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여름이면 떠올려지는 가객 '쿨cool'. 정말 이해하기 힘들게 롱런했던 그룹이다. 이들의 대표곡 중 하나이자, 여름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바로 '해변의 여인'. 정말 신나는 노래이지만, 가사를 유심히 듣다보면, 신나는 보컬, 리듬과는 달리 꽤나 꿀꿀한 스토리, 복잡한 구성으로 놀라게 된다.
해변의 여인
작사:이승호 / 작,편곡:윤일상
우선 제목부터 조금은 야리꾸리한 느낌도 든다. 거성님의 '바다의 왕자', 그리고 이를 패러디(?)리메이크(?)한 '바다의 공주'등도 있지만, '해변의 여인'하면 뭔가 언덕 위의 하얀집이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좀 더 이 제목을 노려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바다의 왕자'라고 하면 왕자가 바다를 소유한 느낌이지만, 바다의 공주나 '해변의 여인'이라고 하면 지형지물에 공주나 여인이 속박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가부장제 문화 속에 굳어진 '어감'일까? 즉 바다의 왕자면, 그야말로 바다의 지배자인 의미지만, 바다의 공주나 '해변의 여인'이라고 하면 바다에 놀러온 공주나, 해변에서 어슬렁대는 여인이 떠오른다는 의미. 나만 이런가? 어찌됬든 잡설은 그만하고 본설로 넘어가면,
우선 유리라는 가객이 읊는다. (이 노래를 부를 당시 유리씨는 튜닝(?) 전이었다...)
이게 뭐야 이 여름에 방안에만 쳐박혀 있어
안되겠어 우리 그냥 이쯤에서 헤어져 버려 (유리)
다짜고짜! 버럭! '이게 뭐야'냐는 거다. 이 여름에 왜 방안에만 있냐는 것. 그냥 이쯤에서 헤어지자는 것. 괜시리 제목에서부터 딴지를 걸고 있지만, 이 또한 뭔가 여-남 권력관계를 보여주는게 아닐까. 왜 어디를 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남성인 것인가. 왜 이 유리씨는 자기가 어딜가자고 하지 않고, 남자가 아무데도 안 데리고 가니까 '버럭'만 하는 것인가. 이 유리씨의 유일한 무기는 '버럭, 헤어져'이다. 관계를 개선시키려는 능동적 노력이 아니라, 이 관계가 아니라면 다른 관계를 찾겠다는 '단칼'만이 무기인 것.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 사진도 죄송. 잘 생겼다고 단언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룹 내에서 상대적 우월성을 과시했던 이재훈. 필자가 잘 생긴 남자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고로 이 사진 채택. 필자의 중학교 선배인 이재훈씨! )
내품에서 흘린 눈물 너만큼 나 힘이 들었어 잃어버린 너의 미소 찾을 수 없을까
안녕하고 돌아서는 그건 아니잖아 사랑을 위한 여행을 하자 바닷가로∼ (이재훈)
근데 또 이게 통한다. 이재훈이라는 가객이 곧 이어서 읊는다, '안녕하고 돌아서는 그건 아니잖아' 그리고 여자가 원했던 '방안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간다. 여성이 수동적으로 남성을 조종해서 원했던 것을 얻는 것이고 남성은 여성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미소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자고하는 것이다.
빨리 떠나자 야이야야야 바다로
그 동안의 아픔들 그속에 모두 버리게
이게 아니야 우린 사랑했잖아
이젠 다시 눈물 없는 사랑으로 만들어봐 후∼ (유리& 재훈)
버럭! 후에 '빨리' 떠나는 그들. 아픔을 모두 버리자고, 눈물 없는 사랑으로 만들자고 합창하는 그들. 근데 과연 잘 될까?
(헐.. 김성수.. 이분 '섹시'컨셉이라고 하시는데.. 별 사진이 다 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바닷가를 걷고 난 쓸쓸히 바닷가를 혼자 걸어 갈 때
앗! 나처럼 혼자 걷는 여잘 보게 됐고 난 그 뒤로 하염없이 쫓아가게 됐어 (김성수)
어딜 갔어 이 밤중에 도대체가 이해가 안돼
여기까지 여행 와서 나만 혼자 내버려 두니 (유리)
돌연 김성수의 랩이 나와서, 이것은 제3자인가 착각하기 쉬운데 그 다음에 유리의 가사까지보면 이 랩은 앞서 이재훈의 노래가 유리에게 직접 말하는 방식이라면 김성수의 랩은 남성의 심정을 독백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뭔일이 있었는가. 우린 모른다. 갑자기 남자는 쓸쓸히 혼자 걸었다. 그러니 여자는 이 밤중에 남자가 어딜 갔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안돼'고 '여기까지 여행 와서 나만 혼자 내버려'둔 남자를 원망한다.
