 불륜드라마는 아주 딱 좋은 소재이다.


이러한 대중들의 '입맛'을 본능적으로 간파해내는 '일반적인' 드라마작가나 연출가들은, 그래서 불륜 드라마를 선호한다. 특히 아침드라마처럼, 아줌마들에게 "이런 쓰레기같은 드라마를 왜 봐?"라고 비판과 회의를 제기해 줄 주변인(남편이라든가, 자식들)이 없는 시간의 드라마들은 끝간데를 모르고 이런 스토리의 늪에서 빠져나올 줄을 모른다. 주인공의 캐스팅, 직업, 나이, 상황만 조금씩 바꿀뿐 천편일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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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드라마들에는 또 이미 정해진 전개구도가 있다. 드라마 전반부는 불륜에 빠진 남녀의 비밀스런 애정행각과 이것을 눈치 못챈 착해빠진 배우자의 이야기이다. 이 시기 시청자들은 "저것들이 언제 꼬리가 밟히려나...?" 조바심과 불안감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해하며 드라마를 시청한다. 이 과정은 드라마의 인기가 좀 높으면 꽤나 길게 끌기도 한다.


그리고 중반부는 그것의 '발각'과 그 이후의 이야기로, 이때 보통 '불륜남녀'들은 뻔뻔함과 악랄함으로 일관하여 착한 배우자를 절망의 밑바닥까지 떨어뜨린다. 이 즈음부터 시청자들은 선/악을 구분해 검투사들의 경기를 보며 "죽여라! 죽여라!"를 외치던 로마인들처럼 한쪽의 파멸을 대놓고 기원하게 된다.


후반부는 이제 이 착하고 불쌍한 주인공의 '재기' 또는 '복수'에 관한 이야기로, 그들이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직업도 얻어 사회적인 성공도 하게 된다는 줄거리이다(꼭 이럴때 자주 써먹는 '사회적 성공' 스토리가 '홈쇼핑'관련 직업이다. 가정주부였던 여주인공이 뒤늦은 나이에 사회에 다시 나가서 성공할 수 있는 분야란 '홈'과 관련된 직업 뿐이라는 한계. 그것은 그만큼 이러한 스토리가 허구적인 '판타지'일 뿐임을 역으로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을 버리고 떠났던 배우자는 정말 파멸을 당해 뒤늦은 후회를 하며 돌아오기도 한다. 여기서 이 만신창이로 되돌아온 배우자를 받아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는 대부분 거기까지 이 드라마를 지켜주었던 시청자들의 뜻에 의해 결정되는 듯하다. 어차피 '벗고 뛰기'로 작정한 '쌈마이드라마'로서 이런 드라마들은 굳이 '작가의식' 내세우지 않고 적당히 시청자들의 욕망과 타협해준다.


이러한 이야기의 분배는 승률이 꽤 높다. 전형적이고 뻔한데도 "밀애-발각-재기(복수)"의 3분 구도를 시청자들은 알면서도 매번 호응해준다. 만약, 김수현 역시 이 틀을 답습했더라면, "이제 김수현도 한물 갔구만"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일단, 밀애의 과정을 최소화했다. 이 드라마는 첫회에 이미 화영(김희애)과 준표(김상중)의 애정행각이 은수(하유미)에게 발각된다. 그들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그들의 밀애과정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따위는 그리지 않는다. 그때부터 화영은 매번 은수에게 얻어맞고, 떠나라고 종용받으며, 준표와 정리할 마음도 먹는다. 그러나 마음처럼 그것이 쉽지 않다. 계속 은수의 감시에 들키고, 그래서 계속 쥐어터진다.


이건 사실 작가로서의 엄청난 자신감이다. 이 드라마에서 밀애과정 이야기로 1/3을 때우지 않고도 24회분량을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24부작, 총 24시간이 좀 넘는 시간을 이미 불륜이 발각난 시점부터 시작해서 무엇으로 채우나? '일반' 작가들은 쉽게 엄두를 못낸다. 그러나 김수현은 거기서부터 시작해도 24부를 훌륭하게 채웠다. 심지어 좀더 드라마를 연장해달라는 시청자와 방송국측의 요청까지 들을만큼, 불륜스토리의 첫 단계를 빼고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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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또한 그녀의 문제의식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고 나면--이 점이 내가 김수현 드라마 대부분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누가 무조건 선한 인물도, 누가 무조건 악한 인물도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갈등은 각 인물들이 가진 서로 다른 욕망과 지향점, 성격이 만들어 낸 것일뿐, 누구의 일방적인 잘못도, 일방적인 악행때문도 아니다.


얼마전 리메이크 되었던 <사랑과 야망>의 태준(조민기)과 미자(한고은)의 갈등이 그 단적인 예이다. 둘은 너무도 사랑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너무도 서로를 증오한다. 드라마 총81회를 끌어가면서도, 끝내 이 둘의 이러한 애증의 감정은 해소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잘못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 둘은 제목 그대로 "사랑"과 "야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상대방에게 집착하고 또한편 진저리를 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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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내남자의 여자>에서도, 화영과 지수(배종옥), 준표 모두--물론 우선적으로는 지수가 피해자이다.--나름의 설득력을 가진 행동들이 얽히고 부딪혀 갈등을 빚어냈을 뿐이다. 나는 이러한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기 위해 김수현이 '밀애'단계를 생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래 밀애단계를 보여주면, 그러는 동안 '기만당하는' 지수는 한없이 불쌍해진다. 그녀에 대한 시청자들의 자연스런 연민은 이 문제에 있어 선/악을 쉽게 구분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 과정을 최소화한 것이다.


