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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 아이콘, 한걸음에 넘어서기

무한도전에 초대되어 코맹맹이 소리 연신 발산하던 paris hilton, 그녀의 코맹맹이 소리는 지금 그녀의 sexy 원천이다. 섹시한 코맹맹이 소리의 창시자는 물론 아닐뿐더러, 처음부터 코맹맹이 소리가 섹시한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그녀의 코맹맹이 소리는 다른 모든 잡음을 한번에 없애줄 만큼 섹시하단다. 돈많고 친구많고, 딱 요 관점에서 부르주아 사회에서 집안 좋은, 그리고 추가로 머리 빈 자신의 그림자들을 한꺼번에 사라지게 해 주는 햇빛, 그녀는 섹시함을 내세웠다. 그녀의 섹스비디오는 "paris hilton"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명확한 한 곳에 모으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돈많고, 친구많고, 집안좋은, 철부지 아가씨에서 섹시한 paris hilton으로 자신을 상품화하는 계기였다. Lindsay Lohan, Britney Spears 등의 헐리우드의 철부지 소녀들과 자신을 구별지으며, 결코 그렇지도 못하면서 단번에 Beyonce Knowles의 섹시와 등가를 이루었다. 그러자 그녀의 코맹맹이 소리는 철부지 덜 떨어진 이미지에서 빠져나와 섹시함을 얻어 입었다. 심지어 BS는 PH의 이미지메이킹 수법을 동원한 것이 역력한 의도적 노출을 통해 그녀에 대한 대중의 과도한 관심을 덜어버리기도 했다.  아직도 그녀의 많은 돈과 혈통, 그리고 그녀의 헐리우드 인맥에 침흘리는 사람들 많으나, 그녀가 우리에게 돈 줄 것도 아니고, 수많은 전화번호들 넘겨줄 일 만무하고, 그저 그녀의 섹스 동영상을 떠올리는 것으로 타협하며, "섹시하다, 섹시하다" 인정만 해주면 어느 한 쪽은 만족스럽다. 남들 다 쓰는 "that's hot"을 자신의 상품으로 내거는 모습보다는 나름 진정성이 있는 상품으로 인해 말이다.


그들은 나를 청순가련이라 부르더라

삼류 양아치 강재를 사랑이라고 여기며 혀깨물다, 결국 피토하며 죽어간 파이란, 張柏芝가 있다. 淺田次郞의 소설, 러브레터에서 매춘녀였던 파이란을 굳이 세탁소 직원으로 바꿔가며 청순가련의 여성성, 그리고 구원의 여성상에 대한 남자들의 로망을 발산해야겠냐며 욕도 참 많이 먹었던 영화 <<파이란>>의 여주인공이다. 어쨌거나 그녀는 참 예쁘다. 밝혀진 대로라면, 연기생활로 번 돈이 다이며, 집안도 그럭저럭, 친구들 역시 연기생활과 관련된 것이 전부인 것으로 보인다. 화면에 비치는 정도와 언론에서 노출하는 정도가 매우 유사한, 너무너무 평균스러운 배우이다. 그런 그녀가 사생활 노출 스캔들에 휩싸였다. 현지에서 문제가 제기되자마나 우리 언론은 수많은 정보를 물어다 날랐다. 2년이 지나가지만 paris hilton의 섹스 동영상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비해 5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아버렸다. 왜 존재하는지도 참 의심스러운 tvN이라는 케이블채널은 명절 전이라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창 바쁠 pd들 모아다가 홍콩에 급파까지 했단다. 촬영 후 張柏芝 사건 관련 5일자 방송분에는 너무나 뻔한 스토리가 펼쳐졌다. 여자배우에게, 그것도 청순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여배우에게 치명적인 사건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그러면서 사진속 인물이 자신이 아니라는 張柏芝의 변론을 조롱하듯, CSI 及 사진대조에 열을 올려 결국 사진이 진실임이 폭로되었다. 張柏芝의 스캔들은 현재까지 paris hilton의 섹스 동영상과는 달리 그녀의 배우 인생은 물론 삶에서도 종지부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듯 하다.