자, 맘대로 상상해보자. 남자는 여자를 위해 먼 바다까지 여행을 왔다. 피곤하고 지쳤을테고,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 둘 중 누군가 약간의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 그 짜증은 순탄치 못한 여행전 감정들을 상대에게 증폭시켰을테고 둘은 화가 났을 것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화성 남자, 금성 여자'식의 분석에 도움을 얻자면 남자는 화가 나면 혼자있고 싶어하고, 여자는 대화로 풀려한다고 한다. 남자는 버럭 화가나서 박차고 나갔다. 여자는 더욱 화가 난다. 아니, 화났으면 말로 풀어야지 여기까지 와서 나를 혼자 내버려두다니! 그 사람한테 나는 이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남자는 쏘다니며 쓸쓸해진다. 화가 나서 나왔지만, 밤바다를 연인과 싸우고 혼자 걷는다는 것은 참 낭만적인 일이고 이에 스스로 취하면 괜히 쓸쓸한척 폼을 잡게 되는 것.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바에 따르면, 그렇게 행동하면 또 그렇게 마음이 가는 법. 정말 쓸쓸해지는데, 왠걸! 혼자 걷는 여자가 한적한 밤바다에 내 앞에 있었던 것. 이야... 이럴때 남성의 마음은 무엇일까. 좋게 말하면 낭만인 것이고, 분명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뒷모습은) 예뻤다는 것...
해변에서 만난 여인 많은 예길 들려 주었지 잃어버린 사랑으로 여기에 왔다고
돌아가면 나 역시도 혼자 될거라고 새벽이 오는 바다에 앉아 얘기했지 (재훈)
그 낭만에 취해 어찌어찌 붙잡아 말을 걸어보니, 쓸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사랑을 잃고 바다에 왔노라고. 캬.. 밤바다에 이런 고백을 들으니, 달이 비추고 별이 깜빡이고, 어쩌면 작은 모닥불 앞에서 재훈이라는 가객은 자기도 모르게 '돌아가면 나 역시도 혼자 될'거라고 말하고 만다. 새벽이 오는 바다에 앉아서 말이다. 새벽은 어디서 오는가.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 어디선가? 새벽은 어디에서도 오지만, 어디에서 새벽이 오는 것을 보는지가 중요하다. 그 중 대표적 '상투적 공간'이 바로 바다. 새벽에 태양이 떠오르며 형형색색 변하는 바다와 하늘. 검은색에서 희뿌연 회색에서 보라, 자주, 적청, 희끄무레하게 푸릏게 되다가, 마침내 붉은 태양이 점점 노랗게 붉은 색을 흡수하며 떠오를 때, 옆에 앉아있던 여인. 함께 이별의 '기억'을 겪고, 신새벽의 태양을 함께 본 것. 캬 태양은 다시 뜬다 이거다.
해변의 여인 야이야야야 그녀와 떠오르는 태양을 우리는 함께 본거야
기다리지마 이제서야 만났어 이제 다시 이별없는 사랑으로 만들거야 후∼∼ (재훈&유리)
그런데 한편, 우리의 유리라는 이름의 가객은 분한 맘에 맥주 한캔 따고 소주 반병 비우고 잠이 들고 말았던가.. 뭐하고 있었는가. 갑자기 클라이맥스라고 맞지도 않는 가사를 함께 부르는 이유는 뭘까.. 대미는 장식된다.
해변의 여인 나와 함께 다시 돌아가는 길에 보았지
예전에 그녀 멋진 자동차에 어떤 남자와 함께 있는걸 (재훈)
(대충 이런 느낌?)
재훈이라는 가객 속으로 희희낙낙 '해변의 여인'과 돌아가는 길에 목도한다. '예전에 그녀' 벌써 멋진 자동차&남자를 꽤찬 것을. 그러니 앞서 클라이맥스에 '기다리지마 이제서야 만났어 이제 다시 이별없는 사랑으로 만들거야 후∼∼'는 유리라는 가객에게도 해당되었던 것!
아. 이 얼마나 해피엔딩인가. 그리고 생산적 발전적인가. 2+2=4. 그리고 재훈은 뒤태든 앞태든 분명 꽤나 괜찮을 '해변의 여인'을 만났고, 유리는 멋진 자동차를 뽐내는 남자를 얻었다. 그래, 이런게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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