또한 지수를 일방적인 피해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결국 준표를 화영에게 보내는 건 지수 자신이 한다. 자신과 다시 화해하자며 떠나온 여행에서 여전히 화영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걸 안 지수는 단번에 준표를 '버린다'. 일반 불륜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울며불며 매달리는 과정이 지수에겐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의 준표는, 다른 불륜 드라마의 남자들과 비교하자면 '꽤 착했다'. 다시 시작하자고, 정말 미안하다고, 당신과 헤어질 마음은 조금도 없다고, 곧 정리하겠다고 말하며 지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화해를 요청했다. 그러나 지수는 준표와 헤어지는 쪽을 선택했다. 그저 자신을 배신한 남편에 대한 엄청난 분노, 절망을 느끼자, 곧장 끝을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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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 때문에 이 드라마는 '남성 캐릭터의 우유부단함, 나약함'을 그리고, 남성의 힘을 거세시켰으며, 특히 제목부터 "내 남자의 여자"에서 중심은 온통 여자들에 있다는 (아마도 남성 평론가들의) 볼멘 비평을 들어야 했다. 준표의 행동이 너무 유약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일 없이, 화영이 유혹하기 때문에 화영에게 넘어갔고, 지수가 버렸기 때문에 화영과 살림을 차렸다. 분명 그런 점에서 준표는 지수와 화영에 비해 이 드라마에서 자기결정권을 덜 소유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준표의 우유부단함을 그리기 위해서라고 보이지 않는다. 사실 준표의 행동이, 아마도 그동안 그려진 수많은 불륜드라마들의 남자주인공보다 훨씬 '현실적'일 것이다. 외도를 한 남성들의 대다수가 결국에 '바람은 바람일 뿐'이며 가정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니 준표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지수가 '새로운' 것일 뿐이다. 이런 경우, 지수 입장에서 남편을 '아웃'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그러한 선택을 하도록 만듦으로써, 이 드라마는 선/악 지수에 있어 세 인물이 제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지수, 화영, 준표 모두 '적당히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이 드라마는 '새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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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김수현은 한쪽 발은 굳건히 '땅'에 딛고 있는 작가다. 이렇게 이야기를 끌어간다고 해서 화영과 준표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것으로 무조건 미화시키거나 윤색하지 않는다. 세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주변인물들은 그야말로 우리 현실 속에 있는 가장 '상식적'인 태도들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준표는 '정신나간 놈'이고, 화영은 '쳐죽일 년'이고 지수는 '칠뜨기'일 뿐이다. 이 주변인들의 행동들 때문에 김수현 드라마는 노희경과 구별된다. 노희경의 <거짓말>에서처럼, 아내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편(이성재)이 아내에게 눈물을 흘리며 미안해하고, 아내(유호정)가 그런 남편을 보며 그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만 슬퍼하고, 새로운 사랑(배종옥)이 자신과 아내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를 안쓰러워하는 식의 이야기는 판타지에 가깝다. <거짓말>에서는 다른 인물들도 이들의 힘겨운 사랑을 안타깝게만 바라볼 뿐 '저런 쳐죽일년놈들'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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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 때문에 김수현의 드라마를 '설핏' 보기만 하는 사람들은 김수현이 '보수적'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에게는 도덕, 윤리에 대한 의식이 자신의 나이 만큼이나 공고하게 있다. <부모님 전상서>류의 드라마에서 우리가 묘한 '정화'의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도, 그의 드라마가 가진 보수적인 '가족이데올로기'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보이는 근소한 차이들, 그것들에 김수현이 가진 '진보성'이 숨어있다. <부모님 전상서>에서 막내 시누이(김보연)는 사실 업동이었다. 누군가 버린 아이를 친동생보다 사랑하고 친 시누이보다 사이좋게, 때로 시누이-올케간의 묘한 시기도 해가며 '새로운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가 그 안에 숨어있다. <내 사랑 누굴까>에서도 가부장적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잘난 둘째 아들(류진)은 애딸린 이혼녀(명세빈)와 결혼을 감행하고, 가족들은 그런 며느리를 갈등 끝에도 결국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혹'으로 같이 들어온 아이까지 깊이 아끼고 사랑하면서.


김수현은 그런 실험을 계속 하는 작가이다. 완전한 '전복'을 시도하진 않지만, 옛 것들 속에서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 그 속에서 '소외된' 다양한 인물군상들을 포섭하는 것. 거기에 김수현 드라마의 매력이 있다. 물론 이런 매력은 그의 드라마를 정말 '열심히' 봐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열심히'도 안보고 그를 '보수주의 노친네'로 몰아세우는 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

또 그렇기 때문에 사실 대중들의 사고방식에 끼치는 영향도 지대할 것이다. 다른 부분에서 전통적인 가치관을 뒤흔들지 않는, '바른 말 잘 하는' 드라마 안에 포섭되는 인물이라면 저 인물도 옳거나, 틀리지 않은것이 아닐까. 이런식으로 암암리에 그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윤리'는 대중 속으로 잠입해 들어간다.

이러한 맥락에서도 김수현의 어찌보면 '오만'에 가까울 정도의 자신감을 드러내 주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김수현 드라마에, 사회적으로 '억울하게' 오명을 뒤집어쓴 여성 연예인들을 기용하길 좋아한다는 점이다. <내사랑 누굴까> 시절, 당시 여러 물의로 늘 대중들에게 눈총받던 이승연과 매니저의 폭로로 졸지에 '분방한' 여성 취급을 받게 된 이태란을 기용한 것, <사랑과 야망>에서 이혼설, 남편 폭력설로 복잡하던 이경실을 캐스팅한 것 등 김수현은 나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여성 연예인들을 자주 가져다 쓴다.

그러나 그건 김수현이 배우 캐스팅에 난항을 겪어서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그의 드라마에 한번만 출연해 보고싶다고 줄을 서고 있을 배우들은 쎄고 쎘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수현은 그럴 때 그런 여자 배우들을 자연스럽게 드라마 속에 포섭시킴으로써 사회의 편견들로부터 구원(?)해준다(물론 무조건 이들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이승연의 경우, 그렇게 이뻐해줬지만, 종군위안부 누드사건이 났을땐 이승연에게 전화해서 바보같은 짓했다고 호통치며 당분간 쿡 쳐박혀 있으라고 했다고 한다.) 여자연예인들에게만 유독 혹독한 언론이나 대중들의 시선을 고쳐주려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일종의 자신의 힘(그런 배우를 썼음에도 그의 드라마가 성공함으로써)을 '증명'해보이고 싶어하는 것도 같기도 하다.어쨌거나, 나는 그런식으로 그가 보이는 사회를 조금씩 바꾸려는 노력이 마음에 든다.


각설, <내남자의 여자>는 세 주인공의 '새로움'과 나머지 주변 인물들의 '상식'이 만나, 아침드라마류의 불륜스토리를 즐기는 '아줌마'들 입맛에도 적당히 맞고(그들은 특히 은수가 화영을 처참하게 쥐어팰때 "나에게도 은수같은 언니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며 쾌재를 올리기도 했다.), 나처럼 새로운 스타일을 원하는 시청자들의 욕구도 충족시켜주는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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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그리하여, 이제 준표와 새롭게 시작한 화영 이야기(또는 화영과 새롭게 시작한 준표 이야기)와, 홀로서기를 시작한 지수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들을 만들어내는데, 이 지점에서 역시 기존의 불륜드라마 스토리라인과 조금 차별된다.