일상, 아름다움의 경계

싸이월드, facebook 등등의 네트워크 사이트가 있다. 자신의 일상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꾸미려는, 그리고 남들에게까지 기억되려는 욕망들이 넘실대는 공간이다. 네트워크 사이트 접속률 최다 지역인 명성에 맞지 않게 사생활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왜 그렇게도 믿기 힘든 허리하학적 루머들이 많이도 양산되고, 여배우의 사생활은 정말 치명적인 일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지, 한쪽에서는 일상생활, 사생활이 아름답게 변신하는 일에 별저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한 사람의 생을 마감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지... 그냥 갑작스럽게 궁금해졌다. 싸이월드와 utube 사이의 거리인가? 자신을 위해 찍은, 그렇다하더라도 자신에게 이롭지 못한 결과를 초래해야만 하는 스캔들의 현주소에 대해 궁금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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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Doma 2008/02/09 12:44

    전 노력에 대한 최신 뉴스와 말씀을 번역하고 진실 :

    특별히 만든 비디오를보고, 그는 정말 그런 뜻은 아니었을 사과, 어떻게하려고하는가하는 그 문제가 미래를위한 빼시오 여배우가 될 때 그를 고소에 대한 부주의 그는을 유지하는대로 돈을 그의 친구에게 사진을 과시합니다. 여기에 자신의 뜨거운 논란 비디오 :

    http://www.littleoslo.com/eng/home/?p=115

    위의 링크에서 보시다시피, 많은 사람이 새로운 사진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tmr에 관한 뉴스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대해 거짓말왔다! 놓치지 마세요! 및 일부를 포함하여 더 많은 사진을 온라인으로 유출되었습니다 그의 여자 친구 vincy 및 세실리아 '층'에 경찰과 교복, 핑크색 브래지어, 흰색 속옷, 질리안 정에서 다른 위치와 그녀의 사진을 매우 행복 듯합니다.

'황우석 사태' 2주년 기념

2007/11/18 08:51 | Posted by 김장철
아직도 저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황박사님...
어찌 지내시는지?
줄기세포는 건강하게 잘 자라는지?
김장철이 오면 이제 누구보다 황박사님이 먼저 생각납니다.

.......
재작년의 사태를 겪고 나서 좀더 본격적으로 '대중'과
'지식'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되었다.(물론 아직 성과는 미미하다만...)
정말 모든 것을 빨아들인 거대한 혼란과 광기,
미국, 국가, 젠더, 계급, 대중, 지식, 과학, 싸이버공간, 미디어, 민족주의 등등
모든 현대의 '키워드'가 다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거대한 '사건'을 기념하면서리-
   
사태가 반전되었는데도 어디로 귀결될지는 알 수 없었던 급박한 와중에
약간은 긴장하면서(?) <시사저널>에 기고했던 글이다.
물론 그 때 <시사저널>은 좋은 주간지였고, 이 글을 실어주고 또 읽고 난 뒤에
저를 격려해주었던 기자들은 지금 모두 <시사IN>으로 갔다.
 