물론 여기서도 지수의 '홀로서기'는 샌드위치 가게의 성공으로 무척 순탄하고, 그 과정에 새로운 남자로 석준(이종원)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한 '성공'이지, 자신을 떠난 남편에 대한, 또한 자신을 배신한 친구에 대한 '복수'의 감정이 아니었다. 나는 그래서 김수현이 좋고 그래서 지수가 좋다. 미움이 그렇게 오래 갈 수 있을까?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깊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런만큼 더 큰 상처가 되는 배신을 했다해도, 그들을 평생 증오하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복수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결국에는 그들을 용서하거나, 엄밀하게 말하면 용서라기 보다 미움을 거두는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그 '미움을 거두는 일',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그들의 힘겨운 사랑에 대한 연민까지를 지수라는 캐릭터는 너무도 훌륭하게 표현해주고 있었다.


화영은 어이없게도 준표와의 관계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지수를 찾아온다. 그런 자신이 얼마나 어이없는가를 스스로도 잘 알면서도, 가장 힘든 순간 떠오르는 존재가 지수밖에 없다. 준표가 지수와의 사이에서 낳은 경민이라는 아들 외에는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며, 아이를 그렇게도 바라는 화영 몰래 정관수술을 했을 때, 화영은 지수를 찾아와 눈물을 흘린다. "너는 어떻게 그런 에고랑 그렇게 오래 살았니."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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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화영을 보며 지수가 보이는 반응이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새로움이다. 지수는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한편으로 그런 선택을 해준 준표에게(경민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이복동생은 만들지 않으려고 한 것에) 감사해 한다. 그러나 그런 또한편으로, 화영에게 "그게 내 남편이었던 사람만 아니라면, 난 너를 안고 울어주었을 거야. 가슴이 아파서."라고 마음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쌈마이'로 어쭙잖은 이들간의 극적인 화해와 용서를 시도하진 않는다. 화영은 지수를 찾아와 그런 얘기를 하지만, 그런 자신이 스스로도 우스워 어느 순간 벌떡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지수는 그런 화영의 얘기에 놀라고 안스럽지만, 그렇다고 오버스럽게 화영을 위로하지도 않는다.



언니 은수는 그런 두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은수가 지수에게 "저 칠뜨기, 걔(화영)는 또 뭐라니? 그런 얘길 너한테 와서 하는 저의가 뭐야?"라는 '상식적'인 반응을 보이자, 지수는 이렇게 답한다. "있잖아 언니, 우린 일종의 애정관계였던 것 같아. 화영이랑 나 말이야."


은수에게서 "너 잠재적인 레즈비언이야?" 소리를 듣지만, 나는 그런 지수의 마음이 너무도 절절히 이해가 간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내 남자를 빼앗았다는 것은 정말 미칠듯한 배신감이 드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 친구 역시 너무 사랑하는 존재이다. 남편에 대한 미움과 집착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 갈 수록, 이젠 친구의 힘겨운 사랑만이(그게 과거 내 남편과의 일이라 해도) 걱정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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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영 역시 그러하다. 친구에 대한 죄책감, 그러나 남자를 빼앗아 온 만큼 보란듯이 잘 살아내야겠다는 자존심만이 작용했다면 절대로 지수를 찾아와 울지 않을 것이다. 그 이상의 무엇. 화영에게는 그런 감정이 지수에게 있었던 것이다.(나는 사실 여성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얘기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 그리고 그런만큼 여성들이 연대하는 이야기만 보면 무턱대고 좋아하는 경향이있다. 인정한다.)그래서 <내남자의 여자>이다. 처음에는 "내남자의 여자"가 화영을 지시했겠지만, 나중에는 지수를 의미하게 된다. 내 남자라는 매개를 통해 두 여성이 마주서있다. 그 둘은 '내남자'를 통해 성장하고 사랑을 배우게 된다.(내가 '성장'에 대해서도 집착한다는 점도 인정한다.)


 결말이 세 사람 다 각자의 길을 가는 것 역시 나쁘지 않았다. 화영과 준표가 <사랑과 야망>의 미자와 태준 처럼 계속 으르렁거리면서도 서로를 떠나지 못하고 살았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사랑도 한 때, 청춘도 한 때"라며 떠나는 화영도, 그녀가 떠난 뒤 "여자, 꼭 있어야해요?"라며 홀로서보려 노력하는 준표도, "난 이제 당신이랑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아. 김새"라고 말하는 지수도 훌륭하다. 그들은 사랑을 알고 시간의 힘을 알며,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다. 세 사람의 선택에는 '남들 사는 대로 살자' 식의 타자의 시선이 없다. 어떤 절망의 끝에, 결정을 해야할 마지노선에 놓였을 때, 자신들만을 들여다보고 선택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가장 후회없는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이 드라마는, 그리고 김수현은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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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짐씨네 2007/06/30 15:07

    이 드라마를 한 번 볼 걸 그랬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못 봤으려나...

  2. BlogIcon 2007/06/30 19:04

    응.. 저도 쫌 시간이 지난 후에 한 번 봐볼래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ㅎ

  3. BlogIcon 2007/06/30 19:07

    응... 근데 결혼제도 말고, 다른 것을 상상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요즘은..
    관계라는 게 뭘까.. 특히 애인관계라는 게 뭘까.. 잘 모르겠네요. ㅎㅎ
    별로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연구(^^)하는 것은 아니고,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죠.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아니 '나'라는 게 뭐지, 그런게 있나? 있다면 뭘까. ㅎㅎ

  4. BlogIcon Gore 2007/07/02 08:07

    최고! 덧붙일 말이 없을 정도로 빡빡한 리뷰네요 : ) '역시 김수현이다' 쪽에 속하는 인간이기도 하지만 워낙 배종옥을 좋아해서 나쁘게 볼래야 볼 수가 없었던 드라마였어요.

    사실 김수현은 '감정'이라는 것의 진행을 정말 정치하게 잘 읽어내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것들은 김수현 특유의 연극같은, 독백체의 대사들을 통해 풀려나오구요. 김수현 드라마의 매력은 역시 그 김수현 식 대사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승연, 이태란, 이경실과 김희애, 배종옥 모두 대사 전달에 있어서 참으로 뛰어난 배우들이네요.

  5. coolya 2007/07/02 08:24

    오...여기에도 배종옥 휀이~(고레^^군은 어제 얘기로 보나...여성취향으로 보나 아무래도 김장철님과 동년배인게 틀림없닷!ㅋㅋ)

    김수현식의 대사는,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나도 이번 드라마의 하유미는 좀 버겁더라. 그러나 배종옥과 김희애가 그럴때마다 페이스조절을 해준단 느낌이 들었음. 둘다 훌륭한 배우야. (나도 두 여성 다 무척 좋아함. 성적으로는 김희애한테 조금 더 끌리긴 하지만..ㅎㅎ)

  6. BlogIcon 2007/07/02 14:47

    ㅎ 어제 이야기들 이후에, 다시금 읽어보니, 또 새롭게 와 닿는 것이 있네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도 참..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

  7. BlogIcon Gore 2007/07/03 14:42

    하하; '피서철'로 불러주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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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모>는 내가 키운다!-‘다모 폐인’의 Interac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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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이란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수용자가 미디어, 영상 텍스트의 내러티브, 내용에 개입하고 영향을 줄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 상호작용성은 쌍방향 텔레비전, TV시청자게시판, 게임의 하이퍼텍스트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다모>의 드라마 제작진과 매니아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반응 사이의 상호작용성은 그 자체가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1년여의 제작기간, 편당 2억원의 제작비 등 다른 드라마에 비해 파격적인 ‘대우’를 받아온 <다모>는 첫 방송에 앞서 시청자 700명을 초청해 공개 시사회를 갖기도 했다.
이때부터 <다모>의 시청자들과 <다모> 게시판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다른 드라마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드라마를 즐겨보는 시청자들의 일상적 행동 정도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좀 달랐다. 그들이 올리는 시청자 게시판의 내용은 단순히 ‘드라마가 재미있었다’ 수준의 시청소감이 아니라, 자신이 감명받은 장면들을 편집해 하나의 뮤직비디오로 만들어 동영상을 링크하고, 극중 대사를 모으고, 각 인물들의 구도를 표로 만들고, 감초역할의 조연들까지 동원한 다모 패러디물로 넘쳐났던 것이다. 차츰 이들은 스스로를 ‘다모 시청자’ 정도가 아닌, ‘다모폐인’이라고 지칭하며 적극적으로 이 드라마에 반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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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인”이란 어휘의 첫 유래가 ‘DC 인사이드’라는 모 디지털카메라 관련 인터넷 사이트였듯, ‘다모폐인’들은 단순한 드라마의 시청자라기보다는 자신들이 본 드라마의 새로움에 열광하고 적극적으로 개입 수용하는 모습으로 이 드라마에 대해 지지를 보내었다. 자신들이 본 신선한 화면들, 영화 못지않은 웅장한 스케일의 앵글들에 대해 열렬한 환호를 보내며, 이것을 끊임없이 ‘복제’하고 ‘패러디’함으로써 재생산해내었다. <한성좌포청신보>등의 <다모>신문까지 만들어내며 이제 <다모> 시청자게시판을 넘어서서 <다모> 전문 홈페이지, 사이트를 제작하는 데에까지 나아갔다. 그리하여 언론까지도 ‘다모 폐인’들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사이트에서는 숱한 다모 패러디물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다모>의 대사들은 유행어가 되기 시작했으며, 폐인들의 말투는 하나같이 <다모>의 등장인물들의 그것을 따라해 지금은 아예 ‘다모폐인’만이 아니라 온라인상의 대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하나의 보편적 말투로까지 자리잡았다. 총 14회가 방영된 드라마에서 200만건이 넘는 게시수를 기록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이 드라마의 팬들의 숫자와 열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 방식은 수동적인 ‘반응’의 차원을 넘어서서 자신들 스스로 드라마에 개입하고 드라마의 전개와 분량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제목

이 표지판의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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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원밖으로 발을 내놓지 마시오.

쩌어비이

앞에 두글자는 please don't로 번역이 되오. 뒤에 두 글자는 모르겠소.

허..

나체로 소리치며 뛰지마시오?

꼬장

욕설금지 아니옿?

펭귄

입만뚫린사람 출입금지. 귀,눈,코,입이 모두 있을 것.

여름반바지

칭 위 쉬엔 후아 - 애새끼들 뛰고, 떠들고, 장난치지 마랏~!

넝너카게

칭 위 쉔 화 : 소란 피우지 말아주시오.

때놈

칭 우 쉬엔 화 : 깝치지 말것

여름반바지

칭 우 쉬엔 후아 : "우"가 맞네요...^^;;

잉여인간

젓가락을 던지지마시오

받칟왕

행복하십니까?

dd

간단하네... 사진처럼 따라하지 마라..

개마왕

예! 저뒤에 계신분은 저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이하 생략)...



위의 방식(출처: http://dcinside.com/)이 바로 폐인 문화의 전형적인 예이다. 하나의 수수께끼에 대해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더 다양한 답을 만들어내느냐가 그들에겐 더 중요하다. 남이 못본 부분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내고 반응해내는 것에 열중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신들의 ‘재미’와 ‘웃음’을 찾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 웃음의 텍스트를 다시 비틀어 보고 패러디하며 숨겨진 부분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그들이 왜 그러한 일을 하는가? 자신의 하루에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가며 왜 그렇게 <다모>의, <다모>에 의한, <다모>를 위한 “폐인”이 되었는가? 그 대답은 허무하게도 “그냥”이다. 어떠한 목적이나 이익을 위해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그냥 즐기고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를 ‘폐인’이라고 지칭했다. 자신들의 행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와는 꽤 동떨어져 있다는 것. ‘무목적적’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그들은 ‘폐인’이며 그 사실을 당당하고 유쾌하게 즐긴다. 그들은 누구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도,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판단은 날카롭고 정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문화콘텐츠의 취향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콘텐츠들을 판단하는 가장 명확한 기준은 바로 “재미”이다. 그들에게 재미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자신들의 마음에 든 콘텐츠에 대해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목숨을 걸고 홍보하고 전도(?)한다. 그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미디어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전파 속도는 엄청나다. <다모>가 동시간대에 방영되었던 <야인시대>라는 강적을 만났음에도 매니아층들에 의해 20%가 넘는 시청률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폐인’들의 ‘무목적적 문화 즐기기’, 그리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의 덕분이다. 그들은 가장 예민하게 문화콘텐츠들에 반응하며, 그 느낌을 자기에게서 그치지 않고 타인들에게까지 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문화적 코드를 파악하여 그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한다면, 그 콘텐츠가 성공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럼, ‘다모폐인’들은 왜 <다모>에 열광했을까? 사실 <다모>가 완벽한 드라마였다고 할 수는 없다. 신인 연출가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허술하고 서툰 면도 많다. 특히 드라마의 후반 이후 이야기와 연출이 갈피를 못잡고 많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왜 <다모>를 말하는가? 초짜 감독과 작가, 시청자층의 폭이 한정되어 있는 역사 드라마의 한계, 캐스팅 배우들의 낮은 지명도, 동 시간대의 경쟁 드라마(<야인시대>)의 우세한 선점(先占) 등의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성공으로 이끈 힘, 그것을 밝혀내는 일은 일개 드라마에 대한 감상이나 분석이 아니라 ‘다모 폐인’이라는 문화적 현상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2.  <다모>, 숨겨진 과거를 추적하다!