글의 강조는 어떤 블로거가 한 것.(그대로 가져온 것이지요...)
이명박의 인기가 오래갈 것이라는 예언(?)도 들어있다.
이명박과 황우석의 공통점, 참 무서운 것이다.
(그림은 황우석교수에 대한 서울대의 파면결정이 내려진 직후
다음카페 <아이러브황우석> 메인페이지에 걸려있던 이미지)

~~~~~~~~~~~~~~~~~~~~~~~~~~~~~~~~~~~~~~~~~~~~~~~~~~

황우석 교수가 학자로서 윤리 의식이 아주 트릿한 인물이며, 또한 언론 플레이 같은 데 능수능란한 정치꾼 스타일의 인물임이 드러났음에도 아직 황우석 지지자들은 상당히 많다. 여론조사 결과 황교수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40%가 넘었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졌지만 상당수 ‘국민’에게 아직도 ‘황우석’은 영웅의 이름인 것이다. 왜 그럴까?

‘황빠 현상’ 안에도 계층적ㆍ세대적 차이가 엄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황우석이라는 잘못된 영웅은 오늘날 상당수의 ‘보통’ 한국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안타까운 열망과 어두운 마음이 만들어낸 환각임이 분명하다. ‘난치병 환자를 구한다’ ‘국익을 얻는다’ ‘세계적인 과학자’라는 미래형 ‘이미지’는 ‘논문을 조작했다’ ‘연구 윤리를 위배했다’는 사실의 기표보다 훨씬 강력했다(물론 더 이해하기도 쉽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황교수는 눈앞의 ‘성과’와 함께, 어느 정치인도 제시하지 못한 ‘희망적인’ 비전(수조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와 난치병 치료라는 결정적인 뻥튀기)도 제시했었다. 황교수가 열연했던 ‘먹여 살릴 능력 있고 강력한 아버지’ 같은 인물에게 우리는 기꺼이 자신의 주체성마저 양도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호주제는 폐지되었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아직 제 발로 선 ‘개인들’이 아닌지도 모른다.

많은 지식인과 진보주의자들은 황우석 사태에 나타난 ‘국민’의 애국주의에 대해 혐오감을 표시한다. 때로는 그것에 ‘파시즘’이라는 딱지까지 붙이며 매몰차게 공격하기도 했다. 과연 그놈의 애국주의에는 그런 면이 있다. 객관적인 진실과 양심적인 문제 제기를 일방적인 욕설로 매도하고 그야말로 ‘냄비 근성’으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꼴’을 보면 과연 혐오스럽고 머리털이 쭈뼛 서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황우석 교수가 ‘가난한 자들’과 장애인들의 영웅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은 제 발로 설 수 없고, ‘행복’하기는커녕 제 앞가림조차 해나가기 어렵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애국주의와 경제 제일주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약자들이 지르는 비명의 일종이다. IMF 이후 저성장ㆍ고실업 사회가 되면서 ‘국가’ 아닌 다른 믿을 대상도, 비빌 데도 당최 없는 것이다.

그래도 국가가 나서서 ‘인권위원회’도 만들고 ‘신용불량’도 해소해주고 탁아소도 지으려고 한다. 그런 대안마저 없거나 실패하면 사회적 약자들은 ‘자본’의 흡혈귀들과 강자들한테 그야말로 피를 빨리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가난한 애국자'들은 ‘몸으로’ 느끼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국가’(때로는 가족)밖에 가진 것이 없다.

‘국민’들이 정치권과 대통령에 바라는 바가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라는 식의 열망밖에 가질 수 없고, 또 그러한 불안이 지속되는 한, ‘황우석스런’ 대한민국 영웅은 얼마든지 또 나타날 것이다. 이는 ‘청계천 효과’로 이명박의 인기가 상당히 오래갈 것이라는 것, 그리고 현재로는 김근태나 박근혜 같은 이가 ‘결정적인’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유감스럽게도 현대 국가는 그저 지배 계급의 도구이거나 ‘망상의 공동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통의 ‘공간’이자 공기(公器)이기도 하다. 거짓말 조작은 응징되어야 하지만, 민중의 ‘애국주의’는 보듬어 치유해야 할 상처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가 이런 각도에서 제기되지 않으면 ‘진보’의 무능이나 ‘고립’은 계속될 것이다. 예컨대 사태의 전 과정에서 민노당은 그야말로 일관되게,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고 정도(正道)를 지키며 ‘진보’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지만, 이것이 ‘진보’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산시키는 데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되었다.