<다모>는 역사드라마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크게 히트를 친 역사 드라마들의 특징은 우리의 과거를 왕실과 귀족 속에서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왕족과 사대부관료들의 세력다툼, 이를 위한 분당과 정쟁의 역사는 중고교시절 지루한 국사 교과서에서 배울 만큼 배웠던 것이다. 게다가 <장희빈>에서와 같이 이러한 권력쟁탈전의 뒤에는 ‘베겟머리 송사’로 남자를 뒤흔드는 ‘요부(妖婦)’들이 있다는 식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정형화되어버린 캐릭터설정에도 식상할 만큼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의 역사에 흥미를 느끼지만 이제는 새로운 방식의 역사를 보고 싶어했다. 이러한 시청자들의 욕구를 잘 파악해서 만들어진 역사 드라마들이 <허준>이나 <상도>, <여인천하>와 같은 드라마들이었다. <허준>이나 <상도>와 같이, 왕실과 사대부의 세계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다루든가, <여인천하>와 같이, 남성중심의 정치를 탈피한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이들은 왕조실록에는 감춰져 있던 역사, 중심이 아닌 주변부의 역사를 ‘미시적(微視的)으로 그리는 드라마들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역사 드라마들이 조금씩 진화를 해오고 있었던 시점에 등장한 드라마가 <다모>이다. 그런데 <다모>는 엄밀히 말해서 정통사극은 아니다. 역사드라마는 보통 정사극, 야사극, 창작역사극의 세가지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사극이란 시대, 사건, 인물이 역사적 사실인 드라마로, 보통 왕조실록이나 역사적 기록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정통사극이다. 그리고 야사극은 시대, 사건은 정사이지만 픽션과 허구의 인물을 가미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창작역사극은 사건과 인물 모두가 픽션인 역사드라마로 시대적 배경만을 과거에서 가져온 경우이다. <조선왕조 오백년>이나 <용의 눈물>, <태조 왕건>과 같은 드라마는 실재(實在)했던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정사극이고, 최근에 만들어진 <허준>이나 <대장금> 등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 많지 않은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허구적 요소를 많이 가미하여 만든 역사드라마는 야사극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다모>는 실존했던 인물이 아닌, 당대의 상황과 사회구조의 틀만을 가져와 순수하게 창작해 낸 드라마라는 점에서 창작역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허준>이나 <대장금>은 그나마 실존했던 인물들이기 때문에, 허구적 요소가 태반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역사의 접혀 있던 페이지를 펼치는 일 정도의 의의는 있지만, <다모>를 보고 우리가 국사 공부에 도움을 받기는 영 어렵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또 한번 우리의 과거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가부장제 사회질서에 의해 여성의 사회진출이 불가능했던 조선시대에 “茶母”라는 직업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다모'(茶母)=============================================== 


“다모”(茶母)란?

조선에는 '다모'(茶母)라는 여자 형사의 역할을 한 직업 여성이 있었다.

'식모'(食母), '침모'(針母)와 더불어 관가나 사대부 집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천민 신분의 사람에게, 그것도 여성에게 '수사권'이라는 직업적인 책임을 부여했다는 점은 의외의 일이다. '다모'라는 여성들은 규방 사건의 수사, 염탐과 탐문을 통한 정보 수집, 여성 피의자 수색 등 잡다한 수사 권한을 가졌음은 물론 톡톡히 제 몫을 해냈다고 하며, 나아가 궁궐에서 일했던 한 '다모'는 역모 사건의 해결에 일조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줄거리>

 ‘다모(茶母)’는 조선시대의 여형사로, 방학기의 만화 <다모>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드라마이다. 역모죄에 휘말려 집안이 풍비박산되는 바람에 관비로 전락, 다모가 된 채옥(하지원)과 서자 출신의 포도청 종사관 황보윤(이서진),혁명을 꿈꾸는 화적 두목 장성백(김민준)이 중심인물이다.

드라마는 세 남녀의 비극적인 운명을 씨줄로, 차 심부름하는 관비이면서 여형사 역할을 하는 ‘다모’와 포도청 포교들이 펼치는 조선시대 형사의 활약상을 날줄 삼아 촘촘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좌포도청 다모(茶母)인 채옥은 여인들이 관련된 사건의 조사를 맡은 포청 소속 관비이다. 양가집 별당 아씨 살해 사건은 채옥의 기지로 범인이 가려지지만 수사에 무리가 있었다며 종사관인 황보 윤(이서진)은 오히려 채옥을 나무란다. 나라의 근본을 흔드는 위험한 범죄, 위조엽전인 사주전이 시중에 돌자 포청이 은밀히 수사에 들어간다. 채옥은 남장을 하고 경기도로 기찰에 나서고 전국 방방곡곡에 포교들이 잠행에 나서는데 이 과정에서 채옥은 장성백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사랑을 느끼지만 장성백은 채옥이 어릴 적 헤어진 오빠이다. 장성백과 황보윤 사이에서 갈등하는 채옥, 그리고 역모를 둘러싼 쫓고 쫓기는 관계, 첨예한 대결 등에 의해 이 드라마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러나 채옥을 살리려다 죽임을 당하는 황보윤, 황보윤의 복수를 하려고 장성백을 죽이는 채옥, 장성백이 죽으면서 남긴 말에 그가 자신의 오빠임을 알고 역시 죽게 되는 채옥. 이 세사람의 운명은 그렇게 비극으로 끝난다.


주요등장인물


- 좌포청 다모 (하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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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포도청 소속 다모. 포도 종사관(종6품) 황보윤의 심복.

어려서 익힌 검과 권법에 18반까지 수련하면서 여성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무도에 올라 있으며 특히 반팔 길이의 단도(短刀) 두 자루를 잘 다룬다. 위급하거나 여러 명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표창솜씨도 일품이다.

 

- 좌포청 종사관(종6품) 황보 윤 (이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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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포도청 포도 종사관. 황해도 신천 현감을 거쳐 평양부 서윤을 지낸 아버지와 개성상인이던 남편을 여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첩으로 시집을 오게 된 어머니 오씨 사이에서 태어나‘명문가의 서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자랐다.








 

- 화적 장성백 (김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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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고수로 알려진 백검이 장성백이다. 전라도 남원의 관노로 살다가 멍석말이를 당해 반죽음이 된 채 시체 더미 속에 버련진 어린 성백... 시구문 밖 초병에게 수수 서말을 건넨 나환자 황씨 부부에게 팔린다. 자식을 갖고 싶어하던 황씨 부부의 손에 자랐다. 열 다섯 살 되던 해 문둥이 마을에 찾아 온 육십 노인의 손에 이끌려 마을을 떠난 뒤, 스무 네살이 되도록 민가에 내려오지 못하고 산채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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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역사는 사실 사대부들의 늑장부리는 팔(八)자 걸음걸이처럼 굉장히 정태적이다. 늘 침략당하기만 한 역사, 공격이 아닌 수비밖에 못한 국력, 변화를 두려워했던 정치, 당파싸움에만 몰두했던 사대부계층...이러한 것이 우리가 우리의 과거에 대해 자주 떠올리던 이미지였다. 물론 이러한 이미지를 만든 데에는 우리의 실제 역사보다도 일본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식민사관의 탓이 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입견을 뒤집어 엎을만한 증거로서의 새로운 역사 발굴이나 교육이 그 동안은 다소 부족했다.
그런데 최근의 역사드라마들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조금씩 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허준>을 보며 시청자들은 한의학의 과학성과 전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상도>를 보며 중농주의 정책만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조선시대에 음지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던 상업의 모습을 체험하게 되었으며, 같은 궁궐 내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여인천하>는 왕비와 후궁들이 단지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모함’을 하였던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잡기 위해 스스로 ‘정치’를 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역사를 보게 했으며, <대장금>을 통해 기존의 왕족 이야기 중심의 사극에서 엑스트라적 존재였던 궁녀들이 각자의 분야에 있어서 엄청난 ‘프로페셔널’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삶은 결코 정적(靜的)이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 사회 못지 않은 활력과 역동성이 존재하는 동적인 세계였던 것이다.

<다모>는 조선시대 여성이 범죄현장에서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수색하는 활동을 했음을 보여주고, 사랑방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공자왈 맹자왈이나 읊는 선비가 아닌 하늘을 날고 칼을 휘두르는 역동적인 조선시대 사람들을 그렸다. 이 드라마에서의 황보윤(이서진 분)의 직위였던 ‘종사관’도 이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주목받은 조선시대의 직책중 하나이다. <다모>가 등장하기 전까지 포도청에 포도대장말고 종사관이라는 직책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이 얼마나 있었을까? <다모>이후에 방영되어 더 큰 인기를 얻었던 <대장금>에서 민정호(지진희 분)의 초반 직업 역시 ‘종사관’이었다는 사실도 그런 점에서 재미있는 대목이다. 그 전까지 우리가 역사드라마에서 남성 주인공의 멋진 벼슬은 ‘정승’ ‘판서’ 등의 최고위 관리이거나, 고을에 선정(善政)을 베풀고 억울한 사람들의 누명을 벗겨주는 ‘원님’이거나, 탐관오리를 벌하는 ‘암행어사’ 정도였다. 그러나 <다모>에서 황보윤이 보여주었던 문무를 겸비한 젊은 남성의 활동적인 직업으로서의 ‘종사관’은 <옥탑방 고양이>나 <겨울연가> 등에서 이현우, 배용준 등이 맡았던 ‘실장님’과 같은 ‘젊은 남성주인공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직업’의 대명사처럼 생각되어졌다.

이것은 정사(正史)에서 관심을 두어왔던 부분들이 아니다. 중심에 왕실과 사대부 관료들의 권력투쟁이 있었다면, 이러한 역사는 그 중심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주변부의 역사인 것이다. 그런데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대한 관심, 바로 이것이 ‘폐인’들을 들끓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앞서 보인 ‘폐인’들의 사고 패턴처럼, ‘폐인’들은 한가지의 답만을 찾아내는 것을 싫어한다. 감춰진 사실, 중심에서 비껴나 있는 것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서 새로운 흥미를 찾아내기. 이것이 ‘폐인’들의 문화행위방식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모>가 서 있는 주변부의 역사, 감춰진 과거 찾기라는 위치는 ‘폐인’들의 입맛에 딱 맞는 것이었다.


3.  ‘중세’에 대한 ‘현대’적 스토리텔링


이러한 새로운 역사드라마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기존의 정사극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정사극은 역사적 사실들에 충실하여 스토리의 윤곽을 만들고, 단지 각 사건들을 보여주는 대사와 장면들을 어떻게 만들것인가 정도에만 상상력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극들의 경우 시공간과 몇가지 중요한 사실이 과거의 것일 뿐, 그 안의 내용물은 모두 상상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역사드라마들은 정사극보다도 더 열심히 그리고 디테일하게 역사를 공부해야 했다. 즉, 과거 속에서 현대의 세계를 유추해 낼 만한, 우리의 현실과 무척 다르면서도 닮은 그런 세계를 발굴해내는 일이 새로운 역사 드라마의 중요한 과제였던 것이다. 그래야만 시청자들은 흥미롭게 역사드라마를 볼 수 있다. 젊은층들이나 여성시청자들의 경우 사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는 젊은이들이나 여성들이 역사를 이해못한다거나 지겨워하는 능력미달의 인간들이어서가 아니라, 그 역사 자체가 지겨운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모>에 열광하는 부류는 앞서 말했듯 가장 젊은 신세대들이었다. 그들이 역사극을 보게 되었다는 것은 이것이 고리타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모>가 고리타분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화려한 액션과 신선한 카메라워크, HD TV의 고화질 화면 등의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스토리텔링이 현대물 트렌디 드라마들 못지 않은 모던함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David Howard가 말하는 잘 짜여진 좋은 스토리의 기본 요건은 다음과 같다.1)



1. 관객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누군가(somebody)'에 관한 스토리이다.

2. 그 누군가는 어떤 일(something)'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한다.


3. 그 어떤 일은 성취하기가 어렵다(difficult)'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4. 그 스토리는 최대한의 정서적 임팩트(emotional impact)'와 관객의 참여(audience participation)'를 끌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5. 그 스토리는 만족스러운 엔딩(satisfactory ending)'으로 맺어져야 한다(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러한 스토리의 요건에 따라 잘된 콘텐츠들을 분석해보면, 잘된 콘텐츠일 수록 이 요건을 정확하게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살인의 추억>과 같은 경우, “각자 개성 있고 인간적인 형사들이(somebody), 연쇄살인범을 잡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지만(something), 그 일은 성취하기가 대단히 어렵다(difficult). 사건추리 과정에서 한 명의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내어 관객들은 흥분하지만(audience participation), 당시의 여러가지 여건상의 어려움과 증거불충분으로 그를 놓아주게 되어 형사들과 함께 관객들도 분노와 절망을 느낀다(emotional impact). 결국 이 연쇄살인사건은 실제 이 사건이 그러했듯 미결상태로 묻혀져 추억이 되어버린다(satisfactory ending)”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앞의 3요건, “누군가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조건은 모든 서사적 콘텐츠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이다. <다모>에서는 황보윤, 채옥, 장성백의 세 명이 각자 위의 요건을 충족시킨다.