참담하지만 21세기에도 ‘국가’나 ‘애국질’이 없어지거나 약해질 전망이 거의 없다. 필요한 것은 애국심 자체와 싸우기보다는, 애국심을 더 강고하게 하는 불안과 애국심에 편승해서 한몫 보려는 선동가들과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저 처절하게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농민들처럼, ‘국익’ 부스러기라도 얻기 위해서는 국가, 바로 그놈과 처절히 싸워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일일 것이다. ‘약자’들 편에 서서, ‘진보’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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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룰루 2007/11/18 08:58

    벌써 2주년이네요.. 2002, 황우석, 디워..
    손기정 이후 현대의 '신드롬'에 대한 책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

  2. BlogIcon 김장철 2007/11/18 09:04

    아니 글을 미처 다 올리지도 못했는데... 실시간 댓글을...
    격려의 말씀, 대단 감사합니다만,
    누구시죠^^? 언제 한잔 하실까요?

  3. 룰루 2007/11/18 09:09

    김장철님, 저 사진 잘못 링크하셨쎄요~ 다른 사람들은 깨진 화면으로 나옵니다. 회원만 볼 수 있쎄요; 작은 그림에서 이상하게 나와요^^
    훗훗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팬이라고 할 수 밖에...

  4. 2007/11/18 09:11

    비밀댓글 입니다

I♥NY, NYPD, SWAT... 나를 흠칫하게 만드는 것들..

2007/10/29 21:28 | Posted by <소문> 편집실

요즘 NYPD 라던지, SWAT라는 문자가 새겨진 모자나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럴때마다 '흠칫'한다. I♥NY 이라는 티가 한때 유행이었고, 이는 눈쌀이 약간 찌푸리게 했을 뿐인데, NYPD나 SWAT 같은 것은 잘 이해가 안 된다.

NYPD는 New York Police Department의 약자이고, SWAT는 Special Weapons and Tactics로 전자는 뉴욕 경찰임을 나타내는 표시이고, 후자는 미국 경찰 특수기동대를 의미한다.

뭐..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에서 뉴욕 경찰을 좋아하든, 히틀러의 겨털을 숭배하든, 악마의 애인이 되고 싶어하든 남이 상관할 바 아니지만, 이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쓰고 다니는 것일까...

아, 나는 이제 문화의 흐름에서 뒤떨어지는, 문화 리터러시 재교육을 받아야 할까. 언제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울 엄매가 나 고딩때, 바지 끌고 다닌다고, 그게 뭔 놈의 멋이냐고 했을때, 언제고 나도 저렇게 될 날이, '현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날이 올 줄 알았던 것이다.

뭐 심각하게 생각하냐고, 그냥 글자들이 멋있어서 입는거지, 글구 미국 경찰들은 왠지 뽀대 나잖아, 왠지 뉴욕은 멋있잖아, 라고 한다면, 그래도 나는 문자 문화에, 문자 묘지에 경배하는 묘지기의 일족이라서 그런지, 그 의미가 불편하다구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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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이, 그것도 뉴욕이, 그것도 뉴욕 '짭새'가 무섭고 싫고 불편하다고;; 너희랑 나랑 왜이리 다를까. 나도 관타나모 다녀온 것은 아닌데, 나는 왠지 백인이 싫고, 미국하면 미군이 떠오르고, 미국경찰하면 LA폭동 당시 그들의 편파적인 보도랑 진압과, 권위적인 뚱보와 인종차별이 떠오른다고오. 이라크 침공과 부시의 원숭이 귀와, 수많은 적대적 M&A와 공격적 금융자본과 IMF의 원흉 등등.. 나는 미쿡이 싫고도 무서워요~

너희는 왜 NYPD가 좋니? 난 니네랑 야기하고 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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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2007/10/30 18:57

    뭐 많은 생각 하고 입었을까요? 저도 어렸을 때 즐겨 입었던 사파리가 나중에 보니 US ARMY여서 다소 흠칫했었다는...
    오히려 뜻을 모르고 입는 것은 브리트니가 호남 향우회를 입는 것처럼 그다지 걱정할 일은 아닐 듯.
    뜻을 알고도 미국 군대나 경찰 혹은 특수부대에 경도되었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달의 바다> 2007년도 제12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 저자: 정한아. 1982년생. 건국대학교 국문과.
<걸 프렌즈> 2007년도 제31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저자: 이홍(본명: 박희선). 1978년생. 안양예고 문창과 -서울예대 문창과. 언론 재벌집 며느리.
(국문과 생의 자격지심인지, 콤플렉스인지, 편견인지(결국 비스무레한 말;;;), 여튼 국문과나 문창과 출신 글쟁이라고 하면 고개를 우선 갸웃거리고 들어가기 십상. 뭐 불문과 정도는 되야지, 글 좀 쓰겠구나... 라는 이미지랄까. 아님 대학을 안 나왔거나, 법학과 정도면 한번 슬쩍 끄덕여주는데...