황보윤: 채옥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멋진 남자 황보윤은, 역적들을 소탕하고 채옥과 함께 행복해지려 하지만 그것이 모두 매우 어렵다.


채옥: 여성의 활동과 역할이 미미했던 조선시대에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당찬 다모 채옥은, 황보윤의 앞길에 짐이 되지 않으려 하고, 장성백을 돕고 싶지만 두 가지 일 모두 매우 어렵다.


장성백: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동지들과 의리를 나누는 역모 무리의 우두머리 장성백은 부패한 나라를 뒤집어 개혁하고, 채옥의 사랑을 얻고자 하지만 그것이 매우 어렵다.


이러한 세 주인공의 서로 다른 욕망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치고 충돌하면서 <다모>의 이야기는 첨예한 갈등을 만들며 전개된다. 시청자들은 이들 세 사람 각각의 입장과 감정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그들의 목표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들 세명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한 명이 행복해지는 길은 역으로 다른 한명이 불행해지는 길인 것이다. 특히 국가와 채옥이라는 두 가지의 소중한 가치를 두고 대립하는 황보윤과 장성백의 긴장관계는 이 드라마의 스토리텔링을 이끌어나가는 가장 큰 힘이다. 결국 세 사람은 함께 행복해질 수 없어서 모두 불행해지는 쪽을 택하게 되고, 시청자들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세 사람의 비극적 운명을 이해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세 명이 만들어 내는 팽팽한 갈등상황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전개해 나간다. 극 후반부에 가서 세 사람의 사랑 얘기가 다소 지지부진해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나, 극 중반까지 세 명과 세명을 둘러싼 사람들의 대립구도가 박진감있게 펼쳐지고, 각 인물들의 캐릭터설명 부분도 압축적인 영상으로 보여주어 기존 역사 드라마들의 느린 템포와 차별화했다. 보통 사극의 경우 기본적으로 50회 이상의 대하드라마로 기획하기 때문에 주요 인물들의 출생부터 성장과정을 매우 상세하고 차근차근하게 보여준다. <허준>의 경우나 <대장금>의 경우처럼, ‘허준’과 ‘장금’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의 이야기가 극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막상 의원(醫員)이 되는 것은 극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이다. 그러나 <다모>는 1-2회 때에 이미 과거의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뿐 아니라 그 중의 절반은 현재의 상황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1-2회만으로도 각각의 주요 캐릭터들에 대해 모든 파악이 가능하고, 갈등구조가 명백해져 있다. 이러한 속도감 있는 이야기의 전개 역시 <다모>의 현대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다모>의 시청자들이 첫회를 보고 감탄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박진감 있는 구성과 스펙터클한 영상이 ‘TV드라마’가 아닌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4.  디지털이다!

처음 영화라는 영상매체가 발명되었을 때 영화는 스펙터클에 대한 집착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분야였다.2) 초기 영화관객들은 이미지를 사실로 착각하지는 않았지만 영사되는 움직임이라는 새로운 환영을 통한 변형에 경악했다. 즉 초기 영화는 볼거리의 미학이고 스펙터클 형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20-30년대부터 영화는 서사중심의 영화로 변모되면서 초기 영화의 스펙터클과 자극의 영역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초기 관객들은 영화 장비에 매료되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영화의 핵심은 서사였으며, 대부분의 관객은 일정한 유형의 이야기를 수용하고 관람하면서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 점차 빠져들었다.

그런데 오늘날 대중오락 분야에서는 이 스펙터클의 요소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특수효과의 부흥과 관련된 영화가 개발되고 늘어나면서 새로운 이미지 조작 기법으로 제작되는 자극, 충격, 놀라움이 선호되고 서사적 요소는 쇠퇴한다. 관객은 너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장면에서 고도의 표면 정확성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초기 영화의 관객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디지털 영상문화의 형식은 대중오락의 초기 전통과 문화적으로 동일한 공간을 공유한다. 스펙터클적 오락의 전통. 이런 과거와 현재, 옛것과 새것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디지털 기술이다.

이러한 변화가 이제 TV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다모>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브라운관 화면에 강력한 흡인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스펙터클”이었다. 다양한 영상기법과 HDTV의 고화질 화면을 통해 <다모>는 기존 TV 드라마와는 ‘볼거리’의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회당 2억원 이상을 투자하여 만들었으며 독특한 카메라 앵글이나 계속 이어지는 와이어 액션등은 이 드라마가 사극이기는 하지만 매우 현대적인 감각의 드라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 드라마를 ‘누가’ 즐겨야할지를 가르쳐 주었다. 몰입할 만한 매력적인 캐릭터에, 리얼한 비쥬얼, 스타일리쉬한 카메라기법. 젊은층이 빠져들 만한 요소는 모두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디지털세대, 특히 ‘폐인’들에게 이 드라마가 크게 어필하게 만든 가장 결정적 요인일 것이다. 그들은 <다모>에서 자신들이 즐겨하던 게임과, 자신들이 즐겨 보던 블록버스터 영화와, 자신들이 즐겨 만들던 디지털 영상기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드라마 <야인시대>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에는 남성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격투대결신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매회 새롭고 점점 더 강한 적수와 싸우고,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김두한을 보며 시청자들은 ‘스트리트 파이터’ 류의 아케이드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다모>역시 아케이드 게임 형태의 무협 결투신을 만들어냈다.특히 작품 초반 계속되는 대결씬은 등장인물간의 갈등요소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야인시대>가 2-D의 ‘스트리트 파이터’라면 <다모>는 3-D의 ‘철권’이나 ‘버추얼 파이터’처럼 그래픽 차원에서의 업그레이드를 성취해내었던 것이다. <다모>가 끝난 직후 시작한 <왕의 여자>의 무협신이 허술하게 보인 것은 바로 <다모>를 본 시청자들의 한 차원 높아진 눈높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지금 또다시 <야인시대>와 같은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이번엔 지난번과 같은 시청률을 얻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다모>는 액션에 있어서 기존 TV드라마의 한계치를 훌쩍 뛰어넘은 작품이며, 앞으로 만들어질 액션 중심의 TV드라마들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것이다.



5.  ‘옛 것’ 속에서 ‘새 것’ 찾기-결론을 대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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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스타워즈>의 시공간적 배경이 “아주 먼 옛날, 머나먼 은하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L. 보제로가 <스타워즈> 클래식 3부작의 모든 시나리오 원고들을 비교 대조한 

<STAR WARS: The Annotated Screenplay>에 따르면 <스타워즈>가 처음에 기획될 때에는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아주먼 미래(33세기)’로 설정되었었다고 한다.1) 그러나 이 기획안을 수정해가는 과정에서 제작진들은 ‘미래’대신 ‘과거’로 이야기의 공간을 바꾸었다. 왜일까? 왜 가장 첨단의, 현 21세기에도 도래하지 않은 ‘우주전쟁’의 시대를 다룬 영화가 오히려 고대의 공간으로 회귀해버렸을까? 그것은 바로 ‘상상력의 자극’을 위해서이다.

미래 세계이건 고대의 신화적 세계이건 현실이 아니라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우주의 전쟁’이라는 컨셉트는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즉, <스타워즈>라는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이 영화에게서 바라는 것은 ‘현실’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명과 과학이 얼마나 더 발달했을지 상상조차 안 되는, 혹은 그 상상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는 막연한 ‘미래’의 공간보다는,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워 온 고대의 문명과 문화의 모습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과거’의 공간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더 흥미로울 수 있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이런 가정을 한번 해보자. 33세기에, 우리 인간들은 지금처럼 생겼을까? 지금과 같은 방식의 하루일과를 살고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랑을 하고 자손을 낳고 죽을까? 글쎄. 지금까지의 의학과 과학 문명의 발달만 보아도, 앞으로 13세기나 지난 뒤의 우리의 미래는 도통 점쳐지질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종말론’이 그 시기에 대해 비관적인 상상만 하게 만들 뿐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살아있을 수 있을지도, 살아있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생활방식을 살고 있을지도 전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고대라는 공간의 생활방식을 상상하면 이야기는 좀 쉬워진다. 어떤 부분은 가장 미래적으로, 어떤 부분은 가장 고대적으로 그려도 모든 것이 용서된다. 대신에 이 지구라는 행성 위의 사건이 아니면 된다. 그리하여 <스타워즈: 에피소드4>(1977)에서 보이듯, 루크는 한편으로는 유능한 우주비행선 조종자이고 한편으로는 땅에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사꾼이다. 광선 하나로 우주선도 끌어들일 수 있는 강력한 레이저와 광선의 기술이 발달된 시점에 루크와 다스베이더는 총이 아닌 검으로 싸운다. 평상시의 옷은 고대 그리스의 의복과 비슷하고 전투시에는 사이버틱한 우주복을 입는다. 이처럼 <스타워즈> 안에는 정 반대의 것들이 교묘하게 섞여 새로운 상상 속의 시공간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는 이 세상의 본질적인 자질에 속하는 모호성, 가변성을 포괄하며 다분히 문제적이고 때로는 역설적이기도 한 모든 현상들에 대해 생생한 암시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과학문명이 발달된 우주 전쟁의 드라마가 ‘옛날 옛적, 머나먼 은하계’에서 일어났다고 설정되는 것은 보다 깊이있는 상상력의 자극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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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스타워즈>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모> 역시 과거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뒤섞여서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다모>는 그 배경이 되는 시공간(조선왕조체제)과 인물간 갈등의 원인(중세적 신분질서), 에피소드의 소재(사주전, 역모) 등은 중세적인 반면, 스토리의 구도나 전개 속도, 배경음악과 액션, 카메라와 편집기술 등은 최첨단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과거지향적인 이 역사 드라마를 즐겨본 주도적 시청자층이 가장 미래지향적인 디지털세대들이라는 점 역시 역설적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양 극단의 성격이 오히려 시너지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이 드라마가 구태의연한 이야기틀과 캐릭터를 가졌더라면? 중세의 액션이라고 해서 초등학생들 주먹질 수준의 소박한 몸동작만을 보여줬더라면? 새로운 소재 발굴에 소홀했더라면? 그랬다면 <다모>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옛 것 속에서 새 것을 찾아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그것도 젊은 디지털세대들이 열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시장의 타겟으로 삼고 있는 층이 젊은이일 경우, 우리는 혹시 영화와 드라마, 특히 게임이 지나치게 ‘미래’로만 나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는 지금 개발하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 게임 콘텐츠들의 방향성에 대한 물음이다. 즉, 디지털 세대들이 반드시 ‘미래’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특히 SF물의 경우, 이러한 측면에서의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 작년 개봉되었던 우리나라의 SF영화 <내추럴시티>와 막대한 투자를 해 만든 SF애니메이션 <원더풀데이즈>의 실패를 돌이켜 보자. 그 속에 우리 민족, 한국이 있었나? 국적 불명의 생경한 이름들(시몬, 제이, R, 노마, 시온, 리아 등), 이국적인 거리의 모습, 등장인물들의 서구적 외모 등 이 두 작품에는 외국 SF물에서 보았음직한 장면과 구도들로 채워져 있고, ‘한국적인 것’은 거의 없다. 두 작품의 제작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결국 한국적인 미래 전망은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한국의 미래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들은 “미래=서구적인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가졌을 수 있다. 그리고 기존에 있던 외국의 SF물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을 간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헐리우드적인 SF물이라면 굳이 투자액수에서부터 비교도 안되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제작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한국의 SF를 볼 이유가 있을까? 훨씬 더 스펙타클한 헐리우드 영화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물론 그렇다고 우리는 미래 이야기는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식의 공상과학물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환상성’을 만들어 내는 공간을 우린 지나치게 미래에서만 찾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현실을 떠나 만들어내는 ‘상상’의 공간은 꼭 미래에만 있지는 않다.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모르는 만큼 과거에 대해서도 모른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라고 할 때, ‘과거’라는 공간은 ‘미래’만큼이나 매력적일 수 있는 것이다. 허술한 미래세계를 상상해내는 것보다는, 감춰져 있던 우리의 과거세계를 재현해 내는 것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흔한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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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BlogIcon Gore 2007/06/27 20:57

    이런, 누나 글 사진 링크가 깨진 게 좀 있네요.
    수정해 주세요 : )

  2. coolya 2007/06/27 22:55

    엣...내 눈엔 없는딩..깨진 사진..우예된길까..?

  3. BlogIcon Gore 2007/06/28 04:32

    하하, 알았다!
    'file:///C:/DOCUME~1/이영아/LOCALS~1/Temp/UNI0000095019b6.gif' 이런 식으로 사진 주소가 누나 컴퓨터로 직접 링크되어있어서 그래요. (그러니깐 누나가 볼 땐 안깨져 보이지요.) 다른 컴퓨터에서 보시면 사진 안나올 거에요.

    해결책은.. -_-; 잘 모르겠는데; 아마 사진을 일일이 다시 업로드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_=

  4. BlogIcon coolya 2007/06/28 08:34

    아..그런 거였고나..^^지금 고쳤는데, 이젠 잘보이는고?

  5. 짐씨네 2007/06/28 10:37

    아...깔끔하니 잘 보여요.

  6. BlogIcon 2007/06/28 14:20

    옹 잘 보여요 ^^ 역시 종민!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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