근데 요즘은 문창과의 대량생산 체제 확립... 쩝.. )

이 두 작품을 읽고 나서 든 생각. 아, 이제 한 시대는 끝났다.
웃기지만, 그런 기분이 든다. 후쿠야마 선생처럼, 그냥 지 좋을대로 안온한 연구실에 앉아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이제서야 진정 21세기 문학들이, 21세기 작가들이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한다는 느낌. 물론 이 '21세기'라는 것은, '21세기'라고 일컬어지는 것들.

'포스트모던'을 아주 포스트포스트한 의미로 사용할 때의 느낌.

90년대 초중반, 한국 문학계를 휩쓸었던 여성 작가 트로이카의 여성주의+후일담+불륜의 삼위일체를 넘고(*근데 사실 요즘에 다시 신경숙을 읽어보니, 이 분은 참 혜성처럼 등장해서 은은하고 좋다, 뭐 요즘 소설을 읽으면, 너무 조급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공선옥!), 장정일, 문학계의 서태지도 흐르고, 김영하는 아저씨가 되고, 윤대녕은 그 쪼잔함과 쿨함이 김빠진 맥주처럼 쇠잔해지고, 이제 피도 쉬었나 백민석, 공부쟁이 김연수, 잘난척 재수 정이현, 뭐하자는 건지 천명관, 요즘 뭐하나 한강, 이거 평론가들이 왜 좋아하지 윤성희, 그래도 김애란, 젊음의 뒤안길을 돌아온 마초 김훈 등등 아무렇게나 호명해본 이들과 마주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21세기'!

아니. 21세기 학번 필자는, 왜 '21세기 문학'을 앞에두고 늙고 허탈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설마 아직도, 어딘가에서 운동하고 있는 방현석이나 유재현, 불란스서 조선 고전을 파고계신 황구라를 서사의 미래라 생각카는 것은 아니겠지요. 서사의 미래란 오래전 '제국의 영원'인지 뭐시기 포스트모던인지 포스트표절인지를 구워내신 이선생께서, 리니지든지 와우던지 MMORPG야말로 미래의? 현재의 서사라 하지 않았겠소.

여튼. 이거이거 칙릿이면서도, 순정만화이면서도, 인공적 따뜻함에 마치 프로작을 넣은 밀크쉐이크를 먹은 직후에 핫초컬릿을 스타북스에서 테이크아웃하며 아이러브 니욕이라고 씨부리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달의 바다>를 읽었을 때는, 흐뭇한 미소나마 있었는데, 이 <걸 프렌즈>를 그 후 이어 읽으니 둔중한 울림이 옵디다 그려.

이거 문학상 관련 상'평론'같은 것을 써볼까.... 또 말만 해봅니다. 문학상의 계보라고나 할까요. 이거이거. 문학사회학 비슷하게도 쓸 수 있고, 담론의 계보도 그릴 수 있고, 재미나는 작업이지 않겠소.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 심히 '뉴웨이브'스럽소. 지난번의 '파라다이스 가든'또한 굉장히 르포스러웠는디. 이거 세계일보문학상이나 한겨레문학상 잘 팔리는 것 보고, 나름의 나와바리 구축을 위한 시도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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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이러브 니욕! )

역시. 21세기란.
아이러브 니욕! (혹자는 '아이러브 니욕'에서 남이야기 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추론하여, 이것이야말로 후일담 문학을 지칭하는 카피가 아니겠느냐 추론할 지도 모르지만, 후일담은 90년대적 현상. 21세기는 21세기였던 것...)
훗날 또 늙은 역사가는 9.11이란 결국, 21세기 기원이요, 아이러브 니욕이 아니겠소.
라고 적을꺼고, 그것이 지구촌이자 그 균열이었다고 쓸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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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결국... 아.... 아이러브 니욕!)

아, 괜히 꼬장이었소. 일본소설을 욕하지만서도(내 후배 중 하나는 '편의점 소설'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요즘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것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이었소. 근대소설과 대결하기 위해, 근대소설을 썼다고 하며, 이제 이를 너머갈 것이라는 말. 이를 위해 쇼팽과 들라쿠르아에 대한 연구나 자서전은 물론, 당대 역사, 경제, 사회에 관한 연구서들, 복식사에 이르기까지 탐독한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잘 녹아있었오.
또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것은 마이클 창의 "당신 인생 이야기"였소.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문학도답게, 흥미로운 사고 실험으로 가득하였소. 모 잡지에서 소설가 박민규는 이삼년에 단편 한편 발표하고 먹고사는 그가 부럽다고 하였소. (기실 마이클 창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지만서두;) 히라노 게이치로만 해도 그렇소. 2~3년에 하나 쓰면 많이 쓴거요. 이렇게 구조적으로만 원인을 찾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가요계가 음반 판매가 안되서 컬러링이나 배경음악에 음원판매로만 벌어먹고 사니, 모두다 소몰고 워우워워 오늘밤 외롭거나, 꿍짜리짜짜 오늘밤 불타올라 놀자놀자놀아버리자로 양분되었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문학도 나까무라 하루끼 익쇼니 다이죠부요우~ 달려라 오빠, 느리게 사는 슈퍼스타 식으로 귀결되지는 않을지, 괜히 오바하며 끄적인거요.

최근에 읽은 기대작 황구라 선생의 소설도 기대만큼 재미있지도 않았고, 별반 새로울 것도 없어서 콧방귀 꽤나 뀌었소. 나를 감동시키고 움직일 한국소설을 원하오. 그래서 오바 쫌 해보았소.

오바라.. 이거야말로, 익명글쓰기의 재미아니겠소. 나도 참 심심하오. 그래서 대작, 명작, 고전을 기두리는거요. 뭐.. 뭣하면 다시 칠조어론 암송이나 해야겠소. 아님 이영도, 네크로맨서님의 부활을 기둘리거나...

어쩌면 현대적인 의미에서 가장 21세기 문학은, 네이버 댓글들의 연쇄가 형성하는 텍스트의 장일지도 모르겠소. 앞서 MMORPG가 서사의 미래라고 했던 이선생의 말을 대충 패러디표절 해본다면, 네이버 뉴스에 달리는 네티즌들 개개인이 짜내려가는 광대한 하이퍼텍스트의 그물이야말로 상호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서사이면서도 시적인, 수동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사회에 대한 관심과 개인의 욕구표출의 길항작용으로 인해 야기된, 일본 하이쿠 문화나 조선의 공동 작시 문화 전통을 이으면서도 첨단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뭐 어쨌든 대충, 꽤나 흥미롭고 연구되어야 하는, 유사 민담적 적층문학의 새로운 계보에 선두에 있는, 리좀적이고 인터넷 포털사이트라는 홈패인 공간을 탈영토화하며 탈주하는 유목민적인, 정치적 무의식을 드러내는, 젠장 힘들구나, 얼씨구 좋다, 판소리 추임새를 연상시키기도 하면서, 담론의 일방향성을 해체하는, 다중의 역동성과 그들의 아비투스를 들어내는 구별짓기로도 기능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공론장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그런데 커피는 별다방이 콩다방보다 맛있다는데, 왜 콩다방이 더 비싸죠? 맥도날드와 버거킹의 비교에도, 맥도날드 쪽에 손을 들어주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글쎄... 취향이라는 것은 참, 여하튼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요?, 함축적이면서도 상징적인, 단순 알레고리 차원을 넘어서는 은유와 상징, 기의와 기표의 일의적 관계를 초월하는, 키보드 워리어라는 것이 있다고 하던데, 키보드를 가지고 WWF에서 반칙기술로 마구 마빡을 까는 것이죠, 다중성이라는 개념자체를 재구성하게 하며, '텍스트'의 의미, '저자'의 의미를 밝히는, 그나저나 이번 대선은 어찌될까요, 스턴식 옆길 새기의 21세기 버전이며, 중심서사를 탈구축 해체시켜, 진정 탈중심적인 텍스트를 구성하는, 옆집 할머니가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쩌죠?, 가르강뛰아와 팡타그리엘에서 나온 유명한 구절로 마무리를 해야하겠습니다, 나는 가르강뛰아가 더 좋아라고요!
(재귀구조적 인식, 서사 형식과 내용의 서로 째려봄, 나는야 네티즌, 아이 엠 샘나~ )


* Being 르봉은 소문 필진 중 한명이 지 맘대로 불만을 털어놓고 꼬장을 부리는 공간으로, '편집실'이라는 필명에도 불구하고, 소문 편집인들 전체 의견과 상관없을 수도 있다는,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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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eing just me myself 2007/10/20 07:40

    재밌는 것은 미국에선 creative writing이 english department와 같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죠. 한국에선 문창과와 국문과가 분리되어서, 문창과를 약간 우습게 아는 경우도 많구요. 사실 이 둘이 분리되어서 생기는 문제는 꽤 큰 것 같아요. 책을 많이 읽고 인문학적 소양이 풍성한 이들이 직접적인 창작으로 뛰어들 기회가 부족해지는 것 같구요. 반대로 글을 기계적으로 쓰는 법만 배우고, 문학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기도 하겠지요. 문창과의 '창'이 주는 느낌이 전혀 다른 울림을 갖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미국의 좋은 학교 영문과는 영문학 수업에서 단편/장편을 써오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네는 그런 수업이 없으니 안타깝기도 하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문창과의 대량생산/대거진출"이 얼마나 수준 높은 작품을 담보할 수 있을지 걱정이되긴 하네요. 이것도 먹물들의 괜한 걱정인지. 사실 어디에서 어떤 훈련과정을 거치든, 좋은 글만 나오면 되긴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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